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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

왜 삼국지인가?


구글독스를 정리하다가 예전에 스크랩 해둔 삼국지에 관한 두 가지를 다시 읽었다.
<장정일 삼국지>에 대한 김영사 보도자료이고 다른 하나는 장정일의 저자 서문이다. 장정일의 삼국지에 대한 것은<생각> - '나의 삼국지 이야기'편에도 나와 있다.

다시금 읽고 정리하는 차원과 나중 검색을 위하여 포스팅한다.
삼국지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저자의 서문을 꼭 읽어 보시라.

*

장정일 삼국지 저자 서문

- 내가 <삼국지>를 쓰게 된 까닭

5년 전 김영사로부터 『삼국지』를 써보라는 권유를 받았을 때 나는 뭔가 ‘점지’ 받았다는 생각으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삼국지』는 자신이 해보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번역이나 개작·윤색을 할 수 없는 책이다. 우선 분량부터가 한두 권짜리가 아닌 10권 길이의 대작이라 제작비가 엄청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삼국지』 시장에는 늘 자신보다 먼저 시장을 점거하고 있는 진입장벽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즉 김구용 앞에는 김광주가, 김광주 앞에는 박종화가, 박종화 앞에 또 다른 선행 판본이 있다는 것은 제작비를 훨씬 뛰어넘는 기획비용을 지출하게 한다. 따라서 『삼국지』는 탈고하고 나서 출판사를 찾는 평범한 집필·출판 관행에서 벗어나, 번번이 출판사가 작가를 점지하는 기획의 성격이 강했던 것이다.

우쭐해지는 기분과는 달리 내 머릿속에서는 두 가지 생각이 차례로 떠올랐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내가 한 번도 『삼국지』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라는 것이고, 그 다음에 떠오른 것은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강한 반감이었다. 작가란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글쓰기를 선택한 사람’이라고 평소에 생각해 왔기에, 이름난 고전에 자신의 개성이나 명성을 살짝 덧씌워 내놓는 개작이나 윤색은 진정한 작가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삼국지』에 달려든 유명 선배 작가들을 은근히 마음속으로 경멸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기나긴 세월이 받들어 모시는 여러 고전 가운데 유독 ‘남성적 서사’가 지배적인 『삼국지』와 나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고, 또 체질과 상관없이 『삼국지』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을 늘 업신여겨 왔다.

그래서 나는 ‘한문도 모르고 번역도 못한다’는 이유를 방패로 출판사의 제의를 거절하려고 했다. 그러나 출판사는 ‘또 한 권의 번역본을 추가하려고 했다면 시작하지도 않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글작가 장정일만의 고유한 해석과 관점이 들어 있는 새로운 판본이다’라며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솔깃했다. 그 까닭은 『삼국지』 제의를 받기 한 해 전에 나는 진시황과 그 아들간의 권력투쟁을 그린 『중국에서 온 편지』를 쓰면서 역사를 재해석하고 구성하는 일로부터 엄청난 매력과 자유를 경험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국지』라면? 이건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삼국지』를 쓴 허다한 우리나라 작가들 가운데 애초부터 『삼국지』를 번역하거나 윤색·개작하기 위해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망설였다. 『삼국지』를 새로 쓴다는 것은 내가 진짜 쓰고 싶은 일체의 원고 작업을 중단하고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세월 동안 『삼국지』 하나에만 매달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점지’가 혹 가져다줄지도 모르는 금전적 보상만큼 작가로서 감수해야 할 손해가 없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즉답을 피한 채 ‘『삼국지』를 검토할 시간을 6개월만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출판사와 헤어진 바로 그날로 고서점가를 뒤져 구할 수 있는 『삼국지』 판본을 모두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모은 여러 종류의 판본들을 반 년 동안 읽으며 나는 『삼국지』가 새삼 굉장한 책이라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삼국지』를 새로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삼국지』가 굉장한 책이라는 것은 ‘이 책을 가지고 못할 이야기가 없다’라는 세간의 평가가 증명한다. 문제는 『삼국지』가 동양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게 유명무실할 만큼 하자가 많다는 점이다. 이 글을 통해 국내에 번역된 『삼국지』의 문제점들은 물론 소위 원본 『삼국지』 자체가 갖는 본질적 한계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겠지만, 3종의 번역본과 1종의 평역본을 읽고 난 후의 내 느낌은 ‘『삼국지』가 읽히지 않을 책이라면 몰라도 앞으로도 계속 고전으로 취급될 거라면 누군가가 『삼국지』를 새로 쓰는 일보(一步)를 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삼국지』가 군담역사소설(軍談歷史小說)이기 때문에 삼국시대에 대한 최근의 연구를 삼국의 역사에 덧보태면 안 될 이유가 없고, 또 시대와 인물의 재해석을 통해 『삼국지』 자체를 새로 해석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600여 년 전에 편찬된 『삼국지』가 당대의 민중과 시대정신을 반영했다면, 21세기에 읽히는 『삼국지』가 이 시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삼국지』를 쓰기로 결심한 계기다.


-번역의 문제

『삼국지』를 애독하는 사람들은 『삼국지』 하나로 사회·정치·경영·심리·군사·외교·역사·예술 등 하지 못할 이야기가 없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삼국지』로는 도무지 제대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 다시 말해 어떤 심각한 장애가 『삼국지』의 다양한 가능성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잘못된 번역 관행이다.

해방 이후 독자들의 관심으로부터 명멸해간 숱한 번역본은 물론이고 오늘날 시중에 나와 있는 몇몇 번역본의 문제는 너무나 자명하다. 번역 능력이 전무한 내가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한학자와 작가들의 오역을 감히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번역이 충실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제기하려는 문제는 번역 자체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삼국지』의 독자들은 물론이고 유수의 작가(또는 번역가)들마저 오해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삼국지』에 정본이 있다는 착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압도적으로 번역된 원말(元末)·명초(明初)의 『나관중(羅貫中)본』과 청대(淸代)의 『모종강(毛宗崗)본』은 현재 중국에서 읽히고 있는 숱한 판본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러므로 『삼국지』에 정본이 있다는 믿음 자체가 허구이다. 이것은 그 유명한 삼고초려(三顧草廬) 일화를 묘사하고 설명하는 해석이 무수히 존재한다는 사실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가장 많은 독자를 지닌 『나관중본』과 『모종강본』만이 있을 뿐 정본은 없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새로운 번역본이 나올 때마다 역자들은 『나관중본』『모종강본』에만 매달려 ‘이번에 자신이 번역한 『나관중(또는 모종강)본』은 숱한 『나관중(또는 모종강)본』 가운데서도 중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판본’이라며 실재하지 않는 『삼국지』 정본을 숭앙한다. 정본 또는 원본에 대한 잘못된 신앙을 바탕으로 자자구구(字字句句)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려는 시도의 문제점은 시대의 제약과 한계를 반영한 『나관중·모종강본』이 애초부터 ‘비틀어진 원판(原版)’이었다는 것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한 예로 1천 년이 넘게 유지되어 온 조조에 대한 평가는 월단(인물평) 잘하기로 소문났던 허소가 나관중·모종강본 『삼국지』에서 말했다던, ‘그대는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간웅(子治世之能臣, 亂世之奸雄)’이라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고, 또한 그 삼국지들은 ‘그 말을 들은 조조가 크게 기뻐했다’라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태평성대에는 고만고만한 신하로 만족할 게 분명하고, 혼란한 시대에는 더욱 혼란을 부추길 위험한 사람’이라는 허소의 말에 천하의 재사였던 조조가 기뻐했다는 것은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후한서』에 실려 있는 「허소전」에 의하면 허소는 『나관중·모종강본』에서와 달리 ‘그대는 태평세월의 간적이요, 난세의 영웅이다(君淸平之奸賊, 亂世之英雄)’라고 말했다. 즉 ‘당신은 태평세월을 혼란하게 할 인물이지만, 오히려 혼란한 세월이 오면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에 젊은 조조는 흥겨워 한 것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나관중·모종강이 허소의 월단을 왜곡한 것은 ‘영웅’을 ‘간웅’으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조조를 능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청나라 때 역사학자 장학성(章學誠)이 『삼국지』를 가리켜 “열에 일곱은 사실, 셋은 허구(七實三虛)”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삼국시대의 정사(正史)인 진수(陳壽)의 『삼국지』와 비교해 보면 장학성의 논평은 중국인의 관용과 과장이 상당히 섞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칠실삼허가 아니라 칠허삼실(七虛三實)이 오히려 더 적확해 보인다. 정사에 따르면 도원결의(桃園結義)를 비롯해 초선(貂蟬)의 미인계니 적벽(赤碧)에서의 연환계 따위는 있지도 않았다. 때문에 뒤틀린 원판을 놓고서 번역의 정확성을 아무리 따져본들 생산적인 의제는 생겨나지 않는다. 『나관중·모종강본』을 정확하게 옮기려고 하면 할수록 독자들은 왜곡된 역사로 가득찬 『삼국지』를 대하게 될 뿐이다.

