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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황석영 삼국지가 최고의 번역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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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삼국지를 읽지않아 번역의 질을 논하긴 어렵다. 작가의 서문을 읽어 보면 "불충분한 번역본을 새로 만들기 위하여 새로이 삼국지를 번역"한다고 되어있다.

삼국지로 유명한 나그네님의 포스트 [최고의 고전번역을 찾아서] 삼국지 역본에서 황석영 번역본에 관한 글을 보았다. 평소 황석영의 글빨(?)에 존경을 해왔던 나로서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 기본적으로 판매 수량이 나오니 돈이 급했을까?(이 부분은 삼국지 최고의 판매를 하고있는 이문열씨도 자신의 삼국지에 관하여 언급한 내용이다.) 이혼도 하고 그간 돈도 못 벌었으니 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도는 아니다.
한국의 대표작가들이 끊임없이 '삼국지' 번역을 시도하는 이유는 뭘까. 문학평론가 조성면씨는 "삼국지는 일단 출판하면 어느 정도 팔린다는 게 보장돼 있고, 작가들의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대작이기 때문"이라며 "출판사나 매체 간의 경쟁도 원인의 하나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문열은 "창작품도 아니고 일종의 재구성이라 개인적으로 아주 의미 있는 작품은 아니다"라며 "스스로 폄하해서 말하자면 일종의 부업처럼 젊을 때 흥이 나서 썼던 작품"이라고 했다. 그는 예전에 "내 창작소설을 다 합친 것보다 삼국지가 더 많이 팔렸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문열 삼국지는 1988년 초판을 찍은 후 지금까지 30쇄, 1500만 부라는 대기록을 세운 '초특급 베스트셀러'다. [출처 : 중국인보다 더 삼국지에 열광하는 한국인]

돈이 사람을 망치는가 아니면 사람이 돈을 추구하는가.
판본에 대한 연변출판사와의 다툼이야 황석영이 해결해서 법적 문제는 없지만 작가적 프라이드는 어디로 날라간 거냐? 연변본을 자기것인양 해먹으려고 하다가 난리가 나려하자 급히 돈을 주고 판본을 사들인 결과 아닌가
"4명의 교수는 김구용을 꼽았고 4명의 교수는 황석영을 꼽았다"고 한다. 참으로 어이 없는 일이다.
기획_교수신문, 최고의 번역본을 찾아서를 보니 황석영의 번역본을 최고라고 평하고 있다.

더 우스운 일은 교수들의 추천이다. 읽어나 보고 추천을 하였을까? 그것에 대하여 다른 의문은 없나보다. 밥벌이의 도구인 교수질(?)을 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더 바라는 것이 무리이다.
△ 삼국지(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창비 刊)

삼국지를 거듭 읽는 이들은 무엇보다 그것의 '읽는 맛'을 꼽는다. 황석영 역은 그런 점에서 삼국지의 흥미를 배가시켜줄만한 번역본으로 전문가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그러나 재미있다고 해서 번역의 질이 떨어지는 건 결코 아니다.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전문성이 확실할 뿐만 아니라 한국 최고의 소설가 황석영이 특유의 필치를 발휘했다는 점에서 가히 '최고의 번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구용 譯 가장 신뢰...황석영 譯, 재미있고 정확해(교수신문은 구독자만 열람이 가능하다.)가 나그네님이 말하는 교수들의 평가다.

이러한 점에서 장정일이 자신의 삼국지 서문에서 밝힌 내용이 더 솔직하고 맞아 보인다.
먼저 『삼국지』의 독자들은 물론이고 유수의 작가(또는 번역가)들마저 오해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삼국지』에 정본이 있다는 착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압도적으로 번역된 원말(元末)·명초(明初)의 『나관중(羅貫中)본』과 청대(淸代)의 『모종강(毛宗崗)본』은 현재 중국에서 읽히고 있는 숱한 판본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러므로 『삼국지』에 정본이 있다는 믿음 자체가 허구이다. 이것은 그 유명한 삼고초려(三顧草廬) 일화를 묘사하고 설명하는 해석이 무수히 존재한다는 사실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가장 많은 독자를 지닌 『나관중본』과 『모종강본』만이 있을 뿐 정본은 없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새로운 번역본이 나올 때마다 역자들은 『나관중본』『모종강본』에만 매달려 ‘이번에 자신이 번역한 『나관중(또는 모종강)본』은 숱한 『나관중(또는 모종강)본』 가운데서도 중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판본’이라며 실재하지 않는 『삼국지』 정본을 숭앙한다. 정본 또는 원본에 대한 잘못된 신앙을 바탕으로 자자구구(字字句句) 번역의 정확성을 기하려는 시도의 문제점은 시대의 제약과 한계를 반영한 『나관중·모종강본』이 애초부터 ‘비틀어진 원판(原版)’이었다는 것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무엇을 기준으로 잘된 번역본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고대로부터 이어온 소설은 그때의 사회상을 반영한다. 그 시대에 맞게 재 평가하여야 한다.
『삼국지』를 재구성 또는 재해석한다고 할 때 작가는 도대체 『삼국지』의 무엇을 재(再)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역사를 재구성하고 재해석한다는 것일 터이며, 따라서 작가의 역사관이야말로 그것의 옳은 기초가 될 것이다. 하지만 황건군을 어김없이 황건적이라고 명기하는 선민적(選民的) 역사관으로는 삼국시대를 살았던 당대 민중의 염원은 물론이고 현재의 중화민국 건국에 관한 진실마저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중국 역대 왕조는 항상 농민혁명으로 붕괴되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중국 역사는 황건난을 ‘의로운 봉기’로 높여 부르고 있다. 작가가 인간사(人間事)의 현상과 본질을 가려 바른 이름을 붙여주려고 애쓰지 않을 때, 동학농민혁명은 동학난이 되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은 광주폭동이 된다.

