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니 나는 소록도에 대하여 너무 모른다. 얼마 전 세상을 달리하신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과 시인 한아운을 통해서만 알고 있다. 거기에 한 권을 더 한 것이 김범석 님의 《천국의 하모니카》이다.
소록도를 빌어 우리의 편견을 말하다
소록도에서 공중보건의로 1년(?)을 지낸 의사의 이야기라는 것에 편견이 있었다. 1년간 그것도 공중보건의로 지낸 의사의 이야기가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다가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하지만 책을 잡고 읽어 나가는 동안 내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는 편견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저자는 소록도에서 한센인과 살아가는 동안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우리에게 들려준다. 또 그가 가지고 있던 편견도 우리에게 솔직하게 들려주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센인에 대한 편견을 조금이라고 없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게 느낄 수 있다. 저자의 솔직함은 책 곳곳에 드러난다. 그런 솔직함이 이 책의 감동을 더 해준다.
봉사는 자기수양이다
"나는 의료봉사한답시고 힘들어하는데, 그분(자원봉사자)은 무슨 생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지 궁금해져 질문했다." 답은 "글쎄요. 다 자기 수양 아닐까요?"였다. 저자도 많이 느꼈다고 하지만 나도 많이 생각했다. 저자는 "내 봉사활동은 남을 위한 봉사활동이었다. 가만히 되돌아보니 내 봉사활동은 자기과시, 시혜, 생색내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봉사활동이었다."라고 자기반성 한다. 저자의 이런 글쓰기가 좋다. "봉사는 전적으로 자신을 위한 일이어야 한다.'라며 우리에게 봉사에 대한 자세를 재차 일러준다. 그래야 "봉사활동을 하는 편이나 받는 쪽이나 맘이 편해진다."라는 것이다.
"봉사활동이란 남을 통해 나를 완성하는 것이지, 남을 완성하고자 자기를 희생하는 게 아니다."라며 "내가 희생하여 상대방을 바꾸려 했던 내 어리석음이 부끄러웠다."라고 말한다. 그 말에 나 자신이 더 부끄럽다. "오히려 환자는 봉사활동이나 시혜의 대상이 아닌 나의 선생님이었다. 나는 그렇게도 어리석었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히포크라테스의 말이다. 예술은 의술을 뜻한다. 하지만 그다음 구절은 잘 모르고 있었다. "판단은 어렵고 기회는 놓치기 쉽다."이다. 환자를 보다 보면 판단은 어렵고, 치료할 기회를 놓치기 쉽다는 말이다.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꼭 의사와 환자에 국한된 것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엄마, 언제나 불러보고 싶은 이름
소록도에는 '삼은' 어머니와 '삼은' 아들이 있다. 피는 한 방울 안 섞여도 서로 어머니와 아들이 되었다. 서로가 의지하면서 살아간다. 한센병에 걸리면 실제 가족에게 버림받고 소외당하기에 그들은 서로 의지하면서 산다. 그 정은 실제 가족을 대신할 만큼 크다.
비록 몸은 병들어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버릴 수 없다. 그중에서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나이가 아무리 먹어도 아련히 남아있다. 그들에게도 엄마의 그리움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 버림받은 그리움을 항상 맘에 두고 살아간다.
책에서 저자의 장난기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 있다. 그 글을 읽으면서 그가 취한 미소가 어떠했는지 눈에 선하다. '소록도에 온 강남 아줌마'라는 제목의 글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서울에서 온 것이 아니라, '대치동'에서 온 된장 아줌마의 소록도 관광을 왔다. 저자를 보고 서울대(?)씩이나 나온 의사(?)가 왜 이런 곳에서 일하느냐는 의아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여러 가지 쓸데없는 질문 다음에 '자원봉사'에 대한 질문은 된장 아줌마가 한다. '봉사활동을 하면 대학 갈 때 유리하다메요?' 이곳에 자원봉사를 보내려면 등등의 쓸데없는 질문에 저자는 맘이 많이 상했나 보다.
남편과 아이 밥은 안 해주고 놀러 온 아줌마는 "근데 선생님 진짜 병이 안 옮는 거예요?"라 물어본다. 저자는 "학업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고등학생들은 면역력이 취약해서 괜히 봉사활동 하러 왔다가 병이 옮을 수 있어요."라고 말하고 된장 아줌마들의 뭐 씹은 표정을 보면서 그는 유쾌한 웃음을 지었다.
저자의 이러한 유쾌한 웃음이 좋다. 나 또한 유쾌하다.
이 책은 앙깡님의 이벤트 2탄에 당첨되어 받은 책이다. 이 자리를 빌어 앙깡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더불어 우리의 편견을 조금이나마 없애게 해준 김범석 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저자 자신의 편견 등을 솔직히 적어주었다
덧붙임_
이 책은 소록도 얘기지만 세상이란 큰 섬에 사는 우리 모두의 얘기입니다. 이야기의 거울을 내게 비춰봅니다. 잃어버리고 되찾아야 할 것이 뭔지 아주 인간적인 의사의 생생한 체험으로 깨닫습니다. _신현림(시인, 사진작가)
아마 이 책을 가장 잘 표현 한 글이 아닌가 싶다. '세상이라는 큰 섬'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 들여 주는 이야기다.
덧붙임_둘
책의 중간에 한아운님의 <손가락 한 마디>를 보았다. 절절히 스며든 시인의 절규에 가슴을 저민다.
간밤에 얼어서
손가락이 한 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 위에 떨어진다
이 뼈 한 마디 살 한 점
옷깃을 찢어서 아깝게 싼다.
하얀 붕대로 덧싸서 주머니에 넣어둔다.
날이 따스해지면
남산 어느 양지터를 가려서
깊이 깊이 땅 파고 묻어야겠다.
이 시를 보니 박노해님의 <손무덤>이 생각난다. 왜 한아운을 보고 박노해를 떠 올리나.
... 전략 ...
우리는 손을 소주에 씻어 들고
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다
노동자의 피땀 위에서
번영의 조국을 향락하는 누런 착취의 손들을
일 안하고 놀고먹는 하얀 손들을
묻는다
... 후략 ...
덧붙임_셋
저자 김범석은 진료실에서 못다한 항암치료 이야기를 운영하고 있다.
덧붙임_넷
포스팅 제목의 '달아맨'은 링겔주사와 같은 달아서 맞는 영양제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