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뭐 할 거니?", "이 담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우리가 일상적으로 아이들에게 물어보는 말이다. 별다른 생각 없이 아이를 보면서 무심코 던지는 말이다. 질문에 우리 아이는 자기 나름대로 주말에 뭘 하고 싶은지,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말한다.
자동차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대담을 들었다. 세이브더칠드런에 (이름은 모르지만) 근무하는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듣지 못해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 아프리카 어느 어촌 마을에 가서 학교도 세우고 봉사를 가서 겪은 일화다. 내용은 이렇다.
(아프리카에) 세운 학교에서 아이를 모아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한국어나 영어로 말하면 불어로 통역하고 다시 원주민 말로 통역 절차를 거쳐야 하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이에게 "너희 주말에 뭐할 거니?"라 물었다. 아이는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주말에 뭐할 거냐는 말에 답을 안 하다니.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그 아이에게 주말이란 없었다. 요일이란 2012년 서울에서만 존재하는 것이고 아프리카 작은 어촌에는 주말이란 없다. 그저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만 있다. "이 담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라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미래에 직업을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어촌마을에는 직업이 어부 단 하나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미래 직업을 물어본 자기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질문에 답변을 못하고 눈만 멀뚱멀뚱 바라보았을 아이의 눈망울이 떠올랐다. 무슨 말이야, 주말이 뭐야. 이렇게 생각했을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신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하고 재단한다. 상대의 입장이나 환경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어촌 마을의 아이에게는 주말이나 미래의 직업에 대한 것은 고려사항이 아니다. 단지 오늘을 넘기고 잠을 자고 일어나면 또 오늘이 있을 뿐이다. 그런 그들에게 주말을 묻는 것은 한 발 빠져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꼭 아프리카 아이에게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아이도 그들의 상황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단지 부모의 처지에서 재단하려 한다. 한 발 빠져 볼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생각해야 한다.
보고 듣고 느낀 한마디 _ 2012.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