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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향기로운 시와 소설

백년의 시간 : 책 권하는 心香



철학과 소설의 만남, 이 책에 대한 (책을 읽기전) 나의 생각이다. 프란시스 코폴라의 영화 <Youth Without Youth (2007)>의 원작이다. 영화를 볼때 의구심을 가진 부분들이 보인다. 소설의 자신의 삶의 투영이라 말했다. 루마니아, 인도 그리고 장자가 나오는 이유를 알게되었다.


미르치아 엘리아데

1907년 3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종교 철학과 종교사 등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부쿠레슈티대학에서 철학을 배웠다. 이후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투치 도서관에서 인도철학자 다스굽타의 『인도 철학사』에 큰 감명을 받게 된 엘리아데는 1928년부터 그 문하에서 3년간 인도철학을 연구하여, 『요가: 불멸성과 자유』 등을 펴냈다.

1933년부터 1940년까지 부쿠레슈티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영국과 포르투갈에서 루마니아 대사관 문화 공보관으로 근무했으며, 1945년부터는 파리 소르본대학의 종교학 객원교수를 비롯하여 유럽의 여러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56년에는 미국 시카고대학 교수로 초빙되어 은퇴 후에도 동 대학에서 종교학을 강의했다.

주요 저술로는 『영원회귀의 신화』, 『이미지와 상징』, 『성과 속』, 『신화, 꿈, 신비』, 『샤머니즘』, 『종교적 신앙과 이념의 역사』, 『세계종교사상사』 등이 있는데, 그의 저술은 구미 종교학계를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고국에서는 소설가로 더 잘 알려지기도 한 엘리아데의 문학작품에는 환상적이고 신비적인 소설이 많다. 그중 작가의 말년에 출간한 『백 년의 시간』(1981)은 그가 일생을 통해 성취한 종교사상과 철학적 세계관이 투영된 작품으로, 엘리아데 탄생 100주년이었던 2007년에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젊음 없는 젊음(Youth Without Youth)」이란 제목으로 영화화하기도 했다.

1986년 시카고에서 세상을 떠났다.


영화의 내용이다.

+

남자는 언어학자이며 언어의 기원을 밝히려 하였다. 사랑하는 여자와도 헤어졌다. 70대 노인이 되어 부할절에 죽기로 결심한다. 그 도중에 벼락을 맞고 의식을 잃는다.

의식을 회복한 남자는 70대가 아니라 30~40대로 다시 태어난다. 그뿐 아니라 또 다른 자신을 만난다.

....

헤어진 여자도 나타난다. 여자도 벼락을 맞고 윤회를 맞는다. 여자는 남자의 꿈이었던 언어의 기원을 알려주려는듯 전생을 거슬러 올라간다. 남자는 언어의 기원을 밝히고자 한다. 한데 여자는 그럴수록 젊음을 잃고 점점 늙어간다.

남자는 자신때문이라 생각하고 여자를 떠난다.자신이 살던 고향으로 돌아온다. 또 다른 자신을 죽인다. 남자는 옛 친구를 만난다. 친구들은 남자를 알아본다. 친구들과 장자와 나비, 즉 호접몽을 말한다. 꿈을 꾸었다 말하지만 바로 그날이 오늘이다.

남자는 늙어간다. 아니 원래 노인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남자가 죽으려했던 그날, 부할절이다. 남자가 돌아온 원래 있던 그날은 1938년 12월 20일이다. 남자는 길거리에서 얼어죽는다. 남자의 몸에서 1938년 4월 28일 출생의 신분증이 보인다.

꿈이었나 아니면 ....

+


“하루하루가 허무한가?
그렇다면 죽을 각오로 벼락을 맞아라!
눈을 뜨면, 당신에게 다시 한 번 젊음이 찾아올 것이다.”

벼락을 맞고 죽음 대신에 얻은 영원한 젊음
100년을 산 남자의 신비한 삶과 운명적 사랑…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보르헤스, 칼비노, 코르타자르에 비견된다.”《뉴욕타임스》


▣ 현대 지성계를 대표하는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환상소설
100년을 산 남자의 삶과 사랑에 대한 황홀한 미스터리

