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마지막까지 존엄을 기록하는 저널리즘
—미국 신문 부고기사의 형식과 철학
미국의 신문 부고는 철저히 망자 중심으로 쓰인다.
그것은 단순히 사망 소식을 전하는 기사가 아니라, 한 개인의 생애를 기록하는 보도의 한 형식이다.
언론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미국식 답안이라 할 수 있다.
망자는 어떤 사람이었나
부고의 첫머리는 망자의 가족관계로 시작한다.
누구의 아들이거나 딸이고, 누구와 결혼했으며, 몇 명의 자녀와 손자, 증손자가 있는지까지 구체적으로 기술된다. 이름이 하나하나 언급되는 경우도 많다.
그다음에는 학력, 경력, 취미가 이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인사기록표나 이력서의 나열이 아니다.
기자는 망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포착해 삶의 온도를 전한다.
팬차리 부인은 헌신적이고 애정이 많은 부인이었으며 자상한 어머니, 할머니였다.
그녀는 늘 가족과 친구를 위해 요리하고, 빵과 쿠키를 굽는 일을 즐겨했다.
더글러스씨는 가족을 사랑했으며 특히 손자들을 각별히 아꼈다.
그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 ‘주니어 보우이’와 애완동물 ‘찰로에’가 있었다.
미국의 부고 기자는 ‘공적 사실’뿐 아니라 ‘사적 진실’을 함께 기록한다.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식의 이름, 평생 미혼으로 살다 간 노인의 취미,
전·현 배우자와 의붓자녀까지 포함한 가족 관계—
이 모든 것은 한 사람의 삶을 완전하게 전하려는 저널리즘의 예의다.
망자의 일상과 여가
미국의 부고는 망자의 일상과 취미를 빠뜨리지 않는다.
터렐씨가 골프와 목공을 즐겼다는 기록,
스트릭클러 부인이 교회 성가대 지휘자이자 오르가니스트로 25년을 봉사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그 사람의 여가활동이 곧 삶의 리듬이며, 인격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생전의 업적과 직업윤리
군인 출신의 부고는 복무 이력과 훈장을 명시한다.
리온 F. 그레이씨는 27년간 복무하며 2차 세계대전, 한국전,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브론즈 스타’를 받았다.
마셜씨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 복무를 자랑스럽게 여겼다는 문장이 따라붙는다.
이 문장은 단순한 전력 소개가 아니라,
‘그가 어떤 가치관으로 일했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보여주는 한 줄의 취재다.
죽음의 순간까지 보도의 대상
미국 부고에는 망자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도 기록된다.
어네스트 갤로씨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잠들었다.
메노티씨는 고통 없이 평화롭게 내 팔에서 영면했다.
죽음의 정황을 전하는 문장은 선정적이지도, 과장되지도 않다.
기자는 ‘마지막 장면의 사실’을 존중하며, 그것을 있는 그대로 남긴다.
부고가 전하는 유언
향년 96세로 사망한 에밀리 T. 클라크 부인의 부고는 한 편의 시로 시작된다.
그녀가 남긴 말은 이렇다.
내 무덤에 와서 울지 마라
나는 거기에 없고 잠자는 것도 아니다
나는 수천 개의 바람이 되어 날고 있을 것이다
…
나는 거기에 없고 죽은 것도 아니다.
이 시는 단순한 인용이 아니다.
기자는 한 사람의 마지막 언어를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그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독자에게 전한다.
부고는 그렇게 개인의 언어를 공적 기록으로 바꾼다.
시신과 조의금, 그리고 ‘죽음 이후의 선택’
폴 I. 롤러씨는 시신을 의학 연구용으로 기증했다.
에밀리 클라크 부인은 조의금을 자신이 살던 은퇴촌 사람들을 위해 쓰이길 바랐다.
제임스 얼 브라운씨는 조의금이 ‘호스피스’나 ‘암센터’로 전달되기를 원했다.
미국의 부고는 이러한 결정도 하나의 뉴스로 다룬다.
죽음 이후에도 사회와 관계를 맺는 개인의 의지를 기록하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이어지는 조문
오늘날 미국의 장례 문화는 온라인으로 확장되고 있다.
부고 사이트를 통해 조문을 남길 수 있다.
이메일로 유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것도 흔하다.
부고가 종이신문을 넘어 ‘연결의 플랫폼’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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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부고기사는 단순한 개인의 추모가 아니라, 한 사람의 생애를 공적으로 기록하는 저널리즘의 한 형태다.
기자는 망자의 삶을 통해 공동체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을 다시 쓰고, 독자는 그 기록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스스로 묻게 된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마지막 문장으로 남겨질 때, 그 기록이 얼마나 진실하고, 얼마나 인간적일 수 있을까.
미국의 부고기사는 그 물음 앞에서 여전히 가장 정직한 교본이다.
우리와는 확실히 다른 미국 신문 부고란
김승희의 시집 에 나오는 두 편의 시다.< 한국식 죽음>김금동씨(서울 지방검찰청 검사장), 김금수씨(서울 초대병원 병원장), 김금남씨(새한일보 정치부 차장) 부친상, 박영수씨(오성물산 상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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