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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3년 11월 1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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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유대인 매체인 ‘주이시저널’은 총 6명의 유대인이 올해 노벨상의 주인이 됐다고 최근 보도했다. 현재 유대인은 전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역대 노벨상 수상자 중 유대인 비율은 약 22%에 이른다.

책에 따르면 오늘날 지구촌에서는 하루에도 수천 번씩 유대인의 이름이 불리고 있다. 페리에 생수와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에스티로더, 헤레나 루빈스타인 화장품, 비달사순 샴푸, 리바이스 청바지, 코닥필름, 샘소나이트 가방 등이 그것이다.

책은 유대인의 창의성의 비밀을 파헤치면서 정보기술(IT), 영화산업, 관광산업 등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는 분야에서 활약하는 유대인들에 주목했다. ‘베스트(Best)는 단 한 명뿐이지만 유니크(Unique)는 모든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유대인 부모들이 공통으로 가진 신념이다.

유대인의 또 다른 힘은 ‘후츠파’(대담성)다. 이 같은 요소들은 유대인들이 IT와 영화산업 등에서 다른 창의력을 과감하게 활용하는 원동력이 된다. 공격적일 정도로 주변 사람들에게 질문을 퍼붓는 유대인들의 왕성한 호기심과 교육문화가 뒷받침돼 있음은 물론이다.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 대부분이 문맹이었던 기원전부터 모든 성인남자들이 글을 깨쳤을 정도로 시대를 초월한 엄청난 경쟁력을 갖고 있었다.”

책에 나오는 말대로 유대인들은 탄탄한 지식 경쟁력을 무기로 전 세계 주요 나라에서 파워 엘리트로 성장할 수 있었다. 책은 어릴 때부터 독서와 토론을 통해 창의성과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훈련을 받아온 유대인이 결국 다방면에서 우수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상황에 주목했다. 유대인 교육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부모들이 아이를 부모의 종속물이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 여긴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스라엘에서는 엄마가 유대인인지 여부가 유대인 판정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아이가 태어나서 만나는 첫 교육자가 엄마이기 때문”이라고 썼다.

유대인은 민족 자체를 하나의 대가족으로 생각하며, 유대인들이 태곳적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커뮤니티와 서로 도와 사업을 함께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공동체 의식 덕분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정부가 역점을 둔 창조경제와 관련해서도 자유와 경쟁이 보장되는 풍토와 함께 “실리콘밸리와 이스라엘의 벤처 생태계를 제대로 배워 기업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대인 창의성의 비밀
홍익희 지음/행성B잎새

노벨상 단골 유대인, '유니크' 강조하는 밥상머리 토론이 비결
유대인 창의성의 비밀
베스트보다 ‘유니크’… 유대인 교육의 힘
[經-財 북리뷰] 유대인 창의성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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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 또 어떤 존재인가? 다소 해묵은 물음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80년대 학생운동권식 질문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제 이를 한 번 뒤집어 질문해보자. 미국에게 한국 또는 한국인은 무엇이었고, 어떤 존재였나?

미국에게 한국은 어떤 존재였을까

최근 출간된 <폭격-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아래 폭격)은 이러한 역(逆)질문의 계기를 제공하며, 독자로 하여금 이를 고민할 필요성을 던져준다. 우리에게 그간 미국은 은인이자 공산군의 불법 남침에 맞서 우리의 자유와 독립을 지켜준 우방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이러한 인식은 국가적 공식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이미 이승만은 1951년 3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민이 (미군 폭격에 의해) 자기 집이 파괴되는 것을 눈앞에서 보는 것은 무서운 일이나 그들은 그것을 묵묵히 참고 차라리 가옥이 파괴될지언정 적에게 나라를 뺏기어 독립된 국가에서 자유민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고 피력한 바 있었다.

이승만은 미공군의 폭격이 한국 민간인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기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국가주의적 논리를 덧씌어 그것이 '어쩔 수 없는 희생'임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현재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0년 이명박 정부 하의 진실화해위원회는 "미군에 의한 희생사건 상당수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한국전쟁 당시 한국이 공격을 받은 측이며, 국가의 존망이 걸린 긴박한 시기였다는 점에서 군사적 필요가 민간인 보호 규범 준수보다 더 컸다고 판단하였고, 이에 대부분 민간인 희생을 '부수적'인 피해"로 보기로 결정했다.