20세기 가장 뛰어난 종교학자이자 소설가로도 잘 알려진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소설 『백 년의 시간』이 문학에디션 뿔에서 출간되었다. 『백 년의 시간』에는 벼락을 맞고 30세로 회춘하여 100년을 산 언어학자 노교수의 신기루 같은 삶을 이야기한 「백 년의 시간」과 한쪽 눈을 다쳐 검은 안대를 하고 다니던 젊은 수학 천재가 ‘방랑하는 유대인 아하스베루스’라는 신비한 노인과 만나 세상의 멸망과 구원에 대해 얘기 나누는 몇 시간 동안의 기묘한 이야기를 그린 「다얀」, 두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미르치아 엘리아데가 일생 동안 성취해 낸 신화, 역사, 철학, 종교학에 대한 세계관이 고스란히 투영된 이 두 편의 글은 신화와 역사, 꿈과 현실, 자연과 초자연을 교차하며, 역사적 시간 속 영원한 젊음의 의미와 현실과 허상, 존재의 실재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 그리고 환상의 조화가 경이롭다.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소설은 일상에서 의미를 찾는 데 초자연적인 것과 신화의 중요성을 암시한다.” ― 《라이브러리 저널》

“이 작품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갈등을 초점으로 하는 ‘상상적인 혹은 창조적인 해석학’이 작용하는 환상소설이다.” ― 마테이 칼리니스쿠(인디애나대학 비교문학 명예교수)


▣ 벼락을 맞고 30세로 회춘한 언어학자 노교수에게 일어난 삶의 신비
첫사랑의 현신과도 같은 여인과의 운명적 사랑, 신기루 같은 100년의 시간

「백 년의 시간」은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기 1년 전인 1938년 부활절 밤, 자살을 결심한 한 70세의 노인이 벼락을 맞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시작한다. 피부가 100퍼센트나 탄 채로 병원에 실려 간 그(도미닉 마테이)는 현대 의술과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억력과 초능력에 가까운 지적 능력을 갖게 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죽음을 목도에 두었던 노인이 하루하루 예전의 젊음을 되찾더니, 서른 살로 회춘해 버린다.

“벼락을 맞은 방식으로 봐서는, 당신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거나, 십에서 십오 분 안에 질식사해야 했어요. 최선의 경우라도 마비되거나 벙어리나 장님이 되었겠죠. 그러나 당신 경우에는 매일매일 의문점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중략) 정상적으로 식사하고 말할 수 있도록 틀니를 맞춰드릴까 생각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장은 아무것도 못합니다. 엑스레이를 봤더니 새 치아가 나오려 하고 있더군요.”(p.31)

그는 죽음 대신에, 자신에게 다시 찾아온 기적 같은 젊음을 만끽하기 시작한다. 빛나던 젊은 시절이 비껴가고 노망 든 “노친네”, “도미닉 할배”라고 불리며 회한만 남은 채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던 그가 언어, 사회, 가족 등 모든 제도의 기원에 대해 필생을 걸었던 미완성 책을 완성할 수 있는 시간도 기력도 지적 능력도 모두 다시 얻었기 때문이다.

“사진들 하나하나 전부, 찍었던 연도와 장소가 완벽하게 기억나요. 어떤 날이었는지조차 기억할 수 있을 정도예요.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그들이 한 말도, 그날 그 장소에 고유한 냄새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여기 보세요. 티볼리에 라우라와 같이 있는 사진이죠. 이 사진을 보자마자 그 아침의 열기와 올리안더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런데 동시에 뜨거운 아스팔트의 자극적인 냄새도 났어요. 우리가 사진을 찍었던 장소에서 이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 원유 통이 두 개 있었다는 것이 기억났어요.”(p.53)

도저히 일반 과학과 의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의 기이한 현상은 신체적 재생만이 아닌 초인적인 기억 회복력, 언어 능력, 인지 능력으로까지 확대되더니 꿈속 경험과 깨어 있는 상태 사이가 교차하기기 시작하고, 자신이면서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인 ‘분신’이 생겨나기에 이른다.

이런 현상이 차츰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부와 신(新)인류에 대한 광기를 보이던 나치 세력에 집요하게 쫓기게 되어, 그는 자신의 신분을 위장한 채 유럽 전역을 방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첫사랑의 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여인 ‘베로니카’와 운명적으로 만나 이미 잃어버린 줄 알았던 사랑의 감정을 다시 느낀다. 그러나 그와 함께할수록 스물다섯 살의 베로니카는 하루가 다르게 나이를 먹기 시작한다. 그가 또 다른 자신이라고 인정한 분신의 존재를 통해 실재와 허상, 꿈과 현실, 신화와 역사의 교차를 경험하게 만든 시간의 괴이한 흐름이 자신의 연인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삶과 영원한 젊음을 얻었지만 인류의 역사적 시간 안에서 떠돌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된 그에게 기적처럼 찾아낸 안식처는 결국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신기루 같은 한낱 꿈이었을 뿐인가. 점점 늙어가는 베로니카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괴로워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예감한 도미닉 마테이는 깊은 슬픔에 잠긴다.

