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서울은 어째서 항상 공사 중일까? 왜 나의 도시 생활은 항상 지치고 피곤하기만 한 걸까?

반응형


"서울은 도시가 아니"라니 그럼 시골에 산다는 말인가?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점점 저자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공감이 더 해 갈수록 이런 도시에 살고있는 나를 비롯한 1000만 시민들이 불쌍해 보인다. 수도권을 합치면 2000만의 불쌍한 사람들이 불량한 도시에 목 메고 살고 있다.

서울은 차에 치여 걷고 싶어도 걸을 수 없는 곳이다. 서울시에서 행하는 걷고 싶은 거리 선정 사업에는 서울 대부분의 거리가 걷고 싶지 않다거나, 최소한 불편해서 걸을 만하지 못하다는 현실 인식이 담겨있다. "길이 이동과 도착이라는 목적 지향에 충실하다면, 거리는 다양한 경험의 배경이자 공간적 장치로서 도시성에 더 잘 부합"된다.



한국인의 의식과 태도는 분열되어 각기 다른 두개의 잣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를 '두 개의 다른 시간대를 가리키는 시계'에 비유했다.

한국인은 두 개의 시계를 차고 있다. 하나는 전근대의 시간에 멈추어진 왕조의 시계이고, 다른 하나는 무섭게 내달리는 현대의 시계다. 어떤 때는 왕조의 시계에 맞춰 행동하고 어떤 때는 현대의 시계에 맞춰 행동한다. (도정일 <대담>)

이러한 이중적 잣대는 이상한 현상이 도시 곳곳에 나타난다. 장하준은 백화점 주차표 발매기와 그 옆의 안내원을 비유하여 비정상적인 한국사회에 대하여 설명한다.

후진국에서는 자동주차 발매기를 도입할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사람이 일일이 주차권을 나누어준다. 반면에 인건비가 비싼 선진국에서는 기계를 도입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두가지가 동시에 존재하는 모순적 상황이 발행한다는 것이다. 

남대문과 서대문은 너무 가까이 있다. 왜 그럴까? 평소 가지고 있던 의문점이 이 책에서 말해준다. 조금 길지만 "도시는 태생이 인공적"이지만 자연과 어우러짐이 어떠한 것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도성 배치를 보면 남쪽에 자리한 안산인 남산 때문에 남대문이 서쪽으로 치우쳐 있어 남대문과 서대문은 겨우 1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 서소문까지 치면 도성의 남서 방향에는 빽빽할 정도로 문이 들어서 있는 셈이다. 남대문의 위치도 정궁인 경복궁에서 보면 남쪽보다는 남서 방향에 가깝다. 따라서 경복궁의 남문인 광화문은 축선상으로 볼 때 남대문과 일직선상에 있지 않고 약간 휘어진 곳에 있다. 청나라 북경성의 영정문, 정양문, 찬안문, 지안문이 남북 축선을 기준으로 1도의 흐트러짐도 없이 서 있는 것과 비교하면 한양 도성은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주변의 사세와 자연에 의해 왜곡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 서울은 어떠한가? 도시 전체가 언젠가 부터 방음벽으로 둘러 쌓여 있다. 거리에서 하늘을 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건축은 대지에 적응한다. 더구나 도시의 건축은 자연의 형세뿐 아니라 주변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장점을 잘 살리고 단점을 없애는 것이야말로 건축의 임무다." 하지만 씨끄러운 대로변에 아파트를 지어 씨끄럽다고 방음벽을 설치하고 도로쪽 남향으로 창문을 내어 먼지 들어온다고 문을 열지도 못하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소음이 심한 땅을 조용한 곳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시끄러운 대지를 싸게 사 놓고서 조용한 곳으로 바꾸어달라고 칭얼대 결과가 방음벽 설치다. 그렇다고 해결책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소음이 심한 곳에는 아파트가 아닌 건물을 지으면 된다. 소음이 심한 대로변은 바꾸어 생각하면 그만큼 교통이 편리하다는 뜻 아닌가. 여기에 맞는 건물 용도가 있다. 불가피하게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면 그 구조가 일반적인 아파트와 달라야 한다. 

저자는 "대지에 적응하고 융화하는 도시의 아파트, 고심에서도 커뮤니티의중심이 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방음벽을 헐어내야 한다. 그래야 도시의 풍경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늘 네모난 집에서 네모난 학교와 네모난 사무실에 살아가는 우리들이 상상력을 발휘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건축가로서 "어느 동네를 가든 비슷비슷한 학교가 많은 건 자본에 종속된 한국 건축가들의 나태와 결핍된 상상력의 결과"라 말하지만 꼭 건축가의 나태만을 탓탓할 것은 아니다. 






여러 요소가 범벅되어 있어 구분이 어려울 때는 가로수길에 없는 것을 찾아보면 된다. 모든 학생의 출석을 부르는 것보다 결석한 학생을 확인하는 것이 빠른 것처럼, 많이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소수를 찾는 방법이 배타적이고 변별적인 특성을 쉽고 빠르게 파악하는데 적절하다.

문제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많이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소수를 찾는 방법"으로 사물을 바라보면 "배타적이고 변별적인 특성을 쉽고 빠르게 파악하는데 적절"하다.


서울은 어째서 항상 공사 중일까? 왜 나의 도시 생활은 항상 지치고 피곤하기만 한 걸까?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이경훈 지음/푸른숲


덧붙임_
푸른숲, 2011년 7월 초판 1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