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다음은 누가 될까? 답이 뭐라고 아무도 말할 수 없다. 다만 정답에 가까운 서비스는 핀터레스트이다. 이 핀터레스트의 특징은 유저 활동의 중심이 콘텐츠의 생산이 아니라 수집에 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변환점이다. 블로그가 콘텐츠 생산의 장벽을 낮추었다. 이제는 생산에 대한 피로감이 넘치는 정보의 수집으로 관심이 넘어가고 있다. 모두가 프로그래머가 되어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없듯이 모두가 콘텐츠를 생산할 필요도 그럴 수도 없다.
이제 만드는 사람, 찾아내는 사람, 그 둘의 관계가 새롭게 부각되었다. 만드는 사람이 없으면 물론 찾아내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찾아내는 사람이 없으면 만드는 사람도 결코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을 본다거나 즐긴다고 할 때, 그 안에는 언제나 '만들다'와 '찾아내다' 라는 두 가지의 행위가 들어 있다. 하지만 '찾아내다'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앞으로의 세계에서는 만드는 사람과 찾아내는 사람이 서로 인정해 가면서 새로운 작품, 새로운 분야를 함께 창조해 가는 공동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질 것이다. 만드는 것은 어렵다. 그렇다고 찾아내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찾아 정리한 것 중에서 다시 찾고자 한다. 큐레이션이 필요한 이유이다.
많은 미술 작품을 모두 전시할 수 없다. 큐레이터의 취향이나 고객에 취향에 맞추어 (이것도 큐레이터가 선정한 것이다) 선정한 작품을 보고 있다. 큐레이션이다. 이것을 인터넷 서비스에 접목하여 말하고 있다. 일시적 유행일까? 아니면 흐름일까? 하지만 영원한 트랜드는 없다.
정보를 원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디에 존재하는가?
그곳에 어떻게 정보를 전달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정보로 감명을 줄 수 있을까?
광고나 미디어업계에서는 소셜 미디어의 대두에 대한 이런저런 전략을 매일같이 말하고 있다. "이제부터 블로그다!" 라며 블로거 이벤트를 열심히 하다가, "이번에는 트위터다!" 라며 트위터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그리고 페이스북이 본격적으로 확산되자 "트위터는 이미 낡았다. 이제부터는 페이스북이다!" 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소셜 미디어를 축으로 하는 정보의 흐름이 어떠한 모습을 만들어 갈지를 그리는 비전이다. 그런 비전을 제대로 인식하고 프레임워크 속에서 중장기적 전략을 가져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큐레이션이 흐름이지만 내일도 유효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언제나 임의로 생겼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 생겨났다. 흐르는 물에 떠오르는 물거품처럼 ...
덧_
처음 제목을 보고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제목에 미치지 못하는 책이다. "콘텐츠의 생산이 아니라 수집에 있다"는 중요한 점이 이 책에서 가장 잘 보고 싶은 부분이다.
큐레이션의 시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