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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오행론으로 삼국지를 바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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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1월 9일 <장정일의 독서일기 6>에 쓰인 삼국지에 관한 글을 정리한 것이다. 먼저 장정일의 글에서 언급된 춘추사관, 정통론 그리고 언급하지 않았지만, 삼국지뿐 아니라 중국을 이해하는데 기본이 되는 오행설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 글은 <삼국지의 영광>(김문경, 사계절)을 참조했다.

삼국지의 정통론은 가볍게 여길 내용이 아니므로 다음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겠다.

이덕무는 그의 저서 <사소절士小節>에서 <삼국연의>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다. 그의 말은 3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연의演義나 소설은 음란한 말을 기록한 것이니 보아서는 안 된다. 자제들이 보지 못하게 금해야 한다. 간혹 남에게 소설 내용을 끈덕지게 얘기하거나 그것을 읽도록 권하는 사람이 있는데 애석하도다! 사람의 무식이 어찌 이 지경일까? <삼국연의>는 진수의 정사와 혼동하기 쉬운 것이니,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 연의演義는 사건을 부연한 것이고, 소설은 패설稗說과 같은데, 패稗는 세소細小의 뜻이다.
패설 : 민간에 떠도는 짤막한 이야기.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 문물제도, 세태 풍속, 고을 이름 따위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로 전설적ㆍ교훈적ㆍ세속적인 기이한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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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사관

공자가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노나라의 역사 <춘추>는 사실을 단순히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도덕적 기준에 따라 사건이나 인물의 시비, 선악을 판정하고 후세에 교훈을 주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정말 공자가 그런 의도가 있었는지, 오늘의 시각에서 보면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맹자를 비롯한 뒷날의 유학자는 그렇게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에 따르면 공자가 <춘추>에서 가장 강조하려고 했던 것은 군신의 변별과 존왕尊王 사상 바로 그것이었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 시대(기원전 770 ~ 403)는 동주東周 왕조의 권위가 흔들리고 하극상이 만연해 힘과 힘의 대결이 마침내 전국 시대(기원전 403 ~ 221)를 초래한 때였으니, 요컨대 <춘추>의 대의가 가장 필요했던 시기이다.

신하 된 자는 제 분수를 지켜 군주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동시에 군주도 의무를 지녀 왕도王道를 행하라는 것이 <춘추>의 중요한 가르침이었다. 왕도란 간단히 말해서 정의와 인애로 정치를 하라는 것이다. 그 반대로 무력과 권력으로 인민을 강압적으로 지배하는 패도覇道다. <춘추>를 중요시했던 맹자는 특히 왕도와 패도의 변별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춘추>의 대의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관념에 불과하여, 그것이 정치에서 실현된 일은 아마 한 번도 없었다. 길고 긴 중국의 역사를 전부 살펴본다 해도 말이다. 그럼에도 이 관념은 시대와 체제를 넘어서 중국인의 사고나 정치적 행동 양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영향은 중국 문화를 받아들인 동아시아 세계 전체로 미쳤다.

힘과 힘이 뒤얽히고 맞부딪치는 현실의 정치를 대의명분의 관념으로 호도하는 것은, 오늘날의 국제 정치 무대에서는 오히려 상투적인 수단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런 수단을 옛날부터 가장 열심히 운용한 민족은 바로 중국인이었다.

정통론

<춘추>의 대의를 역사라는 문맥 속에 넣어 구체적으로 체계화란 것이 다름 아닌 정통론이다.
군주는 하늘의 대리인으로서, 하늘의 섭리에 따라 만인 위에 군림하기에 천자, 즉 하늘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천자란 천명을 받은 유일무이한 존재이므로 그 통치권은 세계 구석구석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 "넓은 하늘 아래 왕의 땅이 아닌 곳 없고, 나라의 끝에 이르기까지 왕의 신하 아닌 자 없다."

중국 본토는 물론이고, 주변의 여러 민족도 모두 천자로서 중국 황제의 권위를 인정해 명목상 그 지배 아래 들어가서 중국 황제의 책봉을 받고 조공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혹시 이에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먼 곳의 화외민化外民으로 무시되거나 이적융만夷戎戎蠻이라 불리며 인간 이하로 취급받았다. 이 단일한 천자와 중화국을 중심으로 하는 일원적인 세계관이 바로 중화사상이다.

오행론

오행五行 사상이란 水 火 金 木 土의 다섯 가지 기본 원리에 따라 생성하고 운행한다고 보는 관념으로, 고대 중국인의 세계관에 깔린 사고방식이다.

하늘과 사람이 서로 감응한다는 사고방식을 보통 천일상관설天人相關說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일체의 자연 현상을 왕의 일거수일투족과 결부시켜 생각하는 미개 민족의 세계관이나 유럽의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과도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특별히 중국만의 독특한 사상이라고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중국의 천인상관설이 독특한 것은 그것이 오행 사상에 결부되었다는 점이다.

오행의 운행 법칙은 상극설相剋設, 상생설相生設이 있다. 상극설은 오행의 각각이 다른 것을 극복하며 순환해 가는 것으로 물은 불을 이기고, 불은 쇠를 이기고, 쇠는 나무를 이기고, 나무는 흙을 이기고, 흙은 물을 이긴다. 상생설은 나무가 타서 불을 낳고, 불은 다 타 흙이 되고, 흙 속에서 쇠가 생기고, 쇠가 있던 곳에서 물이 용솟음치고, 그 물을 빨아서 나무가 성장한다고 하는 것처럼 각각의 소재에서 상생되는 관계에 의한 순환을 말한다.

