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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인간이 되기 위한 인문

삼국지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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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텐는  <삼국지 강의>의 서문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세 가지 독법(讀法)을 말하고 있다. 하나는 옛사람의 입장에 서서 역사를 보는 ‘역사적 견해’이고, 또 하나는 오늘날의 입장에서 역사를 보는 ‘시대적 견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자신의 입장에서 역사를 보는 ‘개인적 견해’다. 책의 독법은 우리의 독법과 다르지만 그 또한 자신의 입장에서 본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독법으로 바라보면 된다. 

블로그를 시작한 이후 삼국지에 관련된 단상과 포스팅을 정리했다. 최근 작성한 글순이다. 내 생각의 변화함도 알 수 있어 새롭게 다시 읽었다. 그간 수정되어야 할 내용도 있지만 한 주제에 대해 다시 바라보며 다시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도 함께하라 : 조조 사람혁명

난세의 간웅 조조는 유비와 손권과의 무한 경쟁에서 승자가 되었다. 덕德이 부족하다고 마하지만 그의 용인술을 본다면 덕장에 더 가깝다. 조조의 리더십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인재기용이다. 그에게는 인재를 얻고 활용하는 득인得人과 용인用人의 지혜가 있다. 신분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능력만 있다면 과감히 발탁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과감한 인재정책은 조조의 힘의 원천이다.

조조는 독서량이 부족했던 유비와 손권과는 달리 전장에서도 한시도 책을 놓지 않았다. 조조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시인이었다. 또한 걸출한 군사가로서도 이름이 높다. 조조가 주해한 손자병법 위무주손자(魏武註孫子) 13편이 있다.

삼국지의 최대 지략가로 손꼽히는 이는 제갈량이다. 하지만 제갈량은 그 자체로서 한계를 많이 가지고 있다. 조조에게 가지 못하고 유비를 선택한 이유가 조조에게는 만은 인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비에게의 선택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유비가 죽고 사마의가 제갈량의 전투에서 건강을 염려했다. 좋은 뜻으로 보면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제갈량은 모든 대소사를 자신이 행한 것은 누구도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촉한의 장수가 적고 인재가 부족한 이유도 잘 믿지 못하는 제갈양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책에서는 "음참마속을 제갈량의 결단의 상징으로 말하지만 사실 이는 단 한번의 실수조차 포용하지 못하는 제갈량의 협량을 드러낸 것"이라 말한다. 제갈량은 지혜롭고 계책이 많은 자이지만 사람을 대할 때는 유달리 소심했다. 관우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도 헤게모니를 위한 제거일 수도 있지만 그의 성격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반면 조조는 인재를 가능한 포용하고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 적과 내통한 신하들의 명단을 불태우는 결단을 내렸다. 명단을 공개하여 힘들게 모은 인재를 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조의 인재에 관한 생각을 잘 옅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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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삼국지인가?

한마디로 말해 『삼국지』가 군담역사소설(軍談歷史小說)이기 때문에 삼국시대에 대한 최근의 연구를 삼국의 역사에 덧보태면 안 될 이유가 없고, 또 시대와 인물의 재해석을 통해 『삼국지』 자체를 새로 해석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600여 년 전에 편찬된 『삼국지』가 당대의 민중과 시대정신을 반영했다면, 21세기에 읽히는 『삼국지』가 이 시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삼국지』를 쓰기로 결심한 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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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이 남만(南蠻)의 추장인 맹획을 일곱 번 사로잡고 다시 풀어준 칠종칠금(七縱七擒)의 일화를 거론해 보자. 많은 독자들은 한 번도 아니고 일곱 번씩이나 적장을 풀어준 끝에 오랑캐로부터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복종을 끌어낸 제갈량의 재기와 인덕에 경탄하면서 중국인의 배포에 감탄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 일화가 중국인들에게 읽히는 방식을 생각해 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칠종칠금 일화에는 중국의 오만한 중화사상과 주변국을 다스리는 중국인들의 오랜 통치술이 응축되어 있다. 그것을 직시한 독자라면 더 이상 제갈량의 재기와 인덕이나 중국인의 배포에 놀라지 않고, 오히려 미련하고 염치없어 보였던 맹획의 행동으로부터 어떤 지혜를 이끌어내려 할 것이다. 주체성을 가지고 끈질기게 저항하는 것만이 한 민족의 존엄성과 독립성을 보장받는 길이라는 것을 맹획은 일찍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제갈량은 힘들여 정복한 남만에 자치권을 인정하고 군대를 거두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런 해석 역시, 누가 바로 쓰지 않고서는 쉽게 고치기 힘든 『삼국지』 독자들의 신화가 되어 있다.

