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를 예속시키는 방법은 하나는 칼로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빚으로 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말이 나와 직접 연관이 없는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와 다르게 "채무자 그 진짜 이름은 '노예'"는 '아 그렇구나!'라는 공감한다. '한때 자유인'이었던 우리는 이미 '빚의 노예'이다. 페달을 멈추면 바로 쓰러져 버리는 '빚'이라는 달리는 자전거를 타고 있다. 초조함과 불안감을 안은 채 우리는 쉴 새 없이 페달을 밟아야 한다.
'투자는 자기 책임'이다. 모든 투자 실패는 투자자의 몫이다. '내 탓' 논리는 그간 금융회사가 언론과 합작한 반복 학습 결과이다. 금융회사가 망하면 큰일이고 개인의 피해는 '내 탓'이라는 금융소비자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금융회사를 살리기 위해 금융 소비자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금융회사의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불법인 도덕적 해이에 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는 금융회사(기관)의 탐욕과 약탈 행위이다.
"빚, 피할 수 없다면 현명하게", "좋은 빚 활용해 수익률을 높여라", "빚을 얻을 수 잇는 것도 자산", 빚도 관리하면 자산이 됩니다", "잘 얻은 빚은 재산이다", "지혜로운 빚테크", 부자들은 돈 벌기 위해 빚진다", "꽉 막힌 은행 대출 빚테크로 뚫는다" 등 언론이 '빚 권하는 사회'에 적극 권장하고 있다. 금융권, 언론 그리고 정부가 협작(합작이 아니다)해 우리에게 빚을 강요한다. 마치 빚을 얻지 않으면 마치 이 시대에 살지 못하는 사람처럼 벼랑으로 몰고 있다.
더는 "약탈적 금융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자각하고, 분노하고, 연대하고 당당하게 외쳐야 한다."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금융이어야 한다. 약탈적 금융이 어떻게 우리 삶을 억압하고 약탈하는가를 알려준다.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약탈적 금융의 족쇄를 풀어야 한다. 오직 자각한 대중만이 풀 수 있다.
현상에 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정작 어떻게 관한 해답은 부족한 점이 아쉽다. 그럼에도 벌어진 상황이 자신의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임을 자각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이다.
약탈적 금융 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