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지 (4) 썸네일형 리스트형 ‘진보정치’ 꿈 접고 떠난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무엇이 젊은 그를 좌절케 했나 박은지(朴恩智), 1979년 1월 23일 ~ 2014년 3월 8일 “한 해 동안 아이는 키가 9.4cm 컸고, 방과 후 학교 어딘가에서 수업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가방 한 번, 실내화 주머니를 두 번 잃어버렸다 다시 찾았고, 꿈을 기관사에서 딱지장사로 바꿨다…”고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35)가 지난달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아이가 1학년을 무사히 마쳤다”로 시작하는 글이다.‘싱글맘’으로 홀로 아들을 키워오던 그는 사랑하는 아들을 남긴 채 지난 8일 오전 서울 사당동 자택에서 목을 매 숨졌다. 그의 아들은 이제 겨우 아홉 살. 자신 역시 서른다섯 살에 불과했던 젊은 진보 정치인은 예고도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났다.경찰 조사 결과 박 부대표는 우울증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세상..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의 영면에 부쳐 박은지(朴恩智), 1979년 1월 23일 ~ 2014년 3월 8일 2014년 3월 8일.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향년 35세. 아직 세상을 떠나기엔 너무 아까운 나이입니다. 중학교 기간제 교사였던 박은지 부대표는 진보신당 대변인, 노동당 대변인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한국 진보정당사에 짧은 생을 치열하게 써내려 간 박은지 부대표의 명복을 빕니다. (편집자)나는 오랫동안 진보정당 지지자였다. 그러나 내 참정권은 얄팍한 한 달에 돈 만 원으로 끝이었다. 내내 글자 그대로 페이퍼 당원이었다. 아니 ‘당우’였다. 지역 모임 한 번도 안 나갔고 연락이 와도 생을 깠으며 별달리 취미도 없었다. 심지어 특별 당비 전화가 와도 내야지 내야지 하다가 까먹은 기억이 여러 번이었다.촛불 집회에 나..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영면 박은지(朴恩智), 1979년 1월 23일 ~ 2014년 3월 8일 진보신당의 최연소 여성 대변인이자 젊은 진보 정당인이었던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35)가 지난 2013년 3월 8일 새벽 서울 사당동 자택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은 박 부대표 죽음의 원인은 세간에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 부대표가 기간제 교사직과 학원 강사를 거쳐 정계에 등장하기까지의 과정은 그녀가 싱글 맘과 군소 정당에 대한 편견과 얼마나 오랜 사투를 벌여왔는지 짐작케 한다. 박 부대표는 무엇 때문에 ‘꿈을 공유하기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소중한 사람들’이라 했던 이들을 뒤로하고 생을 마감해야 했을까.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죽음의 원인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알려졌다. 박 대표의 영결식 ..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박은지(朴恩智), 1979년 1월 23일 ~ 2014년 3월 8일 자신이 자신을 놓을 때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영생을 얻는 길은 자살뿐이다. 자고 일어나면 듣는 수많은 자살 소식, 하지만 그 많은 자살 중 진정한 자살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자살을 가장한 사회적 타살이다. 자신을 놓으려는 행위가 아닌 타인이나 다른 이유가 나를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었다. 수많은 자살은 진정한 의미의 자살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자살생존자이다. (조금 늦었지만) 오늘 또 자살이라 불리는 소식을 들었다. 노동당 부대표 박은지의 죽음이다. 자살의 원인으로 당연하게 여기는 “우울증이라는 진단명”을 다시 들었다. “우울증”을 죽음의 원인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모든 죽음을 설명하기 어려운 ‘우울증’으로 치부한다.오늘..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