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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술 사주는 읽고쓰기

책은 그냥 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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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것(?)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동네 책방이 죽어간다. 온라인 서점에서만 구매한다. 문화가 살 길이 없다. 지랄.

출판사라는 것들이 돈 되는 책만 찍어 된다. 도무지 읽을 책이 없다. 볼만한 책은 출간된 지도 모르다가 찾아보면 절판이다. 젠장.

하지만 책은 그냥 책일 뿐이다. 우리가 고전이라 말하는 책도 그 시기의 수많은 책 중에서 한 권일 뿐이다. 야구에서도 3할대면 잘 치는 타자이다. 나머지 7번은 삼진이거나 병살일 가능성이 높다. 늘 좋은 책만 읽을 수는 없다. 더불어 늘 좋은 책만 선택할 수도 없다. 맘에 안 드는 책을 선택했으면 속았다고 생각하고 또 한번 속을 것을 염려하자.

책은 그냥 책일 뿐이다. 대단할 것도 없다. 온 국민이 책을 읽기를 바라는 자체가 잘못된 설정이다. 시대를 거슬러 책은 극히 소수의 전유물이었다. 지금처럼 온 국민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위기의식을 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왜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를 만드는가. 책은 그냥 책이다. 읽고 싶으면 읽고 보다가 싫으면 덮는 것이다.

위기의식을 조장해서 왜 책을 팔아먹으려 하는가. 왜 지식 장사를 하려는가. 책이 우선인지 마케팅이 우선인지 모를 지금의 현실에서 책 권하는 X 같은 사회는 만들지 말자.

돈 내고 책을 사는 것은 독자이다. 내 맘이 동動해야 책도 사고 책도 읽는 것이다.

이런 세상을 깨우치려면 책을 읽어야 하나. 다시금 책을 들어본다.



덧_
부키출판사에서 아래 글을 보고 몇 자 끄적거리다.
책 권하는 X같은 사회가 싫다.

+

책은 그냥 책일 뿐이다

출판사에서 일하다 보면 사람들과, 보다 정확하게 말해 출판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과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다. 그리고 그 때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당혹감이다.

가령 나이 좀 드신 분들 중 상당수가 으레 하시는 말씀이 있다. ‘요새 젊은 애들은 책을 안 읽는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 한다. 그렇다면 옛날에는 책을 많이 읽었다는 말인가. 내 생각에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 증거도 댈 수 있다.

오늘날 나오는 책의 종류는 옛날 - 그러니까 그 분들이 젊었을 때보다 훨씬 다양하다. 그것도 그저 단순히 종수가 많다는 차원이 아니다. 그 폭과 깊이가 옛날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다.

가령 세계사에 관한 책의 경우를 보자.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세계사 책으로는 중고등학교 교과용 참고서나 대학 교양과정에서 사용하는 개설서 정도가 고작이었다.

아, 대단히 부지런히 서점을 드나드는 사람이었다면 <대세계사>  전집을 기억할 수도 있을 것이다. 15권인가 되던 그 전집은 일본에서 나온 것을 번역한 것으로, 비록 이리저리 출판사를 떠돌아다니는 비운을 겪기는 했지만, 나에게는 아주 즐거운 독서 경험을 안겨준 책이었다. 그 책을 통해 비로소 나는 로마의 군단 편제를 알게 되었고, 군사 작전에 있어서 기동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역사에 있어서 우연이 얼마나 많은 작용을 했는지를 되새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세계사에 관해 그때보다 훨씬 즐겁게 독서를 할 수 있다. 대구라는 생선이 유럽의 경제발전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고, 마르크스가 그토록 저주하던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공장 노동자의 생활이 중세 봉건 영주 아래서 살아가던 농노의 생활보다는 어떤 점에서 더 나았는지를 마음만 먹으면 알 수 있게끔 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요즘 젊은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한탄이 나올 수 있는가. 그 많은 책들은 모두 판매를 위해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판매의 많은 부분이 젊은이들에 의해 이뤄진다. 따라서 그 젊은이들이 책을 장식용으로 산 것이 아닌 이상 독서량은 옛날보다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았다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음으로 나오는 말씀은 ‘책도 책 나름이지. 별 책 같지도 않은 책이 허다하게 나오는 판에…’ 하는 것이다. 그 말줄임표 속에 생략된 말은 간단하다. 통속물이나 실용서와 같은 쓸데없는 책이 무수하게 나온 탓에 외관상 풍성하게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물어보자. 책 같은 책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말씀을 기록해 놓은 것인가? 아니면 내가 어릴 때 필독 교양도서로 꼽히곤 하던 <데미안>이니 <죄와 벌>이니 <신곡>이니 <위대한 개츠비>니 하는 문학서인가? 아니, 어쩌면 모두가 경외하되 어느 누구도 좀체 읽으려 하지 않는 <순수이성 비판>이나 <국부론>과 같은 진지한 학술서만이 책 같은 책에 해당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그런 류의 책만이 책 같은 책에 해당된다면, 나는 더 이상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책의 가치는 그 책의 장르나 주제, 소재, 문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책을 읽은 독자가 거기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막말로 부부 생활에 문제가 있는 어떤 사람이 <비전! 카마 수트라>와 같은 빨간 책 비슷한 것을 열심히 읽고 무언가를 느꼈다고 하자. 그래서 나름대로 부부 문제에 해결책을 찾았다고 하자. 그러면 그 사람은 그 책의 가치를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 책을 내가 냈다면, 그 책이 그런 역할을 해낸 것에 대해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책은 책일 뿐이다. 독자가 뭐라고 부르기 전에는 그저 책일 뿐이다. 그런데 거기에 특정한 레테르를 붙이고자 애쓰는 분들을 나는 진심으로 피하고 싶다. 그런 행위의 대부분이 책에 대한 단심(丹心)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는 책에 관한 과시(誇示)에서 유래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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