역사의 왜곡과 함께 원전 번역이 가진 결정적인 약점은 나관중과 모종강이 살았던 시대에는 흥미를 유발했겠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설득력을 잃은 편향적 해석이다. 옹유반조(擁劉反曹)의 시각으로 일관된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이 한족(漢族) 중심의 왕조를 미화해야 했던 그 시대 그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있었겠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이분법적인 선악론만 흉하게 도출될 뿐이다. 나아가 황건군(黃巾軍)을 황건적(黃巾賊)으로 사갈시 하는 기술 또한 유교이념이 득세했던 시절의 체재지배적 해석이다. 동학난(東學亂)이라는 비칭이 동학농민혁명으로 승격되어 불리는 이 시대에, 옛날 옛적 먼 나라 중국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황건기의(黃巾起義)라는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주는 일에 인색할 필요가 있을까?

짐작컨대 한학자 출신의 번역자들에게는 동양 문화의 정수를 전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탓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원전중심주의에서 한발도 비켜나지 않는 그들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600여 년 넘게 이 땅을 그늘지게 했던 중화주의의 그림자다. 새로운 중국 패권주의가 도래할지도 모르는 21세기에 왜 그렇게 중화주의로 점철된 『삼국지』를 아무 비판 의식 없이 번역하고 군말 없이 읽으려 드는 건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후술하기로 하고, 그렇다면 이름난 작가들의 『삼국지』 번역은 한학자들의 원전중심주의와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서양의 고전과 달리 동아시아의 공통된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중국 소설을 그것도 당대의 가장 이름난 소설가들이 무수히 달려들어 10여 차례나 번역했다면 그건 이미 우리나라 소설이라고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신감과 문제의식을 갖고 『삼국지』에 도전한 사람이 없다. 하물며 조선시대부터 관운장이나 조자룡을 몸주로 삼은 무수한 무당(巫堂)까지 있어 왔건만, 우리 소설가들 가운데 ‘『삼국지』는 우리 것!’이라고 외친 작가는 전무한 것이다.

최근에 나온 한 번역본의 경우 처음 그 책이 출간된다고 했을 때 많은 독자들은 가슴이 설레었다. 민중·민족문학의 좌장이라고 할 만한 분의 작품인 만큼 토종 『삼국지』를 읽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책장을 펼쳤을 때, 그 기대는 말짱 허사가 되고 말았다. 탈식민주의와 문화 주체성이 유난히 강조되고 있는 오늘날, 소위 민족과 민중을 기치삼아 사회와 문학예술의 일선에서 향도가 되어 왔던 작가의 그 책은 독자와 시대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다.

흥미롭게도 그는 자신의 『삼국지』 1권 서문에 “나는 주요한 전투장면에서는 건조한 원문에다 나름대로의 신명을 얹어서 좀 더 박진감 있게 표현하려고 덧붙여 묘사하기도 했고, 과거형이 아니라 지금 바로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려고 현재형 문장으로 다듬기도 했다”라고 쓰고 있다. 나름대로 신명을 얹어 덧붙여 묘사했다?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이 문장은 이제껏 되풀이 돼온 『삼국지』 번역 작업의 실체만이 아니라 고전 번역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슬며시 암시해 준다. 모두들 텍스트를 정역했다고 말하지만, 실은 앞선 번역자의 몇몇 오역을 시정하면서 새로운 오역을 더하거나 고작해야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현대적 어투로 문체를 갈아 입혀왔던 게 고전 번역의 실주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정역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해석이다.


- 핵심의 문제

강조하건대 『삼국지』는 그것이 읽혀지는 시대와 우리 주변의 인물 군상을 무한한 관심을 가지고서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현재 진행형의 역사다. 때문에 『삼국지』로부터 ‘역사적 교훈’을 추출하려고 해야지, 안이한 번역본들처럼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삼국지』를 읽다 보면 위나라, 촉나라 할 것 없이 중요한 전쟁에는 반드시 평소에 경원했던 ‘오랑캐’를 앞세워 전투에 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무리 큰 나라라도 전쟁터에서 입을 수 있는 예기치 못한 손실은 제국의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위험 부담을 주위의 동맹국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우리가 미국의 요구에 따라 베트남으로 이라크로 파병해야 하는 비애가 여기 있는 바, 『삼국지』는 끊임없이 ‘지금-여기’의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국내의 여러 필자들이 마치 의논이나 한 듯이 원전 중심 번역에 매달려 텍스트의 다양한 가능성을 개봉하지 못하고 있을 때, 과감하게 『삼국지』를 재구성하고 당대와의 대화를 시도한 평역 『삼국지』가 10여 년도 더 전에 출간된 바 있다. 오로지 그 평역만이 천년 전의 중국 역사와 현재간의 ‘역사적 대화’를 시도했다. 나는 그 점을 높이 산다. 하지만 그것은 이 땅의 80년대를 견인했던 민중의식에 대한 목적의식적인 대타의식을 갖고 쓰인 만큼 작가의 보수성과 고답성이 면면히 은닉되어 있다. 작가가 그토록 자랑하는 인물과 사건에 대한 평설 역시 객기와 객담의 차원에 불과하다.

그 『삼국지』가 작가의 온갖 보수성이 저장되어 있는 창고이자 무덤임에도 불구하고 식견 있다는 사람들은 『삼국지』가 작가의 온전한 저작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책을 찬찬히 분석하고 비판하는 일에 태만했다.

『삼국지』를 재구성 또는 재해석한다고 할 때 작가는 도대체 『삼국지』의 무엇을 재(再)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역사를 재구성하고 재해석한다는 것일 터이며, 따라서 작가의 역사관이야말로 그것의 옳은 기초가 될 것이다. 하지만 황건군을 어김없이 황건적이라고 명기하는 선민적(選民的) 역사관으로는 삼국시대를 살았던 당대 민중의 염원은 물론이고 현재의 중화민국 건국에 관한 진실마저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중국 역대 왕조는 항상 농민혁명으로 붕괴되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중국 역사는 황건난을 ‘의로운 봉기’로 높여 부르고 있다. 작가가 인간사(人間事)의 현상과 본질을 가려 바른 이름을 붙여주려고 애쓰지 않을 때, 동학농민혁명은 동학난이 되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은 광주폭동이 된다.

