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업자들 사이에 '분봉(分蜂)'이란 말이 있다. 벌들의 분가다. 늦봄과 초여름 사이 벌집 주변엔 일대 장관이 펼쳐진다. '부웅-' 수천 마리 황갈색 벌떼가 벌집에서 쏟아져 나와 인근 나뭇가지에 오밀조밀 매달린다. 할아버지 턱수염 모양이다. 그러고는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을 거의 꼼짝 않는다. 몇 십 마리만 뻔질나게 들락날락할 뿐. 잠시 후 벌떼는 다시 들썩댄다. 치솟는 음파가 F1에 출전한 자동차의 엔진 굉음 같다. 돌연 벌떼는 다시 날아올라 어디론가 몰려간다…
벌떼의 중심에 여왕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여왕벌은 여름 내내 매일 1500여 개씩 알을 낳는다.
그 딸들인 수천 마리 일벌들은 여왕을 보살피며 여왕벌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애쓴다. 하지만 벌집의 운영은 여왕벌이 아닌 일벌에 의해 집단적으로 이뤄진다. 일벌 하나하나가 자기 일을 찾아 공헌할 뿐 여왕은 이 과정에 개입하지 않는다.
집단의 사활이 걸린 새 보금자리 찾기도 마찬가지다. 겨울나기에 필수적인 꿀을 저장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좁거나 찬바람과 약탈자에 취약한 곳에 터를 잡을 경우 공멸은 시간문제. 일벌들은 중지를 모은다. 선호하는 벌집의 입구는 대부분 10~30㎠ 정도 되는 옹이구멍이나 틈이다. 대개 지면에서 높이 떨어진 곳에 입구가 있는 남향의 나무 구멍을 선호한다. 그래야 포식자 접근이 어렵고 외풍을 덜 받으며 햇볕을 받아 온도 유지에 유리하다. 벌떼는 이런 명당 자리를 어느 특출난 개체의 지시가 아니라 집단적 의사 결정을 통해 찾아낸다.
저자는 꿀벌에 대한 오랜 관찰 결과를 '효율적인 집단의 다섯 가지 습관'으로 요약한다.
첫째, 의사결정 집단은 공동의 이익과 상호 존중을 아는 개인으로 구성하라. 서로 충돌만 하는 괴팍한 이들로 구성된 결정 집단은 좋은 결과를 낳기 어렵다.
둘째, 지도자의 영향을 최소화하라. 꿀벌 집단에서는 여왕벌조차 방관자다. 군림하는 지도자가 없어야 집단의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하다.
셋째, 토론은 폭넓은 대안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다양한 배경과 견해를 가진 개체로 정찰 집단을 꾸려 독립적인 탐구 결과를 내놓게 하라.
넷째, 논쟁을 통해 집단 지식을 종합하라. 꿀벌 민주주의에서 빛나는 부분은 정찰벌들의 상호의존성과 독립성 사이의 탁월한 균형. 어떤 정찰벌도 다른 견해를 맹목적으로 추종해, 스스로 조사하지도 않고 지지의 춤을 추는 법이 없다.
다섯째, 적절한 종결. 꿀벌들은 집터 논쟁에 며칠을 새기도 하지만 어떤 후보지에 대한 지지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다른 정찰대에 다른 후보지 방문을 중단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합의의 권유다.
시종일관 세밀한 관찰과 기록이 놀랍다. 꿀벌의 갖가지 행태에 대한 묘사만큼이나 관찰 실험의 과정 또한 흥미롭게 읽힌다. 수백, 수천 마리 벌의 가슴과 배에 일일이 색 페인트를 칠해서 구분하고, 벌떼를 쫓아 달려가는 대목을 읽다 보면 저자의 학문적 열정이 책장 너머까지 전해온다.
