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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 나에 대한 마지막 소식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스스로 쓴 부고(訃告)문입니다.

 

“러셀은 한평생을 천방지축으로 살았고 그의 삶은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이었지만 일관성이 있었고, 이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19세기 초 귀족 출신 반역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신념은 기묘했으나 그의 행동은 늘 신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참조: 『인기 없는 에세이』, 버트런드 러셀, 「스스로 쓴 부고」) 

 

미국 뉴욕타임스는 3월 29일 인터넷 판에서 ‘유관순, 일제 통치에 저항한 한국 독립운동가’라는 제목으로 유관순(1902-1920) 열사를 추모하는 부고기사를 실었습니다.

​지금까지 부고기사에 백인 남성들에 관한 기사만 쓰느라 간과한 사람, 그중 주목할 만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실었는데 한국인 여성으로 유관순을 소개했습니다.

 

 

 

Overlooked No More: Yu Gwan-sun, a Korean Independence Activist Who Defied Japanese Rule - The New York Times

 

‘부고’(訃告) 또는 ‘부음’(訃音)이란, 상례가운데 한 절차로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글이나 통보를 말합니다.

​부고의 형식은 사망자의 이름, 사망원인, 사망연월일, 발송일자, 상주의 이름, 받는 사람의 이름을 씁니다. 요즘은 여기에 발인일자, 장지의 소재, 영결식 날짜 및 장소, 기타 사항을 명기합니다. (출처: 다음백과 ‘부고’ 중에서)

 

 

부고의 사회학 (한국 죽음기사의 의미구성) - 이완수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이처럼 ‘생물학적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러나 ‘사회학적 죽음’은 다르다. 죽음에 대한 미디어의 구성체계는 불공평하고 불합리하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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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수 교수가 쓴 『부고의 사회학』에 보면 부고기사는 17세기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돼 18세기부터 일간지에 실리기 시작했고, 20세기 초반에 소홀히 다루어지다가 최근 20년간 급격히 증가하고 있어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서는 신문의 주요 매출원이 되고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In Memoriam Patrick O’Donnell, 1884년, Library of Congress:London

 

한국에서의 부고기사는 일제 강점기인 1920년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처음 등장했다고 합니다.

 

​한국 부고기사는 고인의 이름과 그 유가족을 간략히 알리고, 사망일, 발인장소, 기간 그리고 연락처를 전하는 단신 부고기사나 또는 사회적 저명인사의 죽음에 대한 추모 형식의 부고기사가 특징이라고 합니다.

 

‘동아일보’ 1920년 4월 6일 자에 처음 등장한 부고기사는 전 판서 출신 이호석 씨의 소망소식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완수, 『부고의 사회학』, 도서출판 시간의 물레(2017), 251p)

 

전 판서 이호석 씨는 숙환으로 8일 통동 9번지 자택에서 별세하얏는대 14일 오전 10시 자택에서 발인하여야 선산에 안장하고, 십오일 오후 5시 수조(受弔) 한다더라.

 

그리고 최초의 광고형식 부고기사는 1920년 4월 12일 자 ‘동아일보’에 등장했고, 단신형이 아닌 이야기식 부고기사 역시 일제 강점기인 1920년에 등장했습니다. ‘조선일보’ 1923년 5월 20일 자에서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 소속인 김인전 씨가 별세했다는 제목의 최초의 이야기식 부고기사를 실었습니다. (위의 책, 252p)

 

한국노병회 소속 김인전 씨는 삼일운동 이후로 상해에 건너와 독립운동에 종사하다가 우연히 토혈병에 걸려 여생을 하던 중 지난 십이일 오전 열하시 삼십 분에 상해 동인의원에서 불행히 세상을 뜨다. 연결식은 상해 법계 삼일 당에서 거행하고...

 

부고기사는 한 사람에 대해 알리는 마지막 소식입니다.

​그래서 그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것을 기록하는 것은 대부분 본인이 아닌 가족 또는 가까운 사람, 그와 관계된 공동체이므로 보다 큰 사회적 맥락을 반영합니다.