나관중·모종강이 강조한 한족 중심의 중화사관과 관련하여 몇 마디 덧붙여 보자. 『삼국지』가 비록 한족 중심의 위·촉·오 세 나라의 쟁투를 그리고 있긴 하나, 실제로 삼국시대는 숱한 제후들이 각축하던 시대였고 오늘날 중국의 소수민족이라 불리는 숱한 민족이 각자의 이해득실에 따라 전쟁을 벌이던 시기다. 하지만 두 편찬자는 『삼국지』무대에 비(非)한족을 올리길 극히 꺼려했고, 맹획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설사 등장시킨다 하더라도 한족에 의해 정복되고 감화되는 열등한 미개인으로 묘사한다.

고구려 역사의 귀속을 놓고 중국과 역사 논쟁을 벌이는 이때, 나는 그런 단순한 화이론적 차별을 뛰어넘는 것은 물론 『삼국지』가 한족만의 것이 아닌 동아시아의 모든 민족이 공유하는 문화유산이 되도록 노력했다. 그것의 대표적인 사례가 위나라와 함께 연합작전으로 공손연을 토벌했던 고구려 동천왕의 실제 역사를 복원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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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장정일은 "<삼국지>가 한족에 의한 한족을 위한 한족의 선전물 또는 강령일 수도 있다"는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나관중과 모종강이 구축해 놓은 화이론(華夷論)적 차별을 주의 깊게 해체한다. 한 왕실에 대한 불충과 무단(武斷) 행위가 절대 동탁이나 여포만의 전매특허가 아니건만 그 두 사람이 동급(同級)의 여타 주인공들에 비해 턱없이 의리 없고 예절 모르는 야수로 묘사되다가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것은, 그들이 정통 한족이기보다는 변방인에 가까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옹유반조(擁劉反曹)의 시각으로 일관된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은 한족 중심의 왕조를 미화해야 했던 그 시대 그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있었겠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이분적인 선악론에 불과하다. <장정일 삼국지>는 옹유반조를 편들지 않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한나라 멸망의 전조였던 황건적의 난을 황건농민군의 봉기로 해석한다. 장정일은 자신의 <삼국지>가 시도하는 역사해석 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황건군을 황건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유교이념이 득세했던 시절의 체제지배적 해석에 불과하다. 황건군을 황건적이라고 부르는 선민적(選民的) 역사관으로는, 삼국시대를 살았던 당대 민중의 염원은 물론이고 현재의 중화민국 건국에 관한 진실마저 파악할 수 없다. 중국 역대 왕조는 항상 농민혁명으로 붕괴되었으며, 때문에 오늘날의 중국 정부는 황건난을 '황건기의(黃巾起義:의로운 봉기)로 높여 부르고 있다. 인간사(人間事)의 현상과 본질을 가려 바른 이름을 붙여주어야 한다. 나관중·모종강은 유비를 그야말로 더러운 티끌이 하나도 묻지 않은 고매한 충의지사로 만들기 위해, 한때 유비와 황건군이 합작했던 역사적 사실을 어물쩍 넘어간다. 성리학적 시각에 입각한 나관중?모종강은 '아무리 어려워도 어떻게 도적들과 연합을 할 수 있는가?'라는 난관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건군을 도적으로 보지 않는 장정일의 <삼국지>는 나관중?모종강이 어물쩍 넘어간 그 사실을 당당히 드러내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중화주의와 춘추사관을 지양하고자 했던 저자의 의도는, 많은 <삼국지>들이 중국 그림을 사용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 작가가 그려넣은 총 153컷에 이르는 본문 삽화 속에서도 잘 드러난다. 삽화는 최근 '날카로운 역사의식과 올곧은 시선을 지닌 역사만담꾼', '젊은 상상력으로 무장한 신예'라는 평을 들으며 언론의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김태권 화백의 작품이다. 착한 유비, 음탕하고 광포한 동탁, 힘만 세고 무식한 여포, 기회주의자 가후, 야만스러운 맹획 등 실제와는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역사적 인물들을 새롭게 형상화시킴으로써 <장정일 삼국지>가 제시하고 있는 문제의식을 잘 살려내고 있다. 또한 수백 권에 이르는 각종 문헌과 고증자료를 통해 한나라 말기와 삼국지 시대의 복식과 생활문화, 특히 나관중, 모종강 <삼국지>에서 가려져 있던 주변민족들과 민초들의 생활사를 고증, 복원하여 당시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우리 작가에 의해 시도된 최초의 <한국판 삼국지> 판본이라는 사실에 걸맞은 최고의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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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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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는 아직도 유효한가? ... 개뿔

삼국지에서 조조는 패전을 밥 먹듯 했다. 적벽에서도 100만 대군을 잃었고, 화용도에서도 관우에게 구결하다시피 간신히 목숨을 구한다. 그러나 조조는 냉철한 리더십에 힘입어 훗날 위나라는 삼국을 통일한다.

