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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3년 7월 1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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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사적 욕망의 공적 구현이라고 하지만 공적 욕망의 사적 구현이라는 역의 명제도 성립된다. 돈으로 환산되는 욕망이라면 더더욱 승부를 걸어볼 만한 게임이다. 공공의 의사결정 시스템에 틈입해 공적 욕망의 한쪽에서 사적 욕망을 환금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사적 욕망은 규제 철폐·감세·민영화라는 공적 명분의 옷을 입고 거리를 당당하게 활보한다. 까짓 정부나 국가 따위는 쫄딱 망해도 상관없다. 망하면 재정적자 보전을 명분으로 규제를 더욱 없애고, 민영화를 추진할 좋은 환경이 조성된다. 우파로서는 꽃놀이패를 쥐게 되는 셈이다. 수익률 163.536%의 남는 비즈니스. 미국 언론인 토마스 프랭크가 전하는 미국 보수우파의 정치장사 수익률이다.

이 책은 저자가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 등의 연속선상에서 미국 우파의 본질을 파헤친 결과물이다. 저자는 워싱턴 인근의 버지니아 라우든 카운티를 미국 우파 정치비즈니스의 실험실로 꼽는다. 2000년대 들어 교통문제와 부족한 학교, 세금 인상 등의 문제가 쌓여가자 일반 주민들은 감사위원회를 장악해 용도구역법의 건축 규제조항을 강화했다. 부동산 개발업자와 대지주들은 “재산권을 침해하는 테러리즘”이라면서 반발했다. 이들은 감사위원회를 상대로 잇달아 소송을 제기하는 동시에 공화당 라우딘 지부에 막대한 기부금을 희사하기 시작했다. 공화당은 3년 뒤 용도구역법을 개정한 것은 물론 시정을 부자들에게 넘긴다. 그들은 로비자금의 몇 배를 돌려받았다.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라우든 카운티의 변모는 미국의 변화를 축약해 보여준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지리멸렬해졌던 우파가 어떻게 변종 돌연변이로 되돌아와 미국을 접수했을까. 왜 보수우파가 집권하면 어김없이 재정적자가 늘어날까. 늙은 대통령 후보 로널드 레이건이 1984년 재선에서 대학생 표의 80%를 쓸어가고, 지금도 베이비붐 세대의 60%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유방임주의(lassez-faire) 우파가 된 건 어떤 이유일까. 저자는 우파의 권토중래는 종래의 거만한 정통 우파에서 겉도는 아웃사이더로 브랜드를 바꾸면서 가능했다고 진단한다. 조지 W 부시가 스스로를 ‘워싱턴의 반체제 인사’로 여겼듯이 우파는 자신들이 가장 경멸했던 좌파의 이미지와 전투적 행동양식을 차용함으로써 좌파를 이길 수 있었다. 적의 칼로 적을 치는 격이다.그 대표적인 인물이 2006년 초대형 부패로 몰락한 로비스트 잭 아브라모프이다. 히피문화와 반전운동이 휩쓸고 지나간 미국 대학가에는 1980년 레이건의 등장과 함께 보수우파의 홍위병 역할을 도맡은 신인류가 등장한다. 아브라모프가 이끄는 ‘레이건 유스’는 1981년 공화당 학생회를 장악한다.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사건 당시 이란에 대한 핵 공격을 촉구하며 ‘즉각 선제공격을!’이라는 구호가 상아탑을 도배한다. 청년 아브라모프는 한 인터뷰에서 “(반전세대가 장악했던) 캠퍼스의 급진파는 이제 우리”라고 선언했다.

과거 보수주의가 물리치고자 했던 것들이 이제 보수주의를 구성하게 됐다. 타도 대상이던 큰 정부와 진보주의, 워싱턴을 접수한 것이다. 그토록 비난했던 행정권과 사법권을 틀어쥐고, 그토록 혐오했던 큰 정부를 ‘그들의 정부’로 바꿔놓는다. 그 핵심은 냉소, 특히 정부에 대한 냉소였다. 냉소는 재정적자를 야기하는 정부의 비효율에 집중된다. 세금 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사회복지 예산에 낭비라는 딱지를 붙임으로써 진보정부를 무너뜨린다. 미국 우파의 모순은 그토록 비효율적인 공공예산을 혐오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집권 기간 동안 재정적자를 천문학적으로 늘린다. 미국 우파가 냉소를 살포하면서 온갖 음모론으로 역사를 새롭게 정의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어떤 정부도 부패하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퍼뜨려 자신들의 부패를 정당화한다는 점 역시 미국 우파만의 습성은 아닌 듯싶다.

