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는 한국에서 조기, 고등어와 함께 ‘3대 생선’으로 꼽혀왔다. 황태, 동태, 북어, 코다리 등 건조상태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있다. 그만큼이나 요리 방법도 많다. 제사나 고사상에 올라가고, 속담에도 등장할 정도니 한국인들에겐 전통적으로 아주 친숙하고 특별한 먹을 거리였다. 해방 전인 1942년 조선에서 명태의 전체 어획량은 22만톤에 이르렀다. 그러나 1950년 남한에서의 어획량은 연간 1만~2만톤으로 줄었다. 2007년엔 35톤이 되더니 이후로는 연간 1톤 미만으로 통계상 거의 의미가 없는 수준이 됐다. 이제 명태 대부분을 수입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0년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여오는 수산물 중 가장 많은 것이 명태였으며 2만4800톤에 이르렀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여기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일본의 학자이자 저널리스트가 근현대기 한일 생선교류의 역사를 좇았다. 그랬더니 당연하지만 놀랍게도 생선이 나르고 들여온 길에는 식민지와 분단의 역사가 고스란히 각인돼 있었다. 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과 일본에서 최고의 어류 학자로 꼽히는 두 인물의 삶과 연구를 통해 식민지배의 과거사가 양국에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다. 온화하게 물었지만, 그것은 식민지성과 근대성에 관한 통렬한 질문이며, 과거가 아닌 양국의 오늘과 내일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제기다.
다케쿠니 도모야스(竹國友康, 65)가 쓴 ‘한일 피시로드, 흥남에서 교토까지’이다. 저자가 찾은 2009년 부산 남항과 부산공동어시장의 풍경으로부터 시작한다. 부산 어시장은 ‘공설시장’과 ‘노천시장’의 두 가지 계열로 정리되는데, 그 역사 또한 일본의 조선침략사로부터 비롯된다. 공설시장 계열인 부산 남항의 부산공동어시장은 1889년 일본 자본인 ‘부산수산’이 남포동에 개설한 ‘부산어시장’을 모태로 한다. 노천 시장 계열은 1925년 부산어시장에 출입하는 조선 생선 상인이 결성한 ‘부산생어조합’의 시장으로부터 기원한다. 공설시장인 ‘부산어시장’은 주로 일본인들을 상대로 고급 어류를 팔았고, 노천시장인 ‘부산생어조합 시장’은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값싼 생선을 거래했다. 해방 이후엔 일제 강점기 일본을 비롯해 해외에 나가있던 100만명 넘는 한국인들이 부산의 부두에 내렸고, 생계가 막막한 그들이 밑천 없이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가 공터에 판자를 놓고 생선을 파는 것이었다. 이들이 모여 부산생어조합 시장을 잇는 노천의 자갈치 시장을 형성했다.
그렇다면 자갈치 시장의 명물인 ‘꼼(곰)장어구이’의 재료 먹장어는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저자는 19세기말과 20세기초의 옛 문헌까지 들춰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다. 한국에서는 일제지배로 먹고 살기 어려웠던 1930년대 중후반 부산과 울산 일부 지역에서 서민과 노동자들이 값싼 음식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일본의 이해와도 맞물렸다.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물자와 식량이 귀해지자 일본 자원연구소는 먹장어의 가죽과 살코기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먹장어 피혁제품 생산의 기업화가 시도되면서 경남 일대 해안과 일본 니카타현 근해에서 대규모 어획이 이뤄지고, 껍데기를 벗기고 남은 살코기의 식용도 더불어 촉진됐다는 것이 저자의 추론이다.
명태는 한국에선 민간신앙이나 속담의 소재가 될 정도로 각별하고도 친숙한 식재료이지만 일본에선 원래 먹지 않는 생선이었다. 17~18세기에 본격화된 조선의 명태어획은 원산을 중심으로 함경남북도와 강원도에서 이루어졌다. 19세기에는 고리대금을 겸한 조선의 객주 자본이 지배했으나 1920년대부터 일본 은행의 금융자본이 명태조업에 진출한다. 이와 함께 조선의 주낙, 자망 어획보다 월등한 기관 동력을 쓰고 바닥까지 샅샅히 훑어내는 일본 기선저인망이 명태잡이에 나선다. 일본엔 새로운 돈벌이 원천이었다. 그러니 어획량을 늘이는 데만 열중했다.
