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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한국 최초의 다방은 독일식 다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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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에는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이 나온다. 그런 다방에는 다방커피가 있다. 다방에 가면 레지라 불리는 언니가 '어떻게 타드릴까요?'라 묻는다. 그러면 대부분 보통이라고 말한다. 커피 하나, 프림 둘, 설탕 둘 또는 셋을 타서 준다. 일반적인 다방커피이다. 이 커피 파는 방식은 다방뿐이 아니다. 집에 손님이 와도 '어떻게 드세요?'라 묻는다. 아리따운 여인과 첫 만남에서도 남자는 여자에게 묻는다. 몇 개 타세요. 각설탕 몇 개를 넣어주는 센스로 여자에게 호감을 주려 했다.

1990년대 말 원두커피를 종이컵에 담아 판매하는 미국식 테이크아웃 커피점이 인기를 끌면서 인스턴트 커피의 인기는 시들어갔다. 하지만 다방커피는 청바지와 잘 어울리는 하나의 문화였고 농촌에서도 숭늉 다음으로 많이 먹는 기호 식품이 되었다.


우리는 왜 다방커피를 먹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한국의 최초 다방이 프림과 설탕을 타서 먹는 독일식 커피를 파는 곳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국인 최초의 커피 애호가는 고종황제이다. 을미사변 당시 피신해 있던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처음 맛보았다. 고종에게 처음 커피를 맛보게 한 사람은 러시아 초대 공사 웨베르의 처형 손탁 여사이다. 손탁은 독일인이다. 아관파천 때 공사관에 기거할 때 모든 수발을 맡길 정도로 손탁 여사를 신임하였다. 환둥 후 고종은 덕수궁 건너편 정동에 400 여평 대지에 양옥집을 지어 손탁에게 선물했고, 손탁은 이 집을 1898년부터 호텔로 운영했다. 이 호텔이 구한말 외국인들의 사교장이 된 손탁호텔이다. 1층에 레스토랑 겸 커피숍이 있었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커피숍이다. 독일 여성이 운영하는 커피숍이다 보니 그곳의 커피는 당연히 독일식, 프림과 설탕을 타 먹는 방식이었다. (처음 하사 당시에는 1층이었고 1902년 황실 경비로 2층으로 확장해 주었다.) (손탁여사와 손탁호텔)



커피의 원산지는 어디일까? 북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고산지대라는 설과 홍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아라비아반도 남쪽 예멘이라는 설이 있다. 두 곳 모두 기원이 되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에티오피아 원조설의 주인공은 칼다라는 염소치기 소년이다. 2,700여 년 전 어느날, 당시 아비시니아라고 불리던 에티오피아 남서쪽 카파지역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살고 있던 칼디는 자신이 키우던 염소가 잠들지도 않고 춤추듯 날뛰듯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숲 속의 작은 나무에서 열리는 빨간 열매를 따 먹으면 흥분하고 기운이 넘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기심으로 자신이 직접 열매를 따 먹어 보았다. 그랬더니 온몸에 힘이 넘치고 머리가 맑아지는 게 아닌가. 칼디가 발견한 빨간 열매가 바로 커피라는 설이다.

예멘 원조설의 주인공은 알리 벤 오마르 알 샤딜라라는 이슬람 사제이다. 오마르는 수피교 사제로, 기도와 약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능력을 가진 자이다. 1258년쯤 정적들의 모함으로 예멘 모카항 인근 사막으로 쫓겨난 오마르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붉은 열매가 매달린 작은 나무를 보았다. 굶주림과 목마름에 허덕이던 오마르는 이 붉은 열매를 따 먹었다. 오마르는 이 열매가 알라신의 선물이자 축복이라고 믿었고, 이 열매를 달여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사용했다. 오마르의 소문은 이슬람 전역으로 퍼져 그는 '모카의 성인'으로 추앙받는다.