정원기교수의 삼국지,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역사적 선입견 없이 흥미로 볼 것…비판적 안목 필요"하다는 조언은 새길 필요가 있다.

'삼국지 다시 말한다' 좌담회에서 이문열과 이중텐이 만났다.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 이중텐, 삼국지로 현대를 말하다
영화 '영웅'에서 자객 이연걸은 진시황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천하야말로 진정 인민을 위한 길'임을 깨닫고 죽음을 택합니다. 즉 현대 중국 정부에게 있어 통일과 통합세력은 곧 선, 분리주의는 악입니다.

심 지어 말갈(금)에 맞서 싸운 남송의 명장 악비는 그 뒤로 두고 두고 중국 민족(물론 한족을 뜻하죠)의 영웅으로 숭상을 받지만, 현대 중국에서는 그조차도 분리주의자로 취급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통일의 주체가 말갈이건 몽골이건 한족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징기스칸까지도 '중국의 영웅'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현대 중국입니다.

결국 유비는 봉건적인 덕망이 있는 지도자였을 지는 모르지만, 시대착오적인 저항으로 통일을 저해한 역사의 장애물이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중텐 교수의 해석 역시 중국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흐름에 자유롭지 못하다. 삼국지를 우리의 관점에 볼 수 있어야 겠다. 늘 한족의 입장이었고 지금은 중국의 입장에서 한족만이 아니라 모두 중국이다. 한족과 오랑캐가 따로 없다는 말이다.

덧붙임. 하나.
여러가지 삼국지와 관련된 글이다. 황석영 삼국지의 논쟁도 읽어 볼 필요가 있다.
반삼국지 VS 후삼국지
삼국지가 유비 중심인 이유
이문열 선생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삼국지 연구를 위해 대만에 갔을때 한 석학이, "삼국지를 어떻게 바꿔 놓든 두 가지는 건드리면 안된다. 하나는 '유비(촉한) 중심'이고 또 하나는 '관우 숭배'다. 이 두가지가 없으면 삼국지가 아니다"라고 하더라는 거죠. [출처 : 이중텐, 삼국지로 현대를 말하다]
우리 사회의 삼국지현상을 바라보며 (민경옥)
삼국지 팬을 울린 한글판 《삼국지》(리동혁)
삼국지연의의 판본과 지은이를 둘러싼 문제(민경욱)
이데올로기 각축전이 된 삼국지 (민경욱)
이데올로기 각축전이된 삼국지--2 (민경욱)
삼국지연의를 통해서 본 사실과 허구의 관계(민경욱)

황석영 삼국지 오디오 북

역대논쟁: 삼국지를 둘러싼 여러 논쟁들

황석영 <삼국지>의 논쟁
"황석영삼국지" 문제가 많다
황석영씨 반론
황석영씨의 반론에 대한 재반론
황석영 삼국지-재반론 후속 내용
정원기 교수 반론에 대한 황석영씨 재반론
[출판수첩] 희망과 한계 남긴 ‘삼국지 논쟁’

삼국지는 무엇을 말하는가 - 황석영 <삼국지>를 읽고 : 삼국지에 대한 다른 서평

덧붙임. 둘.
삼국지에 관하여 관심이 있어 개인 스크랩 개념으로 정리 해 놓는다.

초등학교 2학년인 큰아이와 같이 삼국지(만화 전략삼국지 60권)를 읽고 있다. 아이와 어떻게 이야기를 하여야 할지 고민이다. 그래서 하나는 전제를 두었다. 우리편과 적이 아니고 유비편 조조편 손권편이라는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