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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오늘은 내일의 어제가 된다 -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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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실제로 과거의 ‘정사’는 늘 ‘개국 군주는 영웅이요 망국 군주는 개’라고 했다. 하지만 이처럼 성공과 실패로만 영웅을 논하는 것은 역사의 여러 요소를 무시하는 편협한 관점에 지나지 않는다. 황제皇帝에 대한 평가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게 마련이다. 역대 사관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사관의 붓은 무엇이든 편견 없이 공명정대하게 기록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대개 한 왕조가 길어지면 그 개국 군주는 늘 위대한 황제가 된다. 왜냐하면 사서 편찬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그의 자손들이기 때문이다. 반면 왕조가 단명하면 다음 왕조의 사관이 사서를 쓰기 때문에 어떤 추문이든 그대로 드러내게 마련이다. “책을 다 믿느니 차라리 책을 읽지 않는 편이 낫다”는 말이 나온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황제皇帝가 대체 뭐하는 물건인가?

황제는 정사에서 가장 많이 미화되어 있는 존재이며, 그에 따라 중국사에서의 시대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사에 씌어진 대로만 그 시대를 평가하면 큰 오류를 범하게 된다. 백성들이 개, 돼지만도 못한 대접을 받고 시달린 시절에도 권력자의 집권 기간이 길거나 후손들의 세력이 강하면 역사에는 치세기로 기록된다. 정사에 미화되어 있는 황제들의 실제 모습을 증거를 통해 밝히고, 잘못 평가되고 있는 중국사의 진면목을 다시 살펴보는 계기로 황제를 살펴보자.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죽기 전 남긴 유언은 단 네글자였는데, 우위적심憂危積心이 바로 그것이다. "늘 걱정하며 산다"는 뜻이다. 황제의 심리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져주고 있다. 매일 위험한 일이나 예측하지 못할 일이 벌생할지 몰라 전전긍긍 걱정하며 살았던 주원장의 삶을 함축해서 보여준다.

황제 제도는 본래부터 황당한 제도였다. 황제는 국가 전체를 정복하고 전국의 백성을 큰 감옥에 가둔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황궁이라 불리는 작은 감옥에 가둬놓고 모두의 자유를 박탈한다. 또 일종의 자해와도 같은 극도의 사치와 문란한 기형적 생활 속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선단仙丹을 찾고 불로장생을 꿈꾼다. 그 결과 수명은 보통 사람보다 더 짧아졌고, 선단 때문에 목숨까지 잃었다. 백성의 삶은 아랑곳하지 않고 천하의 재물을 긁어모으고 천하의 백성을 마구 부려도 결코 행복을 얻지 못한다. 그뿐 아니라 백성에게는 엄청난 재난을 선사한다. 결국 황제는 남도 해치고 자신도 해치는 것이다.

명나라 말기의 사상가 당견이 황제 제도에 대해 통탄하면서 "진 이래 제왕은 모두 도적놈들이었다"라며 모두에게 헛된 황제의 꿈을 버리라고 경고했다.



황제라는 칭호는 어떻게 생겨났나?

진이 천하를 통일하기 전까지는 국가 최고 통치자를 그냥 왕王이라고만 불렀을 뿐 황제라는 칭호는 없었다. 황제라는 두 글자는 진시황이 정한 것이다. <사기>의 <진시황본기>에 관련 대목이 있다.

신들이 황공하게도 존호를 올리나니, 왕을 태황泰皇이라 하고 명령은 각각 제制와 조詔라 하며, 천자를 스스로를 부를 때는 짐이라고 하십시오. 이에 진왕은 태자를 없애고 황자만 취한 다음 상고의 제帝라는 칭호를 덧붙여 황제라 부를 것이며, 다른 것들은 그대들이 논의한대로 하라고 했다.

제帝는 사람이 아니라 천신에 대한 호칭이었다. 진시황이 신하들이 제안한 태황을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황제라는 존호를 제정했다. 이로써 인간의 군주가 반신반인의 괴물로 변하게 되었다. 진시황이 스스로를 황제라는 존호를 제정한 까닭은 자신의 공적이 삼황三皇을 뒤덮고 덕은 오제五帝를 능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실 <사기>에는 <오제본기>는 있어도 <삼황본기>는 없다. 결국 삼황은 그 사적을 고찰할 수 없는 전설속의 인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진시황부터 시작하여 역대 제왕들은 신과 인간 사이에 끼인 괴물과도 같은 자신들의 모습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듯 자신은 천명을 받은 천자天子라 말하며 일반 백성과 차별화하고 있다.

