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의 《사람과 책》이 100호를 넘어 101호를 간행했다. 늘 이 책을 찾아 읽고 있다. 제호처럼 사람과 책이 있는 잡지이기 때문이다. 11월 101호의 특집은 "이 시대 교양인敎養人"이다. "이 시대 교양이라는 화두를 독서와 연계시켜 새롭게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과연 이 시대, 교양의 의미는 무엇이고, 교양인으로서 우리는 어떤 책을 보는 좋을지" 알아보는 게 이 특집의 의미다.
교양은 책을 두루 읽고 살펴서 인간 정신과 인류 문명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고, 그런 깊은 앎을 배경으로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교양은 책읽기가 기르는 미덕이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지식인으로서의 길과 교양인으로서의 길은 다르다. 대부분 교양인은 지식인이지만, 모든 지식인이 다 교양인인 것은 아니다. 교양인이라면 박경리의 《토지》를 통독하고, 고은의 《만인보》 정도는 꿰고 있어야 한다.
장석주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하자면 이 땅에 교양인은 거의 없다. 《토지》와 《만인보》의 제목과 저자는 알지만 통독하거나 꿰고 있는 독자가 이 땅에 얼마나 될까? 그저 좋은 책이라는 말에 이 정도(?)는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인지. 언뜻 보기에는 장석주의 말은 맞는 것 같지만, 궤변이다. 장석주는 "교양인은 인문학에 대한 소양뿐만 아니라 예술의 아름다움에도 넋이 떨릴 수 있는 정서를 가진 사람"이다. 아마도 교양인의 소양을 갖추기란 아득히 멀다.
차라리 "교양인이라면 자신의 육체를 위해 좋은 음식을 가릴 줄 알고 영혼을 위해 좋은 책을 고를 줄 아는 사람"이라는 구본형의 말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 더불어 "책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다. 나의 체험이 그들의 경험에 두 개의 물결처럼 합해져 증폭되도록 읽어야 한다"고 했으며 김홍신은 "독서는 인간을 향기나게 하는 가장 친절한 안내자이자 영혼의 보물창고를 가득 채워주는 천사"라고 한다.
"지혜로운 사람이 책을 많이 읽고 사색하는 게 아니라 책을 많이 읽고 사색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교양인이 되는" 거라는 김홍신의 충고가 고맙다. 김홍신은 "교양인이란 '삶의 태도'로 확연히 구별된다. 교양인으로 가득 찬 사회가 '건강한 사회'의 절대적 요소라는 것을 사회구성원 모두 인식할 때 우리는 살맛 나는 세상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이래서 교양인이 필요하다.
교양 _두산백과
인간의 정신능력을 일정한 문화이상(文化理想)에 입각, 개발하여 원만한 인격을 배양해 가는 노력과 그 성과.
교양을 뜻하는 영어 'culture'의 원뜻은 '경작(耕作)'이고, 독일어의 'Bildung'은 '형성'이라는 뜻임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여기에는 인간정신을 개발하여 풍부한 것으로 만들고 완전한 인격을 형성해 간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시대마다 일정한 문화이념에 입각해서 이루어지므로 교양의 내용은 시대 또는 민족에 따라 달라지는데, 적어도 유럽문화권에 있어서는 이제까지 그리스·로마적인 교양의 이념이 일관하여 계승되었다. 고전 그리스에서의 '파이디아(paideia:교육)' 이념이 헬레니즘을 거쳐 그리스도교 세계로 계승되어 '그리스도교'라는 새로운 교양이 확립되었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근대 유럽에서의 교양은 로마시대에 형성된 후마니타스(humanitas:인간성)의 이상을 다시 일으키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술의 우위가 결정적인 현대에서는 이것과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교양이 요구되기 시작하고 있다.
보고 듣고 느낀 한마디
_2012.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