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行間/새로 나온 책

2012년 11월 3주 새로 나온 책

반응형

이 책은 지난해 출간 이후 미국에서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됐다. 저자 코리 로빈이 분석한 보수주의가 기존 학설이나 일반적 관점과 달랐기 때문이다. 홉스와 하이에크를 같은 테이블에 놓고 보수주의와 반동주의, 반혁명주의를 한 범주에 놓은 분석틀이 논쟁의 이유였다. 한 예로 18세기 정치인 에드먼드 버크의 보수주의가 2008년 미 대선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나왔던 세라 페일린의 급진 대중주의적 보수주의에 닿아 있다는 주장이 논쟁을 촉발했다. 원제는 '반동의 정신(Reactionary Mind)'. 로빈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보수주의 이념은 반동적이지만, 그 이념의 자주성이나 힘을 대수롭지 않게 본 게 아닌데도 보수주의자들이 '정신 나간 반동(Mindless Reactionary)'으로 잘못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로빈의 “보수주의자들은 예외 없이 반동과 반혁명에 투신했다”는 주장은 쟁점이 

로빈은 18세기의 버크에서 21세기의 네오콘까지 3세기에 걸친 보수주의를 개관한다. 조소나 당위론이 아니라 진지하게 반동의 속성을 지닌 보수주의의 기원과 현재를 분석한다. 보수주의는 프랑스혁명에 대응하면서 생긴 반혁명의 반동적 이념이다. 로빈이 보기엔 자유방임론자이건, 파시스트이건, 전통주의자들은 모두 반동적 충동을 가슴 속에 품고 있다. 그 충동이 그 세력들을 단합시켰다.

보수주의에 대한 일반적 관점이나 생각을 봐야 할 것 같다. 작은 정부와 자유에 대한 신념, 또는 변화에 대한 신중함, 점진적 개혁이나 덕의 정치에 대한 믿음? 로빈은 이런 것들은 단지 보수주의 부산물이며 수시로 변할 수 있는 양태 중 하나일 뿐이라고 여긴다. 더 근본적인 보수주의 뜻은?

로빈은 이렇게 정의한다. "보수주의는 바로 사람들이 상급자들의 속박에서 해방되는 것, 특히 사적 영역에서 자유를 얻는 것에 대한 반대다." 프랑스혁명의 바스티유 감옥 습격도 사적인 뇌관으로 격발된 것이다. 그것은 가정, 공장, 현장에서의 권리와 지위에 대한 다툼이었다. 로빈은 "해방의 진정한 주제는 사적 영역에서 권력의 향배"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버크는 프랑스혁명을 큰 위협으로 봤다. 명령과 복종의 의무 관계가 역전되는 것이 문제였다. 버크가 대중에게 절대로 양보할 수 없던 것은 "권력, 권위, 지도력을 나누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대중은 "국가를 관리하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1919년 미국 시애틀 총파업 때 나타났다. 노동자들은 법과 질서 유지를 포함한 기초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했다. 시애틀 시장을 비롯한 보수주의자들은 폭력과 무정부 상태를 억제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능력이야말로 큰 위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로빈은 프랑스혁명, 노예해방, 여성해방과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 운동 같은 투쟁이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권력 배치의 변경이라고 규정한다. 보수주의는 "밑으로부터의 민주주의적 도전에 대응해 자신의 원칙을 재조정"하며 반동의 원칙과 입장을 세워나갔다. 특권의 조그만 일부를 나눠주고, 대중이 정치무대에 등장하는 것을 점진적으로 인정했다. 가족, 공장, 현장에서 유사 귀족으로 편입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통념과 달리 보수주의자들은 구체제에 대해서도 신랄했다. 프랑스혁명에 반대한 정치학자 메스트르도 구체제의 세 기둥인 귀족제, 교회, 군주제를 비판했다. 버크는 혁명을 경탄했다. 시민들이 마리 앙트와네트를 침실에서 끌어내 그녀와 가족을 앞세워 파리로 행진한 일이 일종의 장엄함을 성취한 것이라고 봤다. 보수주의자들은 때로 좌파의 전략, 혁명이나 개혁의 이념과 전술을 흡수했다.

