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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향기로운 시와 소설

가상현실 - 김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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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은 언제나 진단이 아니라 선고다

모든 것이 선고일 경우가 많다. 내 의지보다는 누군가가 나에게 선고를 한다.



가상현실 - 김영무

암선고를 받은 순간부터
(암은 언제나 진단이 아니라 선고다)
너의 세상은 환해진다
컴퓨터 화면 위를 떠도는 창문처럼
기억들이 날아다닌다
원시의 잠재의식도 살아나서
뚜벅뚜벅 걸어오고, 저 우주에 있는 너의 미래의
별똥들이 쏟아진다
어둠은 추방되고, 명암도 무늬도 사라진,
두께도 깊이도 무게도 지워진,
노숙과 밥굶기와 편안한 잠과 따뜻한 한끼의
경계가 무너지고, 모든 칸막이가 허물어진
환하디 환한 나라
시간의 뿌리와 공간의 돌쩌귀가
뽑혀나간 너의 현실은 안과 밖 따로 없이
무한복제로 자가증식하는
아, 디지털 테크놀로지 최첨단
암세포들의 세상
지독한 오염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미국자리공, 황소개구리, 실지렁이, 거머리가 못 되어
시름시름 힘을 잃고 약자로 전락한 어느 순간부터
경쟁력 없는 자 솎아버리는 구조조정의
덫에 걸린 너의 삶은
순백색 빛의 나라, 가상현실



가상현실
김영무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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