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진지함을 주고 있는가. 반대로 누군가의 진지함을 받고 있는가.

2011.08.27 07:30 해우소


강신주의 글을 보고 출판에 대한 저자의 의무라든지 편집자와 저자 그리고 대표와의 미묘한 파워 게임을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여기서 인간 관계를 보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진지한가. 누군가는 나에게 진지한가. 이 물음에 비겁함을 느낀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이상한 말로 나의 비겁함을 감추려 한다.

누군가에게 진지함을 주고 있는가. 반대로 누군가의 진지함을 받고 있는가.
이 물음에 당당하게 '예'라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주위의 사람이 점점 없어지는 것을 느낀다. 사실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깨달아 가는 과정인데 그것을 지금 깨달았을 뿐이다.

적은 사람이나마 소중히 여기고 진지하게 대해야겠다. 문자라도 한번 보내야 하나.

덧_
아래 글을 읽다가 궁금한 의문점.
출판사 사장과 편집자중에서 누가 힘이 쎌까? 묻는 내가 미친 놈이지... 개뿔.
아니면 누구랑 더 친해야 될까? 이것도 우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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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에서의 저자의 의무, 혹은 출판의 삼권분립을 위하여

글/ 강 신 주 철학자

출판사로부터 갑작스런 연락이 왔다. 앞으로 나올 책을 나와 함께 고민하던 편집자가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인문팀장이라고 자신을 밝힌 생면부지의 인간 하나가 이제 접촉은 자신과 하면 된다고 한다. 말문이 막혔다. 이건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인가? 되기는 뭐가 되었다는 말인가? 한 번 생각해보자. 옛날 어느 남자가 어느 여자와 정분이 났다. 두 사람은 미래를 약속하고 그를 위해 하나하나 준비해 나갔다. 그러던 중 갑자기 어느 여자가 그 남자 앞에 나타났다. 여동생이 죽었으니까, 이제 나와 함께 미래를 속삭이자고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의 언니하고 결혼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자와 편집자는 사랑에 빠진 남녀와 같은 존재다. 두 사람의 사랑과 노력으로 책이라는 자식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보다도 편집자를 중시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편집자는 내게 있어 첫 번째 독자다. 저자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연애편지를 띄우는 사람에 비유할 수 있다. 당연히 그는 자신의 연애편지가 구애에 성공할지 궁금하기만 하다. 자신의 연애편지를 처음으로 읽어주며 이 편지가 성공적인지 아닌지를 알려주는 사람이 바로 편집자다. 그러니 저자에게 편집자는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가? 초고를 편집자에게 넘길 때, 얼마나 가슴 뛰던지. 내 속내를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토로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편집자가 교열과 교정만 보고 내게 초고를 돌려줄 때, 나는 좌절하고 낙담한다. 나는 편집자를 잘못 본 것이다. 나를 혹은 내 생각을 사랑해주기는커녕 최초의 독자로서의 역할도 하지 않은 것이다. 책을 쓰는 저자가 더구나 인문 저자라는 사람이 자신의 책을 완성시켜줄 편집자도 알아보지 못하니, 책이 좋을 리가 만무하다. 나와 사랑에 빠진 편집자는 이 세상 누구보다 나와 나의 책을 아끼고 사랑해준다. 비록 출판사 사장이 시장성이 없다고 해도, 독자들이 차갑게 외면해도, 그런 편집자는 실망한 나와 내 책을 품어주며 다독거려줄 것이다.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어떤 경우에든 저자에게 당신은 훌륭하고 매력적인 책을 썼다는 사실을 알려줄 수 있는 편집자. 이건 천리마가 백락을 만난 것에 비유할 수 있는 일 아닐까?

내게는 지금 좋은 편집자가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스스로 나의 스토커라고 자처하며 나의 발전을 자신의 일인 것처럼 소망하는 사람이다. 나의 글을 거의 모두 읽고 보잘것없는 나의 저자로서의 가능성을 신뢰했기 때문일 것이다. 과분하게 고마운 일이다. 길을 가다보면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고, 또 어디로 가야할지 헛갈릴 때가 있다. 또한 나도 모르게 주어진 에너지를 쓸데없는 곳에 쓰는 경우도 생긴다. 이럴 때마다 그는 항상 내게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물론 저자로서의 나의 자존심을 절대 건드리지 않을 정도로 애정을 듬뿍 담은 채 말이다. 이토록 나를 사랑해주는 편집자를 알게 된 것은 다른 저자가 질투할 일이다. 지금도 나는 항상 그가 실망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된다. 그의 사랑과 소망을 저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편집자는 앞의 편집자와는 다르게 만났다. 그는 내 강연을 들었던 사람이다. 강연이 끝난 뒤 편집자라는 사실을 밝힌 그는 내게 아주 수줍게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출판사를 보고 출간을 결정하지는 않으시지요.” 순간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나와 같이 책을 집필하는 저자들에게 배신감마저 느꼈다. 마케팅에 돈을 쏟아 붇는 출판사가 아니면, 책을 내지 않으려는 저자들이 상당히 있나 보다. 그들이 인문저자가 아니기를 바란다. 인간을 다른 무엇보다도 지고한 가치로 다루어야 할 인문저자가 편집자라는 한 인간에게 그런 자괴감을 안겨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정색을 하며 나는 말했다. “그럼, 당연하지.” 내 대답에 해맑은 미소를 띠던 그의 모습이 마치 어제 일인 것처럼 생생하기만 하다. 최근에 편집해서 출간한 책을 건네주며 말한다.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책 제목을 이렇게 정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고맙고 감사할 일이다.

