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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앤디 워홀, 에디 세즈윅 그리고 밥 딜런 : 팩토리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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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극장이 스폰지하우스 명동으로 재개관하면서 영화제를 개최한다. 그 리스트에 '팩토리 걸'이 포함되어 있다. 이번에는 놓치지 말고 꼭 보아야 겠다.

'팩토리 걸'은 예전부터 보고 싶던 영화였다. 하지만 게으름의 소치로 미루다 보니 아직 보지를 못하였다.

'이리나팜(지금의 그녀는 충분히 아름답다 : 이리나팜)'을 보면서도 좋았던 느낌이 이 영화에서도 기대된다.

앤디 워홀이 버린 어떤 여인의 삶.

영화는 앤디 워홀, 그리고 그를 사랑한 여인 에디 세즈윅 그리고 밥 딜런이 나온다. 세 사람의 사랑과 애증이 있다. 서로에 대한 열등감도 존재한다.

앤디 워홀보다는 앤디 워홀이 좋아하고, 사랑하고, 이용하고, 그리고 결국 차갑게 버린 여인 에디 세즈윅의 짧지만 불꽃 같았던 삶에 대해 그린다.

팩토리 걸 상영일정
10/04 17:50  10/09 18:20  10:19 13:20  10/22 20:20

명동 스폰지하우스(중앙) 개관기념 영화제 : 10/1(월) ~ 24(수)
자세한 상영 내역 : 스폰지하우스(중앙) 개관기념 영화제 <웰컴 투 스폰지하우스 3>

스폰지하우스

팩토리 걸, 밥 딜런과의 비극적 사랑도 담아
 
세상 참 종종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요즘 리움미술관에서는 ‘앤디 워홀 팩토리 전(展)’이 대박을 터뜨리는 모양인데 정작 앤디 워홀 때의 얘기를 그린 영화 ‘팩토리 걸’은 한창 파리를 날리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고급스러운’ 미술전시회보다는 ‘대중적인’ 영화 상영이 더 인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도 작금의 한국사회에 만연돼 있는 ‘스노비즘’의 일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예로 화가 출신의 줄리앙 슈나벨이 이번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작품 ‘잠수종과 나비’ 역시 국내에서 상영되면 찬밥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줄리앙 슈나벨 개인 전시회를 열면 몰라도. 줄리앙 슈나벨은 거리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의 일생을 그린 ‘바스키아’와 쿠바 작가 레이날도 아레나스의 생을 그린 ‘비포 나잇 폴스’를 만들었으며 두 작품 모두 국내 개봉과정에서는 상영이 되는지도 모른 채 간판을 내린 적이 있다. 뜻도 내용에도 관심이 없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그냥 몰려가는 심리들. 이런 현상은 우리 문화적 삶에 약보다는 독이 된다고 하면 항의성 댓글이 엄청 쏟아질까?

우리에게는 낯선, 조지 히켄루퍼 감독의 ‘팩토리 걸’은 앤디 워홀보다는 앤디 워홀이 좋아하고, 사랑하고, 이용하고, 그리고 결국 차갑게 버린 여인 에디 세즈윅의 짧지만 불꽃 같았던 삶에 대해 그린다. 에디 세즈윅은 1964년 뉴욕의 한 파티에서 앤디 워홀을 만나게 되고 곧 그의 뮤즈로 변신하는데 당시 앤디 워홀이 작업실로 불렸던 ‘팩토리’에서 모든 사람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당시 그림보다는 영화에 심취해 있던 앤디 워홀은 에디 세즈윅을 자신이 만들던 수편의 실험영화에 여주인공으로 출연시킨다.

영화는 백만장자의 딸로 어릴 적 아버지의 성적 학대와 그로 인해 정신병까지 앓았던 에디 세즈윅(시에라 밀러)이 어떻게 해서 앤디 워홀(가이 피어스)을 만나고, 그와는 또 어떻게 해서 필연적으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으며, 그 과정에서 포크 록의 전설이자 영웅이었던 밥 딜런(헤이든 크리스텐슨)과의 사랑은 왜 비극적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얘기한다.

당시의 뉴욕, 그리고 미국, 더 나아가 온 세상은 섹스와 마약, 로큰롤과 관념적 좌파 이론이 판치는 세상이었으며 그 혼란 속에서 순간의 쾌락과 화려함을 추구하던 에디 세즈윅은 끝내 좌표를 잃고 세상에서 버림받게 된다. 영화를 보다 보면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든다. 앤디 워홀이 뭔데? 과연 그의 그림과 온갖 예술행위는 뭔데? 과연 극단의 혼돈이 예술을 창조해 내는 것인가. 아니면 예술이라는 것이 결국 극도의 혼란을 부추기는 것인가. 영화는 알 듯 모를 듯 기묘한 경계 위를 달린다.

1960년대 새로운 개혁의 사상을 자신의 노래 속에 불어 넣으려 했던 사색의 음유시인 밥 딜런은 잠시동안 세즈윅에게 빠지게 된다. 그녀는 비록 백치미와 퇴폐미로 가득 차 있는 그루피(록밴드를 따라다니며 밴드 멤버들에게 섹스를 제공하는 여성 광팬들을 가리키는 말) 같은 존재에 불과하지만 밥 딜런은 오히려 그런 그녀에게서 모든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진정한 자유인의 모습을 발견한다.

하지만 애틋했던 사랑도 잠깐. 그는 곧 세즈윅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앤디 워홀은 쓰레기야. 그는 네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라고!” 세즈윅이 그의 얘기를 듣고 앤디 워홀을 떠나 밥 딜런 품에 안겼다면? 앤디 워홀은 밥 딜런에게 빠진 세즈윅 때문에, 그 열등감에서 벗어날 요량으로 벨벳언더그라운드 같은 전설의 밴드를 키워낼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밥 딜런은 밥 딜런대로 좀더 ‘LSD(마약의 일종)’ 분위기가 나는 음악을 했을지도 모른다.

역사는 되돌릴 수 없다. 시대도 되돌릴 수 없다. 사람도 되돌릴 수 없다. 에디 세즈윅의 위태롭지만 화려했고, 광적이었지만 그래서 자유로웠던 삶은 그 삶 그대로 60년대 팝아트의 정점이 될 수밖에 없었으며 그건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혼돈의 미학인가 미학의 혼란인가. 앤디 워홀 팩토리 전시회와 영화 ‘팩토리 걸’을 동시에 봐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출처 : 앤디 워홀이 버린 여인의 불꽃 삶[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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