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의 부고기사 스타일 분석
지금부터 사례로 드는 「뉴욕타임스」 부고기사들은 10 문단 이상으로 구성된 비교적 긴 글이다. 종이신문에 분량 제약이 있다면 온라인닷컴에서라도 얼마든지 시도해 볼 수 있다.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글도 흥미로운 기사가 될 수 있다. 「뉴욕타임스」 부고기사들은 대체로 고인이 생전에 한 인상 깊은 말들을 효과적으로 곧잘 인용하면서 그의 인생을 되짚어 보여준다. 고인의 삶에서 극적인 어떤 순간을 포착해 자세히 묘사하고, 주변인물들이 그에게 붙인 별명을 언급하는 방식으로 한 개인의 삶의 특징을 드러 낸다. 자칫 이력서나 경력 나열 중심이 되기 쉬운 밋밋한 부고기사 형식을 탈피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부고기사의 패턴을 나름대로 뽑아 간추려 본다.
① 기사 첫 문단에 고인이 인생에서 남긴 업적을 간명하고 인상 깊게 묘사한다.
—1995년 3월 12일 자, 도먼 치즈회사의 빅터 도먼 (Dorman) 회장 부고기사는 첫 문단이 “‘치즈 조각 사이에 종이를 끼워 넣은 슬라이스 치즈’를 발매해 미국 치즈시장을 바꾸어놓은 도먼 치즈회사의 빅터 도먼 회장이 별세했다”라고 돼 있다. 치즈 패키징 역사에서 종이를 끼워 넣는 방식으로 미국인의 치즈 구매 방식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을 평생의 업적으로 꼽아 그의 삶을 압축적으로 기리고 있다.
② 고인이 이름을 얻은 분야 그 뒤편에 숨겨진 시대적, 사회적 의미를 짚어낸다.
—2014년 1월 17일 자, 1940~50 년대 미국 인기 여배우이자 가수였던 실리아 가이스 (Guyse) 부고기사는 흑인 여배우로서 인종차별 장벽을 깬 점이 그의 인생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란 사실을 흥미롭게 제시하고 있다. “1952년 제트 (Zet) 매거진에 실린 그녀에 대한 기사의 헤드라인은 ‘백인 남편을 둔 흑인 여성’이었다. 거기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결혼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 같은 결혼이 성공하려면 지성과 이해가 필요하다. 그건 사랑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다. 스스로의 생각에 의지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말하고 생각하는 건 무시해 버릴 수 있어야 한다.”
—2014년 1월 21일 자, 세계적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Abbado) 부고기사는 음악과 정치에 대한 소신을 밝힌 어느 인터뷰를 인용하고 있다. “살다 보면 사람들은 어떤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당신은 음악가인데 왜 정치 이야기를 하느냐?’는 말은 이해하기 힘들다. 나는 이탈리아 라스칼라에서 파시즘 반대 콘서트도 했다. 어느 정당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으나 파시즘에 반대해 공산당 지지 투표를 한 적도 있다. 난 단지 자유를 추구할 뿐이며, 자유를 부정하는 모든 것에 나는 저항한다.”
③ 삶에서 가장 중요한 어떤 순간이나 열정을 쏟은 대상을 포착해 자세히 묘사한다.
—2014년 1월 15일 자, 캔자스 범죄탐정 켄 랜드훠 (Landwehr) 부고기사는 600여 건의 살인사건 조사를 담당한 그의 활약상 중 가장 이목을 끈 연쇄 살인범 레이더 (Mr. Rader) 체포 · 신문 대목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레이 더의 첫 희생자가 발생했을 때 랜드훠는 아직 20살도 안 됐다. 살인범이 자기도취에 빠지도록 전략을 짠 인물이 바로 그다. (중략) ‘나와 그가 서로를 쳐다본 첫 만남에서 레이더의 첫마디는 ‘헬로, 미스터 랜드훠’였다. 레이더는 플로피디스크 추적과 관련한 합법성의 경계를 자신한테 잘못 알려줬다고 벌컥 화를 냈다. ‘당신이 나에게 그런 거짓말을 하다니’하고 그가 물었다. 그러자 랜드훠는 이렇게 대답했다. ‘난 단지 당신을 꼭 잡고 싶었을 뿐이다.’”