이 모든 비판과 경탄, 수용은 우파를 재건하기 위한 시도였다. 이 시도는 현대에서 우익 대중주의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로빈은 우익 대중주의 역할을 "수많은 군중을 모아 위세를 과시하면서도, 권력이 진정 공유되거나 분배되지는 않도록 단속하는 것"이라고 했다. 로빈은 이런 말도 했다. "평민인 척 하는 것은 보수주의자들의 무기고에 소장된 최고의 무기다."

책 1부에서 반동적 이념의 여러 갈래와 흐름을 살핀 로빈은 2부에서 우파의 폭력 과잉 문제를 들여다본다. 로빈은 보수주의의 폭력이 "결코 일탈적인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보수주의) 전통 그 자체의 구성요소"라고 말한다. 예컨대, 로널드 레이건은 1982년 12월 과테말라 대통령이자 민간학살로 악명이 높았던 리오스 몬트를 만난 뒤 “대단한 인격자”라고 평가했다. 보수주의자들은 전쟁을 증오한다고 주장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은 폭력 때문에 슬퍼하거나 부담스러워하거나 괴로움을 겪기는커녕 그것에 의해 활력을 얻어왔다"고 로빈은 말한다. "지배가 장엄할 수 있다. 그렇지만 폭력은 더욱 장엄하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좌파의 거대한 사회운동을 물리치기 위해 20세기에 등장한 현대 보수주의의 향배는 어떨까. 로빈은 하이에크의 "(자유시장의 방어는) 그것이 가장 번성할 때 정체된다"는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전망한다. "가시권 내에서 보수주의는 이미 그 목표를 달성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그것은 퇴장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그렇게 할지, 퇴장하는 길에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왜?
코리 로빈 지음, 천태화 옮김/모요사

보수주의자들의 진짜 마음 들여다보기
대중에게 권력을 나눠주지 않으려 했던 보수주의의 맨얼굴
프랑스혁명서 현재까지 보수주의 역사적 해부
보수주의 형성 과정·사례·문제점 살펴

+

지난 끼니에 무엇을 먹었는지 떠올려보자. 고슬고슬한 쌀밥과 구수한 된장찌개, 보기 좋게 담긴 초밥, 상큼한 드레싱을 얹은 샐러드…. 대체로 그 음식의 맛, 향, 모양이 생각날 것이다. 그런데 그 음식을 무엇으로 만들었는지까지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음식의 재료로 쓰인 쌀, 두부, 참치, 올리브는 누가 어떻게 수확하고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식탁 위에 오른 걸까.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거나 바다에 나가 직접 물고기를 잡아오지 않은 이상, 그 재료가 식탁에 오르는 과정에는 세계인의 손이 탄다. 나라 사이의 운송 수단이 발달하고 무역 장벽이 낮아진 현대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노르웨이 어부가 잡아올린 고등어, 케냐 소년이 딴 커피콩, 미국 캘리포니아 농부가 기른 오렌지가 한국에 있는 우리의 입으로 들어온다. 그러므로 먹는다는 것에는 전 지구적인 정치·경제·문화의 과정이 개입된다.

농경학자 에번 D G 프레이저와 저널리스트 앤드루 리마스는 음식이라는 키워드로 세계 문명의 흥망성쇠를 재구성한다. 사회가 급변하고 인간의 삶이 영향받은 큰 사건의 배경에는 음식이 직간접적으로 엮여있었다는 것이 이들의 논지다.

수렵·채집을 위해 이동하며 살아가던 인류는 곡식을 기르면서 정주하기 시작했다. 인류 최초의 농부가 심을 종자를 고른 기준은 자연 재해에 대한 방어력이 아니라 알곡의 크기였다. 가능하면 많은 낟알을 맺어 많은 사람에게 먹일 식량을 생산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곡을 많이, 크게 여는 곡식에는 그만큼 많은 물이 필요했다. 곡식에 물을 대기 위해선 관개수로가, 관개수로를 파기 위해선 혹독한 노동을 견디는 수많은 일꾼이 있어야 했다. 전제 정치, 그리고 국가의 탄생이다.