춘추 시대 다음의 전국 시대로 접어들어 주 왕조의 멸망이 누구에게나 분명해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그다음에 천하를 통일해서 천자가 되는 사람이 누구일까. 또 그 천자의 정당성은 어떻게 증명될까 하는 점에 집중되었다. 이때 제나라의 추연라는 사상가가 오행의 운행을 원용한 오행 가운데 어느 하나의 덕을 하늘로부터 받음으로써 천자가 된다. 이것을 수명受命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왕조의 덕이 쇠하여 더 이상 통치를 할 수 없게 되면, 이번에는 호행의 순서상 그다음에 해당하는 덕을 가진 왕조가 새롭게 수명해 앞 왕조를 대신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명命이 바뀐다. 즉 혁명革命이라고 말한다. 전국 시대를 통일한 진나라 시황제는 이 추연의 설을 받아들여 자신을 수덕水德으로 천하를 군림했다. 주나라는 화덕火德이므로 그것에 대신하는 것은 불을 이기는 물의 덕을 지닌 나라여야 하였기 때문이다.

전한前漢 말기에 왕망이 왕위 찬탈을 획책할 때 한나라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불의 덕을 지닌 왕조로 간주하였다. 한나라를 염한炎漢, 염유炎劉 등으로 부른 것은 그 때문이다. 따라서 화덕을 계승하는 것은 토덕土德이고, 중요시하는 빛깔은 황색이다. 황건적이 난의 기인에 "창천蒼天이 죽었으니 황천黃天이 서게 된다"는 슬로건을 내건 것이나, 위나라와 오나라가 황제를 칭한 이후 최초의 연호를 각각 황초黃初, 황무黃武로 정해 모두 황색을 표방한 것은 모주 불의 덕을 지닌 한나라를 대신하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이에 비해 촉나라는 한나라의 후계자임을 자임했으므로 당연히 불의 덕을 고수하였다. 촉나라 최후의 연호 염흥炎興은 왕조 부흥의 비원悲願을 담은 명칭이었다.

마지막 나라 청나라까지 계속 이어진 것은 정통 왕조의 계승이라는 점에서 오행설이 상징적인 의미를 여전히 지녔기 때문이다. 신해혁명에 의해 무너진 청조를 무너뜨린 중화민국은 이 오래된 낡은 관습을 끊는다고 했지만, 수덕 다음의 목덕木德에 해당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은 화덕이 되어 중국의 가장 정통성이 나라로 간주하는 한漢나라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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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점에서 월탄 박종화를 비롯한 기라성같은(이 말은 일본어로서 순화되어야 할 말이다. 기라성(綺羅星)) 쟁쟁한 우리 작가들의 <삼국지> 번역본과 평역본이 나와 있다.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새롭게 쓰일 <삼국지>를 위해 나는 그 판본들을 모두 읽어보려 했다. 하지만 그것을 포기했다. 까닭은 내가 <삼국지>를 쓰려는 소설가들이지 판본 연구자는 아니라는 생각에서였지만, 근본적으로는 과연 정역과 평역만이 최선인가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삼국지>는 자구 하나하나가 번역되어야 할 책이 아니라, 의도가 해석되어야 할 책이다. 소설이란 그 시대를 거울삼아 현실의 의미를 묻는 작업이기 때문에 당대에 대한 이해와 인간 심리에 대한 탐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번역도 아닌 해석이라는 뜻이다.

흔히 칠실삼허七實三虛라 불리는 나관중의 <삼국지>는 삼국시대의 사실과 사료를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과 민간에 떠도는 민담을 당대의 소설 형식으로 형상화한 것이지만, 원말元末 명초明初에 완성된 나관중본의 배면을 강력히 지배하고 있는 것은 주자朱子의 성리학적 세계관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그런 묘사는 실재 인물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 의리와 대의명분이 선악의 기준이 되는 춘추사관春秋史觀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기 떄문이다.

<삼국지>를 일관하고 있는 춘추필법春秋筆法은 등장인물의 성격을 선인(淸流 - 유학을 배운 사대부)과 악인(濁流 - 환관과 외적)으로 정형화하고 이분법화 함으로써 인간 내면에서 모순되게 약동하는 욕망을 바로 읽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당대의 왕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세계관적 제약 때문에 소중하게 해석되어야 할 역사적 사건이 잘못 기술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실로 한나라 패망의 발화점이 되었다고 하는 황건농민군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기술하는 것이 그렇다. 당대의 유교적 세계관으로 보면 농민반란이 악의 축이었겠지만, 그것을 당대 민중의 개혁의지로 읽지 않는 한, <삼국지>는 물론 중국 전체의 역사이며 모택동의 공산혁명 역시 그 연장 선상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현대 중국사의 정설이기 때문이다.

춘추필법 또는 춘추사관이 황실 내부에서 작동할 때는 청류와 탁류로 나뉘지만, 그것이 중화주의로 발현될 때는 한족漢族이 청류가 되고 이민족이 탁류가 된다. 그 때문에 한족 출신이 아니었던 동탁과 여포는 실제의 능력과 선정에도 의리도 없고 예절도 모르는 야수로 묘사되었다.

이런 허물은 나관중 개인의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았던 시대의 한계라고 해야겠기에, 21세기에 쓰이는 새로운 <삼국지>가 오늘의 관점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그런 작업은, 자국의 문화유산이라는 압도적인 무게에 짓눌린 중국인이 하기보다 비중국인이 더 잘해낼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바로 그 '착각'을 떨쳐버려야 한다. 그럴 때 600년 이상 지속한 <삼국지>의 오류가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그런 해석을 통해 우리가 껴안은 통일이라는 절박한 과제와 중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21세기를 동시에 조감할 수 있을 것이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6
장정일 지음/범우사

삼국지의 영광
김문경 지음/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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