④ 고인의 생애를 언급한 관련 책이나 언론매체 인터뷰 내용을 곧잘 인용한다.
—2014년 1월 15일 자, 금융 폰지 사기범 매도프 사태 해결을 주도했던 연방파산법원 법관 버튼 리프랜드 (Lifland) 부고기사는 어느 금융학자가 2006 년에 쓴 책에서 리프랜드를 ‘파산분야의 유명인사’로 묘사했다는 대목을 언급하고 있다. 파산법관이 ‘유명인사 (celebrity)’로 불린다는 점을 통해 그의 명성을 단박에 짐작할 수 있다.
—2010년 11월 28일 자, 「총알탄 사나이」의 코믹 배우 레슬리 닐슨 (Nielsen) 부고기사는 “1993년에 펴낸 자서전 ‘Naked Truth’에서도 그의 코믹한 개성을 살렸다. 자신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거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염문을 뿌렸다거나 한때 농담중독 때문에 재활치료를 받았다는 둥 코믹한 허구를 채워 넣었다”는 책의 한 대목을 따 와 닐슨의 캐릭터를 간명하게 드러낸다. ^gtqhw
⑤ 고인의 별명이나 종사한 직업과 관련해 흥미로운 일화를 언급한다.
—2014년 1월 10일 자, 레이건 시절 백악관 대변인 래리 스피크스 (Larry Speakes) 부고기사는 “그는 백악관 사무실에서 조용한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 그는 당시 점점 적대적인 질문 공세를 퍼붓는 출입기자들의 공세를 교묘히 비켜나갔다. 친구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은 거칠게 다루면 가시로 쏘아대는 ‘미시시피강의 메기’로 불렸다”라고 쓰고 있다.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도 나온다. “언젠가 그는 인터뷰에서 ‘1만 가지의 말하는 방식이 있는데 ‘노코멘트’를 제외하고 나는 9,999가지 방식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⑥ 기사 끝은 ‘유족으로 누가 있다’가 아니라 고인의 평생 직업과 관련된 내면의 코멘트로 마무리한다.
—2004년 1월 20일 자, 세계적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부고기사는 다음과 같이 끝맺고 있다. “아바도는 객석의 커튼콜을 받고 무대를 나갔다 다시 돌아오는 매너에 어색해했다. 1973년 인터뷰에서 그는 ‘예전엔 그렀어 나 요즘은 관객들에게 정중하려 애쓰고 있다. 나는 청중의 호응을 좋아한다. 청중의 반응에 무관심하다고 말한다면 그건 내 진심이 아니다. 하지만 고개 숙여 청중한테 답례하는 게 여전히 쑥스럽다. 나는 쇼맨 (showman)이 아니다.”
—2010년 11월 28일 자, 코믹 배우 레슬리 닐슨 부고기사는 낭만적 영웅 역할에서 코믹배우로 전환한 그의 배우인생을 이렇게 끝맺고 있다. “1988 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닐슨은 ‘연기자 생활 35년간 나 자신의 성격과 맞지 않는 연기를 해온 게 아닌가 조금씩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역을 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덧붙여, 부고기사를 고인이 별세한 다음 날짜에 반드시 실어야 하는 건 아니다. 꼼꼼히 더 취재해 며칠 시간이 지난 뒤에도 좋은 부고기사를 생산해 게재할 수 있다. 올해 88세로 타계한 가수이자 배우인 가이즈 (Guyse) 부고기사는 2014년 1월 17일 자 「뉴욕타임스」 종이신문 (A23면)에 실렸다. 사망한 날은 2013년 12월 28일이다.
-조계환, 「신문 부고기사 ‘스타일’을 만들자」, 『관훈저널』, 여름호
부고란의 주인공은 ‘고인’이다
「뉴욕타임스」 부고란의 주인공은 ‘고인’이다. “페드라 에스틸. 100년 4개 월 26일 만에 세상을 떠난 나의 어머니. 그녀의 따뜻한 미소와 아름다움은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감쌌다. 그녀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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