하지만 저자는 명태의 젖줄을 끊어놓은 것은 비단 일본의 식민지배 때문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한일을 막론한 남획과 남북분단, 기후 온난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일본은 동해바다 밑바닥까지 쓸어냈고, 이에 맞서는 조선 어업이나 어린 명태인 노가리까지 마구 잡았던 해방 후 한국 어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일본의 식민지배로 한국이 근대화됐다는 ‘근대화론’이나 이에 맞서는 ‘식민지 수탈론’ 모두를 경계한다. 결국은 둘 다 ‘개발논리’이며, 명태의 고갈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가속화한 대량생산 대량소비 체제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식민지성과 근대성의 극복은 ‘개발논리’의 반성으로부터 시작돼야한다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요지다.
식민지성과 근대성에 대한 반성은 한일 어류 연구의 두 개척자이자 거목이라 할 수 있는 정문기(1898~1995)와 우치다 게이타로(1896~1982)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정문기는 도쿄대 농학부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수산과에서 근무했던 당시의 엘리트 학자였다.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기업가 시부사와 게이조의 후원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어류 연구에 매진했고, 해방 후에도 농림부 수산국장과 부산수산대학교 학장을 역임했다. 1977년에는 정약전의 ‘현산어보’(‘자산어보’)를 현대어로 번역했고, 한반도의 어류를 집대성한 ‘한국어도보’를 완성했다. 어류 연구 공로로 문화훈장과 국민훈장을 받았다. 우치다 게이타로는 도쿄 농학부의 정문기 7년 선배로, 조선총독부 수산시험장에서 근무하며 일찌기 조선의 어류와 생태를 체계화한 탁월한 업적을 남긴 학자다. 그런데 그는 종전 직전에 일본으로 건너가는 바람에 자신의 총력을 기울였던 연구 자료를 모두 부산에 두고 다시는 한국땅을 밟지 않았다.
문제는 정문기의 ‘한국어도보’의 상당부분이 우치다 게이타로가 남긴 자료를 표절 내지는 도용했다는 의혹이다. 또 정문기는 해방 이후 조선총독부 근무 사실을 경력에서 누락했다. 반면, 우치다 게이타로는 이렇다할 고통없이 식민지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내세웠을 뿐 아니라 조선에 두고온 자료를 걱정할지언정 그곳에 사는 사람들, 자신이 직접 도움을 받았던 조선 어민들에 대해선 한번도 숙고하지 않았다. 저자의 근원적인 문제제기는 결국, 아무리 뛰어난 성과라도 일제의 조선 어류 연구란 철저히 식민지 개발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한일 피시로드’ 속의 일본인 저자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친근하다. 사람냄새가 난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성찰의 사유는 날카롭고, 통렬하다.
한일 피시로드, 흥남에서 교토까지 |
한일 피시로드, 흥남에서 교토까지
생선, 우리가 몰랐던 민간외교관
명태 어획량 1942년 22만t, 2007년 35t…도대체 무슨 일이
일본산 먹장어, 한국 서민요리 ‘꼼장어구이’ 된 사연은…
먹장어와 갯장어로 보는 한·일 생선교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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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음모론에 대한 관심은 유별나다. 천안함 침몰부터 세월호 참사까지 국가적인 규모의 사건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늘 정교한 음모론이 등장하고, 이를 퍼 나르는 포털사이트는 시끌시끌해진다. 출처가 불분명한 지라시가 국정을 뒤흔들기도 한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역설적으로 “사회학자로 ‘지금 이 땅’에 사는 것이 큰 행운”이라고 말한다. 21세기 한국 사회는 서툴거나 치밀한, 거칠거나 섬세한, 조촐하거나 광범위한 음모론이 차고 넘치는 사회기 때문이다. 2011년 중앙선관위의 디도스 공격이나, 2013년 국가기관의 광범위한 대선 개입 같은 터무니없어 보이는 음모론이 실제 사실로 밝혀지는 세상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음모론은 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그는 진단한다.