민중에 대한 선민우월주의적인 시각과 함께 참으로 아쉬운 점은 ‘『삼국지』가 한족에 의한, 한족을 위한, 한족의 선전물 또는 강령일 수도 있다’라는 비판적 시야를 그 평역 『삼국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왕실에 대한 불충과 무단(武斷) 행위가 결코 동탁이나 여포만의 전매특허가 아니건만 그 두 사람은 『삼국지』에 나오는 동급의 여타 주인공들에 비해 시종일관 턱없이 의리 없고 예절 모르는 야수로 묘사되다가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한다. 두 사람 모두 중앙의 정통 한족이기보다는 변방인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평역을 한다고 했지만 그 『삼국지』 속에는 아직 제3국인의 눈으로 중국인의 텍스트를 재구성하고 재해석한다는 의식이 없었다.

이 점이 중요하다. 한 나라(중국)의 고전을 해체하여 그들의 정전을 해체해 보이는 일은 그 나라(중국) 사람들에게도 공헌을 하지만, 그것을 시도하는 우리 자신에게도 모종의 자각을 준다. 예를 들어 『삼국지』에 빈번히 등장하는 동호(東胡)가 그 당시 요동지방의 주도권을 놓고 한족과 다투었던 고구려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 독자들 또한 조조나 유비의 각축으로 압축되는 『삼국지』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려 들 것이다. 중국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에 대한 평판 역시 동탁이나 여포와 다르지 않으며 그들의 운명이 바로 우리의 운명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정전을 해체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삼국지』의 경우, 자국의 문화유산이라는 헤어나기 어려운 무게에 짓눌린 중국인보다 우리 같은 비중국인이 더 잘 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작업을 더 잘해내기 위해서는 꼭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앞서 나는 ‘우리 삼국지’가 나와야 된다고 말했지만, 『삼국지』가 우리 것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우선 먼 옛날 먼 땅에서 왔음에도 너무 오래되고 친숙하여 마치 ‘『삼국지』는 우리 것’이라는 무의식중의 착각을 떨쳐버려야 한다.

‘우리 삼국지’가 나와야 된다면서 먼저 ‘『삼국지』는 우리 것’이라는 착각과 결별해야 한다는 말에 헷갈릴 독자들도 있겠지만, 이런 혼란조차 중화주의의 한 자락을 부여잡고 500년이라는 조선 역사를 운영해왔던 소중화주의 유산의 비애라고 보면 된다. 실로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삼국지』에서 파생된 많은 단어들이 시사용어나 중고등학생들의 시험 문제로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읍참마속이니 삼고초려니 괄목상대니 백미니 하는 단어들은 우리 생활 속에 마치 우리 역사의 일부인 듯 깊숙이 파고 들어와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제껏 『삼국지』와 우리 사이에 거리를 둘 필요가 없는 모종의 일체감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이다. 때문에 『삼국지』를 읽는 한국 독자들은 항상 유비를 ‘우리 편’으로, 또 조조를 ‘나쁜 편’으로 정해 놓고 읽게 되었으며 유비 삼형제가 모두 죽은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한숨을 쉬며 흐지부지 독서를 중단하기까지 하니 이게 바로 ‘삼국지는 우리 것’이라고 여겨온 우리의 무의식이다. 이제 그것과 결별해야 한다. 우리는 유비의 편도 조조의 편도 될 필요가 없다. 대신 전투로 날이 새고 지는 그 시대에 대한 해석을 통해, 말썽 많은 오늘날의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지혜를 얻으려고 해야 한다.

역사의식 부재와 중화사관이 주변화시킨 변방인에 대한 애정이 전무하다는 비판과 더불어, 형식상의 불일치 또한 그 평역 『삼국지』의 취약한 부분이다. 어느 대목에서는 평설이라는 형식으로 서구의 현대적 이론을 날것으로 피력하면서, ‘전설 따라 삼천리’나 다름없는 제갈량의 동남풍 일화는 아무 설명 없이 그냥 넘어간다. 인과성과 사실성이 결여된 ‘이야기’의 세계와 그것들의 합산이고자 안간힘 쓰는 ‘소설’의 세계가 두서없이 혼거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 모두가 원전에 압도되어 새로운 판본도 철저한 정역도 할 수 없었던 작가의 어정쩡한 타협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 <삼국지>, 누군가 바로 써야 독자가 바로 읽는다.

현대인의 가치 판단으로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믿었던 가치와 이념을 일방적으로 재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워낙 많은 한국인들, 특히 남성들이 이 소설을 무슨 통과의례처럼 읽기 때문에 『삼국지』 속에 나타나는 존왕충군(尊王忠君) 이데올로기와 성리학에 기초한 춘추필법(春秋筆法)은 깊은 주의를 요한다. 한실부흥의 명분을 내세워 고군분투하는 유비의 모습을 보면서 천명 받은 군주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게 충의라고 착각한다면 우리는 그만큼 불행해진다.

예를 들어 80년대 초에, 자신들의 주군이 만들어 놓은 유신체제를 지속하기 위해 탱크를 몰고 한강다리를 건너왔던 일단의 정치군인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겉으로는 복한(復漢)을 외치면서 내심으로는 새 왕조를 꿈꿨던 유비처럼 13년간이나 정권을 찬탈하고 개인적 야욕을 채웠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풀리지 않는 지역감정의 씨앗을 이 땅에 뿌려 놓지 않았는가? 이럴 때 『삼국지』는 전두환? 노태우는 물론이고 주군의 실정을 목숨 걸고 탄핵하기보다 맹목적으로 따르기로 작정한 장세동이나 허문도와 같은 잘못된 정치적 멘탈리티를 가진 인물들을 양산하는 좋은 배양지가 된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번역과 평역본으로는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진 『삼국지』 독서 체험을 바꿀 수 없다. 잘 알다시피 『삼국지』는 지금으로부터 1800여 년 전, 한(漢)나라 말기 중국이 위·촉·오로 분열된 채 약 100여 년 간 싸우던 시절의 군담역사소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의 역사에는 한대(漢代)에 이르러 중국의 통치 이념으로 공식화된 유교주의 가치관과 인간 이해 방식이 고스란히 집약되어 있다. 설상가상으로 남송 때부터 발달한 주자(朱子)의 성리학이 나관중이나 모종강 같은 유명한 『삼국지』 편찬자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던 탓에, 어떤 인물은 괜찮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터무니없이 희화화되거나 사소하게 지나쳐가고, 반대로 어떤 인물은 겉과 속이 다른 무능력자인데도 영웅시되거나 중시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한 예로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들조차 조조를 악의 화신으로 알고 유비 삼형제와 제갈량을 충의지사로 알고 있는데, 『삼국지』에 나오는 그런 묘사는 실제 인물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는 의리와 대의명분이 선악의 기준이 되는 유교적 춘추사관의 산물이다.

특히 나관중·모종강본 『삼국지』가 표방하는 유교적 춘추사관을 충실히 보강해 주는 것이 『삼국지』 속에 삽입된 총 210수에 달하는 시(詩)다. 『삼국지』의 편찬자들은 한 편의 일화나 한 개의 장(章)이 끝날 때마다 긴장된 서사를 이완시켜주는 한편 방금 끝난 일화나 장을 평가할 목적으로 삼국시대나 그 이후에 활약했던 문인들의 시를 찾아 넣거나 직접 써넣었는데, 그 시들이야말로 춘추필법의 정수가 고스란히 고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삼국지』에 삽입된 원시들에 의해 유비(촉)는 언제나 찬양되고 그 외의 제후장상들은 역도로 폄하받거나 어리석은 자로 조롱받는다. 가장 놀랄 만한 예는 전장에서 조운이 한덕의 아들 넷을 차례대로 죽이고 난 직후에 나오는 시다.