▣ 기회가 다시 오면,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신화적 상상력과 인간 역사의 꿈이 창조한, 두 번째 삶의 비밀

인간이 영원히 젊게 살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보통의 경우 오래 살고 싶어 하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면 100년의 시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은 실재하는가? 우리 자신이 ‘분신’이 아니라고 증명할 수 있는가?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가? 자연과 초자연, 신화와 역사, 꿈과 과학의 교차점에서 신비롭게 생동하는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소설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시간과 의식, 현실의 허상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자연스레 던진다.

“모든 작용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힘에 의해 발생하지. 그런데 그렇게 많은 경험을 겪었으면 너도 네 철학 원칙을 수정해야 하는 것 아냐.”(p.91)

이게 엄밀히 말하면 꿈은 아니지만, 미래의 문제이고, 따라서 시간의 문제이며, 시간이야말로 비현실이기 때문에, 꿈이 갖는 환영이라는 성질을 공유한다고 얘기하죠……. (p.126)

엘리아데는 도미닉 마테이의 분신을 통해 우리가 모르는 “어떤 힘”에 대해 거론하며, 영원한 젊음에 대한 문학적 환기가 초감각적 투시력을 가진 사람이나 신비술을 부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님을 이야기한다. 신체의 재생을 통해 회춘한 도미닉 마테이는 일종의 ‘돌연변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인류가 아직 도달할 수 없는 인식 수단을 가진 어떤 다른 시간대에 실재하는 신화적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인류에게 있어 먼 미래일 수도 있고, 가까운 내일일 수도 있는 “역사 종말 이후의 인간”, 혹은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를 인류의 원형일 수도 있다.

어떤 면에서, 나의 경험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만약 우리들 가운데 성인, 진정한 마법사, 보살 또는 신비로운 힘을 가진 다른 어떤 존재들이 있다고 말한다면 나는 믿을 것이다. 그들만의 고유한 존재 방식으로 인해 보통사람들은 그들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p.97)

핵전쟁이 터지고 나면, 서양 문명부터 시작해서 여러 문명들이 파괴될 것이다. 이러한 재앙은 틀림없이 인류가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염세주의의 파도를 불러 일으켜서, 비관론이 일반화되어 퍼질 것이다. 모든 생존자들이 자살의 유혹에 넘어가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호모 사피엔스 종보다 우월한 인류가 가능하다고 소망할 만큼 활력을 간직한 사람들의 수는 아주 적을 것이다. 그때 이 증언록이 발견되고 해독된다면, 사람들의 절망감과 멸종을 향한 보편 의지를 상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먼 미래에 태어날 인류의 정신 능력을 나타내는 한 예가 된다는 단순한 사실로 말미암아, 이러한 문헌은 역사 종말 이후의 인간을 예견하기 때문에 그러한 인간의 실재를 증언하는 것이다.(p.117)

또한 도미닉 마테이의 분신은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중개자”라고 말한다. 그건 “자연과 인간, 인간과 신성 사이, 이성과 에로스, 여성성과 남성성, 어둠과 빛, 물질과 정신”(p.78) 사이의 중개자이기도 하다. 이런 중개자적 존재들은 “수호천사” 같은 표현으로도 통용되며 기독교 신학과 의식, 인류 역사의 신화와 전통 안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 가능하다.
역사적 순환을 너머 우주적 순환 안에 있는 우리의 경험은 “장자와 나비”의 경우일 수도 있다. 경험적 현상은 한순간 사라져버릴 신기루일 수도 있다. 영원회귀의 신화 안에서 ‘영원한 젊음’을 얻음으로써 죽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도미닉 마테이는 긴 꿈을 꾸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의 “실재”는 세상 곳곳에 잠들어 있는 신화적 시간 안에서만 증명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눈을 뜨면 사라져버릴 한순간의 신기루와 같은 세상 속에서 우리는 도미닉 마테이를 통해 삶을 되묻게 된다.

그는 새로운 삶의 모습을 가끔 언급하며, 우리 모두 그것을 발견할 수 있고, 발견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깨어난 순간,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모르는 환희를 느꼈다. 자신이 다친 곳 없이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기쁨은 물론이거니와 그 기쁨을 넘어,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계절이 변한다는 것, 하루하루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아는 기쁨, (중략) 자신이 커다란 공동체에 속해 있고, 세상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폐기물과 쓰레기로 뒤덮인 공터같이 보기 싫은 것들조차 내면의 빛으로 신비롭게 빛나는 듯했다.(p.147)





백 년의 시간
미르치아 엘리아데 지음, 기영인 옮김/뿔(웅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