그러나 농업 혁명에는 부작용이 있었다. 신선한 야채와 고기 대신 미적지근한 곡물 죽을 먹기 시작하면서 인류의 건강은 오히려 나빠졌다. 곡물에는 필수아미노산, 철분, 단백질 등이 부족해졌고, 아이들의 발육도 저해됐다. 노동 시간도 길어졌다. 수렵·채집인이 한 주 평균 20시간 일했던 반면, 농경인은 40~60시간 일했다. 결정적인 문제는 전쟁이었다. 들소를 잡으러 다니면서 전쟁을 할 수는 없지만, 잉여 곡물은 군량이 됐다. 수렵·채집인들은 다른 부족과의 싸움이 붙을라치면 그저 다른 곳으로 옮겨갔지만, 농경인들은 애써 일군 논밭을 버려두고 떠날 수 없었다. 전제국가의 조직화된 농부들은 영토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었다.

농업은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 지구가 인간의 농업으로 인해 변화하고 있었다. 농부들은 곡물을 기르기 위해 숲을 베고 동물을 몰아냈다. 논밭이 된 땅의 성질도 달라졌다. 식물이 자라기 위해선 17가지 원소가 필요한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질소다. 문제는 흙 속의 질소 양이 한정돼 있다는 사실이다. 곡물을 기를수록 질소의 양은 줄어들었고, 해가 거듭될수록 같은 농지에서 나는 수확량도 감소했다. 지력이 떨어진 것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부족해진 질소를 보충하는 대신 다른 농지를 찾아나섰다. 로마 제국의 확장이다.

로마 제국의 몰락도 식량난과 함께 찾아왔다. 로마 문명의 번성기는 기상학에서 부르는 ‘로마 온난기’와 일치한다. 기원전 250년~기원후 400년을 일컫는 이 시기는 지구가 몹시 따뜻하고 적당한 비가 내린 기간이었다. 작물은 죽죽 자랐다. 그러나 로마 온난기가 끝나자 제국 영토에서 올라오는 세금이 줄어들었고, 이에 따라 군대, 도로, 교역이 모두 망가졌다. 410년 서고트족 군대가 로마에 도착했을 때, 로마 시민에게 돌아간 밀 배급량은 예년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로마는 이민족의 무력이 아니라 부족한 빵 때문에 무너졌다.

스페인, 포르투갈이 시작해 영국, 프랑스가 패권을 이어받은 근대 유럽 제국주의 융성기의 주요 교역품도 식품이었다. 영국인의 오후 시간을 즐겁게 해주는 차 때문에 죽어나간 사람이 19세기에만 4000만명이었다. 1662년 영국의 왕 찰스 2세에게 시집온 포르투갈 캐서린 공주는 영국 왕실에 차문화를 전파했다. 당시 영국에 물 이외에 마실 것이라고는 맥주, 브랜디, 커피밖에 없었다. 캐서린은 남편이 애인들과 놀아나는 동안 홍차를 우리며 시간을 보냈고, 차문화는 즉시 영국 귀족 사이에 전파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귀족들의 차문화는 서민들에게까지 퍼졌다. 18세기엔 잉글랜드 전역에서 차를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런데 차는 전량 중국에서 수입해야 했다. 영국은 중국과의 무역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식민지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중국 민중에게 팔아넘겼다. 중국이 영국의 아편 밀매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하자, 영국은 전함으로 맞섰다.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제국주의 식민지에 세워진 플랜테이션 농장에서는 본국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한 가지 작물만이 집중적으로 재배됐다. 지금은 스리랑카가 된 실론섬에 도착한 영국인들은 원시림을 깎아내고 커피 나무를 심었다. 커피 가격이 하락하자 이번에는 커피 나무를 베어내고 차 나무를 심었다. 영국은 찻잎 채취를 위해 인도에서 떠도는 타밀인을 데려와 투입했다. 그런데 영국 시장에 원활히 홍차를 공급하던 실론에 1876년부터 3년간 극심한 가뭄이 닥쳤다. 때마침 경기 침체 때문에 차값까지 폭락했다. 타밀 사람들은 남아도는 찻잎을 먹을 수도, 고향에 돌아갈 수도 없었다. 수만명이 굶어죽었다.

