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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 회고전 - 가나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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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아트갤러리에서는 오윤 작고20주기를 기념하여 주로 그가 18년 동안 몰두해온 <대지>시리즈와 관련된 일련의 드로잉과 습작들, 지금까지 미 전시되었던 유화작품 <무지개 타고 가는 하늘의 황금마차> 공개, 삽화로 소개되어 민중과 곁에서 숨쉬었던 오윤의 목판화에 초점을 맞춰 전시를 구성하였습니다.

작가 작품의 80%이상이 삽화나 포스터, 민중운동을 위한 걸개그림 등 주변에 의뢰를 받아서 제작된 것이나 <대지>는 작가가 18년동안이나 독자적으로 탐구해 왔던 주제와 도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대지>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 사이에서 크게 차별화되지않고 오윤 일련의 민중 판화 중 하나로만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존에 생각해 왔던 것보다 오윤의 작품세계에 있어 <대지>라는 소재는 더 큰 의미를 가집니다. <대지>는 오윤 예술세계 자체인 것입니다. 이번 작고 20주기회고전을 계기로 오윤의 <대지>가 다시 미술계에 회자되어 재평가, 재해석되길 바랍니다.


한국의 조각가·민중판화가. 현실과 발언 창립전, 시대정신전, 삶의 미술전 등의 전시회를 통해 한국 민중판화·민중예술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국적
한국
활동분야
미술(조각·민중판화)
출생지
부산
주요작품
《헐벗은 사람들》(1972), 《징》(1985), 《도깨비》(1985), 《칼노래》(1985)
1946년 부산광역시 동래구에서 《갯마을》의 작가인 소설가 오영수()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거쳐 1971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였다.

'현실'의 동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1969년 이전부터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가지고 민화·무속화·불화·탈춤·굿 등 한국 전통의 민중문화를 연구하고, 이를 민족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에 전념하였다. 졸업 후에는 2년 동안 경주와 서울에서 벽돌 공장을 경영하면서 몇 점의 테라코타 소품을 제작하고, 1974년에는 상업은행(현 한빛은행) 동대문지점·구의동지점 내외벽의 테라코타 부조를 제작하였다.

이후 서울에 정착해 출판사 《청년사》에서 표지화 및 삽화·엽서 등의 목판화에 열중해 《한국의 민중극》 《독립운동사연구》 《박노해 시집》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등의 서적 표지화를 제작하였다. 특히 1980년대 이후에는 목판화에 전념해 창작 춤판 《강쟁이 다리쟁이》 《도라지꽃》 등의 포스터와 《민족의 노래, 통일의 노래》 출판기념회장 걸개그림을 제작하였고, 현실과 발언 창립전(1980), 새로운 구상화가 11인전(1981), 시대정신전(1984∼1985), 삶의 미술전(1984), 40대 22인전(1986) 등의 전시회를 통해 한국 민중판화·민중예술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1986년 민족미술협의회에서 첫 '오윤 판화전'을 기획해 큰 호응을 얻었고, 이어 부산에서 판화전을 개최하던 중 간경화로 사망하였다. 인간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복잡하지 않고 단순 명쾌하게 표현함으로써 민중판화를 '민족미술 또는 민족문화라는 넓은 영역으로 이끌어 간 예술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주요 작품에 판화 《헐벗은 사람들》(1972), 《기마전》(1974) 외에 말년인 1985년에 제작한 《춘무인 춘무의》 《징》 《북》 《원귀도》 《도깨비》 《칼노래》 등이 있다.
[출 처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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