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장관, 회장의 별세만 특별할까… 미처 몰랐던 보통 삶의 비범한 희망
[프롤로그] 「비로소, 부고」를 시작하며
오래된 사망 기사 들고 전국 헤맨 까닭
떠난 이 곁에 남은 따뜻한 기억 조각들
고인을 기리는 기억의 조각, 그 곁을 치열하게 마주한 뒤 비로소 전하는 느린 부고. 가신이의 삶엔 어떤 이야기가 남아 있을까. 별세, 그 너머에 살아 숨 쉬는 발자취를 한국일보가 기록합니다.
‘죽음은 공평하다’는 말은 틀렸다. 누구나 생명을 잃는다는 얕은 사실을 걷어내면, 별세의 순간은 천차만별의 표정으로 온다. 어떤 이별은 축복 속에 천천히, 어떤 사망은 부지불식간에 닥친다. 각 마지막은 선택적으로 기억된다. 유명세나 직위, 사망 과정에 따라 타계, 선종, 서거와 별세, 사망, 참변으로 갈린다.
죽음에 관한 사회적 기록인 부고기사는 어떨까. 중앙일간지 9개 매체(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가 2023~24년 각 사 웹페이지에 실은 부음 공고(약 4,783건) 및 부고기사(약 4,451건)를 분석한 결과, 각 매체는 연평균 약 266건의 부음 공고와 약 247건의 부고기사를 게재했다. ▲부음 공고는 사망자와 유족 이름, 빈소 등을 알리는 짧은 알림 ▲부고기사는 고인의 삶을 쓴 기사문을 말한다. 2023년 국내 사망자가 약 35만 2,700명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약 0.07%의 별세만이 부고로 기록된 것이다.
기록의 기준은 어땠을까. 자주 언급된 주요 어휘는 대통령, 회장, 미국, 서울, 교수, 활동, 대표, 명예, 영화, 배우, 졸업 등이다. 고인의 직위와 업적 중심으로 기록 여부가 결정됐거나, 고인의 남다름을 확인할 때 대통령과의 인연이나 대통령의 조위 여부를 앞세웠던 결과다. 대통령을 빼면 자주 나온 직업 및 직책은 회장, 교수, 대표, 배우, 가수, 감독, 장관, 작가, 총리, 이사장, 박사, 목사, 시인, 의원, 위원장, 원장, 위원, 총장, 변호사 순이었다.
시의성, 화제성, 저명성 등에 따라 보도를 선별하는 건 불가피하다. 하지만 부고는 한 편의 짧은 회고록이자, 죽음에 대한 사회적 기록이다. 가치 있는 삶의 본질을 시사하는 인생의 교과서로써 기능도 한다. 갈수록 생의 갈피를 잡기 어려워지는데도 우리가 쥔 교과서는 지극히 얇고 점차 편협해져 간다.
한국일보는 2014년부터 ‘가만한 당신’ 연재 기사로 더 알려졌어야 하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주로 인권과 자유 등을 위해 헌신한 해외 인물의 느린 부고를 장문으로 담고 있다. 이번에는 ‘비로소 쓰는 부고’를 전하려 국내로 눈을 돌렸다. 기록하기 충분했으나, 그러지 못했던 이들 곁에 남은 기억을 조각조각 길었다. 특별히 이름난 이가 아니어도 귀감이 되거나 물음과 숙제를 남기는 생애를 복원했다. ‘40대 가장, 고속도로에서 남을 돕다 안타깝게 숨져’로 잊힐 뻔한 의사자 곽한길 씨와 그 곁의 이야기처럼. 더불어 당신의 택배를 배달하다 과로사한 정슬기 씨, 탈시설 장애인 활동가 김진수 씨, ‘열무와 알타리’ 웹툰 작가 유영 씨, 대안학교인 양업고 설립자 윤병훈 베드로 신부까지. 선별은 고됐지만, 시선을 보다 넓히려 애썼다.
제삼자 다수로 교차 확인한 팩트를 담은 기사는 하나하나의 프로파일(Profile·인물탐사)이다. 곁에 있던 증인들과 고인의 삶을 돌이켜, 삶의 본질을 물색한 잠정적 응답이기도 하다. 인간은 무엇인가. 왜 남을 도울까. 누구에게 사랑받고, 누구를 사랑하는가. 이별은 어떻게 애도하는가. 넘치는 절망 속에 그들은 왜 희망이란 불치병을 앓고 있는가.
고인을 떠나보낸 이들은 공히 이를 곱씹는다. 짧지 않은 시간, 생애를 이룬 결정적 장면과 결정적 증인을 찾아 헤맸는데 난관도 많았다. 차마 다 전할 수 없는 희로애락은 물론 고인 곁으론 어느 하나 눈부시지 않은 나날도, 생도 없었다. 이 좌충우돌을 통해 비로소 확인한 부고를 전한다.
가만한 당신, 못다한 말
“(길게 읽고 오래 생각할) 긴 부고가 필요한 까닭”어떤 이의 죽음을 맞아 그의 삶을 알리고 기억하려 쓰는 글을 부고라 한다. 죽음은 모두 같지만 그곳에 이르는 삶은 각기 다르기에, 남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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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 중에 덜 유명한 인사’ 부고기사 쓰는 기자
한 줄 ‘부고 단신’ 아닌… 사연·업적 남긴 이들 발자취 조명 “○씨 별세, ○씨 부친상=○일, ○장례식장, 발인 ○일 ○시. ☎️ ○○-○○-○○”언론사 기사 등을 통해 흔히 접하는 부고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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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장관, 회장의 별세만 특별할까…"미처 몰랐던 보통 삶의 비범한 희망" | 한국일보
'죽음은 공평하다'는 말은 틀렸다. 누구나 생명을 잃는다는 얕은 사실을 걷어내면, 별세의 순간은 천차만별의 표정으로 온다. 어떤 이별은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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