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나 ‘일’ 이야기다. 남녀노소, 개인 국가를 불문한다. 어느 나라 지도자나 ‘일자리 창출’을 앞세우고, 청년은 구직의
어려움을, 장년은 실직의 불안을 토로한다. 운이 좋게 직장의 울타리에 든 사람도 사정은 다를 바 없다. ‘업무 부담’ 혹은
‘일의 의미와 보람’으로 고민한다.
현대인에게 일은 무엇인가. 저자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다행히도 우리 시대 노동은
구약 시대의 ‘저주받은 징벌’의 수준은 벗어났다. 마침내 ‘자아 실현의 수단’으로 논할 수 있게 되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힘들거나 따분한 일은 기계가 대신한다. 누구나 직업을 선택할 수 있고 필요한 기술을 배울 수 있다. 능력에 따라 성장하고 한 만큼
성과를 인정 받을 수 있다. 적어도 조건으로 볼 때는 그렇다.
이런 노동은 이제 현대인의 최고 ‘향락’의 자리까지
넘볼 정도가 됐다고 저자는 쓴다. 책의 독일어 원제 ‘Wir Genussarbeiter’가 그런 경지를 말한다. ‘Genuss’란
‘즐김’ ‘향유’라는 뜻. ‘arbeiter’란 노동자다. 합치면 ‘노동을 즐기는 사람, 노동을 향유하는 사람’이 된다. 일에서
향락을 찾는 사람. 역자는 ‘향락 노동자’라 옮긴다.
문제는 이 ‘향락 노동자’의 무한 질주에 브레이크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다수가 ‘향유’ 이상으로 노동에 빠져 있다. 휴가를 건너 뛰는 것은 예사고 휴가 중에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못하는 걸까, 안 하는 걸까 헷갈릴 때도 많다. 노동 이외의 다른 ‘향락’은 이제 절제의 대상이다. 심지어 성적 에너지마저
노동으로 승화한다. 영어에서 말하는 ‘워커홀릭(Workaholic)’, 일 중독자다. 일 중독은 운동 중독과 더불어 오늘날 우리
사회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심지어 장려하고 지원하는 중독이다.
일에 대한 현대인의 이 ‘리비도적 집착’은 어찌된
걸까. 왜 우리는 탈진할 때까지 일에 매진하는 걸까? 저자는 근원을 프로이트의 욕망 이론에서 찾는다.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향락 노동자’는 일을 통해 인정을 바라는 인간형이다.
여기에 현대 사회의 경쟁 논리가 가세한다. 오로지 성장을 향해 질주하는 현대 사회는 향락 노동자의 야망을 동력 삼는다. 그 사이 개인의 노동은 '자아 실현'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오로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워커홀릭의 노동을 저자는 강박적인 사랑에 비유한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에 늘 안달이다. 워커홀릭의 자아는 온통 그의 능력을 평가하는 사람의 손 안에서 끝없이 불안해 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단적인 예다. 각국에서 인기 절정인 이 프로의 구현 방식은 자아 착취의 지경까지 이른 현대 사회의 경쟁 논리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무조건적인 승부욕, 강박적인 야망은 징후를 넘어 사회의 원칙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의 답은 ‘과도한 행동주의’에 맞서는 ‘수동성’의 옹호다. “모든 가능성을 가능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강박적으로
활용하지 않을 때에만 우리는 진정 자유롭다.” “능동성 옆에 수동성을 가져올 준비가 되어 있을 때에만 우리가 사는 사회 그리고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말이 어렵지만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그리고 '놓아두는' 법을 배울 것을 권한다.
‘놓아두기’라고 해서 그냥 중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저자는 “최고 수준의 행위와 결합된 놓아두기의 또 다른 형태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밖으로 나가 당신을 결정하고 유혹하고 침투하도록 내버려둔다. 통제를 포기하고 적어도 일시적이나마 다른 것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진정으로 자율적인 사람은 상황으로 하여금 자신을 결정하도록 놓아주는 사람이다.” 그런 뜻에서
놓아두기야말로 진정한 자유라고 쓴다.