반면 유비는 제갈공명이라는 탁월한 전문경영인을 영입했지만 창업동지인 관우, 장비와의 지나치게 '끈끈한' 인간관계가 오히려 대국 건설의 걸림돌이 된다. 관우의 복수를 갚는다면 촉이 가진 국력 대부분을 쏟아 부었으니 오나라의 육손에게 치명타를 입는다. 창업공신인 관우, 장비와 외부 영입인사인 제갈공명과의 미묘한 갈등은 촉 패망의 단초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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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대책'으로 '삼국지'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탈도 많고 말도 많지만 흥미로운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어떻게 받아드리냐는 독자의 몫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독자가 많기에 필자의 견해도 중요하다. 그것을 간과하고 있다.

[3월 15일] 영원히 마르지 않는 이야기의 샘물 - 삼국지 를 보고 생각해 본다. 왜 삼국지를 3/15로 했을까 라는 호기심이 들었다. 그 궁금증을 알기라도 한둣 "오늘 3월 15일은, 221년에 유비가 한나라의 적통자임을 주장하며 스스로 촉한의 황제에 즉위한 날이다." 고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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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삼국지 이야기다.
이문열 황석영의 삼국지와 김구용 장정일의 삼국지을 보았다. 이 글은 이문열 황석영 삼국지는 안 보는 까닭에 대한 변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문열과 황석영의 삼국지는 '아니'고 김구용과 장정일의 그것이 낫다는 말이다. 이 말에는 동감한다.
이 말이 의심이 간다면 장정일 삼국지 서문:을 읽어보라. 옳고 그름을 떠나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황석영 삼국지가 최고의 번역본인가?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소위 대학교수라고 하는 먹물들이 최고의 번역서라 말하는 황석영 삼국지가 과연 그러한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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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공명’ 신드롬에 묻힌 고구려 역사는 맞는 말인것 같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점이 많다. 민족혼 되찾기를 강조하고 있다.

삼국지가 "중화사상을 퍼뜨리는데 원천이 된 것"은 맞다. 나관중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면 더 그럴 것이다. 하지만 책이란 보는 이의 관점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가 말하듯이 삼국지때문에 동북아공정에 무기력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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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읽었던 책이 삼국지다. 여러 편을 읽었다.
왜?냐고 묻는다면 읽을때마다 그 느낌이 다르다. 처해진 상황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보인다. 아니 보려고 한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왜?'라는 생각을 많이 하였다. 왜? 공명은 유비를 택하였는가? 왜? 유비는 德으로 인정되게 되었는가? 등등 나에게 많은 의문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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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고초려(三顧草廬)를 통해 공명을 다시 생각하다

이중텐의 생각은 또 이러하다.

유비의 입장에서 제갈량은 구매하고는 싶어도 품질이 어떤지 알 수 없는 상품이었다. 반면 제갈량은 유비 곁의 관우, 장비라는 존재가 부담스러웠다. 삼고초려가 역사적 사실이라면 유비와 제갈량 사이의 관찰을 위한 오랜 기다림의 산물인 셈이다. <삼국지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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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였는데 한국 독자 농락하는 위험한 책 <삼국지>을 보며 그 고민은 더 해졌다.

도대체 삼국지가 무어란 말인가. 삼국지를 읽지 않으면 문제가 되는가? 물론 그허지 않다. 하지만 그 재미는 다른 어떤 그것에 뒤떨어지지 않으므로 계속 읽히고 있고 계속 읽어지도록 조장(?)하는 것에 장단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황석영 삼국지가 최고의 번역본인가?라는 의문점을 제시한 적이 있다. 읽지않아 논하기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교수신문에 난 그것은 여러가지 정황을 볼때 잘못된 평가라는 생각이다.

장정일의 서문에서 말한바와 같이 우리의 관점에서 삼국지를 볼 필요가 있다. 漢족의 입장이 아닌 그들이 말하는 동이족 또는 오랑캐의 입장에서 볼 필요가 있다.