“저 옛날 상산 조자룡은/ 나이 일흔에도 커다란 공을 세웠도다/ 혼자서 젊은 장수 넷을 죽였으니/ 지난날 당양에서 주인을 구하던 기개와 같구나.”

원래 어진 이는 대(代)를 끊지 않는다고 했으나, 상대가 조조군이면 애도의 대상조차 못 되었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최근의 번역본 『삼국지』는 그 간에 나온 번역본들이 원시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아예 소홀히 취급했다면서 전문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210여 수의 시를 완벽히 번역해 넣었다고 자랑하지만, 우리가 그 독(毒)을 고스란히 받아 마셔야 할 이유는 없다. 편찬자들은 한껏 서정적인 시를 이용해 옹유반조는 물론이고 중화주의와 국가유교의 온갖 도그마를 주입하려고 했던 것이다. 원시의 저자들이 하나같이 당대의 고급 문인 관료들이었기에 영웅들의 삶과 죽음만 미화되고 민중들의 고통과 애환은 어디에서도 표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독자라면 ‘『삼국지』의 문제는 바로 『삼국지』에 들어가 있는 시’라는 것을 안다. 내가 나관중·모종강본 『삼국지』에 나오는 시를 거의 다 삭제하고 꼭 필요한 곳에만 시를 새로 써넣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삼국지』에서 일관하고 있는 춘추필법은 등장인물의 성격을 선인(청류·유학을 배운 사대부)과 악인(탁류·환관과 외척)으로 정형화하고 이분법화 함으로써 인간 내면에서 모순되게 약동하는 욕망을 바로 읽지 못하게 한다. 또한 황건군을 사문난적으로 몰아가는 예에서 보았듯이 당대의 왕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이러한 세계관의 제약으로 인해 소중하게 해석되어야 할 역사적 사건이 번번이 잘못 기술되고 있다. 바로 이런 문제점이 앞서 예로 들었던 것처럼 자칫 오늘의 우리 역사마저 굴절되게 바라볼 수 있는 맹점을 『삼국지』 독자의 내면에 심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삼국지』와 같이 영향력이 큰 소설은 누군가가 바로 써야 독자가 바로 읽는다. 청류와 탁류로 나뉘는 중국(한족)의 춘추필법이 황실 내부가 아닌 중화주의로 발현될 때는 한족이 청류가 되고 이민족은 탁류가 된다. 그러므로 몽고족(원나라)과 만주인(청나라)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때 완성된 나관중·모종강본 『삼국지』가 화이론(華夷論)적 세계관에 얼마나 충실했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삼국지』를 읽는 우리 자신이 그것을 모른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례로 제갈량이 남만(南蠻)의 추장인 맹획을 일곱 번 사로잡고 다시 풀어준 칠종칠금(七縱七擒)의 일화를 거론해 보자. 많은 독자들은 한 번도 아니고 일곱 번씩이나 적장을 풀어준 끝에 오랑캐로부터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복종을 끌어낸 제갈량의 재기와 인덕에 경탄하면서 중국인의 배포에 감탄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 일화가 중국인들에게 읽히는 방식을 생각해 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칠종칠금 일화에는 중국의 오만한 중화사상과 주변국을 다스리는 중국인들의 오랜 통치술이 응축되어 있다. 그것을 직시한 독자라면 더 이상 제갈량의 재기와 인덕이나 중국인의 배포에 놀라지 않고, 오히려 미련하고 염치없어 보였던 맹획의 행동으로부터 어떤 지혜를 이끌어내려 할 것이다. 주체성을 가지고 끈질기게 저항하는 것만이 한 민족의 존엄성과 독립성을 보장받는 길이라는 것을 맹획은 일찍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제갈량은 힘들여 정복한 남만에 자치권을 인정하고 군대를 거두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런 해석 역시, 누가 바로 쓰지 않고서는 쉽게 고치기 힘든 『삼국지』 독자들의 신화가 되어 있다.

나관중·모종강이 강조한 한족 중심의 중화사관과 관련하여 몇 마디 덧붙여 보자. 『삼국지』가 비록 한족 중심의 위·촉·오 세 나라의 쟁투를 그리고 있긴 하나, 실제로 삼국시대는 숱한 제후들이 각축하던 시대였고 오늘날 중국의 소수민족이라 불리는 숱한 민족이 각자의 이해득실에 따라 전쟁을 벌이던 시기다. 하지만 두 편찬자는 『삼국지』무대에 비(非)한족을 올리길 극히 꺼려했고, 맹획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설사 등장시킨다 하더라도 한족에 의해 정복되고 감화되는 열등한 미개인으로 묘사한다.

고구려 역사의 귀속을 놓고 중국과 역사 논쟁을 벌이는 이때, 나는 그런 단순한 화이론적 차별을 뛰어넘는 것은 물론 『삼국지』가 한족만의 것이 아닌 동아시아의 모든 민족이 공유하는 문화유산이 되도록 노력했다. 그것의 대표적인 사례가 위나라와 함께 연합작전으로 공손연을 토벌했던 고구려 동천왕의 실제 역사를 복원한 대목이다.


- 여성 독자들에게 전하는 글

동서고금을 통틀어 고전이란 늙거나 혹은 젊은 남자들이 즐겨 읽으며 반복해서 읽히는 책을 일컫지, 남녀노소가 읽는 책이 아닙니다. 소위 인류의 공적 유산이라고 추앙받는 고전들이 여성들에게는 전혀 친절하지 않은 것이지요. 독서나 교육이 왜 이처럼 배타적으로 고정되고 말았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한 권의 책이 쓰여야 하겠지만, 『삼국지』는 이런 잘못된 고전 가운데 특히 악명 높은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 주위에는 『삼국지』를 읽었다는 여성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은 원래부터 여성들의 독서 취향이 ‘말랑말랑’하고 낭만적인 것만을 선호하기 때문이 결코 아니지요. 진실을 말하자면 무수한 고전들이 그렇듯이 『삼국지』가 여성 독자의 진입을 철저히 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군담역사소설이라는 『삼국지』의 서사적 특성상 남성 인물이 대거 등장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 인물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관심을 갖고 세심히 살펴보면 꽤 많은 여성 인물이 등장하는 것에 오히려 놀라게 되지요. 그런데 무척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축융부인 같은 여장부나 뛰어난 정세판단으로 한 집안을 멸족에서 구해낸 신헌영 같은 인물들은 드물고, 대부분 경국지색을 갖춘 요부이거나 당대의 유교적 충군이념을 보조하는 열녀라는 점입니다. 초선이나 동승의 시첩이었던 운영 그리고 황규의 시첩이었던 춘향이 앞의 부류라면, 아들이 충신(유비)을 버리고 간신(조조)을 찾아왔다고 목을 매어 죽은 서서의 모친과 마초를 꾸짖고 죽은 강서의 모친 그리고 마초 휘하에 있는 아들 걱정으로 싸우기를 주저하는 남편에게 “자식 하나쯤 잃는다고 대사를 그만 둘 수야 없다”고 다그치는 조앙의 처 왕씨는 뒤의 부류이겠지요. 여기에 후주(유선)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보다 먼저 목숨을 끊은 유심의 처 최부인까지 합하면 아무래도 요부보다는 유교적 충군이념을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열녀가 더 많이 등장하는 게 『삼국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서서의 모친, 강서의 모친, 조앙의 처, 최부인은 물론이고 중상을 입은 채 유비의 어린 아들(아두)을 안고 조조군의 추격을 받던 중 조운을 만나 아이를 건네주고 자신은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우물에 몸을 던져 죽은 유비의 둘째 부인, 손권의 여동생으로 유비와 정략결혼을 했다가 결국 파혼하고 본국으로 돌아온 손부인 같은 황후들마저 하나같이 성명 미상으로 처리되는 것을 보면 『삼국지』의 여주인공들은 각자 개성을 가진 인격체가 아니라, 당대의 가부장적 국가이념을 널리 알리는 선전수단으로 기용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거의 여성잔혹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삼국지』의 여성잔혹 결정판은 그럼 어떤 장면일까요? “형제는 수족과 같고 처자는 의복과 같다”며 네 차례나 부인을 팽개치고 도망 다닌 유비의 소행일까요, 아니면 여포에게 쫓겨 산길을 헤매던 배고픈 유비에게 아내를 잡아(?) 화로에 구워주었던 어느 사냥꾼의 엽기 행각일까요? 여성 독자를 막기 위해 남성 편찬자들이 금줄을 쳐놓은 소설이 『삼국지』입니다. 남성들은 여성의 접근을 막아 놓은 그들만의 흑막 뒤에서 유치한 놀이를 하지요. 저는 여성은 아니지만 『삼국지』를 탈고하기 전까지만 해도 여성만큼 『삼국지』를 싫어했습니다.