그래도 선문답 같다. 저자는 ‘아이들의 한가로움’을 예로 든다. “아이들은 시간을 초월해 비밀스럽게 모든 것을 결정하는 높은 힘에 자기를 맡긴다.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는 느낌이 들 때에만 인간은 근심 없이 놀 수 있다.”
좋은 아이디어도 ‘선물’이다. “버튼을 누른다고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내려놓을 때 나온다. 잠을 자거나 하릴없이
뒹굴거리거나 공상에 빠지거나 꿈을 꿀 때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이다. 이성의 볼륨을 줄이고 목적 지향적 의지를 꿈결처럼 몽롱한
이완의 상태로 해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정령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창의적인 사람이 하루의 경계 시간에, 즉 아직 깨어나지
않았거나 더 이상 초롱초롱한 정신이 아닌 시간에 작업을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요컨데, 성장과 진보의 광기 속에서 '놓아두기'야말로 바람직한 전략이자 삶의 방식이라 말한다.
작년 봄 국내에 번역 출간돼 주목을 받은 재독(在獨) 철학자 한병철의 ‘피로 사회’와 궤를 같이 하는 책이다. 한 교수는 “자아
실현이 아니라 자기 착취의 기세로 질주하는 과도한 노동 강박이 탈진의 위험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책도 진단은 비슷하다.
해법은 노장 사상의 무위(無爲)론이다. 서구의 전투적인 산업화 논리에 대한 반성이자, 중화제로 동양의 무위와 유유자적을 내세우는
격이다. 분석의 상당 부분을 프로이트 이론에 의존했다는 저자의 고백을 감안하면 뜻밖의 귀결이다. 인간의 근원적 욕망에 따른 필연적
불안과 좌절을 동양적 사유로 치유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 정도라면 딱히 주목할 만큼 새로운 것은 없다.
‘악명
높은 독일 철학서’ 답지 않게 쉽게 읽히는 게 장점이다. 현실의 노동, 놀이 속에까지 침투한 다양한 강박의 징후를 섬세하게 포착해
낸다. 읽다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고통과 섹스, 축제에 대한 현대인의 인식 변화를 다루는 대목은 여러
상념에 잠기게 한다.
문제는 과도한 비관과 손쉬운 처방이다. ‘놓아두기’라는 해결책도 심오한 듯 허탈하다. 물론
저자도 노동을 통한 자아 실현은 노동 조건과 근본적인 관계가 있다고 스치듯 말한다. 결정적인 조건은 "시간과 여유, 일을 하면서
일과 더불어 기분 좋게 그 안에 침잠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도 쓴다. 그뿐이다. 책을 덮고 나면, 그 자아 실현에 부합하는 일을
개인은 어떻게 찾고, 기업이나 조직은 어떻게 구현하며, 국가는 어떻게 유도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더 절박하다는 사실만 절감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비교되는 책이 있다. 올초 국내에도 번역돼 나온 ‘일에서 충만함을 찾는 법’. 영국의 작가이자 문화사상가인 로먼 크르즈나릭이 쓴 책이 그 점에서는 진일보했다. 이 문제에 진지한 독자들은 순서대로 읽어 볼 만하다.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 |
‘일중독’에 빠진 당신이 곧 포르노 배우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
노동이 즐거워? 그렇게 가장하고 싶겠지
강박적인 일 중독 벗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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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아프리카 콩고 여성 어부들에게 가장 중요한 생활 수단은 휴대전화다. 첨단의 스마트폰도 아니고 기본 기능만 갖춘 단말기다. 너도나도 장만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 전엔 물고기를 잡아 놓고도 고민이었다. 오늘은 얼마나 팔릴까. 시장에 가져 갔다가도 안 팔리면 낭패였다. 자칫 두고 팔았다가 상한 생선에 고객이 배탈이라도 나면 손해가 더 컸다. 울며 겨자 먹기로 버리는 생선이 부지기수였다.
