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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斷想/부고 · 추모 사이트를 위한 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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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의 그림자 뒤에 엎드려 울다 - 김지하를 추도하며 김지하(金芝河), 1941년 2월 4일~2022년 5월 8일) 본명은 김영일(金英一) 김지하를 추도하며 ⑤1. 아, 슬프다! 김지하 시인이 지상의 나날을 헤치고 간 서사는 도대체가 황망하기 짝이 없다. 온통 파란만장뿐이요, 온통 적막강산뿐이었다. 한 번도 그 앞에 엎드릴 틈을 주지 않았다. 나는 거기서 얻은 생채기 하나를 지금도 젊은 날의 화인처럼 가슴에 새겨놓고 있다.영원히 지우지 못하리라. 2. 31년 전 딱 이 무렵이다. 김지하 시인이 조선일보에 하고 외칠 때 나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청년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정말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대체 어쩌면 좋단 말인가. 청년위원장은 ‘노동해방문학’으로 수배 중이고, 한국 지식인 사회는 소위 ‘문명사적 대전환기’라는 유행어 아래 극단의 침체기에 빠져들고 ..
제인 구달,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허문 사람 제인 구달(Valerie Jane Morris-Goodall), 1934년 4월 3일 ~ 2025년 10월 1일 (91세) 그녀는 과학자가 되기 전에 먼저 관찰자였다. 숲의 언덕에 홀로 앉아 침팬지를 바라보던 젊은 여성, 이름도 번호도 없던 존재에게 처음으로 이름을 붙여준 사람. 그 순간부터 인간과 동물의 거리는 조금씩 좁혀졌다.제인 구달은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다. 비서로 일하던 스물세 살의 여성이, 아프리카로 건너가 루이스 리키를 만나며 인생의 궤도가 바뀌었다. 그녀가 곰베의 숲에서 처음 목격한 장면은 세상의 믿음을 뒤흔들었다. 침팬지가 풀대를 이용해 흰개미를 잡아먹는 모습이었다. 인간만이 도구를 만든다고 믿던 시대, 그녀의 관찰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졌다.구달은 냉정한..
부고(訃告) 연구에서 배우는 4가지 가치 미디어가 다루는 죽음을 사회학적 관점으로 접근한 『부고의 사회학』은 두 가지점에서 주목할만하다. • 첫째는 미디어가 어떤 죽음을 알리는 부고기사를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람의 ‘생물학적 죽음’을 ‘사회적 죽음’ 공간”으로 정의한 점이다. • 둘째는 부고기사를 미디어와 망자의 가족을 통해 걸러진 가치와 미덕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창(창)으로 이해한 점이다.부고 연구는 사회학적 시각에서 부고를 분석하여 개인적 삶과 사회적 관계의 변화를 이해하고, 사회적 연대의 의미를 재고하며, 사회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탐구하고, 생명과 죽음의 역사적 맥락을 성찰하는 네 가지 가치를 배울 수 있게 합니다. 부고(訃告) 연구에서 배우는 4가지 가치1. 개인적 삶과 사회적 관계의 변화 이해: • 부고는 한 개인의 삶의..
1호 개그맨 전유성, ‘유성’이 되다 전유성(全裕成), 1949년 1월 28일 ~ 2025년 9월 25일 (향년 76세)25일 향년 76세로 별세한 개그맨 전유성. 지난해 전북 남원시 인월면 ‘안내소 앞 카페 제비’에서 인터뷰 때 모습이다.‘개그계의 대부’ 전유성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6세.고인은 지난해 급성 폐렴, 부정맥, 코로나19 등으로 건강이 악화돼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총 16㎏이 빠질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고, 지난 6월에는 기흉 시술까지 받았다. 최근에는 다시 병세가 악화돼, 지난달 6일 예정돼 있던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부대행사 ‘코미디 북 콘서트’ 참석을 취소했다.1949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라벌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정극 배우를 꿈꾸다 우연한 계기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다. 당대 최고의 인기 코미디언 곽규..
‘터부’에서 ‘뉴스’로 진화하는 부고 기사 세계일보의 남다른 부고기사 제작기 - ‘터부’에서 ‘뉴스’로 진화하는 부고 기사이름과 사망일, 장례식장과 발인 일시 등이 간략하게 소개되는 부고 기사. 그러나 이 짧은 글에 한 사람의 일생을 담을 수는 없다. 최근 일반적인 부고 기사에서 벗어나 고인의 삶을 보다 상세히 기록하고자 하는 시도가 늘고 있다. 그중 하나인 세계일보 부고 기사의 제작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미리 죽음을 예측하면 불길한 결과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장례식 계획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다.”1965년 1월 중순 90세 고령인 윈스턴 처칠 전 영국총리의 임종이 임박했을 때 ‘처칠 장례식에 조문 대표로 누굴 보낼 것인가’라는 주한 미국대사관의 질의에 우리나라 외교부가 내놓은 답변이다. 당시 미 국무부는 세계 각국에 나가 있..