플랜테이션 농장이 아니더라도, 한 가지 작물을 심는 데에는 여러 가지 위험이 따른다. 지력이 급속히 떨어지는 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다. 아일랜드는 원래 목초지에 수많은 가축이 뛰놀던 곳이었다. 아일랜드 지주들은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던 18세기 영국에 암소, 양털을 팔고자 했고, 그래서 경작지를 목초지로 바꾸었다. 아일랜드 농부들은 17세기 초반 스페인에서 들여온 감자를 심어 연명했다. 아일랜드 토양에서 잘 자랐던 감자는 다른 곡물에 비해 2배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었다. 1840년대 아일랜드 인구 800만명 중 300만명이 감자만 먹고살았다. 1845년 9월 감자역병이 발생하자 감자 농사는 완전히 망했다. 100만명이 굶어죽었고, 100만명이 기근을 피해 고향을 등지고 해외로 떠났다.

식품을 공산품처럼 생산하는 미국도 문제다. 온화한 날씨, 비옥한 토양을 가진 미국 캘리포니아는 미국산 과일과 견과류, 채소의 약 50%를 생산한다. ‘현대 농업의 표본’이자 ‘야채 및 과일 발전소’가 된 이곳의 농부들은 농사 준비물 조달, 재배, 가공, 유통 등 전통사회의 농부가 해야 했던 일 중 단 한 가지만 한다. 마치 자동차 공장의 노동자처럼 한 가지 일, 즉 재배만 하면 나머지는 국제적인 농산물 기업들이 다 알아서 처리한다. 이러한 대규모 농업은 돈이 되지만, 심각한 환경오염이 따른다. 한 가지 작물만 심어진 농장은 그만큼 질병에 취약하다. 농부들은 작물을 농약에 담그다시피 한다. 게다가 아래로는 화학 비료를 쏟아붓는다. 캘리포니아 하천 인근 삼림의 89%가 농장이 됐고, 결과적으로 해안 습지는 말라버렸다. 대규모 축산시설의 동물 학대, 열악한 노동환경, 환경 오염 역시 익히 알려졌다.

저자들은 몇 가지 대안적인 움직임을 소개한다. 이제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공정무역, 유기농, 슬로푸드 등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아직 완전하진 않다. 공정무역 식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공급이 달리자, 공정무역 단체들은 ‘공정무역 인증’ 기준을 완화했다. 기존엔 작은 협동조합, 가족 농장에서 나온 식품만 인증했지만, 이제는 농장에서 나온 상품 일부에도 공정무역 마크를 붙여준다. 유기농 식품이 도시 고소득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자, 유기농의 기준은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것’ 정도로 좁혀졌다. ‘유기농 우유’의 이미지는 푸른 목장에 드문드문 방목된 젖소가 풀을 뜯어먹은 뒤 생산하는 우유겠지만, 실제로는 축사에 갇혀 곡물이 포함된 사료를 먹으면서 만든 우유도 포함된다.

<음식의 제국>은 16세기 피렌체의 상인이자 세계 무역 여행을 기록한 최초의 유럽인인 프란체스코 카를레티(1573~1636)의 세계 일주 여정을 따라가며 세계 문명 속 음식의 역할을 소개한다. 카를레티는 세계를 돌며 식료품 등을 거래하면서 이문을 남기려 했던 평범한 상인이었다. 자신의 물욕, 성욕, 식욕을 채우는 데 충실했고, 이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는 스페인 세비야에서 출발해 아프리카 대륙 서안의 카보베르데 군도를 거쳐 파나마 운하를 지나 페루 리마까지 갔다가 필리핀 마닐라, 일본 나가사키, 중국 마카오에 들른다. 이후 인도의 고아에 머물다가 훗날 나폴레옹이 유배된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고초를 겪은 뒤 네덜란드 미델뷔르흐를 통해 유럽에 돌아온다. 이 여행에는 15년이 걸렸다. 그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온갖 환락, 고난을 경험한 끝에 큰 부를 축적했지만, 귀향길에 네덜란드 사략선(국가의 허가를 받아 무장한 개인선박)에 전 재산을 털린다. 그의 여정은 인류가 기르고 사냥하고 교역해온 1만3000여년 음식의 연대기를 압축해 보여준다.