이 책은 ‘음모론자’라는 비웃음을 들을 각오로 사회학자가 한국의 음모론을 파헤친 부담 없는 인문서다. 두꺼운 학술서와 달리 이 책은 참고문헌 한 쪽 없이 236쪽의 날렵한 외모를 자랑한다.
저자는 막스 베버의 종교사회학, 그중에서도 신정론(神正論)과의 비교를 통해 음모론을 분석한다. 베버는 신정론이 기대와 현실의 간극을 문화적으로 채우는 노력이라고 밝혔다. 기대와 현실 사이에 생긴 간극은 고통의 발원지다. 신의 존재에 의거해 고통은 정당화되어 왔다. 하지만 그 종교와 정치가 무력해지자, 음모론이 찾아온 것이다. 음모론은 ‘필사적이고 절실한 물음이자 답변이며 기대와 현실의 간극을 상상으로 해결하는 방책’이다.
음모론은 또한 ‘죄인을 쫓고 책임자를 색출하여 고통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공정하지 못한 세상에서 내가 당하는 고통의 원인은 설명되어야만 하고 이를 책임지는 게 음모론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종교나 정치와 달리 음모론은 고통 자체를 없애주지는 못한다. 다만 그럴듯한 망상을 통해 곤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울 따름이다.
저자는 먼저 한 가지 오해를 풀고자 한다. 음모론을 믿는 것은 편집증자의 전유물이라는 오해다. 음모론자를 편집증자로 믿었던 학자들의 견해와 달리 오늘날은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 음모론의 힘이 커져가는 건 너무나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 국가기관의 전 세계 도감청과 같은 영화에나 나올 듯한 음모들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음모론은 더욱 강력한 종교가 되어가고 있다.
세상이 불확실해지고 불안전해질수록 음모론은 창궐한다. 테러, 경제 위기, 전쟁, 기후변화, 전염병의 창궐 뒤에는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다고 믿고 싶어한다. 아무런 이유 없이 당하는 무의미한 고통과 곤경은 엄청난 공포이자 혼돈을 불러 온다. 음모론만이 이해할 수 없는 세상사를 설명해 준다. 그렇게 음모론은 공포에 질린 사람들을 안정시켜 주는 ‘알약’의 역할을 한다.
저자는 우리를 조종하려는 음모가 존재한다는 강렬하고 체계적인 신념이 정치적 영역과 소설, 영화의 수준을 넘어 전 사회 영역으로 확대되는 것을 뜻하는 ‘음모론의 주류화’는 전 세계적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음모론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미국의 독립전쟁 당시 영국과 식민지 관료들을 겨냥한 음모론은 식민지인들이 독립의 열망과 당위성을 공유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혁명도 마찬가지였다. 정치 세력들은 물론 농민들까지 모두 나름의 음모론을 통해 세상을 관찰하고 이해하면서 뭉쳐 싸웠다.
음모론이 위험해지는 건 정치와 결합할 때다. 베버는 서로 경쟁하는 사회집단들이 신정론을 정치적으로 활용한다고 주장했다. 음모론 또한 사회집단에 따라 정치적 용도로 쓰인다는 점에서 이와 닮았다. ‘통치의 음모론’과 ‘저항의 음모론’이 공존한다는 애기다. 통치자는 자신의 책임을 음모집단에 전가해 통치를 수월하게 만든다. 홀로코스트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무기력한 약자들에게는 저항의 음모론이 힘이 되며, 분노를 해소할 대상을 제공한다. 결국 음모론의 세상에는 두 진영만이 존재한다. 적과 우리 편, 나쁜 놈과 좋은 놈.
정치 전략으로서 음모론은 세 가지 쓸모를 가진다. 지지자를 동원하고, 정적을 비난하고, 비판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하지만 음모론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는 사회는 ‘불신’이라는 헤아릴 수 없는 사회적 비용을 감당하게 된다.
저자는 ‘한 사회에서 음모론이 유행하고 음모론이란 딱지가 횡행한다는 것은 그 사회가 위기에 처했음을 보여 주는 징후’라고 일침한다.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묵살과 낙인과 탄압이 생기면 의혹과 불신과 음모론은 더욱 커진다. 더 커진 음모론은 더 큰 낙인과 탄압을 이끌어낸다. 악순환이다. 이런 곳에서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음모론의 유행은 그 사회의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는 결정적 증거다.
