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턴이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들을 반박하는 것은 단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너무도 확고한 현실이 돼버린 자본주의 체제가 스스로를 바꿀 가능성마저 무력화시키고 있는 지금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이런 현실에 맞설 가장 강력한 무기, 곧 마르크스주의를 다시 그들 손에 쥐여주는 것이 그의 목표다.
책에 언급된 표준적인 비판 열 가지는 ‘마르크스주의는 끝났다’, ‘이론적으로만 괜찮다’, ‘결정론이다’, ‘유토피아를 꿈꾼다’, ‘만사를 경제로 환원한다’, ‘세계를 물질 덩어리로만 본다’, ‘이미 사라진 노동계급에만 집착한다’, ‘폭력적인 정치 행동을 선호한다’, ‘전권을 가진 국가를 믿는다’, ‘최근의 급진적 운동에 기여한 바 없다’ 등이다. 이글턴은 현실 사회주의권 몰락과 더불어 급격히 확산된 이런 통념들이 상식적으로만 따져봐도 잘못됐다고 질타한다.
가장 포괄적인 비판이랄 수 있는 ‘마르크스주의는 끝났다’를 보자. 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스주의는 한때 유용했지만,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뀌어서 적합하지 않다고들 한다. 이에 대해 이글턴은 자본주의 체제는 변한 것이 아니라 심화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전 지구적 규모에서 자본은 전보다 더 집중돼 약탈하고 노동계급은 사실상 양적으로 늘어났다. 게다가 부의 불평등도 극적으로 심화됐다. 이글턴은 “마르크스주의는 주변부로 밀쳐졌지만 그 이유는 그것이 맞선 사회 질서가 더 온건하고 자애로워지기는커녕 예전보다 한층 더 무자비하고 극단적인 것이 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방식으로 이글턴은 ‘집단을 우선시하고 획일적 미래를 꿈꿨다’, ‘의식보다 물질을 더 앞세웠다’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며 확산된 마르크스주의 비판들을 뒤집는다. 특히 그가 이런 작업을 통해 드러내려는 마르크스의 진면목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 마르크스가 ‘제각기 독특한 개인들의 자유로운 발전’을 유일한 정치적 목적으로 삼았다는 점과, 자유·시민권 등과 같은 중간계급의 성취나 가치에 적극 동조했다는 점이다. 이글턴은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된다”는 마르크스의 비전을 ‘사랑’이란 쉬운 말로 풀이하기도 한다. 적극적이고 독특한 그의 해석은 자본주의 체제가 폐기처분하려 했던 마르크스주의를 다시 우리의 삶 속으로 끌고올 수 있게 해주는 다리를 놓아준다.
왜 마르크스가 옳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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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적 금융 사회>는 가계부채 1000조원, 하우스푸어 150만명 시대,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밑바닥 현실을 조명한다. 빚은 이제 우리 일상을 지배한다. 개인 정보를 장악했고, 시간과 라이프 스타일 등 모든 선택권을 가져가 버렸다. “친절하다 못해 귀찮을 정도로 빚으로 둘러싸인 삶을 예찬하던 금융회사들”이 이제는 돈을 회수하겠노라 얼굴빛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지은이들은 이를 일러 “빚의 교묘한 독재”라고 말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채무 노예 사회”다. 한때는 자유인이었던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빚을 끌어안게 되었고, 이내 노예로 전락했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겨우 회생한 금융기관들이 이제는 자신들을 살려준 국민을 대놓고 협박한다. “빚은 자기 책임”이라는 가혹한 이데올로기를 앞세우고 있지만 정작 오늘날 빚 권하는 사회의 책임이 스스로에게 있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약탈적 금융이 만든 ‘내 탓’ 의식을 먼저 벗어버려야 한다. 또한 “금융 소비자가 주인이 되는, 공적 통제를 받는 조직체”로 금융기관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채무 노예를 만드는 약탈자들과 공조자들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재테크 열풍을 일으키며 중산층을 무너뜨리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채무 인생의 대물림을 만든 것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금융’은 약탈적 대출로 서민들의 집을 빼앗았고, ‘언론’은 빚도 자산이라는 프레임을 만들며 머니 게임을 부추겼다. ‘신용카드사’는 월급날의 보람을 완전히 앗아가 버렸다. 그런가 하면 ‘정부’는 부동산 대책에서 거푸 헛발질을 하며 하우스푸어를 양산했다. 한편 서민들의 신용회복을 돕겠다며 야심차게 시작된 ‘파산·회생·워크아웃’ 제도는 여전히 진입 장벽이 높고, 제도적 허점으로 서민들의 삶을 더 옥죌 뿐이다.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니지만 “99%의 채무 해방을 위해” 나아갈 길은 멀고 험하다. 먼저 가혹한 채권 회수보다 인간적인 채무 조정 등 채무 조정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개인의 힘으로는 세상을 바꾸기 어렵기에 “99%를 위한 채무자 연대”와 같은 사회운동도 필요하다. 지은이들은 “전문가의 도움과 다른 채무자와의 연대, 이것이 당장 빚에 짓눌려 겪는 고통을 해결할 가장 중요한 실천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금융 복지 안전망, 곧 사회적 안전망을 형성하는 일이다. 2012년 대한민국 서민들의 희망은 “인간적인 금융”, 곧 힘겹게 노동해서 번 돈을 약탈해 가는 금융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금융 시스템”이다.