꿀벌의 민주주의 |
군림하는 1인보다 논쟁하는 집단이 똑똑하다
민주주의, 꿀벌에게 배워라
꿀벌이 ‘8자춤’ 추면? “집터 놓고 토론중”
꿀벌에게 배우는 5가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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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가 제안하는 상상 실험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주아주 오래전 우리가 태어나기 한참 전으로 되돌아가는 상상을 해보자. 당신
사진을 한 장 꺼내놓고, 그 위에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부, 고조부의 사진을 차례로 쌓아가는 상상 실험이다. 고조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1억8500만장째 사진엔? 우스꽝스럽게도 물고기 한 마리가 찍혀있다. "그렇다. 당신의
1억8500만 세대 전 할아버지는 물고기였다!" 진화가 워낙 점진적이어서 한두 장의 사진으로는 그 과정을 전혀 발견할 수 없지만,
사진이 쌓여 갈수록 호모 에렉투스, 유인원, 원숭이를 닮은 포유류 등을 거쳐 물고기에 이른다는 것이다. "진화의 어느 순간
갈라져 나온 지구의 모든 생물들은 결국 '친척'이다. 세상의 어떤 신화보다 훨씬 경이롭지 않은가?"(53쪽)
책은
최소 원자에서 시작해 무한 우주까지 광범위한 자연현상을 설명한다. '최초의 인간은 누구였을까' '사물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왜 밤과 낮, 겨울과 여름이 있을까' '세상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각 장에 하나씩 총 12가지 질문을 던진 뒤,
신화나 종교가 내놓은 답을 먼저 꺼내고 과학이 내놓은 답을 비교해 보여준다.
가령 무지개에 대한 설명을 보자. 추마시
부족 설화에 의하면 무지개는 여신이 인간들을 섬에서 대륙으로 이사시키려고 하늘에 건 다리이고, 길가메시 서사시에선 무지개가 신이
인간에게 다시는 대홍수를 보내지 않겠다는 약속의 징표다. 이에 대해 도킨스는 뉴턴의 실험을 끌어와 '과학의 답'을 들려준다.
뉴턴은 프리즘이라는 삼각형 유리를 통해 무지개를 만든 뒤 흰빛은 모든 색깔의 빛이 섞인 것임을 증명했다. 무지개에 대한 탐구는
빛의 스펙트럼을 통해 별들의 위치는 물론 우주의 기원을 알아내는 데까지 나아간다.
과학적으로 입증돼야만 하는 현실에
대해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시적 마법'이란 표현을 썼다. "현실 세계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마법에 비하면 초자연적 주술과 무대
속임수는 하찮은 싸구려로 보일 뿐이다." 철저한 과학 신봉자다운 말이다.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 |
자연의 신비? 신화 대신 과학에 물어봐
물고기에서 인간으로…마법 같은 과학
‘스테판의 다섯은하’서 지구 보면 2억8000만년전 공룡 보게 될 것
자연에 관한 12가지 질문… 종교와 과학의 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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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늘 사용하는 물건들의 생산지를 추적해 들어가 ‘재주는 곰이 넘고 되놈이 돈을 버는’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예컨대 지은이는 고급요리인 바닷가재의 출처를 찾아서 니카라과에 간다. 그곳에서 낡은 산소통에 의지해 하루 열 차례 30~40m를 잠수하는 젊은이들을 본다. 이들은 ‘감압정지’ 자체를 알지 못해 잠수병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거리에는 목발이나 휠체어에 의지하는 젊은이들이 구걸로 얻은 돈으로 맥주를 마셨다. 미국의 랍스터 체인식당의 메뉴판에는 수백만 달러를 투자해 해양 보존에 힘쓰고 있으니 고객님 앞에 놓인 음식은 맛도 좋을뿐더러 기분까지 좋게 해준다는 문구가 실려 있다. 지은이의 발길은 농민공을 착취하는 중국의 폭스콘, 모든 산이 고무나무 천지이지만 여전히 가난한 라오스, 휴대폰이 많이 팔릴수록 더 불행해지는 콩고 사람들, 양귀비를 기를 수밖에 없는 아프가니스탄 등으로 옮겨간다. 자신의 나라 영국에서는 ‘공정무역’ 로고 장사를 하는 사회단체, 로고가 찍힌 커피 음료를 소비하면서 자위하는 소비자들의 모습에 시선이 간다.