김지하, 수난과 구도의 삶을 기억하며 - 김지하를 추도하며 김지하(金芝河), 1941년 2월 4일~2022년 5월 8일) 본명은 김영일(金英一) 김지하를 추도하며 ④돌이켜보면 1960년대 중엽 김지하를 처음 알게 됐을 때 그는 두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박정희 정권의 대일 굴욕외교를 반대하며 궐기한 학생운동 속의 모습이었습니다. 학교를 갓 졸업하고 어느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던 나는 근무가 끝나면 복학한 친구들을 만나러 동숭동의 농성현장으로 가곤 했었지요. 그때 김지하의 쉰 듯한 목소리가 뿜어내는 뜨거움을 나는 화상(火傷)의 위험처럼 느끼며 외곽에서 바라보았습니다. 가정교사로 숙식을 해결하며 주로 서구문학의 좁은 울타리에 갇혀 지내온 나 같은 사람의 눈에는 당시 학생운동의 주역들이 외친 민족문제의 심각성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청맹..
나의 친구 최동원에게, 친구야 너무 보고 싶고 그립다 - 이만수 최동원(崔東原), 1958년 5월 24일~2011년 9월 14일 나의 친구이자 만인의 친구, 위대한 최동원 투수가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14년이 된다. 지금 40대 혹은 5-60대 이상이라면 야구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무쇠 팔’ 최동원(崔東原·1958~2011) 투수를 기억할 것이다.선수 최동원은 근면과 성실, 열정과 집념으로 상징되는 ‘70~80년대 산업화 시대의 상징적인 모델이었다. 최동원 투수는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승부 근성을 갖고 있다. 안쪽으로 들어오는 볼에 안타를 맞으면 다음 타석에서도 똑같이 안쪽 공으로 승부를 볼 정도로 승부사 기질이 있는 친구였다.최동원 투수를 처음 본 것은 중학교 2학년 시절이었다. 청주에서 열리는 문교부장관기 전국대회가 열렸다. 나는 대구중학교 대표로, 최동원투..
7천만 겨레 앞에 머리 숙여 인사를 올립니다 - 故 늦봄 문익환 목사 부고광고 문익환(文益煥), 1918년 6월 1일 ~ 1994년 1월 18일 7천만 겨레 앞에 머리 숙여 인사를 올립니다“통일의 선구자 故 늦봄 문익환 목사 겨레장”에 참여하셔서 비통한 마음을 함께 나누고, 유가족을 위로하고, 통일위업 완성의 결의를 다지신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해내외에서 여러분이 분향소를 차리고 애도해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김일성 주석과 국제사면 위원회(엠네스티인터내셔날)를 비롯한 많은 단체와 여러분이 목사님의 큰 뜻을 기리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조전을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또한 북녘에서 조문단을 파견코자 노력하셨음을 감사드리며, 그 방문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민중의 벗"이신 문목사님을 잃은 슬픔을 딛고 일어나 다시 서기 위해서 우리는 다가오는 4월 ..
김지하는 암흑시대를 밝힌 촛불 하나 김지하(金芝河), 1941년 2월 4일~2022년 5월 8일) 본명은 김영일(金英一) 김지하 시인의 갑작스러운 부고에 문단 및 문화계 인사는 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들에게 김지하는 촛불이었고, 민족 예술 1세대의 대선배였으며, 한편으로 인간 생명을 재해석한 시인이자 철학자였다. 시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문화계 인사 4인의 육성(肉聲)을 싣는다.●이문열(소설가)젊은 시절 내 소설 ‘황제를 위하여’를 읽고서 보자고 해 만났다. 그때 난초 한 포기를 그려준 것이 첫 만남이었다. 술자리에서 “사람들이 자꾸 나보고 내가 죽기를 바라는가보다, 왜 죽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거 같다”면서 그는 괴로워했다. ‘한때 헹가래를 받으며 솟구쳤다가 다시 떨어져 냉담한 대접을 받는 사람 기분이 이렇겠구나’ 생각했다. 2005년..
시대와 불화했던 마광수 교수 별세 마광수(馬光洙), 1951년 4월 14일~2017년 9월 5일 ‘마광수’가 죽었다. 외람되게도 부고에서 이름 석 자만 쓴 것은 마광수라는 이름이 우리의 한 시대를 상징하는 기호였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연수가 “대뇌의 언어로 말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성기의 언어로 말하던 시절”이라고 회고했던 1990년대 들머리, 마광수는 스스로 시대를 드러내는 아이콘이었다.명문 대학 교수가 “야한 여자가 좋다”라고 떠들고 다녀서, 또는 “장미여관으로 가자”라고 뭇 여성을 꾀어서 마광수에 열광했던 것은 아니다. 고지식하고 점잖은(혹은 그러한 척만 하는) 사회와 혼자만의 방식으로 맞짱을 뜬 혈혈단신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응답하라’로 시작하는 TV 드라마가 동화처럼 어여쁘게 그려낸 그 시절, 마광수는 문화 게릴라였고 민주화..
