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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검은 백조를 보고도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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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이야기 - 거짓말, 속임수 그리고 사기극, 대릴 커닝엄, 이숲, 2013


누구나 자신만의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만의 사실을 가질 수 없다.  
—마이클 스펙터  


과학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그것을 종종 잊는다.

백 마리의 백조가 모두 희다 해도, 단 한 마리의 검은 백조가 나타나는 순간 그 가설은 무너진다. 과학은 바로 그 한 마리를 기다리는 태도다. 틀릴 가능성을 전제하고, 틀렸음을 인정할 준비를 하는 일. 그래서 과학은 언제나 미완이다. 완성된 진리가 아니라, 진리에 가까워지려는 과정이다.

문제는 과학이 인간의 손을 거칠 때 시작된다. 과학은 객관성과 중립성을 전제로 하지만, 연구를 하는 사람은 결국 인간이다. 명성, 돈, 권력. 이 모든 것이 개입하는 순간 과학은 방향을 잃는다. 그럴 때 과학은 더 이상 질문하는 체계가 아니라, 믿음을 강요하는 도구가 된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거짓말, 속임수 그리고 사기극이 있다. 몇몇 사실(혹은 현상)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음모론과 사이비 과학을 추종하는 이도 적지 않다. 감정적인 판단에 믿음이 더해지면 어떤 과학적 사실도 설득력을 잃는다. 그리고 때로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통령이었던 타보 음베키는 에이즈가 HIV에 의해 발병한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그 결정은 하나의 의견처럼 보였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다. 수많은 임신부가 치료받지 못했고, 아이가 감염되었으며, 3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과학을 부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구체적인 죽음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적자생존’을 자주 말한다. 그것을 ‘강한 자의 생존’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는 찰스 다윈의 생각이 아니다. 그 표현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허버트 스펜서였다. 다윈이 말한 것은 강함이 아니라 적합함이다. 환경에 가장 잘 맞는 존재가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강함과 적합함을 혼동하는 순간, 과학은 설명이 아니라 정당화의 언어로 변한다. 우생학과 같은 사상은 그렇게 탄생했다. 일부 사람 또는 집단은 이를 사회적 불의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악용한다. 과학은 현실을 설명하는 도구에서, 현실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뒤틀린다.

그래서 과학은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어야 한다. 과학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에 가장 가까워지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부정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확실한 것을 원한다. 흔들리지 않는 설명,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믿음. 하지만 과학은 그 반대편에 서 있다. 과학은 불안을 전제로 한다.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버리지 않는 태도다.

착각 속에서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무리 만족과 안심을 준다 해도, 그보다도 있는 그대로의 진짜 우주를 이해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칼 세이건

대릴 커닝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과학은 신념이나 관점의 문제가 아니다. 훌륭한 과학은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고, 재현할 수 있으며,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다. 과학으로 입증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둘 물러나고, 결국 남는 것을 우리는 ‘진리眞理’라고 부른다.”

하지만 과학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불변의 명제를 말한다. 반면 과학은 당시에는 보편타당한 사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새로운 증거가 등장하면 언제든 수정될 수 있다. 따라서 과학은 진리가 아니라, 진리에 가까워지기 위한 과정이다. 번역의 문제인지, 아니면 저자의 표현이 과학을 지나치게 확장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과학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진리가 될 수는 없다.

전기충격요법, 동종요법, 웨이크필드 사건, 달 착륙 조작설, 기후변화, 진화론, 카이로프랙틱 그리고 과학부정론까지. 서로 다른 범주의 사례가 한데 묶이며 다소 과하게 확장된 인상을 준다. 결국 논의는 과학부정론으로 수렴한다. 저자 역시 이를 의식했는지 맺음말에서 이렇게 덧붙인다. “과학과 비판적 사고를 옹호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어린양처럼 과학자를 무조건 추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과학적 사고와 절차를 소개했을 뿐, 과학계를 홍보할 생각은 없다.”

대릴 커닝엄은 이러한 거짓말과 속임수, 사기극의 배경에 부와 왜곡된 명예를 좇는 사이비 과학자와 선정적인 언론이 있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선정성에 굶주린 언론에는 편향된 저질 과학 보도가 넘쳐난다. 그리고 근거 없는 한낱 의견을 마치 확고부동한 진리인 양 대중에게 유포한다. 오늘날 기자에게 기본적인 사실 확인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까? 과학 기사를 지식을 갖춘 기자에게 맡기라고 요구하는 것도 무리일까?”

이 질문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다. 과학은 이런 결과를 예측한다. 그렇다면 누가 살고 누가 죽을지를 부나 권력에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검은 백조는 언제나 나타난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볼 준비가 되어 있는가다.

—과학 이야기 - 거짓말, 속임수 그리고 사기극, 대릴 커닝엄, 이숲, 2013년 초판 1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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