예나 지금이나, 서양이나 동양이나 비슷한 점은 “음식으로 장난치면 벌 받는다”는 것이다. 1917년 미국 뉴욕의 유대인 주부들은 식료품 가격이 중간 상인들의 농간에 의해 갑자기 오르자 매디슨스퀘어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비싼 가격을 반대하는 어머니 연맹’이란 이름의 이 여성들은 “오직 마진이 가장 적게 붙은 몇 가지 식료품만 사도록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뉴요커들은 이들의 기세에 눌려 식품을 사지 못했다. 팔리지 않은 식품은 썩어갔고, 상인들은 결국 굴복했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명박 정권은 기억하기도 힘들 정도로 숱한 잘못들을 저질러 비판받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위기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한 순간 찾아왔다. 표현의 자유 문제, 검찰 개혁 문제, 재벌 중심 경제 문제에 분노한 시민들이 시청앞 광장을 가득채우는 일은 없다. 음식 문제 정도가 대중을 그토록 분노케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붕괴의 징후가 이미 보이고 있다는 게 지은이들의 지적이다. 자연이 겪고 있는 기후변화가 대표적 요인이지만 인간이 만든 현대 농업 시스템도 큰 몫을 한다. 경제성은 높으나 가뭄과 병충해에 취약한 단일작물에만 의존하는 상업적 농업 말이다. 게다가 지력을 보충해주는 숲은 지난 3세기 동안 전 세계에서 약 40% 줄었다. 25개 국가에선 숲이 완전히 사라졌다.

지은이들은 현대 농업을 지속 가능한 농업으로 전환하는 길만이 인류문명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토양에 양분이 너무 많으면 수질이 오염되고 너무 적으면 토양이 메마르기 때문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아울러 기계 대신 사람이 근력을 사용하는 농업과 생산물의 지역판매라는 원칙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미 한계를 보이는 현대 식량공급 시스템을 수리하고 개선해야 인간도 건강해지고 땅과 농업도 건실해진다는 주장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농업도 고민할 문제다.

<음식의 제국>은 새로운 지식이나 지혜를 전하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대략 알고 있던 음식과 문명에 대한 상식을 구체적인 정황과 명쾌한 서술을 통해 읽기 쉽게 전한다. 방대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수작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음식의 제국
에번 D. G. 프레이저 외 지음, 유영훈(류영훈)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기세 등등했던 로마가 몰락한 진짜 이유
음식이 세계문명사의 흥망 좌우 로마도 식량난 때문에 무너졌다
문명의 흥망성쇠 좌우하는 동력은 식량

+

플라스틱에 전혀 닿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스마트폰과 컴퓨터, 볼펜을 쓸 수 없고 이빨을 닦거나 변기에 앉아서도 안된다. 버스나 차를 타선 안되고 우리가 입고 있는 옷들 중에서도 상당히 많은 것을 벗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수전 프라인켈이 시도한 무모한 도전이었다. 플라스틱으로 된 화장실 변기 앞에서 좌절을 한 그녀는 계획을 바꿔 하루 동안 접촉하는 플라스틱을 모두 기록하기로 했다. 아크릴이 포함된 노란색 페인트가 칠해진 연필, 알람시계, 매트리스, 안경, 칫솔, 치약 튜브, 냉장고, 빵 봉지, 트레이닝복…. 목록은 빠르게 늘어 196개에 달했다. 비교를 위해 기록한 비(非)플라스틱은 102가지 항목에 그쳤다.

저자의 말대로 “플라스틱은 현대 생활에 속속들이 파고들어 있으면서도 신기할 만큼 눈에 잘 띄지 않는 … 어지러울 정도로 풍부한 물질적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플라스틱은 ‘주물하다’ 혹은 ‘형태를 만들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동사 ‘plassein’을 어원으로 하는데 모든 플라스틱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중합체(Polymer·화학적 결합에 의하여 동일한 단위체가 계속 반복된 형태)라는 점이다.

단어로서 플라스틱이 사전에 처음 등장한 때는 1911년이지만 물질로서 플라스틱 시대의 시작은 그보다 앞선다. 빠르면 셀룰로이드가 만들어진 19세기 중반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고 최초의 합성수지 베이클라이트를 만들어낸 1907년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플라스틱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일상 용품에 도입되었다. 플라스틱은 희소한 자연물질을 대신하거나 모방하면서 더 깨끗하고 밝은 세상으로,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민주적 사치의 상태”로 데려가줄 것으로 여겨졌다. 이런 열광 속에서 “1979년 무렵에는 플라스틱 생산이 철강 생산을 넘어섰고, 플라스틱은 현대 생활의 뼈, 조직, 피부가 되었다.”

