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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어떤 과를 선택해야 하나요? : 외과 의사와 이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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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나고 대학 원서를 접수 하고 이제는 결과를 기다리는 시기가 돌아왔다. 이발사와 외과의사에 과난 두 가지 이야기를 읽어보자. 지금은 외과의사가 대우(?) 받는 직업인지 모르지만 천한 직업중에 하나였다. 대학의 정규과정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입학할때의 좋은(? 이런게 결코 없지만 아이들을 부추기는 족속들이 있다) 과를 보내려고 한다. 그 아이들이 세상에 나오기 까지는 10년보다 더 더 먼 시간이 지나야 한다. 그때는 세상이 어떻게 변할런지 그 누가 알 수 있으랴.

아시는가.
당신 앞에 놓인 컴퓨터는 컴퓨터를 구경도 못해본 사람들이 처음 만들었다는 것을.
그들의 전공은 컴퓨터공학이 아니었다는 것을.

잘 나가는 인터넷 기업에서 대학을 졸업해도 코딩을 바로 시킬 수 없어 자신들에 맞는 직업학교를 만든다고 했다. 소위 SW 아카데미를 만든단다. 몇 줄 코딩 더 잘한다고 좋은 프로그렘이 나오는 것은 결코 아닌데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 아래서 헛발짓만 한다.

건축가 서현 교수는 이러한 세태를 안타까워 한다. "대학에 남아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평생을 영위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고를 갖추었느냐는 것"이다. 직무능력을 갖추는 것이 대학의 소임이 아니다.

편제가 어찌 바뀌든 여전히 대학에 남아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다. 생각의 자유. 좀 더 멋있게 말하면 지적 사고의 자유. 대학과 그 졸업생에게 중요한 가치는 졸업하는 순간, 그가 평생을 영위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고를 갖추었느냐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평생을 그렇게 살아 갈 수 있는 인간이 되었느냐는 것이다. 거기에는 졸업 후 그 전공의 현장에서 즉시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느냐는 것이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 현장적응능력은 직업훈련학원에서 기대해야 하는 가치다

누군가는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여 기쁨을 만끽할 것이고 또 다른 이는 실패로 다음을 기약할 것이다. 하지만 슬퍼말라. 대학이 지금과 같이 직업학교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면 차라리 등록금의 절반으로 여행을 다녀오라. 나머지 절반은 책을 사서 읽어라. 기술학교에 4년을 썩히느니 여행과 책으로 인문적 교양을 쌓는 것이 앞으로 살아가는 날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또 한 권의 벽돌
서현 지음/효형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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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사의 제자

스승에게는 열두 제자가...아니고 아쉽게도 단 두 제자가 있었다. 아직 교육기관이 변변치 못하던 시절이니 요즘으로 치면 신입사원이라고 불러야 옳을 일이었다. 직업교육이라는 것이 제도화되지 않았으니 이들은 아들이거나 친척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동네에서 굴러다니던 근본 모를 아이들이었을지도 모르고, 하여간.

이발사의 두 제자는 출발이 달랐다. 한 제자는 이미 이발의 모든 것을 익힌 상태에서 문하에 들어온 친구였다. 조발, 면도, 얼굴 안마 등 이발에 관한 한 무불통지(無不通知)요, 사통팔달(四通八達), 기교달관(技巧達觀)이었다. 이 제자, 일컫기를 신입사원은 즉시 현장에 투입되어 밥값을 제대로 해내기 시작했다.

대개의 무협지 구도가 그러하듯 옆의 제자는 사뭇 달랐다. 이 입사동기생은 이발소 전문용어의 기본 중 기본인 “스포츠가리”와 “이부가리”의 구분개념도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우수로써 바리깡을, 좌수로써 두발상단을 하도와 같이 파지하라”고 가갸거겨 가르쳐야 할 판이었다.

당연히 현란한 첫 제자가 수제자가 되었고 이발소를 물려받았다. 갈레노스, 레오나르도와 같은 괴상한 이름이나 읊던 한심이도 하산하였고 아니나 다를까 저와 비슷한 것들을 주워 모았다. 계파가 형성되었다.
 
두 계파는 여전히 비슷한 모습이다. 모두 흰 가운을 입고는 칼과 가위를 종횡무진 움직여 본인의 가치를 증명한다. 그 옆에 일손을 도와줌직한 여자들이 비슷한 유니폼을 입고 대기하고 있는 점도 비슷하기는 하다. 비슷한 점은 거기까지다.
 
