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유성(全裕成), 1949년 1월 28일 ~ 2025년 9월 25일 (향년 76세)
코미디 대부, 개그계 스승, 1호 개그맨.
2025년 9월 25일 세상을 떠난 전유성은 느릿하면서도 촌철살인의 언변으로 온 국민을 웃기고, 수많은 희극인 후배의 존경을 받는 코미디언이었다.
1949년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태어난 그는 서라벌고등학교,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연출과를 졸업한 뒤 배우를 꿈꿨다.
탤런트 시험에서 4번 연달아 낙방한 뒤 TV에 출연하는 직업을 찾다가 코미디계 문을 두드렸다.
당시 인기 MC 겸 코미디언이었던 ‘후라이보이’ 곽규석을 막무가내로 찾아가 방송 원고를 써주는 일종의 희극 작가로 출발했고, 1969년 TBC ‘쑈쑈쑈’의 작가로 방송가에 본격 발을 들였다.
코미디언으로 주목받게 된 것은 KBS ‘유머 1번지’, ‘쇼 비디오 자키’ 등에 출연하면서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슬랩스틱 코미디같이 몸으로 웃기기보다는 곱씹어 생각하면 피식 웃게 만드는 특유의 촌철살인 개그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과거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외모 비하하는 개그를 나는 정말 못하게 한다”며 따뜻한 유머를 강조하고선 “뭐든지 웃기는 프로그램이면 개그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는 지론을 밝혔다.
전유성은 ‘개그맨’이라는 새 용어를 대한민국 최초로 사용한 사람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익살을 뜻하는 영어 단어 ‘개그(gag)’와 남자를 뜻하는 ‘맨(man)’을 합친 것으로,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개그맨 창시자’, ‘대한민국 1호 개그맨’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전유성은 KBS의 간판 개그 프로그램이었던 ‘개그콘서트’의 창립 멤버로, 1천회를 맞았을 때도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코미디언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공연기획자, 카피라이터, 작가, 교수 등 다양한 직업을 오가며 재능을 발휘했다. 요즘으로 치면 부캐(부캐릭터)가 많은 ‘N잡러’였다.
종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기상천외한 공연도 쉼 없이 선보였다.
2000년대부터 클래식 공연의 엄숙함을 깨고 성악가들이 코믹한 연기를 선보이는 ‘얌모얌모 콘서트’를 선보였고, 2010년에는 복날에 강아지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개나소나 콘서트’를 내놔 화제가 됐다.
그가 참여한 공연 가운데는 유독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는 경우가 많았다.
2011년에는 경북 청도군에 국내 최초 코미디 전용 극장인 철가방극장을, 이듬해에는 아시아 최초 코미디 축제인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을 여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평소 후배들에게 책 읽기를 독려했던 전유성은 다양한 저서를 써낸 작가이기도 하다.
‘전유성의 구라 삼국지 세트’ 10편 시리즈부터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 ‘나이 먹은 전유성도 하는 일본어’, ‘아이디어로 돈 벌 궁리 절대로 하지 마라’, ‘견디지 않아도 괜찮아’ 등 분야를 넘나들며 책을 썼다.
가장 최근인 2023년에는 에세이 ‘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을 내놨다.
이 에세이의 한 구절을 보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던 전유성의 태도가 엿보인다.
“말이 느리면 빨리하라고 하고, 빠르면 느리게 하라고 하는 게 맞을까? 느리면 더 느리게 해봐 이게 더 맞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생각엔 느려야 더 빛나는 사람이 있다.”
[영상] '1호 개그맨' 전유성, 폐기흉 악화로 별세…연예계 추모 물결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대한민국 개그계를 대표하는 '촌철살인의 입담'의 주인공 전유성 씨가 25일 별세했습니다. 향년 7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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