1940년 전 세계의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거의 제로였지만 70여년간 꾸준히 증가해 현재는 2600억㎏이 되었다. 미국의 경우 현재 1인당 140㎏ 이상을 소비한다. 세상이 플라스틱 사회로 바뀐 배경에는 경제적이고 쓰임새가 다양한 플라스틱의 장점도 있었지만 거대한 산업체로 발달한 석유화학업계가 큰 역할을 했다. 쓰레기가 될 뻔한 정유공장의 부산물에서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플라스틱 사회의 여러 단면들을 우리에게 익숙한 여덟 가지 플라스틱 물건들로 풀어낸다. 빗, 의자, 프리스비 원반, 링거백, 라이터, 비닐봉지, 음료수 병과 신용카드로 플라스틱의 역사와 문화, 플라스틱 제품의 제조 과정, 플라스틱을 둘러싼 정치적 사안들, 인조 합성물질이 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플라스틱을 제조하고 처분하기 위한 노력을 살펴본다.

플라스틱 빗의 탄생과 관련한 내용이 흥미를 끈다. 1860년대까지 당구공이나 빗, 피아노 건반은 상아로 만들었던 만큼 고가였다. 당연히 상아를 얻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코끼리는 멸종위기에 몰렸다. 이것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상아 공급이 어려워지자 1863년 뉴욕의 당구공 업자들은 “누구든 상아를 대체하기에 적절한 물질을 가져오면 금화 1만달러의 후한 보수를 주겠다”는 신문광고를 냈다. 뉴욕의 인쇄공 존 웨슬리 하이엇은 이 광고를 보고 오랜 시행착오 끝에 셀룰로이드를 발명해낸다.

셀룰로이드로는 상아의 모조품을 만들기에 적합했고 당시 부잣집 처자들만 꽂을 수 있던 빗도 저렴하게 만들 수 있었다. 부자들만의 오락이었던 당구도 서민의 오락으로 변했다. 셀룰로이드를 비롯한 플라스틱은 소비의 대중화, 소비의 민주주의를 이끈 결정적 발명품이었다. 역사학자 제프리 메이클은 <미국의 플라스틱>에서 셀룰로이드가 소비의 진입 장벽을 낮춘 초창기 신물질로 “구하기 힘들거나 가공 처리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었던 물질들을 대체함으로써, 팽창하고 있던 계층인 소비 지향적 중산층을 위해 상당히 많은 제품의 소비를 민주화했다”고 말했다.

플라스틱은 처음에는 모조품을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되었지만 무엇으로든 원하는 대로 변신할 수 있는 가소성으로 그 자체에 충분히 미학적인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디자이너들에게 플라스틱은 기존의 소재들로 불가능했던 디자인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꿈의 물질이었다. 플라스틱으로 작업하는 데 있어서 유일한 제약이라면 디자이너의 상상력뿐이었다. 플라스틱은 소비재 제품을 민주화했듯이 디자인을 민주화했다.

플라스틱은 천연물질을 대체함으로써 그 물질을 제공하는 코끼리나 대모거북 같은 동식물을 멸종위기에서 구한 영웅이다. 또 인공심박조율기나 인공관절 같은 현대 의학의 기적도 플라스틱이 있어 가능했다. 그렇지만 장수거북이 비닐봉지를 해파리인 줄 알고 삼켜 멸종위기에 처한 것에서 보듯이 플라스틱이 자연을 위협하는 것도 사실이다. 또 플라스틱 제품에서 나오는 호르몬은 내분비계를 교란해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저자는 플라스틱 세계의 명암을 전문가부터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노숙인에 이르기까지 100명이 넘는 광범위한 취재를 통해 생생하게 드러냈다.

요즘 ‘발로 뛰며’ 썼다는 책들이 자주 나오고 있지만, 이 책이야말로 저자가 발로 뛴다는 게 정말 어떤 것인지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밀도 높은 취재와 균형 잡힌 시각, 대중적인 글솜씨 등 3박자를 갖춘 책이다.