다른 또 하나는 의문을 가지는 것이다. 삼국지에는 비약이 심하다.구전을 정리한 것에 중국 특유의 뻥(?)과 비약이 많다. 그것을 생각하는 것도 삼국지를 읽는 재미가 있다. 제갈공명에 대한 의문점과 같은 것은 안줏거리로는 이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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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팔려면 전유성처럼 : 구라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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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가 과거에 대한 추억이었다면 스타워즈는 미래에 대한 꿈이다. 아이와 <삼국지 - 용의 부활>을 보았다. 삼국지와 마찬가지로 스타워즈는 항상 꿈이자 미래였다. 내가 나이가 더 들어도 그 꿈을 유지할 수 있을까?
스타워즈 궁극의 총정리 - 스타워즈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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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삼국지가 최고의 번역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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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다시 말한다' 좌담회에서 이문열과 이중텐이 만났다.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 이중텐, 삼국지로 현대를 말하다
영화 '영웅'에서 자객 이연걸은 진시황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천하야말로 진정 인민을 위한 길'임을 깨닫고 죽음을 택합니다. 즉 현대 중국 정부에게 있어 통일과 통합세력은 곧 선, 분리주의는 악입니다.

심 지어 말갈(금)에 맞서 싸운 남송의 명장 악비는 그 뒤로 두고 두고 중국 민족(물론 한족을 뜻하죠)의 영웅으로 숭상을 받지만, 현대 중국에서는 그조차도 분리주의자로 취급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통일의 주체가 말갈이건 몽골이건 한족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징기스칸까지도 '중국의 영웅'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현대 중국입니다.

결국 유비는 봉건적인 덕망이 있는 지도자였을 지는 모르지만, 시대착오적인 저항으로 통일을 저해한 역사의 장애물이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중텐 교수의 해석 역시 중국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흐름에 자유롭지 못하다. 삼국지를 우리의 관점에 볼 수 있어야 겠다. 늘 한족의 입장이었고 지금은 중국의 입장에서 한족만이 아니라 모두 중국이다. 한족과 오랑캐가 따로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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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다시 말한다' 좌담회에서 이문열과 이중텐이 만났다. 중국의 삼국지 문화 삼국지는 언제나 꿈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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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고초려'의 원 출처는 어디일까? 공명이 올린 출사표라고 한다. 난 왜 몰랐지? 아니 원 출처를 생각도 하지 못하였다. 지극히 단순하게... [삼국지에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 - 진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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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과 '원본 삼국지' : <정사 삼국지>에 관련 글이다. - 위서 1, 위서 2, 촉서, 오서 : 저자의 말처럼 조조를 영웅으로 보기에 위서는 2권이다.
조조? 참 대단한 인물입니다. 전략이면 전략, 행정이면 행정, 냉철한 현실감각에다 시인이기도 하지요. 유비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고 배신자에다 부화뇌동자에 불과하죠. 그런데 영웅이라니요.
‘삼국지 관직사전’은 독자들한테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인덱스를 못 넣은 게 못내 찜찜하다면서 다음판에라도 넣고 싶다고 말한다. 내가 구매목록에 올린 관직사전 인명사전과는 다른 것이다.

삼국지는 무엇을 말하는가 - 황석영 <삼국지>를 읽고 : 삼국지에 대한 다른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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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삼국지에 관심이 많다.

지금까지 알고 있는 삼국지와 다른 삼국지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지 읽을 수록 혼란스럽다. 모든 것이 내 만족을 얻기 위하여 다른 관점의 책을 찾고 그 만족될때 까지 멈추지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 가지 의문점은 우리가 아는 삼국지 즉 삼국지연의는 가장 전형적인 역사 왜곡인데 가장 잘 팔리고 필독서로 알려져 있다. 아이러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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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공명에 대한 의문점...

27세의 청년 제갈공명은 자기를 3번이나 찾아온 유비에게 "천하삼분의 계"를 설명하였을까? 공명은 유비가 천하의 주인이 아닌 줄 이미 알고 있으면서 유비를 따르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천하삼분의 계"는 공명의 생각이 아니라 수년 전 이미 손권의 책사 "노숙"에 의해서 제시 된 계책이었다. 물론 "조조", "손권" 그리고 나머지 삼분중의 하나가 정립되고 있지 않았기에 공명이 그 하나로 "유비"를 선택했을거리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래도 드는 의문은 만일 조조를 도왔다면 천하를 통일하지 않았을까? 물론 어리숙하고 자리잡지 못한 유비측에 들어가는 것이 견제를 덜 받고 이인자가 되기 쉬운 면이 없진 않았겠지만... "천하통일"의 유혹을 어떻게 뿌리치고 유비를 택할 수 있었을까?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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