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야수의 피를 지닌 한 시인이 영면했다 - 박남철



반응형

박남철(朴南喆), 1953년 11월 23일 ~ 2014년 12월 6일

 



야수의 피를 지닌 한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은 박남철.  
이성복, 황지우와 함께 1980년대 한국 해체시를 대표하던 인물이다.

1980년대는 리얼리즘과 민중시가 대세이던 시대였다.  
시가 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했고,  
문학은 윤리의 도구로 동원되었다.  
그런 시대에 그는 모든 금기를 정면으로 부수며  
시를 해체의 언어로, 불화의 선언으로 바꾸었다.

“이 좆만한 놈들이…” — 독자를 향한 도발

그의 시 「독자놈들 길들이기」는 제목부터 전투적이다.

 

 

독자놈들 길들이기  
—박남철 

내 詩에 대하여 의아해하는 구시대의 독자 놈들에게— 차렷, 열중쉬엇, 차렷, 

이 좆만한 놈들이……  
차렷, 열중쉬엇, 차렷, 열중쉬엇, 정신차렷, 차렷, ○○, 차렷, 헤쳐모엿!  
이 좆만한 놈들이……  
헤쳐모엿,  
(야 이 좆만한 놈들아, 느네들 정말 그 따위로들밖에 정신 못 차리겠어, 엉?)  
차렷, 열중쉬엇, 차렷, 열중쉬엇, 차렷…… 

—시집 『지상의 인간』(1984)에서


 
명령조의 리듬, 반복되는 훈계, 거친 욕설.  
그의 시는 독자에게 읊조리는 노래가 아니라,  
정면으로 겨눈 총성이었다.  
‘시인과 독자’라는 전통적 관계를 완전히 부정하며,  
“소비되는 시” 자체를 거부한 것이다.

누구도 독자에게 군기를 잡으려 하지 않았던 시절,  
그는 상식을 뒤엎었다.  
그 파격은 단순한 기행이 아니라  
당시 한국 문단을 지배하던 획일성과 위선에 대한  
본질적 저항이었다.

세상과 불화하는 시인

박남철은 자본과 제도, 도덕의 언어를 견디지 못한 시인이었다.  
그에게 세상은 언제나 위선으로 포장된 통속이었다.  
그는 그 통속에 타협하지 않았다.

세상과 부딪히며,  
냉소와 풍자로 자신을 지켜냈다.  
그에게 불화는 삶의 태도이자, 시의 원리였다.  
세상과 어울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세상과 어울리기를 끝내 거부한 것이다.

 


1
한 선수의 두 손을 묶어 놓고 권투 시합이 벌어졌다
손이 자유로운 선수가 묶인 선수를 이겼다

관중들이 열광했다

2
한 선수의 두 손을 묶어 놓고 권투 시합이 벌어졌다
묶인 선수가 손이 있는 선수의 불알을 걷어찼다
레퍼리는 게임을 중단시키고 불알을 걷어찬 선수의 불알을 더 힘껏 걷어찼다

―――이런 비겁한 자식, 게임의 기본적인 룰도 몰라?

 

「권투」 일부


부정의 자리에서 멈춘 사람

그러나 그의 시는 어느 순간 멈췄다.  
이성복과 황지우가 해체 이후 새로운 사유로 나아갔던 것과 달리,  
박남철은 ‘부정’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시는 여전히 “차렷, 열중쉬엇”을 반복했지만,  
그 목소리는 점점 메아리처럼 멀어졌다.  
시대는 변했지만, 그는 변화를 거부했다.  
그의 자존감은 스스로 만든 아이콘을 무너뜨리지 못했고,  
결국 자신이 부정하던 관습의 일부로 굳어버렸다.

해체 이후, 남겨진 여백

모든 아방가르드는 언젠가 전통이 된다.  
파괴가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면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고정관념이 된다.

박남철은 그 한계를 끝까지 밀어붙인 시인이었다.  
그는 세상과의 불화 속에서  
언어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갔지만,  
그곳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의 분노와 냉소, 그 치열한 불화 속에는  
언어가 진실에 도달하려는 마지막 몸부림이 있었다.  
그는 아름답게 사라지지 못했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문단의 한 구석에서  
불편한 빛으로 남아 있다.

시인에게는 여백도 시다.  
그 여백을 남기지 못한 채 떠난 그를,  
오늘 우리는 조용히 기억한다.

 

 

 

박남철 시인, 영면에 들다

박남철(朴南喆), 1953년 11월 23일 ~ 2014년 12월 6일 박남철 시인, 영면에 들다—문계봉 시인한 시대를 다소 거칠고 위악적인 모습으로(친한 지인은 격정적이라고 표현하겠지만...) 통과해 온 시인이

maggot.prhouse.net

 

 

 

[경일칼럼]'독자놈들 길들이기' - 경남일보

최근 야수의 피를 지닌 한 시인이 영면했다. 박남철 시인이다. 박남철은 이성복, 황지우와 함께 80년대 해체시의 선두주자로 평가되는 시인이다. 1980년대는 리얼

www.gnnews.co.kr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