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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자유를 꿈꾸는 非자유인, 飛자유인 그대 이름은 비주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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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을 꿈꿨다.
자유라는 말이 생긴 그날부터 그 자유로 때문에 감옥이 생기고
이 땅은 하나의 거대한 사상의 감옥이 되었다.

비자유인을 꿈꿨다.
비자유인은 非자유인이며 飛자유인이다.

인간들은 자유로써 너무도 자주 기만을 당한다.
자유가 가장 숭고한 감정의 하나로 헤아려지는 것과 같이,
그에 상응하는 착각 역시 가장 숭고한 감정의 하나이다.

학술원의 피터도 붙잡혀 왔지만, 결코 자유를 원하지 않았다.
출구가 하나의 착각일 뿐이라 하더라도,
오른쪽, 왼쪽, 그 어디로든 다만 하나의 출구를 원한다.

장석주는 비주류가 자신의 본능이라 말한다.
비주류는 언제나 바깥이고 변두리고 非급이고 B급이고 삼류다.
소수자이다.

장석주는 삼류라 말하지만, 비주류는 삼류가 아니다.
B급이며 플랜B다.
플랜B는 지금의 대안이 아닌 내일의 대안이다.
비주류는 대안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이다.
비주류는 항상 역사의 주체이며 주류가 될 때
혁명이 된다.

혁명은 비주류가 힘의 근원이다.
그들이 주체다.

그래서 장석주는 비주류다.
나는 비자유인이다.



비주류는 내 본능이다.비주류는 언제나 바깥이고 변두리고 비(非, B)급이고 3류다.
비주류는 흑인, 여성, 비정규직, 외국인 이주노동자, 양심적 병역 거부자, 동성애자, 광인, 광대패, 게릴라, 이단, 인디밴드, 독립영화다.
소수자다.
한때는 예수, 석가모니, 노자, 장자, 허균, 연암 박지원, 이덕무, 오원 장승업, 스스로 눈을 찌른 화가 최북, 빈센트 반 고흐, 간디, 스콧 니어링, 체 게바라, 이중섭, 박수근, 권진규, 김수영, 김종삼, 천상병 등도 비주류였다.
비주류는 출세와 명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것들이니까.
비주류가 주류에 무단으로 끼어들면 틀림없이 까탈이 생기고 당장에 미운 털이 박힌다.
한때 나는 주류에 편입되었다고 착각한 적이 있다.
기사 딸린 차를 타고 정장을 입고 고급 사교 클럽에 드나들며 주류를 사칭했다.
그래서 혹독하게 당했다.
내가 잘못한 것이니, 누구를 원망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 뒤로 나는 그냥 비주류로 살기로 작정했다.
서울을 떠나 시골로 왔다.
서울이 돈과 권력과 문화가 집중화되는 주류의 영역이라면,
시골은 돈과 권력과 문화가 없는 비주류의 영역이다.
주류는 부루주아다. 기득권자다. 聖骨이다. 嫡子다.
비주류는 보헤미안이다. 마녀다. 무당이다. 서얼이다. 히피다. 떠돌이다. 실직자다. 무학력자다.
주류가 비단옷을 입는다면 비주류는 베옷을 입는다.
주류가 비단금침 속에서 잠을 잔다면 비주류는 무명 이불을 덮는다.
주류가 대궐을 짓는다면 비주류는 정자를 짓는다.
주류가 비싼 수입양주를 마신다면 비주류는 소주나 막걸리를 마신다.
비주류의 표지는 만성적 가계적자, 느림, 불편함, 누추함, 고집, 낙후, 저발전, 대안교육, 자연요법, 명상, 생태학, 유기농법 등이다.
내가 서울에 있을 때는 시비 거는 자들이 많았으나 자발적으로 시골에 오니 아무도 시비 걸지 않는다.
오히려 잘했다고 한다.
귀농이라는 그럴듯한 포장까지 해주며 칭찬했다.
그말은 서울에 다시 올 생각 말고 낙후된 시골에 엎드려 살라는 뜻이다.
그래서 기꺼이 엎드리겠다고 했다.
집 이름도 엎드려 사는 자의 집이란 뜻으로 '수졸재'라고 지었다.
그랬더니 주류는 비로소 나에 대한 경계와 의심을 풀고 안심했다.
비주류는 내 본능이다.
그러나 비주류라고 늘 고분고분한 것은 아니다.'
비주류도 목을 죄면 저항한다.
대게 목을 죄는 손들은 보이지 않는다.
가면 뒤에 숨은 얼굴들이다.
그 실체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거대자본과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거대언론과 기득권을 연연세세 가지려는 권력이다.
숨통이 끊어져라 목을 죄는데도 가만히 있는 건 벌레다.
비주류는 벌레가 아니다.
비주류가 저항할 때는 치열해지는데 그것은 목숨을 걸기 때문이다.
목을 죄는 손에 전갈의 독을 쏜다.
독을 쏘고 전갈은 죽음을 맞이한다.
세상을 바꾸는 건 주류가 아니다. 자기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비주류가 세상을 바꾼다.
주류는 세상이 바뀔까 봐 두려워한다. 세상이 바뀔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위기라고 떠든다.
비주류가 세상을 바꾸었다고 비주류가 세상의 중심이 되지는 않는다.
비주류는 세상의 바깥으로, 변두리로 나간다.
비주류가 중심에 있으면 혼란과 불안만 커진다.
비주류는 바깥에 있을 때만 비주류다.
비주류는 세상의 부패를 막는 소금이다.
비주류는 혁명의 동력이 나오는 근원이다.
비주류 본능은 내 힘, 내 경쟁력이다.
나는 당당한 비주류다.


비주류 본능
장석주 지음/영림카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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