출판사 쪽은 지은이가 몸으로 보여주는 교역의 실체보다는, 고생스럽기는 해도 여행을 하면서 돈도 번다는 발상과 이를 실천에 옮긴 의지가 일상을 탈출하고 싶어하는 독자들의 ‘로망’을 충족시킨 것 같다고 밝혔다. 경제경영으로 분류되지만 여행코드로도 읽힌다는 얘기다. <80가지 교역 속의 세계일주>라는 원서의 제목을 <나는 세계일주로 경제를 배웠다>로 바꾼 것도 그런 노림수였다고 출판사는 털어놨다.
두 번째 책은 첫 책보다 주제가 무겁고 내용도 만만찮다. 하지만 여행담을 깔고 있어 전작을 읽은 독자들한테는 어렵지 않게 읽힐
법하다. <불공정무역>이란 원제목 대신 첫 번역서 제목의 조어법을 따라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로 지은 것이나 전작에 이어 원저에 없는 삽화를 넣은 것은 주제의 무거움을 상쇄하는 데 한몫을 했다.
나는 세계 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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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 방금 자르고 나온 머리 모양, 정치인의 비도덕적인 행태, 배우의 발연기, 비싸기만 하고 맛은 형편없는 식당, 막히는 출근길 도로공사 등등. 이런저런 상황에서 내뱉는 불평들은 어쩌면 우리가 하는 긍정적인 말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을지 모른다.
불평은 그렇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소비자 불만 처리 부서를 확대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소비자의 반응을 회사 경영에 반영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불평은 좋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이 책의 저자 가이 윈치는 불평을 억누르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의 '불평 문화'에 내재된 진짜 문제는 너무 많이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 불평이 낭비되고 아무 결과도 얻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효과적인 불평은 지역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공공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으며, 나라 전체에 혜택이 돌아가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효과적으로 불평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요령을 터득할 수 있을지 모를 뿐. 저자 역시 시간이 갈수록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제대로 불평하는 기술을 갈고닦을 수 있었다고 한다.
불평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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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이나 개포동의 주공아파트 재개발 방식이 못내 아쉽다. 재개발 때 지역 고유의 형상과 건물 배치를 살려두길 바란다. 왜냐하면 주공아파트 단지에는 그속에 살았을 사람들의 추억과 삶이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또 1970~80년대 격동의 시절을 대변하는 주공아파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청계천 세운상가의 해체도 흔적의 소멸이라는 측면에서 안타깝다. 교보빌딩, 청와대, 남산터널, 홍대 앞, 신사동 가로수길, 김포공항. 책은 서울의 건축물과 공간에 대한 단상을 모아 놓았다. 직접 찍은 사진과 그림은 눈을 즐겁게 한다. 서울 토박이의 서울에 대한 애정과 충고가 담겼다.
저자는 건축물에서 여유로움이 많이 발견되길 희망한다. 한옥의 작은 마당 같은 여유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현란한 것보다 단순한 것을 좋아한다. 세종로의 ‘이마빌딩’은 미학적으로 단조롭지만 정이 가는 반면 ‘종로 타워 빌딩’은 볼수록 매력이 반감된다고 한다.
저자가 한강 다리 가운데 원효대교를 아끼는 까닭도 ‘심플함’에 있다.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 저자는 ‘환기미술관’이라고 대답한다. 부암동 언덕 지형을 그대로 살려냈다는 사실에 높은 점수를 준다.
흔히 눈에 거슬렸던 공간이 나이 들면서 이해가 되기도 한다. 저자에게 경복궁 안의 국립민속박물관이 그곳이다. 대학 시절 그는 불국사 청운교, 법주사 팔상전, 금산사 미륵전 등의 복제품이 궁궐 안에 모여 있는 게 못마땅했다. 전통을 모방한 콘크리트 모조물들은 전혀 창조적이지도 유의미하지도 않아 보였다. 당장 부숴버려야 할 건물 1호일 뿐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비판의 눈만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나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잠시나마 옳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서울을 보는 저자의 눈에 애정이 그득하다.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