결말에 등장하는 음모론을 극복하는 법이 인상적이다. 루머와 음모론을 비정상으로 낙인찍지 말 것, 제시한 의문에 대해 탐사와 조사를 할 것. 깔아뭉개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으며 신뢰를 얻기 위해선 주어진 질문에 공정한 절차에 따라 답하라고 이 책은 조언한다.
음모론의 시대 |
당신이 믿는 음모론,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음모론’은 기대와 현실사이의 거리때문에 생겨났다
음모론 사회에선 두 진영만 존재… 적군과 아군
민주주의의 후퇴… 불안전한 세상… 음모론은 매혹적이다
음모론은 약자의 방패인가 강자의 창인가
한국 사회는 왜 음모론이 들끓는가
세월호 · 천안함 음모론 횡행…사회의 위기 징조
현대인은 왜 음모론에 끌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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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책을 읽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는 말인데, 애플은 그들에게 이제 종이기술이 퇴물이 되었다고 알리고 싶어 합니다. 결국 온라인에 없으면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안 그래요?”
동의를 구하는 건가 경고를 하는 건가. 이 몇마디가 둥둥 떠 있는 이곳은 시내 중심가의 애플스토어다. 잠깐 들여다볼까. 일단 산뜻하다. 거추장스러운 간판은 없다. 입구 양쪽에 블랙패널이 서 있고 그위엔 흰색 로고 단 두 개뿐. 안으로 들어서는 길은 랩톱과 데스크톱의 스크린으로 포장돼 있다. 누군가 마우스를 움직이면 경쾌한 아이콘이 튀어나온다. 이를 지나 아이폰, 아이팟, 디지털카메라의 산을 넘으면 대형스크린 앞에 개러지 밴드3, 파이널 드래프트, 심스2 같은 게임과 책 몇 권이 강처럼 흐른다. 판매사원은 그 산과 강 주위를 돌며 제품의 진가를 보여주려 안달이다.
그래. 여기는 디지털천국이다. 학교와 집, 회사, 또 쇼핑센터까지 통틀어 이처럼 ‘판타스틱’한 공간이 또 있겠는가. 여기선 두 종류의 세대만 존재할 뿐이다. 이미 빠진 세대와 곧 빠질 세대. 흥미로운 건 그 사이에 놓인 책 몇권이다. 앞의 ‘몇마디’ 인용은 그 아이러니한 상황을 이해시키려는 ‘친절한’ 지침이었다. 결국 애플스토어는 ‘책에 맞서고 있다’는 시위 중이었으니. 애플은 전시한 책 중 어떤 것도 판매하지 않고, 그렇다고 책을 살 수 있는 서점의 위치를 안내해주지도 않는다. 왜냐고? 아이튠스의 최신 업데이트를 살피는 이들에게 실물이든 사진이든 책 제목은 전혀 의미가 없으니까.
다 좋다. 어차피 핵심은 ‘디지털 대 아날로그’의 맞대결이 아니니까. 문제는 역사상 가장 세련되고 똑똑해 보이는 디지털세대의 ‘멍청이화’다. 한마디로 마우스를 쥐고 태어난 아이들의 손보다 비어버린 뇌가 심히 걱정된단 얘기다. 인터넷 연결망의 정예 멤버고, 다중작업의 선수, 복잡한 기기 속을 훤히 꿰뚫는 심미안을 가진 이들에도 빈곳이 있으니 지적 도약, 글로벌한 사고, 네티즌십의 결핍이 그거다.