우파는 보통사람들에게 정치에 대한 냉소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정권을 잡으면 ‘기업 내 정부 영역’을 축소하고 ‘정부 내 기업 영역’을 확대하면서 부를 챙긴다. 규제철폐·감세·민영화는 세계 어디에서나 보수우파가 외치는 슬로건이자 무기이다. 보수 정치와 그것이 가져다주는 사적 이익 사이의 체계적 연관성은 견고하다. 포브스는 ‘투자 대비 엄청난 수익을 원한다구요?’라는 제목의 2006년 1월 기사를 통해 로비 투자의 수익률을 163.536%로 산출했다. 물론 정치가 돈이 되는 장사라는 그들만의 복음이다.

그렇다면 보수주의가 몰락시킨 미국을 소생시키려면 민주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기만 하면 될까. 저자는 단연코 아니라고 말한다. 레이건 이전의 중산층 국가로 되돌아가려면 그동안 우파가 망쳐놓은 모든 제도들을 복원하는 연방기관의 전반적인 혁신이 더욱 중요하다. 기실 레이건이 뚫어놓은 세계화라는 신작로를 확장한 것은 빌 클린턴이었다. 우파 냉소주의의 본질을 깨닫고 그들이 세상에 저지른 일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정치인들에게만 맡길 수 없는 일이다. 좌파적 사회운동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돈더미 밑에서 질식할 수밖에 없다. “워싱턴(정치)으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고 “당신들의 기회는 이제 끝났다”고 단호하게 말해주라는 충고다.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
토마스 프랭크 지음, 구세희 외 옮김/어마마마

한국 우파들은 이 책을 읽지 말라
국가야 망하든 말든, 미국 우파는 집권 후 ‘정치장사’로 163%의 고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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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상에서 가장 효율적인 조세(租稅) 천국, 스위스의 민낯이 드러난다. 조세 피난처를 통한 탈세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나라 밖으로 돌아다니는 자금 중 3분의 1 이상이 비밀주의로 유명한 스위스 은행에서 관리되고 있다. 어떤 돈이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호해주는 곳이 바로 스위스이기 때문이다.

스위스 은행들은 마약 조직원이 가져오는 돈 가방을 외면하지 않는다. 개인 정보를 묻지 않고 얌전하게 세탁해줄 뿐이다. 또 마약 관련 자금 세탁은 스위스에서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1200여명의 제네바 변호사 상당수는 이혼소송 같은 분쟁 변론은 해본 일이 없다. 고객이 세금을 내지 않는 방법을 찾아주는 게 그들의 주된 업무이다. 스위스는 그야말로 검은돈의 원스톱 서비스 천국.

스위스에서 태어난 저자는 아름다운 풍광과 철저한 위생을 상징하는 겉모습과 달리 원조 탈세 천국으로 악명 높은 자신의 조국 스위스를 박멸이 불가능한 공공의 적으로 규정한다. 헬베티아(라틴어로 스위스)의 부(富)의 원천은 바로 '남의 돈'이며, 그 돈은 세 가지로 구성된다고 설명한다. 첫째는 마약과 범죄로 벌어들인 '검은돈'이며 둘째는 제3세계 지도자들이 불법적으로 빼돌린 '회색 돈'이다. 합법적 거래를 통한 '깨끗한 돈'은 셋째로 분류했다.

저자는 1980년대에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 스위스 은행들이 세상의 추악한 돈을 세탁해주고, 정부 관계자들이 이를 비호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스위스로 검은돈이 몰리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1983년 이탈리아 사법당국이 국제 마약 밀거래 자금을 세탁해 온 레바논인을 붙잡아, 그가 활동해 온 스위스 빌의 사법당국에 넘겼지만 그는 곧바로 무죄 방면된다. 이 자금 세탁 혐의자는 빌 출신 금융인으로부터 은밀한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었고, 그가 경영하던 베른 지역 페이퍼컴퍼니는 이 금융인이 관리해왔다. 금융인의 아들은 스위스 베른주 수사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1988년 당시 스위스 법무장관은 지방의 한 검사가 돈세탁에 연관된 회사의 경영진을 추적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그 회사는 자신의 남편이 부회장으로 일하는 곳이었다. 장관은 집무실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날로 남편은 회사를 떠났다. 이 사건의 혐의 사실은 지금까지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1987년 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출발한 스위스항공 여객기는 목적지인 제네바 쿠앵트랭 공항에 착륙했지만 화물칸 문이 열리지 않아 난관에 봉착했다. 스위스항공사는 탑승객 이름과 주소를 기록한 뒤 짐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승객 중엔 77세의 리우데자네이루 교구 소속 신부가 있었다. 몇 시간 뒤 이 신부에게 가방을 전해준 사람은 항공사 직원이 아닌 2명의 형사였고, 신부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졌다. 3개 가방 안에는 100만달러 상당의 마약이 들어 있었다.

