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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3년 8월 2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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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는 끝났다” 내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은 1960년 대니얼 벨의 <이데올로기의 종언> 이래 보수주의자들의 단골 발언 메뉴다. <겟 리얼>의 지은이인 영국의 저널리스트 일레인 글레이저는 “이데올로기는 죽었다거나 이데올로기는 악이라는 말 자체가 가장 이데올로기적인 주장”이라며 “이데올로기가 감추고 있는 게임의 규칙 첫 번째가 이데올로기 없음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21세기 들어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 그것들은 단순히 정치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을 넘어 노동에서 여가활동, 음식에서 섹스까지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 침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현대사회 이데올로기의 특징은 각종 광고, 마케팅, 홍보 등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들이 속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착취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시민들은 자신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으며, 소비자들은 기업들이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현대 정치의 유행어는 ‘진정성’, ‘새로운 정치’, ‘시민의 힘’, ‘풀뿌리 혁명’, ‘소통’ 같은 것들이다. 영국 보수당 당수인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이튼스쿨(영국의 최고급 사립학교)과 옥스퍼드대를 나온 귀족 출신이다. 하지만 캐머런은 2009년 선거유세 때 “거리의 남녀노소에게 권력을 재분배해 실제 국민이 권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밤새 제과점원, 맥주 제조공, 어부 등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연출한다. 출신계급 논쟁은 “사람들은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지(출신)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진다”며 피해갔다.

그가 정권을 잡은 뒤 실제 한 일은 재정 건전성을 빌미로 대학 등록금을 세배로 올리고, 영국 복지정책의 상징 격인 무상 국민의료보험(NHS)을 약화시키는 정책이었다. 이에 반발하는 대학생들의 시위는 무력으로 진압했는데, 방송들은 학생들이 창문을 깨트리는 장면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캐머런 내각의 대부분은 사립학교 출신에 백만장자 수준의 부자들로 채워졌다. 지은이는 “나는 정치가들이 진정성이나 겸손으로 위장하기보다는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강력히 주장해주길 바란다”고 말한다.

기업들의 전략은 더욱 교묘하다. 마케팅 전문가 어니스트 디히터는 이미 1960년 <욕망의 전략>에서 ‘어떻게 주부들이 인스턴트 케이크 믹스를 죄의식 없이 구입하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고민한다. 답은 ‘계란을 넣어라’였다. 최근에는 게릴라 마케팅, 입소문, 온라인 버즈, 참여마케팅 등 소비자들에게 ‘존중받고 있다’는 환상을 불어넣은 뒤 물건을 팔아먹으려는 기업들의 기법이 날로 진화하고 있다. 그들은 “대중이 세상사를 가장 잘 안다”고 말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물론 사람들이 점점 더 멍청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환영을 알아채는 시민들의 평균적인 능력은 상당히 날카로워졌다. 단지 환영을 조작하는 일이 더 잘 조직되고 향상되었을 뿐이다.”

환경문제에서도 이런 조작은 만연해 있다. 기업들은 환경 파괴를 감추기 위해 ‘친환경주의’로 자신들을 포장한다. 이른바 ‘그린워시’(가짜 환경주의)다. 석유회사는 대체에너지를 향한 자신들의 열정을 광고하고, 많은 연료를 소비하는 자동차가 북극곰과 함께 등장한다. 코카콜라는 2009년 기후변화회의에 맞춰 친환경 용기인 ‘플랜트보틀’을 출시하고 대대적인 광고를 내보냈다. 2010년 말까지 약 20억병의 플랜트보틀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는데, 코카콜라가 매년 판매하는 양은 5800억병이다. 기업들이 “걸핏하면 환경주의를 끌어들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진정한 환경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워지고 있다.”

페미니즘은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여성들의 위상을 포장하기 위한 반페미니즘에 이용당하고 있다. 화장품회사 로레알의 슬로건, ‘당신은 소중하니까요’에서 잘 드러난다. 보수주의는 모든 여성문제를 ‘선택’의 문제로 돌린다. 자신이 원하기 때문에 15㎝ 하이힐을 신고, 쇼핑 매장을 돌아다니고, 클럽에서 일한다는 식이다. “자유라는 이데올로기는 여성의 삶이 수많은 암시에 의해 제약받고 있다는 사실을 흐리게 만든다. 여성이 자유롭다면 왜 우리 모두는 동일한 이상에 순응하려고 하는가? … 교육받은 여성이 온종일 자녀들 뒤치다꺼리하려고 일을 그만두면 선진국에서도 칭찬을 받는다.”