이를 보면 한국정부가 미국정부의 대변인이라는 느낌마저 준다. 한국정부가 자국민 보호의 의무를 방기한 채 미국의 행위를 미국 정부보다 더 옹호하는 행태는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당장 최근만 보더라도 그러하다. 박근혜 정권은 미 국가안전국의 도청 의혹이 제기되었음에도 침묵으로 일관하였고,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을 때도 이에 이의조차 제기하지 않았다. 한국민은 자국 정부를 신뢰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러한 국가적 공식 기억의 틀 속에서 기존의 연구들은 국제 정치 속 미국의 정책이나 전략적 의도에만 주목했지, 미국의 '군사적 행위'는 무시하였다. 그러나 1950년 이후 한반도에 거주하던 민간인들이 직면한 상황은 오히려 후자였다. 사회사 연구란, 다수의 사람들이 실제 체험했던 일이자, 그것이 사회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남긴 영향을 탐구하는 것이라 정의할 때, 종래 한국전쟁 연구는 김동춘 교수의 <전쟁과 사회> 정도를 제외하면, 이를 소홀히 하였다.

그런 면에서 <폭격>은 미국의 '행위' 그 자체에 주목함으로써 당시 미국에게 한국인은 어떤 존재였고, 남북 민간인들에게 미국은 어떤 존재였는지를 살펴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한국전쟁이 지닌 성격의 일면을 해명하는 데 매우 유효한 시각을 제시해준다.

'야만'이 지배한 한반도, 모두가 적이었다

저자는 한국전쟁기 미공군 문서를 남북한, 중국, 소련의 문서들과 비교 분석한 결과, 미공군 폭격 양상이 단계적으로 변화해가는 양상을 제시할 수 있었다. 개전 초기의 군사목표 정밀폭격 방침은―이마저도 사실상 수사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지상군 전선에 대한 근접지원작전 방침이 결정되면서 차츰 '육감'에 의존한 무차별적 대량폭격으로 변화하였다. 이는 남한지역 도시, 농촌마을, 교량 폭격과 민간인 살상으로 이어졌다. 이때 '흰 옷을 입은' 남한지역 민간인과 피난민, 마을들은 사실상 전부 적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1950년 11월 5일을 고비로 다시 한 번 크게 바뀐다. 중국군 개입으로 수세에 몰린 맥아더는 이미 예견한 '최악의 대량학살' 방침을 그대로 실현해버렸다. 즉 초토화작전의 결정이었다. 그간 미공군내 일각에서 주장하던 네이팜탄 사용이 마침내 실현됐다. 미공군은 네이팜탄을 소규모 촌락에까지 대량으로 투하하는 한편, 네이팜탄 투하 이후 화재를 진압하고자 나선 민간인들에게 기총소사를 퍼부었다. 그들은 한반도의 북쪽 지역을 조직적으로 소각해나갔다. 전후 북한의 반미주의는 이때부터 잉태되기 시작했다.

또 정전협상이 교착되자 미공군은 '항공압력전략'에 따라 폭격을 정치적 압력수단으로 정식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보급품 집적소를 폭격한다고 했지만, 기실 그것은 민간인 거주 지역이었고 집을 잃은 사람들이 거주한 토굴이었다. 또 벼농사지역을 침수시킬 목적으로 저수지를 폭격했고, 곡식이 익어가던 논밭을 폭격했다. 이러한 비인도적, 범죄적 폭격은 '죽이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