스위스 은행들이 주요 고객이었던 독재자들의 편의를 도왔던 모습도 소개하고 있다. 필리핀의 마르코스와 이멜다, 아이티의 뒤발리에, 자이르(현 콩고공화국)의 모부투 등이 그들이다.

교수 출신으로 스위스 연방의회 의원(사회민주당)이던 저자는 1990년 프랑스 파리에서 이 책을 처음 출판한 뒤 의원 면책특권을 박탈당했다. 이어 스위스 언론으로부터 '조국의 배신자'라는 비난을 들었다.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모욕을 당하고 살해 협박을 받았으며 줄소송에 시달렸다. 저자는 굽히지 않았다. 국경을 넘나드는 탈세 행각을 돕는 검은돈의 원천을 뿌리뽑아야 한다며, 이를 위한 시민의식의 봉기를 촉구했다. 그래야 스위스 비밀 은행이라는 치명적인 제도를 대번에 쓸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홍기빈 해제/갈라파고스

중립국 스위스, 돈만 된다면 범죄 앞에서도 중립?
돈세탁, 조세회피…탐욕으로 병든 스위스 ‘내부 고발’
스위스은행 이젠 `비밀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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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이긴 하나 오래되었다. 역설적인 이 말은 관점에서 비롯된다. 1492년 콜럼버스가 발견한 아메리카는 유럽인들에게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아마존 같은 울창한 숲이 있고 그들과는 다른 또 다른 사람, 원주민이 사는 곳. 철저히 그들의 입장에서 그곳은 신세계였다. 하지만 아메리카는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기 훨씬 이전부터 원주민들이 일궈놓은 삶의 터전이었다. 신세계는 그저 또 다른 오래된 세계였던 것이다. 책은 지금까지 이뤄져 온 라틴아메리카 환경사 연구의 종합판이다. 자연과 인간의 상호 작용과 라틴아메리카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연결하며 자연에 대한 오해, 인간에 대한 오해를 풀어나간다.

아스텍이나 잉카제국의 원주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원시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농사를 지었다. 땅심을 돋우는 방법도 알았다. 한 땅을 5년 일군 뒤 20~30년 동안 내버려두었다가 다시 나무를 태우고 밭을 일궜다. 유럽 사람들이 한 해 또는 두 해에 걸쳐 동물들 도움을 받아 땅을 걸게 했다면 이들은 숲 식물의 타고난 재생력을 이용한 것이다.

옥수수를 처음으로 재배한 것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이었다. 토마토, 고추, 아보카도, 감자 같은 작물들도 식용으로 키웠다. 콜럼버스는 낙원을 찾았다고 말했지만, 그 낙원은 이미 인간이 만들어 놓은 낙원이었던 셈이다. 원주민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사람이 사람을 먹는 식인이다. 단백질을 쉽게 공급하기 위해 그랬다는 게 정설이지만, 책에 따르면 그보다는 복수심 때문에 전쟁 포로를 먹었고 그것은 그들만의 종교관념이었다. 이는 환경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시체 처리를 놓고 봤을 때 식인이야말로 가장 싸고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자연은 사람을 어떻게 다뤘을까. 1492년부터 100년간 원주민 5000만명이 사라졌다. 이는 당시 아메리카 인구의 90%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총과 활, 쇠와 돌의 부딪침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을 리는 없다. 유력한 용의자는 돌림병이었다. 유럽인들과 함께 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여행하면서 살아남은 숙주들이 무방비 상태의 원주민에게 퍼져나간 것이다. 박테리아에 의한 대량학살로 아메리카는 다시 신세계가 된다. 책은 마지막 장까지 아메리카의 역사와 환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지루하지 않게 좇는다.

오래된 신세계
숀 윌리엄 밀러 지음, 조성훈 옮김/너머북스

신대륙서 벌어진 인간과 자연 ‘길항의 역사’
인간이 신대륙을 만들었다? 천만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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