쩡쩡 참나무 얼어 터지는 날 —앞서서 나가신 님, 민중의 배짱 백기완선생 추모시 백기완(白基琓), 1932년 1월 24일~2021년 2월 15일 쩡쩡 참나무 얼어 터지는 날 —앞서서 나가신 님, 민중의 배짱 백기완선생 추모시—김태철(시인)벗이여 쩡쩡 참나무 얼어 터지는 날 새벽녘 향불 내음마저 떠나고 나 떠나는 꽃상여 소리에 울지 말아요 민중 승리의 맨 마루에서 우주의 깊이보다 더 깊은 민중의 배짱에 무지개 불을 지펴줘요 인류 최초로 돈과 분단과 학벌과 엘리트라는 저 제국의 공고한 벽을 허문 육개장처럼 얼큰하고 알싸한 일하는 사람들의 배짱과 그 맵고도 독한 노동 존중의 절정을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않게 노래, 노래를 해 주오여러분 혁명이 뭔 줄 아시죠 세상 사람들은 손바닥을 확 뒤집는 거이 혁명이라 하지만 난 혁명이란 손바닥에 흙 한 줌 고이 쥐..
당신의 부고는 당신이 직접 쓰라 … 죽기 전 최고의 글쓰기 타인의 부고를 쓰는 것 혹은 읽는 것은, ‘애도’라는 여비를 지불하고 한 인간의 인생 터널을 관람하는 ‘가성비 높은’ 체험이다. 수많은 죽음을 접한 그가 살아있는 이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무엇일까?바로 ‘당신의 부고는 당신이 직접 쓰라’다.만약 부모가 병석에 누워 돌아가실 날을 기다리고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부모를 인터뷰해서 그들이 인생에서 이루고자 했던 것을 기록하라고 권유한다. 가족의 인생 이야기조차 쓰기 전까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제임스 R. 해거티가 쓴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에는 망자를 묘사하는 신랄하고 유머러스한 수많은 부고가 샘플로 등장한다.오토바이로 사망한 형을 향해 ‘다정한 사람’이자 ‘어쩌면 동부에서 가장 지독한 짠돌이였을지도 모른다’고 묘사하는 동생, 시..
짐을 내려놓고, 부디 좋은 방 얻어 편히 주무시라 - 김영현 작가 별세 김영현 작가가 25년 5월 9일 별세했다. 향년 70세. 싸우는 법을 배워야지 쉽게 타협하지 않고 타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말하고 독초처럼 퍼렇게, 여우같이 독사와 같이 가시나무같이 살아 이기는 법을 배워야지. —「싸움꾼의 노래」 中김영헌은 시보다 소설을 먼저 알았다. 아마도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일 것이다. 「풀빛판화시선」으로 나온 『겨울 바다』로 그를 읽었다. 몇 년 후, 『남해 엽서』를 보았다. 그와의 기억은 끝이다. 소설집은 어디로 가버렸고, 시집은 두 권을 가지고 있다.그 후론 오랫동안 책장에 있었다. 어쩌다 실천문학 대표이사로 취임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렇게 나에겐 잊힌 이름이었다. 그의 부고 기사를 보았다. 그래도 젊은 시절 한때나마 같이 있었던..
오직 살아 있어 아름답다, 살아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 신경림 1주기 신경림(申庚林), 1936년 4월 6일~2024년 5월 22일 살아있어야 희망을 찾을 수 있고, 희망이 있는 곳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아직 살아 있어, 오직 살아 있어 아름답다. 살아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시인은 발견하는 사람이다. 늘 보던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이다. 늘 다니던 길에서 안 보이던 것을 발견해내는 이다.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이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보는 사람이다. 시는 그것들과 만나는 것이다. 미미한 것, 숨어 있던 것, 드러나지 않던 것, 하찮은 것들과 만나는 것이다. 만나서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존재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존재 자체로 의미 있다는걸 알게 하는 것이다.신경림 시인은 “시 쓰기 역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
최동원 14주기, 우리 마음의 마운드 위에 최동원(崔東原), 1958년 5월 24일~2011년 9월 14일 9월 14일은 한국 프로야구의 ‘영원한 레전드’, 부산 시민이 가장 그리워하는 사람, 불멸의 투수 최동원의 14주기다.그는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거두며 롯데 자이언츠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 롯데는 1992년에 한 차례 더 우승한 뒤, 지금까지 33년째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열심히 해서, (한국시리즈) 전 경기에 다 나가더라도 이길 수 있는 게임은 이기고 싶습니다.” 27살의 안경 쓴 까까머리 투수는 1984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승리투수가 된 뒤 이렇게 말했다. 이날 그는 138구를 던져 4-0 완투승을 거뒀다. 그저 호투가 아니라, 사투였다. 사람들은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전 경기엔 못 나가겠지.’ ..