『삼국지』를 읽다 보면 실소를 자아내는 대목이 도처에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 제가 두고두고 웃었던 경우는, 조조의 근거지를 빠져나온 관우가 형수(유비의 부인)를 호위해 위험하고 고단한 먼 길을 헤매며 유비를 찾아가는 도중에 일어났습니다. 유비 일행이 어느 산 속에 들어섰을 때 관우의 명성을 듣고 달려온 황건군의 잔당이 자신들을 휘하에 거두어 주길 원하자, 유비보다 더 융통성 없었던 관우는 단호히 거절을 합니다. 황숙(皇叔)의 군대가 도적 무리와 함께 할 수 없다는 뜻에서이지요. 황건군 대장과 그 부하들이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극진히 애원하자, 관우는 할 수 없이 유비의 첫 번째 부인인 감부인의 수레에 가서 사정을 보고합니다.

『나관중본·모종강본』을 바탕으로 했던 국내의 번역본들은 어느 것 할 것 없이 ‘남편과 황군(皇軍)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 없으니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감부인의 대답을 되풀이하지요. 하지만 제 『삼국지』 속의 감부인은 수천 년 동안 성실히 수행해 왔던 남성적 수사(修辭)의 앵무새 노릇을 거부합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장군님, 예로부터 병비일가(兵匪一家)라고 했으니 받아들여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군인과 비적은 원래 하나라는 것, 제 『삼국지』는 한 가녀린 여자의 입에서 나온 일성으로 남성적 기만의 세계를 통째 거부합니다.

황제에게 반역한 황건군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관우의 대의명분성 발언은 훗날을 위한 명분 축적용은 될 수 있을지언정, 명분으로 치장된 발언인 만큼 현실 인식이 빈약한 언행이라고 해야지요. 실제로 우리 국민은 정국에 따라 여기저기를 배회하며 근 50년 이상 곡예사 같은 정치 행각을 벌였던 노회한 정치가를 보아왔습니다. 스스로 유신본당(維新本黨)이라고도 밝혔던 그가 잘못 살았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기회와 보신을 위해 줄을 바꿔서는 ‘철새’들의 행각은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어제 오늘에 만연하던 일이 왜 수천 년 전에는 없었겠습니까?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러 군웅들 가운데 그 아무도 황건군과 합작한 인물은 없습니다만, 소위 황숙이라는 유비만 유독 황건군은 물론 입장이 불투명한 여러 정치 집단과 합작을 했습니다.

이 글의 첫 장에서 저는 이미 체질적으로 『삼국지』와 맞지 않는다고 말했고 이 장을 통해서 “저는 『삼국지』를 싫어했습니다”라고 다시 한 번 밝혔습니다. 생래적으로 남성적인 폭력의 세계가 싫었던 데다가 권력을 향한 주인공들의 무지막지한 열정은 더 더욱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삼국지』를 써보라는 제의를 받고 검토를 했던 6개월 동안, 저는 매일 밤마다 사람의 목이 떨어지고 어디론가 말을 달려 도망다니는 무시무시한 악몽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적과 싸우고, 패해서 무릎을 꿇고, 은전을 받은 뒤에 새로운 주군을 위해 생명을 바쳐 싸운다’는 도저히 친숙해지지 않는 남성적 서사가 저를 가위눌리게 했던 것이지요. 그럼에도 저는 반년 동안의 검토 끝에 『삼국지』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번이 아니면 남성이나 권력에 대해 깊이 이해하거나 나름대로 판단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여성잔혹극이 두려워서 혹은 도저한 남성적 서사에 질려 아직껏 『삼국지』를 읽어보지 못했던 여성 독자님들, 『삼국지』를 읽어보십시오.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용호상박의 싸움을 벌이는 남자들의 전 생애가 위선과 자기기만과 모략에 더하여 굴종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삼국지』를 보며 비웃어 주십시오!


-글을 맺으며

『삼국지』 독자들은 세대에 따라서 자신이 처음 접하고 감명 깊게 읽은 역본이 모두 다르다고 말한다. 그래서 누구의 『삼국지』를 읽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 명확하다. 고전은 되풀이 번역되고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어느 시대든 그 시대는 자신만의 판본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삼국지』를 낸 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지 않던가. 『삼국지』가 더 이상 읽혀서는 안 될 책이라면 모르되, 그게 아니라면 매 세대마다 그 시대에 맞게 『삼국지』가 새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번역이 아니고 새로운 판본(板本)이 필요하다! 진수의 정사 『삼국지』라면 잘못 번역된 토씨 하나까지 발본색원하여 되풀이 번역되어야 하겠지만, 원래부터 저자가 없었던 연의(演義) 『삼국지』는 언제나 새로운 저자를 구하고 있다.

앞서도 말했듯이 나는 한자 번역 능력이 없다. 때문에 단순한 『삼국지』 번역이 아니라 나만의 『삼국지』 판본을 새로 만든다는 각오로 매진할 수 있었다. 선배 작가들처럼 한문 『삼국지』를 거침없이 읽어낼 능력이 있었다면 나 역시 번역이라는 간편성에 안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원어 능력이 없었기에 오히려 삼국시대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섭렵하게 됐고, 인물과 사건에 대한 해석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삼국지』가 무의식중에 강요하고 있는 중화주의와 춘추필법을 털어내고 나자, 흥미진진하고 광활한 소설의 세계를 대면할 수 있었다. 그 소설의 광야에 서서야 비로소 나는 중화주의와 춘추필법을 바탕으로 조탁된 여러 인물들의 메마른 전형성을 벗어나,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며 인간의 피가 도는 주인공들과 조우할 수 있었다.