이상의 사실은 한국전쟁이 미국에게 있어 '한국인의 자유'와는 무관한 '그들을 위한 전쟁'이었음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 서술된 미공군의 폭격 양상 관련 대목을 읽으며 끊임없이 뇌리를 맴돈 생각은, '과연 미국이 자국 땅에서 벌어진 전쟁이라면, 이 정도로까지 폭격을 퍼부었을까'라는 점이었다. 그들에겐 흰옷을 입은 남북 민간인 모두가 '타자'였고, '적'이었다. 오로지 '기능주의적 전쟁기계'로 양성된 조종사들로선, 이 땅과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아무런 애정이나 책임감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적으로 '의심'되거나 향후 적이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설이라는 '느낌'이 오면 폭탄을 '소진'하고 돌아왔다. 그들은 자신이 투하한 폭탄이 '참혹한 생지옥'을 야기할 것이라는 점을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찍이 에릭 홉스봄은 <극단의 시대>에서, '총력전의 시대'에 접어들어 스위치 하나로 적을 살상할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의 야수성이 강화되었다고 설명했던 바, 한국전쟁기 미공군의 폭격은 이러한 통찰에 꼭 부합하고 있었다. 어쩌면 한국전쟁기 미공군의 폭격은 20세기 인간의 야수성과 야만성이 가장 집약적으로 표출된 사례 중 하나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20세기 한반도는 '야만성이 지배한 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국가는 그 '야만성'을 가리켜 '야만'이라 말하지 못하게 했다. 야속한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이제 이 땅의 사람들은 높은 빌딩과 아파트 숲 속에 살며 불과 60년 전 이 땅이 겪었던 야만적 경험을 완벽하게 망각해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세월의 야만성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망각의 순간,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과거를 직시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 위에 평화의 가치가 확고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한국전쟁을 보는 시각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 즉, '국가주의적 관점'을 벗어나 '인민의 관점'으로 전환해나가야 한다. 인민은 국가주의적 논리에서 탈피해 자신의 입장에서 전쟁을 반대하고, 그것이 지닌 야만성에 반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시각 전환 없이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시각 교정'의 계기를 던져주는 책이다.

폭격
김태우 지음/창비

느낌'만으로 폭탄 투하... 이래도 미국은 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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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슬레 · 크래프트 · 나비스코 · 코카콜라 등 세계 굴지의 식품기업 CEO들이 지난 1999년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한 건물에 모였다. 가공식품이 국민 건강을 위협한다는 소비자 비난이 거세지자 대응책을 찾기 위해서였다. 초조한 분위기였지만, 예외적으로 두 사람만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소금 · 설탕 · 지방을 만드는 카길과 테이트라인의 CEO들이다. 두 사람은 어떤 신제품이 개발되든 그들이 제공하는 소금 · 설탕 · 지방을 재료로 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공식품회사는 '저지방 식품'을 개발했다고 선전한다. 그건 "지방 대신 설탕과 소금을 많이 넣었다"는 뜻이다. '소금을 줄였다'면? "짭짤한 맛을 포기한 대신 설탕과 지방 비율을 늘려 소비자를 잡아둔다"이다. 뉴욕타임스 탐사보도 기자인 저자는 식품기업들이 이윤을 위해 소비자의 건강을 배신하는 다양한 사례를 풀어놓았다. 햄버거에 들어가는 살코기 패티의 유통과정은 병균에 감염되어도 재료 공급자를 색출할 수 없게 돼 있다. 햄버거용 패티도 대장균 검사를 받기는 하지만, 도축장별로 검사를 받지 않고 고기를 한데 뒤섞은 뒤 검사하도록 도축업자와 식품가공업체가 계약했기 때문이다. 고기에서 문제가 발견될 경우 대장균의 출처를 찾지 못하게 하는 '고기 세탁'이 목적이다.

소비자의 혀를 사로잡는 맛을 개발하는 연구는 '현대판 연금술'이다. 이 연금술은 지방의 식감 개선을 위해 지방 입자의 분포와 모양을 바꿔 자연상태에는 없는 지방을 만든다. 소금을 가루로 빻아 먹었을 때 더 강하고 신속하게 미각을 자극할 수 있도록 소금의 분자구조를 바꾸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과학적 연구 결과에 대한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도 마다하지 않는다. 가공식품 기업들은 뇌에 대한 해부학적 연구를 통해 단맛이 코카인을 흡입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뇌를 흥분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한 아이스크림 제조업체는 이를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행복해진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는 문장으로 바꿔 마케팅에 활용했다.

저자는 식품기업들이 경쟁하는 사이 식품의 본질적 가치를 잊어버렸다고 꼬집는다. 그러나 "자연 식재료로 돌아가라"고 외치는 근본주의자는 아니다. 오늘날 가공식품이 식탁을 지배하게 된 것은 맛과 함께 '편리한 조리법'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는 가사노동 부담을 줄이고 사회활동을 늘려가는 현대 여성의 욕구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현대성의 한 단면이란 사실도 지적한다. 가공식품을 통해 들여다본 현대문명 진단서로 읽어도 좋은 책이다. 원제는 '소금 설탕 지방(SALT SUGAR FAT)'

배신의 식탁
마이클 모스 지음, 최가영 옮김/명진출판사

우리 애들도 설탕-지방 중독자?
비만 부추기는 가공식품… 설탕·소금·지방으로 나눠 낱낱이 해부
저지방 식품 = 소금 · 설탕 더 넣은 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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