플라스틱 사회
수전 프라인켈 지음, 김승진 옮김/을유문화사

플라스틱, 축복인가 재앙인가… 우리가 하기 나름이죠
플라스틱의 치명적 매력, 편리하고도 두렵고
석기→청동기→철기... 그리고 플라스틱 시대
플라스틱이 어떻게 세상을 민주화시키고 삶을 지배해왔나

+

1991년 소련이 붕괴된 지도 어언 21년. 한국에서는 대선을 3주 앞두고 경제민주화 논쟁이 한창인데 이 와중에 왜 새삼 <공산당 선언 새로 읽기>일까.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자크 데리다는 <마르크스의 유령>에서 “마르크스가 없으면 미래도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마르크스주의자’ 박영호 한신대 명예교수의 대답도 데리다와 같다. 박 교수의 현실 진단은 명쾌하다. 자본주의 국가들의 빈부격차는 소련 붕괴 전보다 심화됐다. 공산주의권이 붕괴되면서 동시에 자본주의 국가 노동자들이 어려움에 빠져 버린 역설적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고, 대안을 찾아야 할까. 그가 제안하는 미래사회의 대안이 바로 <공산당 선언>의 재해석이다.

1848년 발표된 <공산당 선언>은 23쪽에 불과하지만 역사학·철학·사회학·경제학이 통합된 최고의 지적 창조물이었다. 그 속에 담긴 생산력과 생산관계, 역사 변증법, 소외 이론 등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박 교수는 160여년에 걸친 ‘역사적 교훈’을 통해 마르크스가 계급투쟁을 강조한 나머지, 생산력·생산관계의 모순과 지양이라는 혁명조건의 성숙을 강조하지 못했고, 혁명적 변혁의 과정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고 비판한다. 또 국내외에서 번역된 <공산당 선언>의 해석도 그간 스탈린주의에 의해 상당 부분 왜곡됐는데, 이번 기회에 본래 의미를 살린 번역과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공산당 선언 새로 읽기
박영호 지음/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스탈린주의 해석 걷어낸 '공산당 선언'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허구

+

긴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은 흘러 온 시간 만큼 많은 영웅호걸과 기인을 배출했고, 그래서 중국의 역사는 수많은 고사성어와 함께 끊임없이 복기되곤 한다. 여러 사가(史家)들이 중국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 일생을 바쳤음은 물론이다.
 
그 중 『십팔사략(十八史略)』은 특히나 일반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송대(宋代)의 증선지(曾先之)라는 인물이 사마천의 『사기』를 필두로 중국 각 시대의 정사로 꼽히는 18가지의 역사서를 간추려 편집한 것이다. 학자들은 초보적 역사교과서로, 일반인들은 중국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번에 애니북스에서 출간된 『십팔사략』 올컬러 완전판은 증선지의 원작에 고우영 특유의 해학과 유머를 보탠 역사 만화이다. 본문은 고우영의 아들 고성언이 채색해 남다른 의미가 더해졌다. 2대에 걸친 대작업이 이뤄진 것이다.
 
전판에 비해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판형을 키웠고, 중국 역사를 처음 접하는 이들을 위해 친절한 각주를 첨가했다. 각장 첫 페이지에는 역사적 사실을 다양한 각도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글도 실었다.
 
관포지교의 관중과 포숙아, 병법의 대가 손무와 손빈, 초한지의 항우와 유방, 최초로 중국통일을 이룬 시황제, 절세의 지략가 제갈량과 간웅 조조, 탐욕과 배신의 대표적 인물 동탁과 여포, 타고난 미모를 무기로 천하의 흐름을 바꾼 달기, 초선, 양귀비뿐 아니라 와신상담, 토사구팽, 계명구도, 완벽, 일모도원, 주지육림, 읍참마속, 부형청죄, 그리고 수많은 영웅호걸들의 이야기와 고사성어의 유래까지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흡입력 있게 담겨 있다.
 
1권 삼황오제의 이야기부터 10권 남송의 멸망까지, 양자강의 도도한 물결을 따라 흘러온 중국 역사의 흐름은 현대의 우리에게 올바른 정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굳이 정치가가 아니더라도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혀 줘 선택의 기로에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의 역할을 할 것이다.