『장정일 삼국지』를 읽는 독자들은 굳이 누가 선인이고 누가 악인인지를 편가름 하기보다 겉으로는 인의(仁義)·구국(救國)·창신(創新)을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권력과 허명을 좇는 남성적 위선의 세계에 희생당한 당대의 평범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수많은 영웅들이 모조리 죽고 책장을 덮을 때, 그래도 살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삼국지』는 자신을 거울처럼 빛내며 우리의 현재 모습을 비춰 줄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보혁 갈등이 첨예하고 국외적으로는 한반도가 놓여 있는 지정학적 변화가 극심한 오늘날 신판 『삼국지』가 나오지 않고 또 읽히지 않는다면, 시대에 따라 새로운 번역본이 나와야 된다고 호기롭게 말했던 여러 『삼국지』의 저자들이나 그것을 반겼던 독자들이 서로 멋쩍은 일이 될 것이다. 애초에 내 능력으로는 가당치 않았지만, 5년 만에 탈고된 『삼국지』를 찬찬히 살펴보니 한(韓)·중(中)·일(日), 삼국에서 나온 삼국지 가운데 이만한 『삼국지』는 없다고 자부해 본다. 물론 신판 『삼국지』가 얼마만큼 높은 완성도를 성취했는지 판단하는 것은 당연히 독자의 몫이겠지만, 나는 그저 이 판본을 통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글쓰기를 선택한 사람이 작가’라는 내 평소의 신념을 독자들이 직접 확인하기를 바랄 뿐이다.

마지막으로 『삼국지』를 탈고하고 나서 느낀 역사의 교훈에 대해 한 자 적고 싶다. 『삼국지』의 가장 유명한 편찬자였던 나관중이 썼듯이 역사란 “오래 나누어진 것은 다시 합해지고, 합해진지 오래면 반드시 다시 나눠지는” 것이다. 『삼국지』의 무대가 되었던 1,800여 년 전부터 아주 근세에 이르기까지, 나누어진 것을 하나로 합하는 역할을 맡은 것은 언제나 영웅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영웅이 앞장서서 통일의 과업을 떠맡을 때마다 이름 모를 무수한 민초들이 제물로 바쳐졌다는 것을. 21세기를 맞이하여 통일이라는 화두를 피해갈 수 없는 우리가 똑같은 비극을 피하는 방법은 먼저 ‘통일의 대업을 내가 이루겠다!’고 외치는 자를 경계하고 또 경계하는 일이다. 어떤 영웅에게도 맡기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통일에 필요한 소임을 한 가지씩 맡아 행할 때 통일은 온다. 이 말은 신판 『삼국지』와 오래 씨름한 저자가 서문에 꼭 넣고자 별렀던 것으로 이 글의 말미에 다시 한 번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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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삼국지인가? - 김영사 보도자료

서양의 고전과 달리 동아시아의 공통된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중국 소설을, 그것도 당대의 가장 이름난 한학자들과 소설가들이 10여 차례나 번역했다면 그건 이미 우리나라 소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저자 장정일은 탈식민주의와 문화 주체성이 유난히 강조되고 있는 오늘날, "<삼국지>도 이제 우리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나관중(羅貫中)본><모종강(毛宗崗)본>이 아닌 한국판 <삼국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삼국지>의 판본을 새로 만든다는 각오로 시대적 흐름에서 벗어난 이분적인 선악론, 당대의 왕권보호를 위해 만들어졌던 춘추사관과 춘추필법, 한족 중심의 중화주의를 배제한 '우리 삼국지'를 완성하였다.

저자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장정일 삼국지>는 기왕에 되풀이되던 중국 <삼국지>의 단순 번역이 아니다. 우리나라 독자들이 <삼국지>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삼국지>에 정본이 있다'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압도적으로 번역되고 읽히고 있는 <나관중본><모종강본>은 사실 현재 중국에서 읽히고 있는 숱한 판본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삼국지>에 정본이 있다는 믿음 자체가 허구인 것이다. 정사에 의하면 도원결의(桃園結義)를 비롯해 초선(貂蟬)의 미인계니 적벽(赤碧)에서의 연환계 따위는 있지도 않았다. 그 유명한 삼고초려(三顧草廬) 일화를 묘사하고 설명하는 해석도 무수히 존재한다. 따라서 뒤틀린 원판을 놓고서 번역의 정확성을 아무리 따져본들, 생산적인 의제는 생겨나지 않는다. 원말(元末)?명초(明初)에 편찬된 <나관중본>과 청대(淸代)에 편찬된 <모종강본>은 각기 그 시대의 가치와 역사관만을 고스란히 반영할 뿐이다. 그 결과 단순 번역을 한 나관중?모종강 <삼국지>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역사적 왜곡과 오늘날 거의 설득력을 잃은 편향적인 해석으로 가득 차 있게 된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삼국지>를 번역한 한학자와 작가들은 새 번역본을 낼 때마다 '<삼국지>가 더 이상 읽혀서는 안 될 책이라면 모르되, 그게 아니라면 세대와 시대에 맞는 <삼국지>가 새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신판 <삼국지>의 저자 장정일은 이제는 더 이상 번역이 아니고, 새로운 판본(板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진수의 정사 <삼국지>라면 잘못 번역된 토씨 하나까지 발본색원하여 되풀이 번역되어야 하겠지만, 원래부터 저자가 없었던 연의(演義) <삼국지>는 언제나 새로운 저자를 구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춘추사관(春秋史觀)과 춘추필법(春秋筆法)은 <삼국지>를 시종일관 이끌어가는 주된 요소다. 춘추필법은 등장인물의 성격을 선인(청류, 유학을 배운 사대부)과 악인(탁류, 환관과 외척)으로 정형화하고 이분화함으로써 인간 내면에서 모순되게 약동하는 욕망을 바로 읽지 못하게 한다. 또한 황건군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가는 예에서 보았듯이, 당대의 왕권 보호를 위해 만들어졌던 이러한 세계관의 제약으로 소중하게 해석되어야 할 역사적 사건이 번번이 잘못 기술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춘추사관과 춘추필법은 중국 내부에서 작동할 때는 청류와 탁류로 나뉘지만, 그것이 중화주의로 발현될 때는 한족이 청류(淸流)가 되고 이민족은 탁류(濁流)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중국 패권주의가 도래할지도 모르는 21세기에 중화주의로 점철된 <삼국지>를 아무 비판 의식 없이 번역하고 탐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예를 들어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들조차 조조를 악의 화신으로, 유비 삼형제와 제갈량을 충의지사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묘사는 실제 인물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 의리와 대의명분이 선악의 기준이 되는 유교적 춘추사관(春秋史觀)의 산물이다.

