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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죽 구두 - 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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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죽 구두
- 김기택
비에 젖은 구두
뻑뻑하다 발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신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구두는 더 힘껏 가죽을 움츠린다
구두가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린 적은 없다
구두주걱으로 구두의 아가리를 억지로 벌려
끝내 구두 안으로 발을 집어넣고야 만다
발이 주둥이를 틀어막자
구두는 벌어진 구두주걱 자국을 천천히 오므린다
제 안에 무엇이 들어왔는지 모르고
소가죽은 축축하고 차가운 발을 힘주어 감싼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 김태화

인간의 몸을 각루자라고도 한다. 즉 오물이 쏟아져 나오는 포대다. 또 이 한 물건은 오묘해 알 길이 없으니 ‘이 뭐꼬’만 남는다. 구두에 발이 들어간다. 젖은 구두는 발을 거부하다 끝내 구두 주걱에 의해 발을 받아들인다. 이것이 인생이다. 던져진 존재. 다행히 젖은 구두는 힘껏 발을 감싸준다. <고형렬·시인>
[출 처 : 시가 있는 아침 ]


김기택
1957 년 경기도 안양에서 출생하였으며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꼽추」가 당선되면서 시단에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태아의 잠』(1992), 『바늘구멍 속의 폭풍』(1994), 『사무원』(1999)이 있으며 김수영문학상(1995), 현대문학상(2001), 이수문학상(2004), 미당문학상(2004)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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