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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성녀 마더 테레사는 있다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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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의 전 생애를 이끄는 힘은 바로 기독교 정신인 사랑이며, 삶을 이끈 기독교적 지침이다. 마더 테레사는 "우리 시대의 가난한 사람들을 예수님 같다고 여기고 섬긴 것이 아니라, 바로 그들이 예수님"이기 때문에 섬겼다. 마더 테레사에게 가난한 사람이란 "굶주린 사람, 의로운 사람, 먹을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굶주린 사람, 목마르고 무지한 사람, 지식 · 평화 · 진리 · 정의 · 사랑에 목마른 사람, 헐벗고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 인간의 존엄을 박탈당한 사람, 누구도 원하지 않는 사람, 태어나지 않은 아이, 버려진 사람, 인종차별을 당하는 사람, 떠돌아다니는 사람, 집뿐만 아니라 이해해주고 사랑해줄 사람이 없는 사람, 병자, 가난하게 죽어가는 사람, 몸뿐만 아니라 마음과 영혼이 갇힌 사람, 삶의 희망과 신앙을 모두 잃어버린 사람, 하느님을 잃어버린 사람, 성령의 힘 안에서 희망을 품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인도 캘커타 빈민가에 최초의 학교 개교, '사랑의 선교회', '죽어가는 사람의 집'(니르말 흐리다이), 나병 순회 진료소, 버려진 아이를 위한 '어린이의 집'(시슈 브하반), '사랑의 선교 수사회'의 결성, '프렘 단'(사랑의 선물)이라는 장기 요양자를 위한 '집' 등을 통해서 비단 인도만이 아니라 세계 각지로 확대되어 그 열매를 맺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은 인류의 평화에 이바지하는 봉사정신 그 자체로 승화되었다.

마더 테레사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평생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못살고 가난한 이를 위해 바친 성녀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마더 테레사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이다. 감히 누구도 마더 테레사가 하는 일에 의문이나 달리 생각하지 못한다. 그녀는 마더 테레사이기 때문이다.

부인은 물론 모든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부인이 폐렴에 걸리자 현대의학을 거부한다는 명분으로 부인에게 페니실린 주사조차 놓지 못하게 하여 결국 부인은 사망했다. 그러나 부인의 사망 직후 자신이 말라리아에 걸리자 자신은 서둘러 주사를 맞았다. 나중에 맹장염에 걸렸을 때는 수술까지도 받았다. 비상식적인 이 사람이 누구일까?

우리가 별다른 거부감없이 '위대한 영혼'이라는 마하트마 간디의 이야기다. 마하트마도 자신이 붙인 이름이다. 우리는 간디를 석가모니 · 마호메트 · 공자 · 예수와 같은 4대 성인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하여 다른 의견을 달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마하트마'이기 때문이다.

마더 테레사를 논하는 책을 읽고 간디를 떠올렸을까? 왜 일까? '마더' 테레사 이기 때문이다. 테레사 수녀를 '마더'라고 부른다. 별다른 이유가 없다. 그녀는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평생 자신을 희생했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마더 테레사를 불손하게 평하는 책이다. 이 책을 두고 "지옥이라는 게 있다면, 히친스는 이 책 때문에 거기 가게 될 터"라고도 했다. 히친스는 마더 테레사에 관한 '불손한' 책을 썼는지는 종교의 관점을 떠나 생각해봐야 한다.

얶매이지 않는 정신의 요체는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있지 않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있다.

원제는 "The Missionary Position"이다. '선교사 체위'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상위'라 부른다. 히친스가 이것을 제목을 정한 이유는 이 말의 어원과도 연관이 있다. 이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48년에 나온 유명한 '킨제이 보고서(Sexual Behavior in the Human Male)'이다. 우리에게는 기독교 선교사가 국외에 전도하면서 현지 주민이 낯선 자세로 사랑을 나누는 것을 보고 '정상 체위'로만 할 것을 강요했기에 이런 이름이 생겼다고 알려졌다. 다른 의견은 원주민들에게는 원래 없었고 선교사가 하는 새로운 방식을 말한다. 즉, 선교사가 강요했던 방식이 아니라 선교사가 즐기는 방식이 원주민에게 들켜서 알려졌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교회는 남녀 간의 사랑과 그들의 자세에도 관여했다. 금욕이 최선이지만 번식을 위한 목적의 관계는 인정했다. 그들은 임신에 가장 좋다고 생각한 정상 체위만을 인정하고 다른 자세는 쾌락을 쫓는다며 죄악시했다. 선교사 체위는 위선이며 통제를 의미한다.

히친스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1979년)요, 20세기의 성녀이며, 자기희생의 화신인 마더 테레사가 실은 다국적 선교사업체의 수장, 근본주의 종교사업가에 지나지 않았던 게 아니냐고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가난한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공유하는 것 말입니다. 나는 가난한 사람의 고난이 세계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_ 마더 테레사

마더 테레사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가난한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라 생각한다. 1984년 미국 다국적기업 유니언 카바이드의 인도 보팔 공장에서 수천 명이 즉사한 유독가스 참사가 일어났을 때 분노한 유족에게 말했다. “용서하세요. 용서하세요.” 가난한 이에게만 용서를 강요했다. 번역서의 제목처럼 마더 테레사는 "자비를 팔아"서 기금을 모으고 그녀에게 기부금을 낸 세계의 독재자와 파렴치한 기업인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그것이 그녀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이 그것을 이용해 기부금보다 더 많은 이익을 취했다.

가난한 이를 위해 가진 자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가져다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준 것이 뭐가 잘못이냐고 할 수 있다. 정말 그랬는지 의구심이 들게 하는 여러 사례가 있다.