나의 부고 기사를 준비하는 법 얼마 전 만난 모 신문사의 국장은 자기 담당이 아닌데도 부고 기사를 가끔 쓴다고 했다. 자신과 친분이나 추억이 있는 어르신이 돌아가셨을 때 그분을 만나본 적도 없고 잘 모르는 젊은 후배보다는 자신이 정확하고 애정을 담아 부고 기사를 쓸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인터넷을 뒤져 요약한 자료와는 달리 잘 쓴 부고 기사는 고인을 위한 마지막 선물이기도 하다.며칠 지나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부고 기사, 즉 어떤 사람의 죽음을 지인에게 알리는 기사 담당인 제임스 R. 해거티가 쓴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란 책을 읽었다. ‘부고 전문기자가 전하는 삶과 죽음의 의미’란 부제가 더 마음에 와닿는다.독자에게 죽기 전에 스스로 부고 기사, 아니 부고를 써보라고 권한다. 남에게 기억되는, 왜곡되었거나 뻔한 부고..
피델 카스트로의 전기, 50년 쿠바 대통령 피델 알레한드로 카스트로 루스(Fidel Alejandro Castro Ruz), 1926년 8월 13일 ~ 2016년 11월 25일 피델 카스트로는 1959년 쿠바를 무력으로 장악하고 거의 50년 동안 독재자로 군림했다. 서반구 유일의 공산국가 지도자로서, 카스트로는 오랫동안 국제적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주요 사실: 피델 카스트로- 주요 경력: 쿠바 대통령, 1959–2008- 출생: 1926년 8월 13일, 쿠바 오리엔테주- 부모: Angel Maria Bautista Castro y Argiz, Lina Ruz González- 사망: 2016년 11월 25일, 쿠바 아바나- 학력: 산티아고 데 쿠바 Colegio de Dolores, 하바나 Colegio de Belén, 하바나 대학교- 배우자..
아, 백기완 선생님... 이젠 편히 쉬소서 백기완(白基琓), 1932년 1월 24일~2021년 2월 15일 아, 백기완 선생님... 이젠 편히 쉬소서오늘(2월 15일) 아침 일찍 백기완 선생의 부고를 접했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해 계시다는 소식은 여러 경로를 통해 들었습니다만 코로나19로 뵙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잠잠해지면 가까운 동지들과 병문안을 가기로 약속해 두었는데... 이렇게 가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백 선생님은 우리 후배들에게 만년 청년으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청년 때의 기백이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는 이유가 클 것입니다. 사람들은 맑고 젊은 정신을 육신의 강건함과 혼동하는 우(愚)를 종종 범합니다. 또 일평생 민중적 삶과 생각이 변하지 않은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뒤에 뉴스를 찾아보니 오늘..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몇 안 되는 장점 제인 캐서린 로터3기, 2C 단계 자궁내막암이 간과 복부로 재발 전이된 상태에서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는, 스스로 자신의 부고를 쓸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장점이라면 더 이상 자외선 차단제를 바를 필요도 없고, 콜레스테롤 수치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시작하겠습니다.저는 1952년 8월 10일 시애틀 노스게이트 병원(지금은 철거됨)에서 태어났습니다. 쇼어라인에서 자라 쇼어크레스트 고등학교에 다녔고, 1975년 워싱턴대학교에서 역사학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열아홉 살 때 8개월 동안 뉴욕에서 살았던 일을 제외하면 평생을 시애틀에서 보냈습니다. 그 시절 저는 B. 알트만 백화점의 전화 주문 부서에서 즐겁고 거리낌 없이 일했지요.직업적으로 저는 프리랜서..
지하 형님의 추억, 그리고 작별 - 김지하를 추도하며 김지하(金芝河), 1941년 2월 4일~2022년 5월 8일) 본명은 김영일(金英一)김지하를 추도하며 ③—이동순 시인1. 담시 ‘오적’이 준 충격1970년 가을 어느 날, 마침 정주동 교수의 ‘홍길동전’ 수업을 마치는데 진보적 서클 현대사상연구회의 멤버인 동기 K가 상기된 얼굴로 무언가를 돌렸다. 그것은 프린트 등사본으로 된 김지하 시인의 담시 ‘오적(五賊)’이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거친 갱지에 인쇄된 작품의 어법은 당차고 소름이 돋았다.시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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