두 가지 설 모두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신뢰할 만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커피를 분(boun)이라고 부르는 에티오피아 농부는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커피음료가 나오기 전부터 커피열매를 그대로 먹거나 살짝 구어 끓인 음료를 마셔왔다. 또한,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들이 커피 과육을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러한 근거를 미루어 커피 원산지를 에티오피아로 보고 있다.

그러나 커피를 오늘날의 형태로 발전시킨 것은 예멘의 무슬림이라는 주장에는 누구나 수긍하고 있다. 술을 마실 수 없던 무슬림은 술 대신 카페인에 빠져들었다. 이 때문에 커피를 '이슬람의 와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가 졸음을 이기려 애쓰고 있을 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음료를 주고 갔으며, 이 음료가 커피라는 이야기가 있다. 커피가 바로 신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영어 커피(coffee), 프랑스어 카페(cafe), 독일어 카페(Kaffee), 네델란드어 코파(koffie), 이탈리아어 카페(caffe), 터키어 카베(kahveh) 등 세계 각국에서 커피를 지칭하는 명칭도 카와(khawah 또는 qahwa)라는 아랍어가 어원으로 추정된다. 이슬람의 커피 문화가 베네치아 등 교역 파트너를 통하여 유럽으로 건너가 정착착된 만큼 에티오피아어의 카파(kaffa)보다는 카와가 어원이라는 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

일제 강점기 다방의 역사에서 시인 이상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이상은 4차례나 다방을 개업한다. 물론 상업적으로 돈과는 거리가 멀었다. 1933년 총독부 기사직에서 물러난 뒤 백부의 유산을 정리하여 서울 종로1가 조선광업소 1층을 세내 ‘제비’를 개업했다. 금홍을 제비 다방의 마담으로 불러와 3년간 동거하였다. 그러나 ‘제비’ 다방을 개업했다고 해도 경제적 번창과는 거리가 멀었다. ‘제비’ 경영에 실패해 명도소송을 당한 끝에 1935년 폐업했다. 그 후 서울 인사동에 있는 카페 ‘학’을 인수하여 경영하기도 하고 종로1가에 다방 ‘69’를 설계하여 개업했으나 이것도 곧 실패하고 다시 명동에 다방 ‘맥(麥)’을 경영하려고 하다가 개업하기도 전에 남에게 양도 당하고 말았다.

이 다방들 중에서 재미있는 것이 이상이 세 번째로 개업한 69다방이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식스나인을 의미한다. 예전 이상에 관한 책에서는 분홍색으로 69를 쓴 간판을 내걸고 그 의미를 모르는 행인을 조롱했다는 기행을 행했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강준만(<고종 스타벅스에 가다>)이나 일반적인 설은 다르다. 69다방은 문을 열어보지도 못하고 간판을 내려야 했다. 이상은 69다방 개업허가를 종로경찰서에서 받아놓고 69의 도안을 그린 간판을 걸어 두었다. 그런데 다방을 열기 2∼3일 전 다방허가가 취소되었다. 그 이유는 풍기문란죄. 식스나인이란 말은 아주 선정적인 말이지만 이 뜻을 미처 알지 못한 경찰이 처음에는 허가를 내주었다가 어느 시민의 항의를 받고 뒤늦게 금지한 것이다. 이 일로 더 이상은 종로경찰서 담당에서는 개업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명동에서 맥다방(무기다방)을 열었다. 장사하다가 그만두었다는 설도 있고 개업전에 양도 당했다는 설도 있다. 4번의 다방은 모두 말아먹었다.

정조 때 문인 유한준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더라"고 말했다. 또한 "아는 것이 적으면 사랑하는 것도 적다"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말했다. 원두커피든 인스턴트 커피인든 커피는 세계인들이 애호하는 기호품이다. 커피에 대해 조금 더 알고 마신다면 커피 향과 더불어 그 맛이 더욱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커피 이야기
김성윤 지음/살림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강준만.오두진 지음/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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