이외에도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환상, 텔레비전 리얼리티쇼의 비현실성, 사회생물학이나 진화심리학 같은 과학주의의 보수성, 음식문화의 계급성 등도 분석 대상이 된다.

지은이는 ‘은밀한 이데올로기’에 대항하기 위한 방법으로 두 가지를 제안한다. 먼저 이런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제대로 의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맞서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를 버리는 것은 이상주의, 즉 우리 세계를 개선하려는 비전을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살고 싶은 세계를 공공연하게 말하고 토론하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보수당도 당당하게 우익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다양한 영역의 구체 사례를 풍부하게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지만, 사례들이 영국 사회에 기반하고 있어 일부는 생소한 느낌을 줄 수도 있겠다. ‘겟 리얼’(Get Real)은 ‘현실을 똑바로 보라’는 뜻이다.

겟 리얼
일레인 글레이저 지음, 최봉실 옮김/마티

이데올로기는 죽지 않았다, 다만 교묘해졌을 뿐
진보와 변화를 가로막는 ‘이데올로기는 죽었다는 믿음’을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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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장 많은 돈을 번 할리우드 스타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48)였다. '아이언맨'에서 철갑 슈트를 입고 등장한 이 매력적인 배우는 한때 대중의 지탄을 받는 악동이었다. 아역 스타였지만 1990년대 들어 마약 때문에 여러 번 체포됐다. '망가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식의 기사는 셀 수도 없다. 그에게 마리화나를 가르쳐준 사람은 아버지. 여섯 살 때 처음 마리화나를 피운 그는 마약을 아버지와 소통하는 수단이라고 느꼈다. 배우 인생이 끝나는가 싶었지만, 그는 재기했다. 비슷한 처지의 린제이 로한 같은 배우들과 비교하면 그의 '재기'는 눈부시다. 알 수 없는 괴물, '팬덤(fandom·사람이나 물건에 대한 광적 지지)'이 만들어낸 결과다.

반대 케이스도 있다. 독일 자동차 아우디는 한 번의 잘못으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1990년 미국 TV 시사프로그램 '60분'이 급발진 사고로 많은 사람이 사망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방송했다. 사고를 낸 자동차 중에 아우디가 있었다. 아우디는 즉각 "우리 차에는 문제가 없고, 사고는 운전자의 부주의 때문에 일어났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사고 원인이 급발진 때문이라는 주장은 입증되지 않았으나, 이후 아우디는 미국 시장에서 거의 추방되다시피 했다. 추락한 브랜드 이미지를 다시 세우기까지 20년이 걸렸다. 적절히 사과하는 데 실패해 대중의 외면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떤 상품은 신드롬을 일으키며 메가 히트를 치고, 어떤 브랜드는 승승장구하다 한순간에 시장에서 퇴출당한다. 허술한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자격 미달 후보가 당선되기도 한다.

상품이나 사람의 질 때문이 아니라, 바로 '팬덤'이라는 유령이 저지르는 짓이다. 브랜드 전략 전문가인 저자는 정치·경제·영화·광고·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비논리적 의사 결정이 이뤄지고, 그 이유가 팬덤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대선 열기가 한창이던 2008년, 공화당 후보 존 매케인의 지지자는 연단에 올라 "오바마는 아랍인"이라고 했다. 깜짝 놀란 매케인이 반박했다. "아뇨, 아뇨…. 오바마는 훌륭한 미국 시민입니다. 당신 말에는 동의할 수 없네요." 매케인의 이성적인 발언은 유세장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어버렸다. 지지자들의 맹목적인 '신앙'을 매케인 스스로 깨버린 것. 매케인은 거짓된 정보를 바로잡으려 했지만, 이는 지지자들의 믿음과 신뢰를 저버리는 실수였고, 그는 결국 선거에서 졌다.

무한 정보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은 쏟아지는 정보를 '선택 삭제→편집→취향에 맞는 정보의 재구성'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창조한다. 그리고 그 만들어진 틀에 대상을 두고 열성적인 숭배를 보낸다. 팬덤은 매우 편향적인 동물이다. 문제는 그 팬덤 때문에 기업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는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들을 어떻게 내 편으로 만들 것인가. 저자는 기업이나 제품, 유명인 등에 대해 형성되는 대중의 인식이나 기대를 '사회적 계약'이라 정의하면서, 이것이 형성되는 과정을 ①광신자(최초 가치 발견자) ②신봉자(평가한 후 지지하는 층) ③신도 집단(이미 입증된 물건이나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으로 나눠 설명했다. 핵심은 광신자가 아닌 신봉자 집단을 공략하는 것. 2011년 이집트 혁명의 과정에서 최초로 봉기한 것은 극단적인 과격주의자(광신자) 집단이었지만,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같은 인사(신봉자)들이 참가하면서 결국 일반 신도 집단의 합류를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애플 제품이 여러 단점에도 수많은 신봉자를 거느리는 브랜드가 된 것은 '최고감정책임자(Chief Emotion Officer)' 스티브 잡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애플의 신봉자들은 췌장암으로 사망한 스티브 잡스에게 일종의 죄의식을 느낀다고 한다. 잡스가 좀 더 위대한 발명품을 만들려고 노력하다 수명이 단축됐고 그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믿는다는 것. 경영자는 대중의 '감정'을 컨트롤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얘기다.