하지만 "성공하면 왕, 실패하면 도적놈"이 된다. 즉 왕과 도적은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제왕은 성공한 도적에 불과하다. 성공하지 못한 도적과는 초록동색이다. 결국 성공 여부를 떠나 모두 도적이라 할 수 있다. 왕은 한 가지 유형만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리'를 차지한 자이다. 자리에 앉은 자가 바로 왕이다. 반면 도적애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떠돌이 도적이고, 다른 하나는 자리 즉 기반을 가진 도적이다. 근거지를 만들어 자리를 차고앉은 도적이 되면 점차 발전하여 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달리 "자리에 앉으면 왕, 떠돌면 도적"이라 할 수 있다. 백성들은 "강도와 제왕은 본래부터 공통점이 많기 때문에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러니 둘 다 존경해주는 쪽이 낫다"고 판단했다.

황제는 어떻게 생겨났나?

황제는 다윈의 적자생존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민주적인 선거방식으로 생겨난 것도 아니다. 개국 준주는 대다수가 폭력을 통해 강산을 얻고, 그 뒤로는 혈연관계, 즉 주로 부자 관게나 형제관계 등 촌수를 따져서 군주 자리를 이어받는다. 황제 자리가 하늘의 뜻이나 백성의 마음을 꼭 얻어야 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위해 신화나 귀신 아야기를 날조하여 자신이 황제가 된 것은 위로는 천명에 따르고 아래로는 민심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황제는 하늘의 뜻으로 생겨나지도, 백성의 뜻으로 탄생하지도 않는다. 그저 폭력으로 자리를 빼았은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합리적인 방법과는 거리가 멀다. 황제가 된다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겟다는 쯧이므로, 황제는 당연히 나라를 다스리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지만, 말 위에서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그저 폭력에 의지해 천하를 얻은 백정 같은 자에게 나라를 다스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일이다.

중국 2천 년이 넘는 동안 존재했던 200여명의 황제들 중 대부분은 닞넞ㅇ한 승부나 계승 원칙에 따라 황제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주로 음모와 간계에 의존했다. 첫째는 '훔치기'다. 둘째는 '빼앗기'다. 황제를 훔칠 수 잇는 것이라면 빼앗을 수도 있다. 지도부(우두머리)를 쳐서 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하여 황제가 된 것이다. 셋째는 '속임수'다. 선양이란 명분을 내세운 속임수를 통하여 실제로 권력을 찬탈했다. 이 밖에도 간악하고 교활한 계략으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황제 제도는 소인배를 길러내는 온상이다.

"대도大道의 실천은 천하에 떳떳해야 한다." 이는 원시시대의 사회 상황을 반영하는 말이자, 유학자들의 정치적 이상이기도 하다. 중국 문화의 기본 정신이라고도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시황이 군주 전제제도를 실행하면서부터 이 이상과 정신은 허리가 잘렸고, 그 후로는 "황제 제도는 천하를 개인의 소유로 한다"는 원칙으로 바뀌었다. 천하가 황제 개인의 합밥적 사유재산이 되어버렸다.

천하가 황제 한 사람의 사유 재산이 되었고, 군주 전제제도에 근거하여 천하의 크고 작은 일이 모조히 황제 한 사람을 통해 처리되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건강독단乾綱獨斷이다. 황제가 천하의 일을 총괄해야 한다는 요구는 이론상 성립하지 않으며 실제로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강희제가 "지금 크고 작은 사무는 남에게 맡기지 않고 모두 딤 혼자 처리 직접 처리한다"고 한 것은 사람을 속이는 허풍에 지나지 않는다.

소인은 황제를 필요로 하고, 황제 역시 소인을 필요로 한다. 어떤 떄는 소인이 황제를 우롱하고, 어떤 때는 황제가 소인을 우롱한다. 때로는 서로를 우롱하기 때문에 진위를 분간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밑바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짜 우롱당하는 것은 많고 많은 백성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중국 황제가 무엇이 잘못되었고 그들이 정사에 자신의 능력과는 다르게 높게 또는 낮게 평가된 것이 오늘날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도 황제는 아니지만 실제는 아니지만 황제처럼 군림하는 재벌 총수와 인민의 뜻을 모르고 황제인양 독단적으로 행하는 수 많은 정치인을 보았고 지금도 존재한다. 우리가 역사를 읽는 이유는 그들의 삶에서 오늘의 나가고자 하는 방향을 구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책을 다 믿느니 차라리 책을 읽지 않는 편이 낫다"는 말처럼 보여주는 대로 보는 것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아니다. 그것들 속에서 "오늘은 내일의 어제가 된다"는 사실을 꼭 명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중텐의 역사공부에 관한 말을 음미해 보자.

사불동이리동(事不同而理同)이란 말이 있다. 일은 다르지만 이치는 같다는 뜻인데 역사도 마찬가지다. 과거는 현재의 우리 모습과 다를 수 있으나 도리는 같아 역사를 통해 철학·이치를 깨달으면 인생을 사는 데 도움이 된다. 한마디로 역사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다.


황제들의 중국사
사식 지음, 김영수 옮김/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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