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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있어 혁명이란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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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유효할까?

아직도 현재진행형인가? 아니면 시대에 뒤떨어진 한번 거치고 지나야 하는 홍역과도 같은 것인가?

해묵은 책을 꺼내 죽은 마르크스를 다시 본다. 80년대 비합으로 나온 <독일 이데올로기>중의 혁명에 대하여 말하는 부분이다. 비합으로 나온 책이기에 번역(원본을 보지않아 자세히는 모르지만)의 매끄러움은 찾을 수도 없을 뿐더러 보이는 오타는 그 당시를 회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혁명을 위한 혁명이 아니다. 혁명속에서 자기를 단련시키고 그로부터 단련된 힘으로 혁명을 완수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공산주의 의식이 대규모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 목적자체의 승리를 위해서는 광범위한 인간번역이 필요하다. 이 변혁은 오로지 기존의 낡은 찌거기를 떨쳐버리고 실천적인 운동, 즉 혁명을 통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다. 혁명이 필요한 까닭은 지배계급을 타도하기 위해서는 혁명이외의 방법이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지배계급을 타도하는 계급은 혁명속에서만 기존의  모든 낡은 찌꺼기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토대를 만들 수 있는 힘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 독일 이데올로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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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시 꺼내보면서(사실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처박혀 있는 책을 꺼낸 것이다.) 옆에 가지런히 꽂힌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 니꼴라이 오스뜨로프스끼>를 보았다. 上, 下 두 권으로 나온 책이다. 어떻게 혁명전사로 성장하는가, 즉 강철로 어떻게 단련되는가를 보여준다. 인터넷을 보니 모두 절판이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혁명을 팔아 책을 팔 수 있겠는가.

박완서님의 <화랑에서의 포식>이 떠오른다.
"나는 낭만을 꿈꾸었나 봐."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낭만? 흥 지금이 어느 때라고. 지금은 70년대야."
하지만 지금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2008년이다. 지금 혁명을 꿈꾸는 것은 '낭만을 꿈꾸는' 것보다 더 부질없어 보인다. 나를 포함하여 혁명을 외치던 세대는 모두 혁명을 기억이나 할까? "한 여름밤의 꿈"이라고 여기지 않을까?
"그가 요즈음 읽고 있는 책은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였다. 유명한 소련 작가의 그 소설은 러시아 제정 끝무렵에서 시작하여 소비에트 혁명, 그 뒤를 이은 국내 전쟁을 통하여 한 소년이 어떤 모험과 결심, 교훈과 용기를 통해서 한 사람의 훌륭한 공산당원이 되었는가를 말한 일종의 성장소설(成長小說)이었다. 그러나 그가 공산당원이라든가 짜르 정부가 얼마나 혹독했는가는 아무래도 좋았다. 소설의 처음부터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주인공 소년의 익살스럽고 착한 성격이, 그리고 황폐해가는 농촌과 도시의 눈에 보이는 듯한 그림, 주인공의 바보같이 순진한 사랑, 그러한 것이 준의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집없는 아이』의 소비에트판 번안이었다." - 최인훈『회색인』중에서
최인훈이 <집없는 아이>의 번안이라 하는데 그 내용은 자세히 알지 못한다. 문학을 혁명의 도구로 사용하였던 시기였으므로 비슷한 구조는 많이 나왔을 것이다. 고리키의 <어머니>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혁명은 더 이상 용도폐기 된 것이 아니다. 다만 미완으로 현재진행형이다.

오늘은 그들의 소굴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 이길 것이다.

누구를 향하여 외치는 것인가? 나 자신에게 물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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