소셜네트워크 세상에서 팬덤은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시장을 원망하지 말고 팬덤을 이해하라"는 저자의 주문은 어느 분야에나 적용 가능하다. SNS 시대의 속도를 견디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읽어봐야 할 매력적인 책이다.

팬덤의 경제학
제레미 D. 홀든 지음, 이경식 옮김/책읽는수요일

믿습니까? 믿습니다… 여론을 움직이는 다소 위험한 숭배 '팬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방법, 팬덤
시장의 유령 '팬덤'이 소비자를 뒤흔들고 있다
[經-財 북리뷰] 팬덤의 경제학
팬덤(Fandom), 시장을 지배하는 새로운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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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 ‘자기희생’, ‘강제 노동’, ‘무보수 노동’, ‘스펙 쌓기’ 등 자원봉사에 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생활 속 사회 참여로서의 자원봉사를 강조하는 책이다. 오랫동안 반핵·평화·금융·환경 등 다양한 NGO 활동에 참여하며 좌충우돌한 저자 다나카 유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언어로 자원봉사의 이모저모를 이야기한다. 자원봉사를 망설이게 되는 의심과 편견에서 출발해, 활동하면서 빠지기 쉬운 함정과 모순을 살펴보고, 자원봉사를 개인적인 불행이나 선의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파악해야 한다는 다른 접근법을 제안한다.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원봉사 방법을 소개하기 전에, 자원봉사를 매개로 세상을 대하는 시각과 태도를 근본적으로 고민하도록 만드는 힘이 이 책의 최대 미덕이다.

저자에 따르면 자원봉사는 ‘자발적으로 돕는 것’이므로 정말로 자신이 좋아서 해야 하며, 마지못해 하게 된다면 금방 지치게 되고 상대방에게도 실례가 된다. 처음에는 칭찬받고 싶다는 마음처럼 ‘불순한’ 의도로 시작해도 괜찮지만, 계속해 나가면서 상대방의 입장에 서야 하고, 마침내는 나와 상대방 사이에서 자기 나름의 균형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한층 깊이 생각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자원봉사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자원봉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차가운 사람’인 것은 아니다”며 ‘자원봉사 하지 않을 자유’를 존중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나아가 책은 실제로 활동하면서 겪게 되는 모순에 대해서도 꼬집는다.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하는 빈 캔 줍기, 쓰레기 치우기 등은 사실 음료회사를 위한 무보수 노동이고, 외양만 깨끗해진다고 해서 근본적인 환경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매섭게 지적한다. 애초의 선의와 다르게 문제를 일으키는 자원봉사의 사례도 줄줄이 제시한다. 행사 스태프나 도서관 자원봉사에서 자원봉사는 ‘무보수’라는 의미로 쓰이며 정규직원을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 해외 아동 일대일 후원은 지역 사회에 불평등을 낳고, 헌 옷 보내기는 개도국의 공업화를 가로막는다. 난민캠프 지원은 캠프 바깥의 농민들이 역차별을 받게 되는 일을 초래하며, 재해 자원봉사는 남이 의존하는 데 만족감을 느끼는 봉사자와 의존심이 강한 피해자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처럼 책은 자원봉사를 둘러싼 장밋빛 환상을 벗겨 내고 구체적인 자원봉사 활동을 둘러싼 문제와 한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그리고 독자에게 이런저런 고민을 함께 나눌 것을 제안한다.

자원봉사를 중심에 두고 우리의 삶과 세상에 대해 요모조모 생각하며 읽어나가다 보면, 마지막에 부록인 ‘참 쉬운 자원봉사 활동 가이드’와 만나게 된다. 부록은 “방학 동안에 봉사 활동을 하려고 하는데, 마땅히 할 곳이 없네요.” “그동안 점수 채우기에만 급급한 것 같아요. 이제부턴 형식적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꾸준히 봉사 활동을 하고 싶은데,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등의 의문에 대한 실용적인 팁을 제공한다. 일본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의 사례가 곁들여진 부록을 참조하면, 자원봉사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을 듯싶다. 만화가 소복이가 책 곳곳에 재치 넘치는 일러스트레이션과 카툰을 그렸다. 정치학자이자 풀뿌리 시민운동가 하승우는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이 책의 의미를 분명하게 되짚어 줄 만한 해제를 덧붙였다.