제갈량이 남만(南蠻)의 추장인 맹획을 일곱 번 사로잡고 다시 풀어준 칠종칠금(七縱七擒)의 일화를 거론해 보자. 많은 독자들은 한 번도 아니고 일곱 번 씩이나 적장을 풀어준 끝에 오랑캐로부터 진심어린 복종을 끌어낸 제갈량의 재기와 인덕에 경탄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칠종칠금 일화에는 중국의 오만한 천하사상과 주변국을 다스리는 중국인들의 오랜 통치술이 응축되어 있다. 그것을 직시하고 나면 미련하고 염치없어 보였던 맹획의 행동이 오히려 어떤 지혜를 내포한 듯이 보인다. 주체성을 가지고 끈질기게 저항하는 것만이 한 민족의 존엄성과 독립성을 보장받는 길이다. 그래서 결국 제갈량은 힘들여 정복한 남만에 자치권을 인정하고 군대를 거두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저자 장정일은 "<삼국지>가 한족에 의한 한족을 위한 한족의 선전물 또는 강령일 수도 있다"는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나관중과 모종강이 구축해 놓은 화이론(華夷論)적 차별을 주의 깊게 해체한다. 한 왕실에 대한 불충과 무단(武斷) 행위가 절대 동탁이나 여포만의 전매특허가 아니건만 그 두 사람이 동급(同級)의 여타 주인공들에 비해 턱없이 의리 없고 예절 모르는 야수로 묘사되다가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것은, 그들이 정통 한족이기보다는 변방인에 가까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옹유반조(擁劉反曹)의 시각으로 일관된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은 한족 중심의 왕조를 미화해야 했던 그 시대 그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있었겠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이분적인 선악론에 불과하다. <장정일 삼국지>는 옹유반조를 편들지 않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한나라 멸망의 전조였던 황건적의 난을 황건농민군의 봉기로 해석한다. 장정일은 자신의 <삼국지>가 시도하는 역사해석 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황건군을 황건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유교이념이 득세했던 시절의 체제지배적 해석에 불과하다. 황건군을 황건적이라고 부르는 선민적(選民的) 역사관으로는, 삼국시대를 살았던 당대 민중의 염원은 물론이고 현재의 중화민국 건국에 관한 진실마저 파악할 수 없다. 중국 역대 왕조는 항상 농민혁명으로 붕괴되었으며, 때문에 오늘날의 중국 정부는 황건난을 '황건기의(黃巾起義:의로운 봉기)로 높여 부르고 있다. 인간사(人間事)의 현상과 본질을 가려 바른 이름을 붙여주어야 한다. 나관중·모종강은 유비를 그야말로 더러운 티끌이 하나도 묻지 않은 고매한 충의지사로 만들기 위해, 한때 유비와 황건군이 합작했던 역사적 사실을 어물쩍 넘어간다. 성리학적 시각에 입각한 나관중?모종강은 '아무리 어려워도 어떻게 도적들과 연합을 할 수 있는가?'라는 난관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건군을 도적으로 보지 않는 장정일의 <삼국지>는 나관중?모종강이 어물쩍 넘어간 그 사실을 당당히 드러내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중화주의와 춘추사관을 지양하고자 했던 저자의 의도는, 많은 <삼국지>들이 중국 그림을 사용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 작가가 그려넣은 총 153컷에 이르는 본문 삽화 속에서도 잘 드러난다. 삽화는 최근 '날카로운 역사의식과 올곧은 시선을 지닌 역사만담꾼', '젊은 상상력으로 무장한 신예'라는 평을 들으며 언론의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김태권 화백의 작품이다. 착한 유비, 음탕하고 광포한 동탁, 힘만 세고 무식한 여포, 기회주의자 가후, 야만스러운 맹획 등 실제와는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역사적 인물들을 새롭게 형상화시킴으로써 <장정일 삼국지>가 제시하고 있는 문제의식을 잘 살려내고 있다. 또한 수백 권에 이르는 각종 문헌과 고증자료를 통해 한나라 말기와 삼국지 시대의 복식과 생활문화, 특히 나관중, 모종강 <삼국지>에서 가려져 있던 주변민족들과 민초들의 생활사를 고증, 복원하여 당시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우리 작가에 의해 시도된 최초의 <한국판 삼국지> 판본이라는 사실에 걸맞은 최고의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장정일 삼국지>는 "~사옵니다""하노라" 등의 고어체 어미를 지양하고 간결한 어투의 사용, 모든 연도 앞에 '서기' 표기 등 젊은 한글세대 독자들의 현대적 감각에 맞는 '젊은 삼국지'이다. 저자는 젊은 독자들을 위해 속도감 있는 문체를 사용하고, 빠른 사건전개와 호흡으로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또한 나관중?모종강 <삼국지>에서 등장하는 비현실적인 묘사와 황당무계한 사건들을 배제하고자 했다. 기본적으로 <삼국지>는 군담역사소설의 형식에다가 중국의 민중들이 좋아하는 지괴담(귀신과 도사 이야기)이 많이 섞여 있다. 좌자, 우길, 관로 등의 술사들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관우가 죽고 난 다음 관우의 혼령이 불쑥불쑥 출몰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장정일은 독자의 흥미를 끄는 지괴담을 고스란히 보존하면서도 과학적인 해석이나 꿈으로 치환하여 소설적 리얼리티와 흥미라는 두 요소를 양립할 수 있게 했다. 국내외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모험적이고 혁명적인 발상으로 새롭게 창작된 <장정일 삼국지>는 역사소설의 재미와 속도감, 한국적 <삼국지>가 제시해야 할 역사의식의 문제까지 심도 있게 다룬 최초의 <한국판 삼국지>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는 인과성과 사실성이 결여된 '이야기'의 세계다. 때문에 제갈량의 동남풍과 같은 '전설 따라 삼천리'식의 일화가 심심찮게 출몰한다. 뿐만 아니라 <삼국지>를 읽다 보면 어떤 인물은 괜찮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터무니없이 희화화되거나 사소하게 지나쳐 가고, 반대로 어떤 인물은 겉과 속이 다른 무능력자인데도 영웅시되거나 중시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앞서 말했던 춘추필법이 <삼국지>를 좌우했기 때문이다.

<장정일 삼국지>는 제갈량의 동남풍과 같은 전설의 세계와 한족 중심의 중화주의, 춘추필법의 원리를 바탕으로 조탁된 여러 인물들의 메마른 전형성을 벗어나기 위해, 인과성과 사실성이 중시되는 새로운 '소설'의 세계를 천작한다. 그래서 <장정일 삼국지>에서는 귀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제갈량도, 인의의 화신인 유비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 겉으로는 인의(仁義)?구국(救國)?창신(創新)을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권력과 허명(虛名)을 쫒은 당대의 야심가들에 불과했다. 작가는 이에 대해 "인의의 화신인 유비와 귀신과 같은 재주를 지녔던 제갈량을 잃은 대신, 독자들은 인간의 피가 도는 주인공들과 조우할 수 있게 됐다"라고 단언한다.

<장정일 삼국지>는 영웅적 능력이나 이분법적 전형성에서 벗어나 인간 심리를 깊이 탐구하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전쟁무협소설(군담역사소설)에 불과했던 <삼국지>에 새로운 빛을 비춰준다. 다시 말해 주인공이 한번 칼을 빼들면 수천 명의 병사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왕이 결심만 하면 하루아침에 수십만의 병사가 거병을 하는 <삼국지>의 세계에 현대 소설이 중시하는 인과성과 사실성을 부여함으로써, 단순한 무협의 세계를 인간 심리의 드라마로 읽도록 유도한다.
     
원래의 <삼국지>에는 많은 시가 들어가 있다. 하지만 <장정일 삼국지>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저자가 직접 쓰거나 상황에 맞게 새로 인용한 시들로 원시를 대체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삼국지>의 문제는 바로 <삼국지>에 들어 가 있는 시"였기 때문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200여 수의 시들은 <삼국지>의 편찬자인 나관중이 삼국시대 이후 촉한정통론을 예찬하는 문인들의 시를 찾아 넣은 것들로, <삼국지> 속의 시는 춘추필법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다. <삼국지>에 삽입된 원시들에 의하면 유비(촉)는 언제나 찬양되고 그 외의 모든 제후장상들은 폄하되거나 조롱받는다. 유비? 관우? 장비와 같은 영웅들의 삶과 죽음만 미화되고 민중들의 고통과 애환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장정일 삼국지>는 춘추필법과 화이론의 정수인 원시를 채택하는 대신 장정일의 새로운 시들을 첨가함으로써 보편적인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내밀한 심리를 묘사하고자 노력했다.

예를 들어 조조군이 하비성을 포위한 채 잔치를 벌이면서, 성을 지키고 있는 관우 병사들을 투항시키기 위해 부르는 노래와 그 노래를 들은 하비성의 관우 병사들이 부르는 답가는 나관중?모종강본 『삼국지』에 수두룩하게 인용·삽입된 사대부 문인계층의 시들과 달리 훨씬 소박하면서도 사실적이어서 독자의 감정이입을 쉽게 도와준다(가사만 인용함).

