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글들이 사장되어 간다. 이슈가 되는 글이 아니면 대중들에게 보여지지도 않는다. 이런 점에서 구글의 키워드 뉴스RSS는 많은 도움이 된다. "컬럼" 과 "사설"을 구독하고 있다. 여기서 며칠 전 독설의 역학과 셀레브리티의 한국사회라는 컬럼을 보고 많은 것을 생각해 보았다.
한국사회는 유명해지면 끝
김구라를 빗대어 한국사회를 실랄하게 꾸짓고 있다. 100% 공감은 아니지만 대부분 공감하는 내용이다. 컬럼의 다른 제목은 <김구라 독설의 종말과 셀레브리티의 사회>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의 다른 기사보기도 볼 것이 많다. 또 다른 논객을 말하는데 그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얼마 전 한 논객의 행보의 변절(?) 혹은 말과 행동의 변화에 대한 한 칼럼니스트의 논평을 육성을 통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수십년동안 많은 저서를 낸 그 칼럼니스트는 비주류 매체에서 활동을 하던 그 논객이 왜 그렇게도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던 매체에넘어갔는지 그 원인에 대해 분석을 시도 했다.
누구일까? 누구인지 궁금하다. 왜 나만 모르나.
유명해지면 과거를 부정한다
김구라가 <라디오스타>에서 사과페레이드라는 설정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을 많이 한다. "뭔 사과를 그리 많이 하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글에서 말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는 유명해지기만 하면,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 속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단지 유명하다는 이유로 매체와 광고를 장식"한다. 따라서 "유명해지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노이즈 마케팅이 한국만큼 잘 통하는 곳도 없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논객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그렇다는 것이다. 맨 처음에는 글 쓰는 매체가 없다보니 군소매체에 글을 쓰면서 그 매체의 논조에맞춰주다가 어느 정도 이름을 얻으면 바로 주류매체에 가서는 과거 자신이 군소매체에 쓰던 논조는 모두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는행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사과할 일을 왜 했나
김구라는 독설을 빼면 캐릭터가 없다. 그는 그 캐릭터를 버리려고 한다. 그것을 버리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의문이다. "어차피 김구라는 오랫동안 주류에 둥지를 틀 수 없는 운명"이라고 말하기엔 가혹하지만 그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출발했다. 그가 싫지 않았다. 먹기 살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것은 김구라의 지난 모든일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과할 일을 했을까". "유명해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정신"으로 독설을 한 것인가? "먹고 살기 힘들다고 마음에도 없는 독설을 퍼부어가면서 먹고사는 사람은 드물다. 먹고살기 힘들다고 다 도둑질 하는 것은 아닌 것과 비슷하다." 지난 세월이 단지 먹고 살기위한 것이라면 반듯이 사과를 해야한다. 그들을 유명해지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사과를 하는 것이 옳다면, 김구라는 진정성의 독설이 아니라 뜨기 위해 가식의 직설적 수사를 날린 인물에 불과해진다."
독설이 독설이 아닌 우스꽝스러운 왕비호가 되다
글의 결론은 결국 정치로 갔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니 논할 가치가 없다. 세이공청 (洗耳恭聽)해야 할 일이다. 글의 마지막을 읽어 보면 그렇게 살기가 쉬운 길은 아니라고 보인다. 쉬운 길이 아니라고 가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 독설이 ‘개그콘서트’의 왕비호처럼 희화화된 형태만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사과를 통해 확증시켰다. 김구라의 진지한 독설이 아니라 왕비호의 우스꽝스러운 우회성이 각광받는 놀이성의 시대이기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독설은 유명해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성을 담고, 애써 감추는 진실을 드러내며, 그것을 계속 간직할 때 존재적 사회적 의미가 있다.
진실을 말하던 수많은 독설은 유명해지기 위한 수단이었다.
덧붙임_
글에서 셀레브리티(Celebrity)라고 너무 많이 한다. 가방끈이 짧은 나에게는 욕으로 들린다. 유명인 또는 유명해지기 위한 이라 표현하면 안되었을까? 먹물은 영어를 좋아한다. 그래야 유식해 보이나.
덧붙임_둘
김구라의 MB에 관한 발언을 들으니 사과의 필요성을 느낀다. 아마도 이 발언의 사과를 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은 아닐런지. 하지만 사과는 커녕 말을 꺼내는 자체도 싫어 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