내가 이렇게 편집자를 중시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지금은 10권 이상의 책을 쓴 저자로 알려져 있지만, 내게도 당연히 출판이 낯설기만 한 초년병 시절이 있었다. 처음 원고를 편집자에게 넘겼을 때, 어찌나 떨리고 부끄러웠던지. 당시 내 처음 편집자는 이미 환갑이 넘어 원고 보기도 만만치 않은 연배였다. 그렇지만 그는 내 원고를 출력해서 빨간 펜과 연필로 꼼꼼하게 읽었다. 그리고는 아주 다정하게 내가 부끄럽지 않도록 우리말에 대해, 그리고 내 글의 흐름에 대해 알려주셨다. 그와 헤어진 뒤 나는 교정된 원고를 보며 너무나 행복했다. 사랑받는다는 느낌이랄까. 나도 내 글도 말이다. 지금에야 고백하지만, 사실 나는 그로부터 우리말을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외국어로 오염된 비문을 쓰고 있는지를 배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첫 독자로서의 편집자의 임무도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수행했다. 할아버지 편집자는 내 글을 그리고 나의 생각을 나 이상으로 사랑해주셨던 것이다.

지금 나는 한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건 웬만하면 출판사 사장은 만나지 않아야겠다는 각오다. 물론 편집자가 출판사 사장이라면 무관한 일이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출판사 사장은 자본가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어쩌면 출판사 사장이 저자나 혹은 편집자를 출판사의 이득이라는 시선에서 보는 것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편집자 그리고 사장과 동시에 배석하는 경우 나는 힘의 분배가 기묘하게 어그러지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나와 편집자나 혹은 나와 사장은 동등한 관계다. 그렇지만 편집자와 사장 사이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 편집자는 노동자이고 사장은 자본가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장과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편집자는 그 이야기에 끼어들지 못한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든다. 내 파트너는 편집자이지 사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도 모르게 망각한 셈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내 파트너를 궁지에 몰고 있었던 것이다.

편집자는 저자의 출판 의도와 사장의 이윤 추구 사이에 위치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 입장에서 편집자는 자본의 논리로부터 나의 책을 보호해줄 수 있는 완충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편집자를 제치고 출판사 사장과 직접 만나는 순간, 나는 그나마 허약한 편집자의 위상을 더 취약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나의 모든 이야기가 편집자를 통해서만 들을 수밖에 없을 때, 출판사 사장은 편집자의 말을 무겁게 들을 수밖에 없다. 편집자는 저자를 통해 나름대로 출판사 사장과 동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출판의 삼권분립이라고 할까. 나는 뭐 이런 생각을 가끔 해본다. 저자, 편집자, 그리고 출판사는 미묘한 힘의 균형을 유지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편집자가 출판사 사장과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는 매우 힘든 법이다. 아무래도 편집자는 임금을 받고 노동을 하는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에게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이 부여된다.

저자가 아니라면, 누가 출판의 삼권분립을 실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출판사 사장을 멀리하고, 편집자와 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 그래야 저자는 자유롭게 집필에 몰입할 수 있고, 동시에 편집자는 독자들이 원하는 책을 놓고 저자와 편하게 상의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출판사는 좋은 양서를 출간하게 될 것이다. 당장의 이익이나 출판동향이 문제가 아니다. 책은 현재의 지적 수요에 부응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래적 문제 설정을 선도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실용서나 교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 가치를 고민하는 인문 출판사에게 후자의 역할은 너무 중요한 것이다. 나를 위해서도, 편집자를 위해서도, 출판사를 위해서도, 그리고 독자들을 위해서도, 저자는 출판사 사장과의 잦은 접촉은 피해야만 한다.

출판사 인문팀장이란 사람으로부터 황당한 전화를 받고, 곧 이어 나는 출판사를 떠난 편집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자의반타의반 출판사를 떠난 것이었다. 통화를 마치면서 나는 말했다. “네가 다른 출판사로 갈 수도 있고, 아니면 출판 일을 접을 수도 있을 거야. 그렇지만 너와 함께 만들려고 했던 원고는 내가 1년 동안 가지고 있을게. 나는 너와 책을 만들고 싶었지, 네가 다니던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었던 것은 아니야. 알겠니? 그럼 연락해라. 그리고 미안하다.” 그렇지만 많은 자책이 들었다. 저자로서 내가 그 편집자에게 평소에 힘을 더해주었다면, 과연 그 출판사가 나와 일체 상의도 없이 편집자를 해고할 수 있었을까. 그 일이 생긴 뒤, 나는 편집자에 대해 더 까다로워졌다. 같이 책을 만들기로 했다면, 내가 지켜주어야 할 사람, 내 책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출판문화》 2011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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