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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3년 11월 4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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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도 자살한다. 세포자살(apoptosis)은 발생과 분화 과정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없애야 할 때, 또는 세포가 훼손돼 암세포로 바뀔 가능성이 있을 때 일어난다. 즉 더 큰 이익, 몸 전체를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사람의 자살은 사뭇 다르다. 자살자는 남은 이들에게 심대한 정신적 충격을 안긴다. 매우 극단적인 '공격'이다. 자살은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1897년 '자살론'에서 "자살은 개인적인 요인이기보다 사회적인 사실 때문이다"라고 쓰기 전까지는 죄악으로 치부됐다.

지난해 한국에서는 1만4779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통계청과 경찰청의 자살률 통계는 일치하지 않는다. 사망신고서에 자살자의 사망 원인을 허위로 기재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땅에서는 자살과 그에 대한 발화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오늘날 자살은 당사자나 가족의 탓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모순과 얽혀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불편한 직시(直視)다.

조선시대에는 먼저 죽은 남편을 따라 죽는 '열녀'가 속출했다. 김만중이 쓴 '사씨남정기'를 비롯해 17~19세기 고전소설에도 자살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조선 사람들은 '분하고 수치스러워서' 자기 목숨을 끊었다. 명예 자살이라고 할 만하다. 조선(대한제국)이 망하자 절명시를 남기고 죽은 선비도 많았다.

하지만 분(憤)이라는 코드는 1910년대 들어 점차 사라졌다. 이광수가 1918년 발표한 '방황'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나는 적막하다. 늘 춥고 늘 외롭다. 세상이 나에게 애정을 주는 것은 임종의 병인에게 캄프르 주사(생명 연장제)를 시(施)하는 것과 같다." 우울·염세·허무와 결부된 죽음 충동이 '나'를 화자로 상세히 기술된 적은 전에 없었다.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인 천정환은 "한국 근대문학은 새로운 죽음 충동과 함께 성립된 셈"이라고 썼다.

1920~30년대에는 실연(失戀)자살, 정사(情死)가 흔했다. 특히 정사는 일본에서 '수입'된 자살 형식이었다. 식민자들을 자살률 증가를 문명화로 해석했다. 1980년대부터 IMF 경제 위기 전까지 자살률은 식민지 시기보다 낮았다. 천정환은 "한국이 으뜸 자살 공화국이 된 것은 2000년대 이후의 일이며 노무현·이명박 정부가 거기에 '협력'했다"면서 재벌 중심 경제와 신자유주의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우리는 '자살 생존자'로서 자살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한다. 자기계발 열풍과 자살을 연결한 대목이 흥미롭다. 우울증 진료 건수는 2007년 248만건에서 2011년 344만건으로 40% 가까이 치솟았다. 천정환은 "늘어난 정신과 치료는 영혼과 정신을 포함한 자아의 총체가 의료 대상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해석한다. "자기계발 담론은 개개인의 삶을 사업(기업)으로 대상화하고 혼자 져야 하는 책임의 부담을 엄청나게 키워놓았다. 처세와 자기 관리는 근대가 개막하고 난 뒤 지속돼 온 것이지만, 신자유주의의 심화가 그 모든 것을 더 심각하고 잔인하게 재구성했다."

우리는 각자도생의 사회에 살고 있다. 이 책은 계보학적 관찰을 통해 한국 사회의 어떤 문제점과 자살이 연관돼 있는지 살피는 한편, 자살 행동에 연루된 여러 가지 상황들을 분석한다. 강상중이 '살아야 하는 이유'에서 한국 사회를 향해 던진 질문과도 통한다. "일본에는 '죽더라도 폐는 끼치지 마세요'라는 메시지가 만연해 있다. 한국 사회는 정(情)이 강하고 연장자를 공경한다고 알려져 왔는데 지금도 그런가?"