디지털의 결정적 폐해를 조목조목 짚어낸 저자의 탄식이 깊다. 미국 국립예술진흥회에서 문화와 삶의 연구를 이끌어온 그는 업로드, 다운로드, 서핑, 채팅, 포스팅을 위해 철학, 문학, 사회, 인간을 내다버린 세대를 우려한다. 디지털혁명에 휘둘리느라 프랑스혁명사나 러시아혁명사는 없던 일로 치고, 정치사상은 뉴스캐스트에서나 보는 것이 됐으며, 정제된 책 속의 이론은 박물관으로 가야 한다고 여긴다는 거다. 게다가 마우스와 손가락에 힘을 싣느라 정신적 궁핍은 인식도 못한다. “인류가 그간 쌓아온 찬란한 유산을 영원히 잃어버릴 수 있다.” 저자의 염려는 인류 성찰의 끝에 닿아 있다. 물론 내막은 디지털을 좇는 ‘바보들의 행진’에 대한 맹비난이다.
▲디지털혁명은 위대한 ‘탈선’
“교황이 사는 곳은?” “영국이요.” “영국 어디?” “음. 파리요.” 미국서 행한 한 설문조사는 18~29세 중 56%가 평균 이하의 지식수준을 갖고 있다는 결과물을 냈다. 더 큰 충격은 50~64세가 22%였다는 것이다. 교황 사는 곳을 ‘영국의 파리’로 만들어버린 답은 당연히 젊은 세대에서 나왔다.
시작은 괜찮았다. 1980~90년대 경제·디지털혁명은 기적이었으니. 정보와 상품, 오락이 패키지로 쥐어졌다. 디지털을 입으면 재미가 생겼고 물질적 보상이 따랐다. 삐걱거린 건 진화가 탈선으로 변질되면서다. 외양만큼 정신에 대한 갈망도 커져야 마땅한데 국가와 사회조차 계몽을 잊고 있었단 말이다. 첨단으로 갈수록 간격은 더 벌어졌다. ‘미디어 사용이 미디어 사용을 야기’하면서다. 이른바 멀티태스킹이다. ‘첨단기기를 사용하느라 TV나 라디오 사용률이 줄어들 수 있다’는 가정은 가정으로 끝났다. 시청률과 청취율이 되레 길어진 거다.
▲민주주의 위기도 디지털혁명 탓
저자는 위기가 민주주의까지 덮쳤다고 확신한다. 미국 민주주의가 휘청이는 건 뿌리가 빈약한 지식·사고체계 탓이라고 했다. 결국 지적 빈곤이 화근이며, 배후에 디지털혁명이 있고, 이는 비단 미국에만 해당되지 않을 거란다. 민주주의를 어디 사상가나 이론가가 만들어내더냐고 반문한 건 민주주의는 엘리트가 아닌 지식을 갖춘 시민이 이끌었다는 강조를 위해서였다.
미래에 대한 경고가 과학·기술의 경쟁력에 한정되는 것도 저자의 불만이다. 멍청한 세대의 행진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이들에게 내일의 그림을 그려주는 게 최소한 스마트폰이어선 안 된다는 논지다.
▲디지털 탈출이 답…읽고 사색·토론해야
‘셰익스피어는 짜증나게 하고 디킨슨은 지치게 한다.’ 디지털혁명 증후군의 제1특징은 문서 혐오다. 한계는 100장이란다. 종이 100장 이상을 마주하면 디지털 마인드가 ‘떠나버린다’고 했다. 뾰족한 방법? 없다. 처음이 그랬듯 저자는 일관되게 디지털에 맞서는 종이를 들이댄다. 고급 문화를 오래 접하게 해 취향을 키우는 것이 최고의 교육이다. 하지만 팝문화가 이토록 끈질긴 생명력을 뻗친 상태에서 그런 취향은 쉽지 않다. 결국 방어책은 종이책을 읽고 토론·사색하는 거란다.
한 가지 더 있다. 지금 미친 듯이 몰두하고 있는 디지털이란 것도 사소한 갈등이 엉켜 붙은, 지나갈 혁명이란 걸 알아채는 거다. 그러니 남을 건 지식뿐인 거다. 이 미래를 위해 자못 심오한 의미를 붙였다. “그들의 시간도 곧 끝날 것이다. 습관은 계속될 거지만.” 어려워할 것 없다. 가능한 한 빨리 변화를 찾으란 얘기다.
가장 멍청한 세대 |
독서를 노골적으로 무시… 디지털 세대는 가장 멍청한 세대
첨단세대? 요즘 아이들은 가장 어리석은 세대
디지털혁명, '바보들의 행진' 이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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