'장모'로 끝나는 조조군의 노래를, '장모'로 시작하는 또 다른 노래로 받는 관우 병사들을 통해 장정일은 비록 편을 나누어 싸우고 있지만, 군역을 나온 백성들의 고단함과 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병사 일반의 소망을 말하고 있다.
     
중국의 예절에 의하면 높은 어른이나 선배 또는 동배(同輩)와 말할 때는 상대방의 자를 불러 경의를 표한 반면, 차이가 많이 나는 아랫사람이나 관직이 낮은 사람은 바로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나관중이나 모종강의 <삼국지>는 유비가 등장할 때부터 시종일관 현덕이란 자로 부르며, 관우 역시 적장에 의해 꼬박꼬박 관운장으로 높여 부른다. 대신 조조나 손권은 한 번도 그 지위에 걸맞은 호칭을 받지 못한다. 그 이유는 원 텍스트가 옹유반조의 춘추사관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런 무원칙은 춘추필법을 굳이 문제 삼지 않더라도, '님'이라는 호칭을 꼬박꼬박 붙이면서 욕을 해대는 우스운 광경을 수도 없이 연출한다. "유비, 이놈이 나를 애먹이는구나!"는 그럴 듯해도 "현덕, 이놈이 나를 애먹이는구나!"는 리얼리티를 떨어뜨린다. <장정일 삼국지>는 조조나 손권, 유비가 모두 대등하게 불리는 것으로 춘추사관의 묵은 때를 벗기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이름과 자를 혼용해 쓰는 것으로 주인공들의 심리를 절묘하게 묘사하려고 했다. 예를 들어 제갈량 최대의 적수였던 사마의는 제갈량의 죽음을 전후로 다음과 같이 이름과 자를 번갈아 쓴다.

이름과 자를 번갈아 쓴 위의 예문은 차례대로 제갈량에 대한 '적의', 망자에 대한 '예의', 그리고 속은 것에 대한 '분함'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장정일 삼국지>를 읽는 독자들은 등장인물들이 서로를 어떻게 부르는가에 따라 등장인물이 처한 권력의 크기와 외교적 정황은 물론 심리상태까지 미묘하게 잡아낼 수 있다.
     
<삼국지>는 한족이 중심이 된 위?촉?오의 쟁투를 그리고 있으나 실제로 삼국시대는 삼국만의 시대가 아니라 숱한 제후들이 각축하던 시대였고, 한족만이 아니라 오늘날 중국의 소수민족이라고 불리는 숱한 민족이 총동원되어 전쟁을 벌이던 시기다. 하지만 나관중과 모종강은 될수록 비(非)한족을 <삼국지>의 무대에 올리길 꺼려했고 설사 등장한다 하더라도 한족에 의해 정복되고 감화받는 열등한 미개인으로 묘사한다.

<장정일 삼국지>는 한족 중심의 화이론(華夷論)을 벗어나 모든 소수민족의 자리를 찾아 주려고 노력했다. 그 일례로 중국 역사에는 공손연이 연나라를 세우고 위나라에 대적했을 때(서기 237년) 위의 황제인 조예가 고구려 동천왕에게 지원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나와 있으나 소설 <삼국지>에는 누락되어 있다. <장정일 삼국지>는 그 누락의 역사를 복원함으로써 <삼국지>를 한족만의 역사소설이 아닌 동아시아의 역사소설로 복원시켰다.
     
<삼국지>는 여성 독자가 전무하다. 그 이유는 <삼국지>가 충군(忠君)과 가부장적인 질서로 무장된 철저한 남성 서사(군담소설)이기 때문이다. 그 틈서리에 끼어 있는 극소수의 여자 주인공들은 충군과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보조·강화해주는 구실을 할 때에만 등장한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미인계의 미끼가 되기를 수락하는 초선, 유비 진영에 있다가 조조에게 귀순한 아들의 아둔함을 꾸짖으며 대들보에 목을 매어 죽은 서서의 어머니, 중상을 입은 채 유비의 어린 아들 아두를 안고 조조군의 추격을 받던 중 조운을 만나 아이를 건네주고 자신은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우물에 몸을 던져 죽은 유비의 둘째 부인, 손권의 여동생으로 유비와 정략결혼을 했다가 결국 파혼하고 본국으로 돌아온 손부인 등등. 이들은 모두 이름이 없다.

거의 여성잔혹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삼국지>의 여성잔혹 결정판은 "형제는 수족과 같고, 처자는 의복과 같다"며 네 차례나 부인을 팽개치고 도망 다닌 유비의 소행이나, 여포에게 쫓겨 산길을 헤매던 배고픈 유비에게 아내를 잡아(?) 화로에 구워주었던 어느 사냥꾼의 엽기 행각 가운데 어느 하나일 것이다. <장정일 삼국지>는 여성 독자를 막기 위해 남성 편찬자들이 쳐놓은 금줄을 걷어낸다.

조조의 근거지를 빠져나온 관우가 형수(유비의 부인)를 호위해 위험하고 고단한 먼 길을 헤매며 유비를 찾아가는 도중 관우의 명성을 듣고 달려온 황건군의 잔당이 자신들을 휘하에 거두어 주길 원하자, 관우는 단호히 거절한다. 황숙(皇叔)의 군대가 도적 무리와 함께 할 수 없다는 뜻에서였다. 하지만 황건군 대장과 그 부하들의 애원이 워낙 극진하여 관우는 유비의 첫 번째 부인인 감부인의 수레에 가서 사정을 보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관중본>과 <모종강본>을 바탕으로 번역본은 어느 것 할 것 없이 '남편과 황군(皇軍)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 없으니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감부인의 대답을 되풀이 한다.

하지만 <장정일 삼국지> 속의 감부인은 수천 년 동안 성실히 수행해 왔던 남성적 수사(修辭)의 앵무새 노릇을 거부하고 "장군님, 예로부터 병비일가(兵匪一家)라고 했으니 받아들여도 괜찮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한다. <장정일 삼국지>는 가녀린 여자의 입에서 나온 '군인과 비적은 원래 하나'라는 단 한 마디 말로 남성적 기만의 세계를 통째로 거부한다.
     
소설가 장정일은 신판 <삼국지>를 쓰기 위해 삼국시대는 물론 <삼국지>에 대한 모든 문서를 찾아 읽고 연구하는 등 5년의 오랜 자료준비 기간과 연구과정, 집필을 거쳐 그것의 1차적인 결과물이 2003년 3월에 출간되어 <삼국지> 마니아들에게 충격과 환호를 던져준 장정일 공저 <삼국지 해제>(김영사)이다. 장정일은 공부삼아 600여 쪽이 넘는 <삼국지 해제>를 내놓은 뒤로도 새로운 자료가 나오는 대로 그것을 읽고 새 <삼국지>를 쓰는 데 반영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정치·경제·문화에 대한 현대적 이론을 함께 반영함으로써 신판 <삼국지>는 가히 학제적 연구를 종합한 지식과 정보의 창고 역할을 한다. "<장정일 삼국지>는 먼 옛날, 먼 나라에서 온 고전을 단순히 번역한 게 아니라 중국과 중국 역사에 대한 통찰과 해석을 통해 오늘날의 사회·경제·외교·군사 문제에 대한 이해를 드높일 수 있게 했다. 신판 <삼국지>는 오늘을 읽는 유용한 자료와 정보의 창고이자 지혜의 창구가 될 것이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덧붙임_

삼국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통해 공명을 다시 생각하다
제갈공명에 대한 의문점...
약을 팔려면 전유성처럼 : 구라 삼국지
황석영 삼국지가 최고의 번역본인가?
삼국지는 아직도 유효한가? ...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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