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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밥 먹여주는 경제경영

문화로 먹고살기 갈 길이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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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읽었던 책에서 '문화경제학'에 관한 내용을 읽고 좀 더 자세히 알아 보기위해 작년(2011)에 나온 우석훈의 <문화로 먹고살기>를 도서관에 예약했다. 읽기 전 예전 '이 주에 나온 신간'에 소개한 글도 읽었다. 당시에도 내가 쓴 글이 있다.

이 책을 알라딘에서 보고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먹고 살기'라는 제목이 주는 임펙트 때문이었다. 우석훈의 책을 한번도 읽지 않아 (많이 팔렸다고 하는 88만원세대도...) 내용을 단정할 수 없다. 그의 책을 한번은 읽어보려고 했다. 한데 변정수 선생의 글을 읽고나니 이 책은 꼭 읽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권하기가 어렵다는 말에 더 흥미가 당긴다.

이정전 서울대 교수의 <시장은 정의로운가>를 읽고 있었다. 예약한 책을 찾아와 읽었는데 이정전 교수를 언급되는 부분이 있었다. 문화경제학 때문에 우석훈의 책을 읽었고 또 거기서 읽고 있던 이정전 교수가 언급되다니. 세상은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서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제 책으로 돌아와서, 우석훈은 문화로 '먹고살기'를 방송, 텍스트(출판), 영화, 음악 그리고 스포츠 다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말하고 있다. 전부를 다 언급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관심 가는 몇 가지에 대해서 살펴보자.



텍스트는 문화의 기본

출판은 21조 원 시장이다. 하지만 21조에는 신문, 잡지 그리고 유통업이 전부 합쳐져있는 규모이다. 여기에 이것 저것을 빼고나면 우리가 말하는 문학을 주축으로 하는 책 시장은 1조 원 미만의 규모이다. 롯데 본점 매출이 1조 원을 상회하고 있다. 이를 보면 큰 규모가 아니다. 아니 작은 규모이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규모의 한정으로 태생적으로 작은 시장이다.

우석훈은 "장르별, 세대별 배려를 해서 전업작가가 지금보다 서너 배는 많은 사회를 만들어보자"고 한다. 우석훈의 말처럼 지금보다 서너 배 늘어나면 '텍스트로 먹고 살기'가 가능할까? 이유없는 낙관주의다.책에서 이런저런 문제를 말하지만 어떻게 하자는 것은 없다. 우석훈의 텍스트는 딱 거기까지만이다.

전업작가로 살아가는 글쟁이가 얼마나 될까? 출석부를 부르지 않아 정확한 인원 수는 없지만 후하게 잡아도 100명을 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수 많은 작가 지망생을 제치고 내가 그 백 명에 들어가면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하지 않다.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은 작가만을 위한 산업이 아니라 그것으로 출판하고 유통하는 출판사도 있다. 초보 작가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곳이 (후하게 말해서) 그리 많지 않다. 글을 써서 먹고 산다는 것은 향후 10년, 아니면 20년은 준비해야 할 기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것을 감수할 수 있다면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문화산업에 뛰어들어라.

앞서서 잠시 언급한 시장의 편협함에 대해서 다른 대안은 없는 걸까? 한글 문화권이 꼭 한반도에 국한 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한류를 말하는 것은 너무 앞서가는 이야기다. 한반도에 한글을 인지하는 사람들이 모여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영향권이 미치는 곳은 한반도의 절반이다. 하지만 압록강 너머 조선족이 사는 곳이 있다. 또한 고려인이 사는 곳도 있으며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도 있다. 그들을 아우를수 있는 문학작품, 사회과학 책이 나온다면 협소한 시장만 탓하지 않고도 자생할 수 있지않을까. 그것의 선행은 좋은 작가가 있어야 한다. 그 작가가를 키우는 곳은 출판시장인데 그것에 인색하여 번역물만이 판치고 있다. 그러니 매년 단군이래 출판시장은 매년 불황의 연속이다.

영화의 찬란한 유혹

우석훈의 영화에 관한 이야기는 구구절절 옳다. 스크린쿼터 문제, 스태프의 생계문제 등등 모두 옳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되는데라고 묻고, 그것을 알고 싶다. 또 학교 수업에 적응하지 못하는 '뒤에서 5등'에게 영화를 가르쳐 주자, "우리의 미래를 위해 새싹들이 다큐로 들어가는 문을 활짝 열어주자"고 한다. 생계에 대한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항을 말하면서 그들에게 그쪽으로 들어가라고 하는 것은 무슨뜻인지....

우석훈은 충무로에서 일하는 법에서 "희망컨데 다른데라면 몰라도 충무로만은 고졸들에게 활짝 열려 있기를     바란다. 또 청년들이 이런 분위기(학맥보다 사무실 또는 감독의 인맥에 따라 움직이는)에 잘 적응하면서 더 합리적인 방식을 조금씩 구상하고 실현해나가는 유연함을 발휘하기를 바란다" 했다. 잘 적응하고 있다보면 기회가 올 것이고 그 기회를 잘 잡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기회를 잘 잡아 잘 하기를 바란다. 이런 뜻인지 잘 모르겠다.

화려해 보이지만 화려함의 이면에는 가나과 아픔들이 한국 사회 곳곳에 배어 있다. 그런 문제들을 하나씩 풀면서,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당당하게 서택할 수 있고, 또 그 선택이 비참한 경제적 고통으로 귀결되지 않는 경제,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고, 그 수단 중의 하나가 문화경제일 것이다.

우석훈의 다른 책을 읽어 보지 않아 그의 생각을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다만 이첵에서 복지부분에서 그는 보편적 복지정책을 곳곳에서 말하고 있다. 보편적 복지가 이루어지면 그가 말하는 문화경제학은 삶의 질을 높이는데 꼭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그 보편적 복지정책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한 언급은 없다. 물론 이 책이 그러한 부분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인지한다. 그래서 이 책이 가지는 한계 정체성의 모호함을 느낀다.

보편적 복지는 복지정책을 말하는 진보를 표방하는 자유주의적 정당에서 복지정책을 추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님은 저자가 더 잘 알 것이다. 계급에 기반을 둔 좌파정당의 부산물이라는 것을...

하지만 문화로 먹고 사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 방법은 저자에게 바라기 보다는 그것을 바라는 우리가 이뤄 나가야 한다.

덧_
공지영·박경철 꿈꾸는 20대 찌질이들, 꿈 깨시지!

덧_둘
어느 이가 댓글에 우석훈에 대해 쓴 것이다. 공감한다.

우석훈은 현 상황을 분석하는데는 탁월한 능력을 보이지만 해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은 없다.

분석 능력도 없는 이가 많은데 그것이라도 탁월하면 다행아닌가.


문화로 먹고살기
우석훈 지음, 김태권 그림/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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