자원봉사도 고민이 필요해
다나카 유 지음, 김영애 옮김, 소복이 그림, 하승우 해제/돌베개

자원봉사 마냥 ‘착한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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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자레인지의 유해성에 대한 걱정이 온라인을 휩쓴 것을 보았다. 그것은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좀비처럼 유서 깊은 도시 괴담이라 새삼 놀랄 것도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자파가 몸에 해롭다는 주장에 더해 전자파로 조리한 음식은 유전자가 조작되므로 몸에 나쁘다는 주장까지 붙었기에 신경이 쓰였다.

이 진술은 논리적 구멍이 너무 많아서 이 자리에서 다 따질 수 없다. 겨우 물 분자를 진동시킬 만한 에너지의 전자파는 유전자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게 가능하다면 전자기기에 둘러싸여 살아온 21세기 인류는 지금쯤 돌연변이 발생률이 치솟았을 것이다. 머리를 넣고 돌리지 않는 한 차폐 장치 너머에서 벌벌 떨 이유가 없다. 그럴 리 없지만 혹 식품 유전자가 변형되더라도 그것이 몸에 어떻게 나쁜가는 또다른 문제인데, 말했다시피 얘기하자면 한이 없다.

나는 유독 전자레인지에 대한 낭설에 속이 끓는다. 잘못된 생각 때문에 편리한 기술을 포기하고 번거로운 방식으로 조리하는 사람들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무의미한 가사 노동을 가중하여 안 그래도 피로한 사람들에게 헛수고와 죄책감을 더하는 것은 죄질이 나쁘다.

과학 정보 감별법을 알려주는 책은 무조건 소개하고 싶은 게 그 때문이다. 여기에도 고민이 있다. 사람들은 ‘그래서 써도 돼, 말아?’라고 묻는다. 이때 ‘써도 돼’라고만 답하면 일단락은 되겠지만 바람직하지 않다. 과학은 헐거운 부분을 채워가며 진전하는 과정이다. 현재 덜 밝혀진 잠정적 결론은 훗날 뒤집힐 가능성도 있다. 그때 가부로 결론만 들었던 사람은 오히려 과학을 불신할 수 있다. 또 이미 망상에 빠진 사람에게는 반박 근거를 내밀어도 소용없다는 문제가 있다.

<과학 이야기>를 펼쳐두고 나는 그런 답답한 생각에 빠졌다. 과학에 대한 몇몇 오해와 음모론을 까발린 이 책은 만화라서 좋고, 동종 요법이나 정통파 카이로프랙틱처럼 서양에서 활개치는 유사 치료법의 실태를 알 수 있어서 좋다. 종합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킨다며 접종에 반대하는 ‘음모론’은 우리나라에서도 꽤 문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지은이의 이런 말. “이 책은 과학과 비판적 사고를 옹호하지만, 뛰어난 과학자들을 무조건 추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나는 과학계를 홍보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과학적 절차는 믿고 의지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전구에 불이 들어오지도, 휴대전화가 작동하지도, 인공위성이 지구 주위를 돌지도 않을 것이다.”

대릴 커닝엄의 만화 <정신병동 이야기>도 함께 나왔다. 지은이는 정신병동 간호조무사로 일한 경험을 토대로 자해, 정신분열, 양극성 장애, 우울증 같은 대표적 정신질환에 대한 흔한 편견을 반박했다. 두 책 모두 주제마다 짧은 동영상 한 편씩을 보는 것처럼 일별한 구성이므로 독자에 따라서는 정보가 적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 경우에는 자신이 올바른 상식을 제법 갖고 있음을 자찬하며 아직 모를 것 같은 친구에게 책을 건네기 바란다.

그러고 보면 그 정도가 한계일지도 모른다. 과학의 권고를 듣지 않기로 이미 결정한 사람에게는 이런 만화를 읽힐 도리가 없다. 다만 견해가 굳지 않은 사람, 최소한 ‘전자레인지가 정말 나쁘냐?’고 확인하는 사람에게는 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책을 어디 대기실, 미장원, 교실 같은 데 슬그머니 놓고 오고 싶다.

과학 이야기
대릴 커닝엄 지음, 권예리 옮김.해설/이숲

만화로 까발린 과학에 대한 헛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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