1994년 의학전문지〈랜싯>의 편집장 로빈 폭스 박사는 테레사 수녀가 45년간 봉사한 인도 콜카타의 <죽어가는 이를 위한 집>을 방문했다. 선행과 영웅적 덕행의 표본 마더 테레사를 '콜카타의 성녀'로 우러르게 한 그곳에서 폭스는 삭발한 채 한 방에 오륙십 명씩 수용돼 죽어가고 있는 말기 환자를 목격했다. 아스피린 이상의 진통제를 받지 못한 채 지독한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사람에겐 어쩌다 운 좋으면 항염증제인 브루펜 같은 약을 졌다. (링거와 같은) 장비도 충분치 않았습니다. 주삿바늘을 쓰고 또 쓰고 너무도 여러 차례 사용했고, 종종 바늘을 수도꼭지 밑에서 찬물로 헹구는 수녀들이 눈에 띄고는 했을 정도였어요. 그중 한 사람에게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깨끗이 해야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말했지요. "그래요. 한데 왜 소독을 안 하는 거죠? 물을 끓여서 바늘을 소독해야잖아요?" 그러니까 그 여자 말이 이래요. "그럴 필요가 있나요. 시간도 없고요." 돈과 일손이 부족해서? 그게 아니다. '마구잡이식 날림시설'을 그런 식으로 운영한 것은 '심사숙고의 결과'다. 목적은 "고통을 덜어주는 게 아니라 죽음과 고통, 그리고 굴종에 기반을 둔 일종의 신흥종파를 선전하는 것"이었다.

마더 테레사가 가진 자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가져오고자 한 행동은 그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했으며 그로인해 더 많은 가난한 사람이 피해를 보았다. 그들의 만행에 대해서도 마더 테레사는 기부자이기 때문에 침묵했다. 단지 가난한 이에게 '용서'를 강요했다. "용서하세요."


1981년 아이티에 간 테레사 수녀는 나중에 결국 돈 가방을 들고 외국으로 도망친 폭군 장 클로드 뒤발리에를 두고 “가난한 사람이 국가의 우두머리와 이토록 친근한 경우는 처음 보았다”고 칭송했다. 또 “현대 세계의 가장 냉소적이고 천박하며 못된 여성 중 하나”요 “위선자이자 가난한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이라고 히친스가 쏘아붙인 그의 부인 미셸의 두 손을 정답게 감싸 쥐고는 “영부인은 느끼시고, 아시며, 자신의 사랑을 말뿐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실체적인 행동으로도 보여주고자 하시는 분”이라 예찬했다. 사진에 담긴 그 장면을 독재자 뒤발리에는 잘도 이용했다. 이런 게 마더 테레사의 ‘본질’이라고 히친스는 말한다. 사이비 종파 지도자 존 로저한테서 1만 달러를 기부받고 함께 사진을 찍어 그의 사기모금 행각을 도왔다. 미국 역사상 최대 사기사건 가운데 하나인 저축대부조합 스캔들로 10년형을 살고있는 가톨릭 근본주의자 찰스 키팅한테서 125만 달러를 기부받고는 자신의 권위를 써먹도록 허락했다. 1992년 테레사 수녀는 키팅한테 관용을 베풀어 달라며 법원에 편지를 보냈는데, 그때 답장을 보낸 로스앤젤레스 지방검사보 폴 털리는 2억 5천만 달러를 낭비와 사치를 위해 가로챈 키팅의 범죄행각을 설명한 뒤 기부받은 125만 달러를 원래 소유자들에게 돌려주라고 정중하게 권했다. 그러나 답장은 없었다. 그 돈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답지한 거액의 다른 성금의 행방도 묘연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존엄한 인간을 짐승처럼 죽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인간답게 죽을 수 있어야 한다. _ 마더 테레사

105개 이상의 나라에서 500개가 넘는 수도원을 운영했다는 테레사의 사랑의 선교회 소속 수녀는 4천여 명에 이르고 평신도 일꾼도 4만 명이 넘었다. 기부금은 전 세계에서 홍수처럼 밀어닥쳐 뉴욕 브롱크스 선교회의 한 당좌계좌에만 무려 5천만 달러가 들어 있었다. 수녀들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돈 쓰는 일을 좀처럼 허용받지 못했고, 대신 "가난을 호소할 것, 그리하여 손이 크고 어수룩한 사람과 기업이 더 많은 재화와 봉사와 현금을 내도록 조종할 것을 강요받았다"고 히친스는 지적한다. "의지할 데 없는 아기, 버려진 낙오자, 나환자와 말기 환자는 동정의 과시를 위한 원자재"이었다. 하지만 테레사 수녀 자신은 심장질환 및 노환과 싸울 때 서구에서 가장 우수하고 값비싼 병원에서 치료받았다. 마하트마 간디와 비슷하지 않은가. 남과 심지어 가족에게는 원리주의적 금욕을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너무나 관대한 성자 · 성녀로 불리는 이들이 너무나 닮아있다.

그녀의 성공은 겸손과 소박의 승리가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미신적인 유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리고 교활한 자와 한가지 목적에 전념하는 자가 소박하고 겸손한 자를 착취하는 것에 기댄, 천년왕국 이야기의 또 다른 장이다. 역자 김정환의 평가가 이 책에 대한 명쾌한 해석이다. "이 책 저자의 의도가, 단순한 폭로 혹은 야유가 아니라 마더 테레사의 '잘못된' (세속사에) 따스한 수녀의 인상에서 '올바른' (세속사에) 냉혈의 근본주의 종교-사업가 인상으로서 교정이었다면, 그의 의도는 충분히 성공적이고, 논리적이며, 객관적이다"


자비를 팔다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정환 옮김/모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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