 

​무엇보다 기억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통상적인 알림 이상의 역할을 하는 부고기사라면 더욱 그의 말과 행동 또 이미지에 대한 가족과 이웃, 사회의 기억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여러 가지 요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납니다. 일반적으로 누가 죽었느냐 또 어떻게 죽었느냐 그리고 그에 대한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차이를 보입니다. 크게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죽음의 대상에 따라 기억되는 내용에 차이가 있습니다. 죽음의 대상이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 기억의 유형과 기간이 달라집니다.

​특히 아이의 죽음에 대해서 부모가 가지는 아이에 대한 기억은 남다릅니다. 아이의 물건 하나하나를 보거나 만질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에 어쩔 줄 몰라하며 혼란을 겪습니다. 깊은 애착관계가 있었던 사람의 경우라면 그 기억은 더 오래도록 더 깊이 남을 것입니다.

 

다음은 죽음의 성격에 따라 기억되는 방식이 다릅니다. 대표적으로 자연사와 사고사의 경우가 다릅니다.

​사고사로 인해 크게 다친 시신을 마주한 경우 그 아픈 기억은 오래도록 이어집니다. 불쑥불쑥 떠오르는 미안함이 깊이 남습니다. 개인적인 죽음이냐 아니면 다수의 죽음이냐, 사고의 원인이 분명한 죽음이냐 또는 불명확한 죽음이냐에 따라서도 기억의 방식이 달라집니다.

 

‘슬픔의 초상들’(Portraits of grief)은 미국 뉴욕타임스가 2001년 9.11 테러 이후 준비한 기획보도입니다.

특별 페이지를 마련해 3천 명에 달하는 희생자들의 프로필을 가족이나 친구들이 남긴 짧은 문장과 함께 실었습니다. 9월 15일부터 시작되었던 이 작업은 3개월 이상 걸렸고, 12월 31일에야 ‘슬픔의 초상들’은 지면에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물론 온라인 추모페이지는 여전히 남아있는데, 이 기사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Portraits of Grief

Explore the “Portraits of Grief” archive — more than 2,500 impressionistic sketches of the lives lost in the Sept. 11 attacks. With videos by Matthew Orr of six families 10 years later.

archive.nytimes.com

 

 

‘GROUND ZERO NEW YORK’, Eric Salard/Wikimedia Commons

 

나라마다 부고기사의 특징이 있는데 미국은 고인이 일생동안 살아온 결과를 토대로 개인적 속성, 사회적 가치, 주변의 평가를 이야기 식으로 싣습니다.

​영국은 창의적인 구성에 중점을 두고 고인의 일화를 중심으로 묘사합니다.

 

​우리나라는 누가, 언제 돌아가셨고 그래서 어디에 빈소를 마련했으며 연락처는 어떻게 되는지 기록합니다. 그리고 영결식과 발인, 장지를 명기합니다.

​다만 유명인인의 경우에는 그의 과거 활동이나 최근의 근황 그리고 그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와 기억들을 담아내기도 합니다.

 

‘나에 대한 마지막 소식’, 그 소식이 어떨지 생각해 보셨나요?

다들 바라는 것은 많은 사람의 좋은 평판과 좋은 기억에 대한 회상들이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모두의 마음에 그런 마음이 있죠.

 

그런데 그렇게 거창한 부고기사나 공식적인 기시가 아니라 하더라도, 어느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나에 대해 소중히 기억해 준다면, 나를 나로서 생각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은 오늘 나의 삶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을 좋은 날로, 더불어 의미와 가치 있는 날로 채워가야 할 분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에 대한 마지막 소식-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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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자기의 부고기사를 써야하는 이유

죽기 전 개성 있는 부고기사를 남기기 위해 글쓰기 수업을 듣거나 전문가를 고용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자신이 자기의 부고기사를 써야하는 이유는• 막상 부고기사를 쓸 때면 가족이 고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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