이제는 다르다. 그저 잡은 물고기를 망에 담아 강에 넣어뒀다가 고객 전화가 오는 대로 배달 서비스에 부친다. 비싼 냉장고도, 밤에 물고기 도둑을 망볼 사람도 따로 둘 필요가 없어졌다. 휴대폰 하나가 가져다 준 멋진 신세계! 아프리카의 휴대전화 사용자 수는 이미 6억5000만명을 넘었다.
저자들이 2009년 가을 재건이 한창이던 이라크를 처음 방문했을 때도 눈에 띄었던 것은 여기저기 사람들이 들고다니는 휴대전화였다. 사담 후세인 몰락 이후 6년 넘게 전쟁에 휘말려 있었던 이 나라 사람들이 의식주의 생필품을 뒤로 하고 너도나도 먼저 장만한 게 휴대전화였다. 새로운 삶의 축이었다.
21세기 첫 10년 사이 인터넷으로 연결된 전 세계인은 3억5000만명에서 20억명 이상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7억5000만명에서 60억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2025년이면? 약 80억명에 이르는 세계 인구 대부분이 온라인에서 활동하게 된다. 세계 사람 대부분이 손바닥 안의 기기를 갖고 세상 모든 정보에 접속할 수 있게 되는 세상.
그 때쯤이면 사이버 공간, 즉 가상 세계에 거주하는 인구가 지구상에 실제 거주하는 인구 수를 넘게 된다. 그로 인한 변화는 전 영역에 걸친다. 저자들은 ‘무정부 상태를 수반하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실험’이라고 명명한다. “역사상 이토록 많은 장소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손끝에 그토록 많은 힘을 가졌던 적이 없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중개인 없이 실시간 콘텐츠를 소유하고 개발하고 확산시킬 수 있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저자들은 그러나 우리는 아직 디지털 시대를 제대로 시작도 안 했다고 말한다. 키워드는 연결성(connectivity)이다. 상호연결성은 새로운 세계화를 낳는다. 공동의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유형의 집단 행동이 가능해진다. 그로 인한 ‘규모의 효과’는 정치 경제 미디어 비즈니스 사회규범을 포함한 사회 전 영역에 대 지각 변동에 상응하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가상 세계에서 우리는 실로 다양한 수단과 도구를 통해 아주 빠르게 연결성을 경험하게 된다. 구글 글래스에 이어 입는 컴퓨터가 나오는 세상이다. 그 결과 우리는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 일종의 이중 국적자가 된다. 동시에 두 가지 세상의 통제를 받으면서 살고, 일하고, 심지어 ‘존재’하게 된다.
이런 디지털 사회가 장미빛일까? 저자들은 낙관도 비관도 않는다. 가상 세계는 현실 세계와 어울리고 또 충돌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은 엄청난 선일 수도 무시무시한 악의 근원일 수도 있다”고 저자들은 분명히 적어 둔다. 따라서 국가는 앞으로 국내외 정책을 펼 때도 두 가지 세상을 염두에 두고 조심스레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곧곧에서 파열음이 터질 것이다.
무엇보다 가상 세계에 대한 통제력을 두고 개인, 집단, 국가 간에 새로운 경쟁과 갈등이 일어날 것이다. 대중은 인터넷과 더불어 더 큰 감시 능력을 갖게 되지만, 같은 공간이 해커를 비롯한 반체제 세력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끼리의 접촉과 교류, 거래가 점차 가상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개인의 신원 역시 ‘가상 아이디’와 ‘온라인 신원’이 더 중요해지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교육도 전통적 과목이 사라지고 더 많이 상호 작용할 수 있는 워크숍으로 대체된다. 미래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플랫폼들이 전 세계 예술가, 작가, 감독, 음악가들에게 더 많은 청중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언론의 혁명적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개방형 네트워크 플랫폼을 통한 뉴스 속보가 쏟아지고 있다. 앞으로 언론에 대한 충성심은 언론이 제공해주는 분석과 관점뿐만 아니라 언론에 대한 신뢰로부터 나오게 될 것이다. 주류 언론은 쏟아지는 정보에 대한 ‘신뢰성 필터’ 역할을 맡게 된다. 기업의 리더, 정책 당국자, 지식인 같은 엘리트들에게는, 설득력 있는 분석을 제공해줄 수 있는 능력 못지 않게 ‘검증’이 언론의 중요한 능력으로 간주될 것이다.
