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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향기로운 시와 소설

외줄 위에선 희망도 때론 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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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줄 위에서
- 복효근

허공이다
밤에서 밤으로 이어진 외줄 위에 내가 있다
두 겹 세 겹 탈바가지를 둘러쓰고
새처럼 두 팔을 벌려보지만
함부로 비상을 꿈꾸지 않는다
이 외줄 위에선
비상은 추락과 다르지 않다
휘청이며 짚어가는 세상
늘 균형이 문제였다
사랑하기보다 돌아서기가 더 어려웠다
돌아선다는 것,
내가 네게서, 내가 내게서 돌아설 때
아니다, 돌아선 다음이 더 어려웠다
돌아선 다음은 뒤돌아보지 말기 그리움이 늘 나를 실족케 했거늘
그렇다고 너무 멀리 보아서도 안되리라
줄 밖은 허공이니 의지할 것도 줄밖엔 없다
외줄 위에선 희망도 때론 독이 된다
오늘도 나는
아슬한 대목마다 노랫가락을 뽑으며
부채를 펼쳐들지만 그것은 위장을 위한 소품이다
추락할 듯한 몸짓도 보이기에는 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외길에서는
무엇보다 해찰이 가장 무서워서
나는 나의 객관 혹은 관객이어야 한다



언젠가 노트에 복효근 시인의 이 시를 적어 놓았다.

'내가 내게서 돌아설 때' 내가 나를 버리고 싶을 때 시인은 '돌아선 다음이 더 어려웠다'고 한다. '뒤돌아보지 말기'를 권하지만 그 그리움이 날 돌아보게 만들었다.

돌아서 가는 나는 외줄을 타고 있다. '줄 밖은 허공'이다.
'외줄 위에선 희망도 떄론 독이다'. 절망과 파란 창공만이 유일한 벗이다.

'오늘도 나는' 맘에 없는 '노랫가락을 뽑으며 / 부채를 펼쳐들지만 그것은 위장을 위한 소품이다'.
외줄 위에서 나의 몸부림조차 춤으로 바라본다. 나는 춤사위로 위장한다. 작은 손짓 하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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