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문학상이 얼마나 될까? 수백 개가 넘는다고 한다. 수많은 문학상 중 하나인 동인문학상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은 조선일보의 주관이지만 처음 제정될 당시는 의문사로 세간에 오르내리는 장준하의 잡지 사상계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인 김동인을 내세운 문학상을 만들었을까. 이를 보면 친일행위에 관한 인식이 부족했음을 보여준다.
동인문학상은 김동인의 삶처럼 파란만장하다. 사상계에서 시행하다가 십몇 년을 건너뛰고 동서문화사를 거쳐 조선일보에서 지금까지 시행하고 있다. 자칭 "국내 최고의 권위와 역사를 자랑하는" 문학상의 주인공 김동인은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문학적 업적이 아무리 크다 해도 그의 친일행위를 덮을 수 없다. 조선일보의 동인문학상 소개 중 일부이다.
국내 최고의 권위와 역사를 자랑하는 동인문학상은 한국 현대문학의 개척자인 금동 김동인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55년 사상계사가 제정한 동인문학상은 1년동안 국내 주요 문예지에 발표된 중.단편 소설중 우수 작품을 매년 1편씩 선정하고 있다.
1956년 제 1회 수장자 김성한을 비롯, 1996년 제28회 신경숙까지 30명에 이르는 우리 문단의 중추적 작가들을 배출한 동인문학상의 역사는 바로 한국 현대 소설의 계보사이기도 하다. 이 상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주요 세태를 고스란히 담거나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등 작가의 독특한 작품경향과 더불어 우리의 세태와 정신 세계의 정수를 담은 작품들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동인 문학상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몇번의 시상 중단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1967년 "사상계"의 간행이 중지됨에 따라 1968년 제 12회 시상을 끝으로 동인문학상도 중단되었다. 그 이후 12년간이란 긴 공백기간을 거쳐, 지난 1979년 동서문화사가 부활시켰지만 1986년 또 한 차례 중단 1987년부터 조선일보사에서 운영해 오고 있다.
_동인문학상 소개 中, 조선일보사 동인문학상 운영위원회
소설이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중학교 시절 현진건과 김동인의 단편에서 시작되었다고 기억한다. 아직도 기억나는 작품은 <감자>, <배따라기>, <광염 소나타>, <붉은 산> 등이 있다. 근대 소설이 정립되지 않았던 당시 이광수의 계몽주의와 달리 순문학과 예술지상주의를 내세웠다.
엄청난 부자였던 김동인은 가사를 탕진하고 정신적, 가정적으로 모두 피폐해진다. 소설도 초기 내세운 예술지상주의를 벗어나 그가 그토록 경멸했던 신문연재소설도 쓴다. 이런저런 사연으로도 그의 친일행각을 정당화할 수 없다. 다음은 《친일파 99인 - 3》(돌베개, 1993)에 실려있는 김동인의 친일행적이다.
김동인은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자진해서 일제에 협력하고자 총독부를 찾아갔다. 1939년 여름 박영희*, 임학수와 더불어 '성전종군작가'라고 쓴 '다스케'(어깨띠)를 두르고 경성역을 떠나 북지(임둔지방)로 황군위문길에 나선다. 그 때 김동인은 조선일보에 새로 연재하고 있던 장편소설 《정열도 병인가》를 중단까지 하면서 떠났다. 김동인은 그 때 당시 마약 중독 때문에 건강이 말이 아니었다. 사고력도 좋은 편이 못되어서 연재하는 소설의 스토리도 횡설수설했다.
더구나 한 해 전인 1938년 봄에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로 옥살이까지 하였다. 어느 날 오후 검은 양산대 같은 긴 지팡이를 끌고 삼천리사에 들러서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의미없이 내뱉은 한 마디로 그 곳에 있던 정보계통 사람에게 들켜서 일본 '천황 모독죄'로 얼마 동안 일본 헌병대에 끌려간 적도 있었다. 백철*은 이를 두고 김동인 자신으로선 그런 허물도 벗을 겸 종군을 지원하고 나섰는지 모른다고 했지만, 어쨌든 자진해서 총독부를 찾아가 친일하겠다고 자청한 오욕의 흔적을 남기고 말았다. 이후 김동인은 친일문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무엇보다 북지를 다녀온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이 <작품과 제재문제>(매일신보, 1941.3.23∼29)이다.
그 외에도 매일신보에 <태평양송>(1942. 1. 6), <감격과 긴장>(1942. 1. 13), <쾌전하 문단인의 결의-총동원태세로>(1944. 1. 1∼4), <반도민중의 황민화-징병제실시수감>(1944. 1. 16∼28), <일장기 물결>(1944. 1. 20), <문화인의 총궐기>(1944. 12. 10), <전시생활수감>(1945. 3. 8) 등의 글을 실어 '내선일체'와 '성전聖戰'을 기렸으며, <백마강>(1941), <성암(聖岩)의 길>(1944) 등의 작품을 통해 친일문학을 직접 빚어내기도 하였다. 특히 <성암의 길>은 국수주의자, 천황지지자인 일본인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소설이다.
조선일보가 김동인 아들의 소송 관련 패소를 보도한 기사이다. 조선일보에 이런 부적격자를 내세운 동인문학상을 폐지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들에게 친일이나 반민족행위는 시대 여건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 자체가 친일변절 신문이니 동인문학상을 운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역사적 귀결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오석준)는 26일 소설가 김동인(1900~1951)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한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김동인씨 아들이 행정안전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1944년 매일신보에 10차례 연재한 글인 ‘반도민중의 황민화’ 등은 중일전쟁 이후 시대상황 변화를 고려한다 해도 징병·징용을 전국적 차원에서 선전·선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같은 신문에 1941년~1942년 연재한 장편소설 ‘백마강’의 창작의도 역시 우리나라와 일본이 역사적으로 한 나라나 다름없다는 것을 그리려 했다”며 “문학작품은 독자적 미적 가치를 가지므로 정치적 가치판단 대상으로 삼는 것이 적절치 않지만, 창작 배경에 정치적 요인이 뚜렷한 경우 예외적으로 가치판단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작년 7월 김씨를 친일 행위자로 결정하자 김씨 아들은 ”문학작품 창작의 특성상 문장으로 표현된 내용과 의도가 배치될 수 있으며, 아버지가 남긴 글 중 일제 동조한 부분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미미하다“며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_조선일보 2010.11.27
동인문학상을 계속할 이유가 있을까. 이놈의 나라는 친일 · 반민족에 관해서는 관대할까.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내세운 문학상이 여전히 존재하고 "국내 최고의 권위와 역사를 자랑"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 있다. 조선일보가 망하지 않는 한 동인문학상은 계속될 것이니 믿을 것은 의식 있는 문인뿐이다. 문인이 먼저 수상거부를 선언해야 한다. 잘못된 역사는 단칼에 잘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