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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은 우파 논객이다. 그의 관점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고전적 경제학 관점에서 자본주의 논한다. 그의 관점이 나와 우리와 다르다 할지라도 나는 복거일이 좋다. 자신이나 자기 편의 의견이 중요하듯이 상대방의 의견도 중요하다. 그가 있기에 내 의견이 의견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얼마전 TV 프로그램에서 챔피언 장정구를 보았다. 예전 권투는 예의가 있었는데 지금은 예의가 없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이러한다. 권투 시합이 끝난 뒤에는 승패를 떠나 상대방과 상대방 코너에 가서 인사를 했다. 상대가 있기에 자신이 승자가 될 수 있다는 배려이다. 하지만 지금은 오직 자신이 이겼는지 졌는지에만 관심을 가진다. 비단 링 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링 아래의 우리 현실이 그러하다. 상대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
복거일의 논조에 거부도 동의도 하지않는다. 단지 이러한 논조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민주당은 원래 희망의 대상이 아니었기에 말할(論할이라고도 하지않겠다) 가치도 없다. 다만 "익숙한 정당들과 정치인들에게 기대를 걸 수는 없으므로,그들은 새로운 사람들에게 기대를 건다"고 했는데 이 땅의 진보정당, 좀 더 왼쪽으로 간다면 좌파정당은 반성해야 한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땅에 진보, 좌파 정당이 없다는 현실이다.
복거일은 박원순 현상(?)을 "자신들을 절망적 상황에서 구원해 줄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미지의 인물을 고른 것이다. 복권을 사는 심정으로 가장 갖추기 힘들다는 정치적 지도력(指導力)을 기대한 것"이라 말한다. 복권을 사듯이 선택하였더라 하더라도 이제 박원순 시장은 배의 닻을 올렸다. 그 배가 심한 파도와 풍랑을 지나 어느 항구로 갈지 기대가 된다. 그래서 우파 박원순을 있게 한 진보가 못내 아쉽다. 후보도 내지 못하는 자중지란 우파의 분열을 이용하지 못하는 좌파이기에 이 땅에 좌파에게 희망이 있을까라는 절망감이 더 크다. 정말 복거일의 말처럼 "비현실적 기대는 `울분`을 부"르는 것일까.
덧_
글을 작성하고 [한겨레 좌담회] 정당정치 위기와 진보의 갈길를 보았다.
노회찬은 "안철수 현상을 역사발전과 시대발전을 거스르는 반동적 측면에서 해석하기보다는 이 현상을 통해 진보정치의 과제를 봐야 한다. 제대로 된 진보정당의 부재가 이 현상을 만들어냈다. 안철수 현상은 진보의 길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라는 신호가 아니라 오히려 진보정치에 대한 희망적 관측을 갖게 하는 신호다"라 말했지만 대단히 낙관적인 전망이다. 현재와 같은 대통합으로는 희망이 어렵다.
권영길은 "진보정당 대통합과 관련해 내가 '도로 민노당’이 되는 걸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했다. 다시 통합시절의 민노당으로 돌아가는 걸 두려워하면 '노동 없는 진보정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이 말은 대통합이 "도로 민노당'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런지. 더불어 "진보신당과 분당되지 않았다면 2008년 총선 때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수준의 당선자를 낼 수 있었을 것"이라며 대중정당에 대한 아쉬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에 노회찬은 "지금 와 생각해 보면 11년 전에 민노당을 창당할 때 설정한 좌표는 틀린 게 아니다. 설정된 좌표를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미숙함과 오판, 시행착오 등이 나타났을 뿐"이라며 호응하고 있다.
대통합과 진보신당 탈당파에 대한 우려가 더욱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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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 기대는 `울분`을 부른다 - 복거일(한국경제)
서울 시장 선거에서 여당 후보는 예상보다 훨씬 큰 차이로 무소속 후보에게 졌다. 보수적 시민들은 크게 낙심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가 그렇게 충격적이었던 만큼,이번 선거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
가장 중요한 정보는 젊은 세대들이 품은 불만이 일반적으로 인식된 것보다 훨씬 거대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맞은 경제적 어려움이 선거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 자체는 놀랄 일이 아니다. 모든 선거들은 궁극적으로 경제 상태에 좌우된다.
주목할 것은 젊은 세대들이 기대하는 경제적 수준이 비현실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자식 둘을 대학에 보낸 40대 가장이 비싼 학비를 불평하면서 그것 때문에 무소속 후보를 지지했다는 토로(吐露)는 전형적이다.
대학 교육은 원래 돈이 많이 든다. '우골탑(牛骨塔)'이라는 말이 가리키듯,예전에도 그랬다. 미국에서 대학생들이 진 빚이 거품의 수준에 이르렀다는 진단이 말하듯,다른 나라들도 그렇다.
내 자식들을 꼭 대학에 보내겠다는 부모 마음이야 공감하지만,등록금이 너무 비싸다는 불평은 다른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어려움을 덜겠다는 생각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처럼 당사자가 비용을 부담했던 혜택을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entitlement)'로 여기는 경향이 점점 심해진다.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분노는 물론 정부로 향한다. 그들에겐 어떤 정부도 그들이 바라는 것을 해줄 힘이 없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경제적 현실에 맞춰 정권의 경제적 성취를 평가할 마음도 아예 없다. 그저 자신이 바라는 삶을 정부가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연히,이제는 어떤 정권도 시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 그리고 성난 시민들은 투표를 통해 자신들의 절망과 울분을 드러낸다. 익숙한 정당들과 정치인들에게 기대를 걸 수는 없으므로,그들은 새로운 사람들에게 기대를 건다. 많은 사람들이 "만일 박원순 후보가 민주당으로 나왔다면,그를 찍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들을 절망적 상황에서 구원해 줄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미지의 인물을 고른 것이다. 복권을 사는 심정으로 가장 갖추기 힘들다는 정치적 지도력(指導力)을 기대한 것이다.
이런 비현실적 태도는 정권의 안정성을 줄이고 정권 교체의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 아울러,무조건 시민들의 환심을 얻어야 하는 정치인들로 하여금 민중주의(populism)로 점점 깊이 빠지게 만든다. 모두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주장하므로,지대(地代) 추구는 점점 노골적으로 된다. 그래서 사회는 동맥경화증에 걸리고 정부나 정당은 합리적 정책을 펴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이런 추세는 사회가 원숙해지면 필연적으로 나온다. 공공선택이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경제학자 맨커 올슨은 그런 사회적 동맥경화증이 전쟁이나 혁명과 같은 근본적 변혁으로만 치유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일부러 전쟁이나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지 않느냐고.근본적 개혁을 시도한 5 · 16 군부 정변이 일어난 지도 반세기가 지났으니,우리 사회도 동맥경화증이 심할 수밖에 없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을 지닌 사람들에게 열린 길은 사람들이 합리적 판단을 하도록 사실과 진실을 계속 가르치는 것이다. 시원스러운 대책은 못 되지만,그래도 그것이 유일한 길이다.
실은 희망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어리석지만 바보는 아니다. 버트런드 러셀의 말대로,성인만이 진정한 자기이익을 알아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사실과 진실을 외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야,이 칼럼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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