수제자의 또 제자들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수도 서울의 장안동까지 파고들었다. 이들은 커트, 브릿지, 매직, 스트레이트, 왁스라는 신무기를 앞세운 미장원 매복집단의 시장공격에 의해 건물 지하로 스며들었고 불법, 퇴폐, 안마, 성매매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방어무기를 내걸었다. 그리고 신문 사회면과 사회고발 방송프로그램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발소는 이발도 하는 곳이지 이발만 하는 곳은 아니고 성인용 토탈엔터테인먼트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나름 변신을 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역사책 칼잽이들의 이름들을 읊던 제자의 또 제자들은 장안동에서 멀지 않은 행당동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해마다 수험생들이 전국의 의대를 일단 지방까지 샅샅이 채우고 나서야 서울의 공과대학에 진학한다는 바로 그 의대하고, 그 중에서도 의대의 꽃이라는 훈장을 단 외과의사들의 족보를 거슬러 오르면 그 한심하던 이발소 신입사원이 나오는 것이다.

제자들의 계보가 이렇게 나뉘었다면 수제자를 점지한 스승의 후예들은 대한민국의 어디쯤 있는 것일까. 이들이 있기는 한 것일까. 잊을 만하면 대표의 목소리를 내어 존재를 확인시키는 이 스승의 후예들은 일관된 불평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대졸 신입사원 뽑아봐야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서 시작부터 전부 새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대학은 뭐하는 곳이냐.
 
간단히 반문하자. 당신이 간의 반을 잘라내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치자. 당신은 올 봄의 의대 졸업생이 가위와 칼을 들고 선 수술대에 오르시겠습니까. 옆에 선 유니폼의 여자가 첫 수술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거니 그렇게 떨지 말라고 당신이 아닌 의사에게 이야기할 때 수술대에 결연히 누워있으시겠습니까.
 
수제자가 만든 직업전승기관은 직업학원이다. 이발학원. 역사상 별 거스름 없이 진행된 교육인플레에 힘입어 전문대학에도 유사기관이 신설되기는 하였으니 멋있는 듯도 하나 여전히 이상한 그 이름은 헤어디자인과. 아니라면 대상을 바꾼 애견미용과. 이들의 목적은 취업이다. 졸업 후 바로 전선에서 월급 값을 할 수 있는 졸업생을 만드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단 하나가 중요하다. 취업률.

갈레누스(Aelius Galenus, 129-199)로부터 정통성을 찾는 외과의사들은 대학교육을 통해 직업을 전승한다. 이들의 교육목표는 취업이 아니고 혼자 세상을 헤쳐나가는 외과의사의 양성이다. 이들은 대학 졸업 후 인턴, 레지던트라는 실무교육을 모두 거친 후에야 전공의사가 된다.
 
대학(university)은 직업훈련을 위해 시작되지 않았다. 대학은 자유로운 교양인을 양성하기 위한 곳이었고 그래서 대학에서 공부해야 할 것들은 교양(liberal arts)이었다. 세월이 지나 전공이 분화되면서 공부는 직업과도 연결되기 시작했다. 공학은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연간에 설립된 기술학교(Ecole Polythechnique)를 통해 그 교육의 제도화를 시작했고 지금은 대학 편제에 들어왔다.
 
편제가 어찌 바뀌든 여전히 대학에 남아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다. 생각의 자유. 좀 더 멋있게 말하면 지적 사고의 자유. 대학과 그 졸업생에게 중요한 가치는 졸업하는 순간, 그가 평생을 영위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고를 갖추었느냐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평생을 그렇게 살아 갈 수 있는 인간이 되었느냐는 것이다. 거기에는 졸업 후 그 전공의 현장에서 즉시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느냐는 것이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 현장적응능력은 직업훈련학원에서 기대해야 하는 가치다.
 
대학이 직업훈련기관의 일부 역할을 떠안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학 진학하면서 우연히 선택하고 삼사 년 공부한 전공을 인생의 유일한 가능성으로 알고 살아야 한다면 대학은 자유의 공간이 아니라 업보의 형틀이다. 고작해야 교수들의 직업구분인 전공이 그보다 수백 배도 더 다양한 사회인의 존재방식을 규정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은 오만이다. 아시는가. 당신 앞에 놓인 컴퓨터는 컴퓨터를 구경도 못해본 사람들이 처음 만들었다는 것을. 그들의 전공은 컴퓨터공학이 아니었다는 것을.
 