고우영 '십팔사략', 아들 고성언 채색 더해 '농도 짙어진' 완전판 출간

+

장자(莊子)가 갈릴레이와 케플러 뒤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등의 길이가 수 천 리인 붕(鵬)의 날갯짓 대신 수십억 리 반경 행성의 웅혼한 궤적으로 '소요유(逍遙遊)'의 로망이 채워지지 않았을까. 대부분의 사람은 광대무변한 우주의 존재를 인식하지 않고 산다. 하지만 소라 껍질 만한 일상의 갑갑함에 절망할 줄 아는 인간이라면, 세포 속에 각인된 진화의 원심력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이라면, 밤하늘 수십억 광년 저쪽에서 날아오는 별빛에 아연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외경심일까, 아니면 그리움일까.

<2001 스페이스 판타지아>는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일본 후타바샤(雙葉社)의 월간 '슈퍼액션'에 연재됐던 SF만화다. 내가 단행본으로 묶인 이 책을 접한 것은 1990년대 초다. 일본 대중문화가 해금되기 전이어서, 내가 본 건 어둠의 경로로 흘러온 해적판이었다. 야간 자율학습을 '땡땡이' 치고 담배 연기 자욱한 만화방 구석에서 이 책을 폈다. 심(深)우주로 발돋움하는 인류의 장쾌한 드라마가 거기 펼쳐지고 있었는데, 나는 겨우 기말고사 따위나 걱정하는 고등학생이었던 것이어서, 시간이 얼른 흘러가 버렸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시간은 너무 빨리 흘러가 버렸는데, 나는 지금 게 껍데기 만한 월급쟁이의 삶에 갇혀 있고, 가끔 그 갑갑함이 우주에 대한 그리움으로 동할 때면 이 책을 편다. 말하자면 이 책은 중력의 속박에 대한 해독제, 혹은 채우지 못한 로망에 대한 진정제다. 지금 내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은 2009년이 돼서야 정식으로 번역 출간된 세 권짜리 단행본이다.

각설하고, 이 책의 일본어 원 제목은 '2001 야화(2001 夜物語)'다. 영국의 SF 거장 아서 C 클라크의 소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아랍의 '천일야화'에서 반씩 따 왔다. 작가 호시노 유키노부(星野之宣)는 구미권 SF 소설을 기초로 대담한 아이디어를 화폭에 담아내는 아티스트다. 정교한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장대한 스케일의 스토리를 만화의 형식에 담은 작품을 발표해 왔다. <2001 스페이스 판타지아>는 곳곳에 여러 SF 고전에 대한 오마주를 담고 있다. 영장류가 하늘을 나는 새를 보는 시선을 대사 없이 그린 인상적인 도입부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SF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에 대한 오마주.

이 책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돼 있다. 20개의 독립된 에피소드로 이뤄진다. 하지만 각 이야기가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인간의 우주 진출이 시작된 20세기 말부터 약 4세기에 걸친 시간이 연대기 순으로 각 에피소드의 배경을 이루기 때문이다. 달에서 대규모 자원을 발견한 인류는 그것을 발판 삼아 심우주로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지구에서의 실수를 무수히 반복하는데, 그것은 기술의 미비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이 지닌 근원적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책의 진짜 가치는 SF 장르 속에 철학과 종교를 녹여낸 인문학적 깊이에 있다.

예컨대 여덟 번째 에피소드 '악마의 별'은 선과 악의 개념, 혹은 인간의 한계를 우주를 배경으로 그리고 있다. 이 에피소드의 모티프는 밀턴의 <실락원>이다. 명왕성의 궤도 바깥에서 반(反)물질로 이뤄진 행성이 발견되고, 교황청은 이를 신의 경고로 해석해 심우주로 향하는 인간의 눈길을 다시 신에게로 돌리려고 한다. 그러나 반물질 행성에 대한 열강들의 속셈은 제각각이다. 각국에서 파견된 과학자들은 태양계의 끝에서 창세기의 시대부터 계속된 어리석은 반목을 되풀이하고 만다. 광막한 우주 공간에서 마주친 인간의 고독감을 그린 '풍요의 바다', 생명과 번식의 존재론을 담은 '녹색 별의 오디세이' 등의 에피소드들도 SF의 틀에 담긴 잠언록이라 할 만하다.

2001 야화 + 2001+5 세트 - 전4권
호시노 유키노부 지음, 김완 옮김, 박상준 감수/애니북스

호시노 유키노부의 '2001 스페이스 판타지아'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