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기심이 질문이다
질문은 사유의 시작이다.
‘왜 그럴까?’라는 한마디 속에는 세계를 새로 보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
호기심은 바로 그 의지의 다른 이름이다.
호기심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질문의 형태로 드러나는 사고의 움직임이다.
질문은 닫힌 세계를 연다.
무심히 지나치던 것, 너무 익숙해져서 더는 생각하지 않던 것에 ‘왜’라고 묻는 순간,
세계는 다시 낯설어진다.
그 낯섦이야말로 사유의 온도다.
우리가 무언가에 호기심을 느낀다는 것은, 그것이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질문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사람은 대답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질문으로 성장한다.
정답을 아는 순간 사고는 멈추고, 질문을 던지는 순간 생각은 움직인다.
질문이란 결국 세계와 자신 사이의 간극을 감각하는 일이다.
그 틈을 자각하는 사람만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면서 점점 질문을 잃는다.
학교는 대답을 평가하고, 사회는 빠른 판단을 요구한다.
그래서 질문은 점차 사라지고, 익숙한 언어와 사고만 남는다.
그때부터 호기심은 서서히 식는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편안하지만, 동시에 둔감해진다.
질문을 되살린다는 것은 다시 살아 있는 감각을 회복하는 일이다.
길을 바꿔 걷고,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에게 ‘정말 그런가?’를 되묻는 일.
이 작은 행위들이 다시 호기심을 불러낸다.
질문이 없는 삶은 안전하지만, 질문이 있는 삶은 살아 있다.
호기심은 질문의 다른 이름이고, 질문은 존재의 방식이다.
묻는다는 것은 세계에 대해 여전히 열려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묻는 한, 삶은 완성되지 않는다.
완성되지 않았기에 계속 배울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다.
호기심이란 결국 그렇게 ‘묻는 존재로 남는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