세상의 잣대는 평균점에서 재단을 시작한다. 직업훈련소들이 대학 간판을 걸기 시작하면서 사회는 대학의 취업률을 묻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취업률향상을 목표로 하는 대학도 있고 노벨상 수상을 의제로 삼는 대학도 있다. 특정한 수상이 교육의 목표가 될 수는 없어도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했다는 공로를 기리는 뜻은 동의할 수밖에 없다. 이 중 어디에 가까와지겠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자유로운 의지다. 대학은 원래 자유로운 곳이다.
 
이제 건축 이야기를 해보자. 건축과는 건축을 교육하고 건축가를 양성하는 곳이다. 요즘처럼 건축(architecture)이 집 짓는 일을 지칭하는 단어로 바뀐 것은 사백 년 정도도 되지 않는다. 그 이전 그리스어로 쓰인 단어 건축가(άρχιτέκτων, architekton)는 무언가를 만드는 이(tekton)들의 계획지휘감독자(archi)였다. 나는 이 단어의 가치가 대학에서 건축과를 유지하는 힘이라고 믿는다. 내가 가르친 졸업생들이 건물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졸업 후 일 년 더 놀겠다고 해도 개의치 않는다.
 
내게 중요한 가치는 이들이 과연 어떤 일이든 그 일의 계획감독책임자가 되고 그 작업의 미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의지를 갖추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신입사원들이 현장실무능력이 없다고 불평하는 주인의 회사에 절대로 입사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들은 신입사원들을 복사기처럼 쓰다가 새 모델이 나오면 곧 용도폐기할 것이므로. 그 집단의 미래가 암울하기만 하므로. 내 제자들이 고작 퇴폐이발사의 후예와 같은 궤에 걸리기 위해 이 소중한 시기를 보내야 한다고 믿을 수 없으므로.

- <또 한 권의 벽돌 : 건축가 서현의 난독일기>에서 읽고 SALT에서 옮겨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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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 간판은 외과의사의 상징

과거엔 이발사가 외과수술시행

이발소에서 돌고 있는 청홍백 삼색의 나선형 무늬봉은 원래 외과의사의 간판이었다. 푸른색은 정맥을, 붉은색은 동맥을, 그리고 흰색은 신경을 나타냈다고 한다. 외과 의사 간판이 이발소의 상징이 되기까지는 수백 년에 걸친 의료계 내부의 다툼이 있었다.

분쟁의 발단은 의과대학의 교육과정 개편이었다. 13세기 중엽 유럽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던 파리의과대학이 정규 교육과목에서 외과학을 제외시켜버렸던 것이다. 상류 계층의 의료를 주도하는 대학의 의사 양성에는 철학과 같은 교양과목을 강조할 필요가 있으며, 외과와 같이 천박한 기술적인 일은 일반 민중의 의료를 담당하던 이발사들에게 맡기면 충분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자 점차 이를 본받는 대학들이 늘어났고, 대학을 졸업한 의사는 외과를 하지 않는다는 미묘한 차별적 전통이 확립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피를 뽑거나 상처를 꿰매거나 고름을 짜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 이발사들이 담당하는 천한 일이라는 인식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외과를 주업으로 삼던 대학 출신의 의사들은 이런 위기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단결하였다. 파리뿐 아니라 런던, 에든버러, 브뤼셀, 안트워프 등지의 외과의사들은 독자적으로 의과대학 과정을 개설하여 제자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대학과 마찬가지로 라틴어로 수업을 했고 해부학도 가르쳤으며 작업의 편의를 위해 짧은 가운을 입고 있었던 이발사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졸업생들은 긴 가운을 입었다.

그러자 내과의사들이 주축을 이루는 대학 측은 새로운 수법으로 반격에 나섰다. 대학에 이발외과의사를 양성하는 속성 과정을 부설하고 과정을 수료하는 자에게 외과의사의 자격증을 마구 나누어준 것이다. 일반인들의 외과에 대한 평가를 혼란 시키려는 이 시도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더구나 이발외과의사들은 이 기회에 자신들의 간판을 피와 고름을 받는 그릇에서 청색과 백색의 나선무늬 봉으로, 또 얼마 후에는 청홍백색으로 된 삼색 나선 표시로 바꾸어버렸다. 사람들은 이윽고 대학을 나온 정규 외과의사와 돌팔이 이발외과의사를 구별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18세기 초 파리대학에서 외과를 다시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함으로써 근대적인 외과가 시작되고 외과가 천한 직업이라는 인식은 사라지게 된다. 그렇지만 이 오래 걸린 투쟁 덕분에 대학을 나온 훌륭한 외과의사임을 나타내던 삼색 나선무늬 봉이 엉뚱하게도 머리나 수염을 손질해주는 현대의 이발소 앞에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 이재담(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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