책은 세계 최대 IT 기업 구글의 CEO인 에릭 슈미트를 주 저자로 앞세웠다. 적임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상당 부분이 또다른 공동 저자이자 구글 싱크탱크인 ‘구글 아이디어’의 제러드 코언 소장 필치로 짐작된다. 그는 대학 졸업 직후부터 미 국무부에 들어가 중동과 남아시아 지역의 대테러 작전과 국가 재건 실무에 깊이 관여했던 인물. 책 내용도 전후 재건 현장 보고서 같은 대목이 많다.
7개 챕터 중 초반 2개 챕터 정도에서 슈미트의 흔적이 느껴질 뿐 나머지 대부분은 사이버 테러와 국가 안보에 할애된다. 그런 점에서 일반 독자들보다는 국가 안보 관계자들이 더 반길 만하다. 책 날개를 장식한 국내외 유명 인사들의 화려한 추천사들만 보고 기대에 차서 책장을 펴든 사람들은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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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은 단지 장사일 뿐인가? 책의 주변에는, 단지 그렇게 말하고 말기 어려운 것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저자의 혼잣말에 끄덕여지는 건 서점에는 책이 있고, 그 속엔 세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술램프처럼 원하는 세상을 내 앞에 ‘뿅’ 하고 나타나게 해주는 설렘의 공간. 서점은 누구에게나 그랬다.
이 책은 출판 전문지 기자였던 저자가 일본 각지의 개인 경영 서점을 순회하면서 만난 ‘서점 장인들’에 관한 이야기다. 출판시장이 우리보다 몇 배나 더 큰 일본도 최근 5년간 매년 1000개씩 서점이 사라졌다. 동네마다 있던 작은 책방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고 몇몇의 대형서점과 인터넷 서점이 그 자리를 메웠다. 저자의 말마따나 서점 수가 계속 줄어든다는 것은 얼마간 확정된 미래일 것이다.
첫 번째로 소개되는 하라다 마유미 역시 대형서점 점원으로 일을 했다. 그는 소위 ‘팔리는 책’ 위주의 매출 지상주의를 보다 못해 도쿄에 5평짜리 책방을 차렸다. 책을 파는 게 아니라 골라주는 게 서점의 역할이고 따라서 서가의 구성능력이 불가결한 시대가 됐다고, 그래서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는 서점원을 키워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와카야마현의 작은 농촌 마을에는 아이스크림도 팔고 연애상담도 해 주는 서점이 있다. 이하라 마미코가 큰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이하라 하트숍’인데 지방에서 분투하는 작은 서점을 대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하라는 나고 자란 곳에서 서점을 운영한다는 보람으로 일을 놓지 않았고, 가게 출입구에서 동네 꼬마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문화전도사가 됐다.
이토 기요히코는 점장 시절 ‘서점발 베스트셀러’를 많이 만들어냈다. 1988년 발간된 <오체불만족>이 화제가 되기 전에 흥행을 예감하고 많은 재고를 확보해 1주 만에 1200부를 판매한 걸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가 서점을 그만둔 건 회사의 구조조정이 계기가 됐다. 대형 멀티 서점의 등장이 원인을 제공했다. ‘책 파는 남자’였던 그는 지금 도서관에서 일하며 ‘책 빌려주는 남자’로 살고 있다.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에 없어지지 않고 늘 있는 게 ‘보통 서점’이라고 말하는 나라 도시유키의 말처럼 책과 끊임없이 동행하는 이들의 모습은, 서점이 계속되는 이유이자 왜 서점이 계속돼야 하는지에 대한 또 다른 방식의 설명이다.
서점은 죽지 않는다 |
서점 멸종시대, 서점사람들의 분투기
동네 서점이 잘 되려면? 안 팔리는 책도 진열하라
책 장사꾼이 아닌 꿈 만드는 장인들이 지키는 일본 서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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