누군가 자살했을 때 가장 참담한 것은 '무반응'이다. 어쩌면 그것이 잇단 죽음의 유력한 사회적 원인이다. 만연하는 자살에 대해 둔감해지는 마비 증상과도 같다. 저자는 마지막에 요즘 가장 읽히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을 인용한다. "우리는 죽지(die) 않고 죽음을 당한다(killed)." 정치적 입장이 선명한 책이지만 얕지 않다. 반대편에 있는 독자에게도 진지한 질문으로 다가온다. 두부같이 무른 실존, 자살에 대한 불충분한 애도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자살론
천정환 지음/문학동네

신자유주의에 저당잡혀 죽음에도 둔감해진 ‘자살 대한민국’
자살… 개인의 선택인가, 사회의 방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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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주변국을 동이(東夷)ㆍ서융(西戎)ㆍ남만(南蠻)ㆍ북적(北狄) 등 오랑캐라고 멸시한다. 이처럼 자신이 세상의 중심으로 자부하는 중국은 역사 뿌리를 신석기ㆍ청동기시대의 황하문명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황하문명보다 시대가 앞선 유적이 고조선의 요람인 요하 유역과 발해만 연안에서 대량 발굴됐다. 위기를 느낀 중국 정부와 학계는 1996년부터 '단대공정(斷代工程)', '탐원공정(探源工程)' 등을 통해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신화시대까지 역사를 끌어올리는 확대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런 중국 정부의 작업에 반기를 든 이가 나왔다. <삼국지연의>를 재해석한 <삼국지 강의> 등의 책을 펴내며 '이중톈 현상'을 불러일으켰던 이중톈(66) 전 샤먼대 교수가 36권짜리 <이중톈 중국사>의 1권에 해당하는 선조(先朝)편을 통해서다. 중국통사를 다룬 이 책을 올해 5월부터 분기별로 두 권씩 매년 8권의 속도로 2018년에 완간하겠다는 각오다.

이중톈은 삼황(복희, 여와, 염제)과 오제(황제, 전욱, 제곡, 요, 순)시대를 다룬 이 책에서 요와 순을 제외하면 모두 허구의 인물이라고 밝혔다. 중국 최초의 신 여와는 뱀이 아니라 개구리이고, 황제(黃帝)는 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황제족의 1대, 2대, 3대 족장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요와 순의 평화로운 선양 신화는 말짱 거짓말이란 사실도 밝혀냈다.

이중톈은 역사 서술을 일련의 '기호 해독'으로 간주한다. 마치 다빈치 코드를 해독하듯 중요 사안을 해부해나간다. 그에게 "여와와 덩샤오핑은 일종의 기호"이며 "여와는 원시시대를,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대표"한다. 즉 여와부터 덩샤오핑까지 쓴다는 것은 사실 원시시대부터 개혁개방시대까지 쓰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기호로는 삼황오제 등 중국의 신화와 전설시대를 대표하는 제왕 혹은 문화영웅이다. 이중톈은 그들을 실존 인물이나 상상의 산물로 보지 않고 그들이 속한 시대와 문화를 상징하는 기호로 간주해 그들의 이름, 이미지, 이야기에 담긴 함의를 추리한다. 이를 통해 그 시대의 문화의 진상을 온전히 펼쳐 보이겠다는 뜻이다.

예컨대 인류 공통의 여신으로서 이브가 모계 중심인 원시공동체를 대표한다면 여와와 복희는 그 권력이 부계 중심으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로서 씨족, 염제와 황제는 부락, 요와 순은 부락연맹을 대표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중톈이 서술하는 역사는 통사이지만 통사가 아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의 말을 빌자면 '카레즈'형식의 역사다. 카레즈란 척박한 땅을 일구고 사는 사막지대 사람들의 독특한 관개 수로다. 산비탈에서부터 밭까지 일정한 간격으로 우물을 파고, 동시에 우물 밑을 서로 연결하는 식으로 물길을 만든다. 이중톈의 역사 서술이 이와 똑같다. 한 시대의 특성을 보여주는 소재를 택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한 뒤, 그 다음 시대로 넘어가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찾는다. 결코 시시콜콜한 시대의 전모를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책을 읽다 보면 이중톈이 마치 내 앞의 강단에서 손을 휘젓고 침을 튀기며 역설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용이 학술적이되 서술은 발랄하게 유지할 것이다. 쉽고 발랄한 것이 학술적 엄숙함과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는 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중톈 중국사 1 : 선조
이중텐 지음, 김택규 옮김/글항아리

"삼황오제의 신화는 허구" 중국 정부·학계에 일침을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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