<약탈적 금융 사회>는 대한민국의 아픈 현실과 직면하게 한다. 이런 아픈 현실과 직면하여, 이제 삶의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도 알려준다. “자각하고, 분노하고, 연대하고, 그리고 당당히 외쳐야 한다”는 구호와 실천은 단지 약탈적 금융 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삶을 규정하는 모든 실체를 향해 던져야 할 말이다.
지은이들의 마지막 말이 내내 뇌리에 남는다. “한때 자유인이었던 그 시간을 되찾아 다시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야만적 세상과 타협해서는 안 된다. 야만의 세상을 다시 인간의 세상으로 바꿔야 한다.”
약탈적 금융 사회 |
요람에서 무덤까지 빚 권하는 사회
요람에서 무덤까지 '빚', 해결책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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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완서(1931~2011)의 책 목록은 생전에 마지막으로 낸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2010)로 마감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작가의 따님 호원숙씨는 “어머니의 서랍에서 어떤 산문집에도 들어가지 않은 글을 잘 정리하여 모아놓으신 묶음을 발견”했다. 여기에다 <못 가본 길…> 이후에 쓴 글 두 편을 갈무리해 새로 낸 책이 박완서의 ‘진짜 마지막 책’ <세상에 예쁜 것>이다.
표제 글은 김점선으로 짐작되는 여성 화가가 죽기 며칠 전 병실에서 보았던 장면을 들려준다. 평소와 다르게 눈물까지 흘리며 약한 모습을 보이던 화가가 침대 옆에서 잠든 갓난 손자의 발을 보며 은은한 미소를 머금던 것. “수명을 다하고 쓰러지려는 고목나무가 자신의 뿌리 근처에서 몽실몽실 돋는 새싹을 볼 수 있다면 그 고목나무는 쓰러지면서도 얼마나 행복할까. 병자도 지금 그런 위로를 받고 있음이 분명했다.”
작가 자신이 청죽 같던 외아들을 잃고 일 년 뒤에 외손녀를 보았을 때의 심정이 그와 같았을 것이다. “아들을 잃었을 때, 내 여생에 다시는 근심도 기쁨도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장대 같은 아들을 잃은 지옥 같은 고통에 지쳤을 때 겨우 콩꼬투리만한 새 생명이 기적처럼 나에게 왔다.”
박완서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쓴 글은 “깊은 산속 옹달샘” 같았던 법정 스님과 생전에 나누었던 작은 인연과 스님의 깨끗한 삶을 회고하는 내용이다. 책에는 이밖에도 피천득·이병주·박경리·장영희 등 작고 문인들에 관한 회고,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초등학생이 보낸 질문에 대한 답변, 그리고 법조인이 되려는 손자에게 보낸 편지 등이 들어 있다.
그런데 이렇듯 다양한 글을 관통하는 주제는 결국 사랑이다. 어떤 고통과 슬픔, 수고도 사랑으로 덮을 수 있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한 사람들 역시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주었다고 생각하면 인생은 아름답고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힘으로 이룩한 업적이나 소유는 저세상에 가져갈 수 없지만 사랑의 기억만은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죽음조차 두렵지 않아진다.”
세상에 예쁜 것 |
서랍서 찾은 박완서의 ‘진짜 마지막 책’
사랑의 기억을 가져갈 수 있다면 나는 죽음조차 두렵지 않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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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탈리아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 그는 어떻게 자기 나라도 아닌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으로부터 막대한 항해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을까? 당시 대서양을 서쪽으로 항해하면 섬이나 육지를 발견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는 그다지 독특한 발상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수많은 탐험가 가운데 콜럼버스가 선택된 이유는 뭘까? 새 책 '역사를 움직인 프레젠테이션'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혹적인 프레젠테이션 능력을 가진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당시 콜럼버스는 자기 비용은 한 푼도 들이지 않은 상태에서 대항해를 시도했다. 항해에 필요한 자금을 모두 준비한 뒤 국가에 허가를 신청한 다른 탐험가들과 정반대였다.
자신의 원대한 꿈과 야심을 기획안으로 만들어 국왕을 상대로 프레젠테이션을 한 뒤 국가의 자금을 활용해 눈부신 성공을 이뤄낸 것이다.
이 책의 지은이는 콜럼버스가 스페인에서 펼친 프레젠테이션을 이렇게 비유한다.
'일본인인 내가 달에 가고 싶어 기획서를 작성한 뒤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내가 요구하는 성공 보수는 달에서 거둬지는 총 수익의 10%를 받는 것이다. 달에서 나의 지위는 부통령이자 제독. 신분은 우리 가문 대대로 세습되도록 할 것.' 이 정도로 대담한 콜럼버스의 요구가 그대로 통과된 셈이다.
지은이는 다른 경쟁자들이 단순히 모험가였던 데 반해 콜럼버스는 플래너, 즉 기획을 파는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기획력이란 개인의 꿈과 야심을 상대, 즉 클라이언트와 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해 내는 능력을 말한다. 상대방에게 무엇이 이익이 되는지 공감하게 하고 납득시킬 수 있어야 비로소 팔리는 기획이 된다.'
지은이가 역사에서 한 수 배운 마음을 움직이는 10가지 프레젠테이션 비법은 다음과 같다.
상대를 설득하고 싶다면 상대의 이익에 초점을 맞춰라. 한 문장 한 단어만 들어도 머릿속에 이미지가 선명하게 펼쳐지는 어휘를 선택하라. 우연이나 행운도 철저히 기획·연출해 상대로 하여금 행운의 여신이 당신 편이라고 믿게 만들어라. 진짜 설득은 상대가 당신과 같은 마음이 됐을 때 가능하다.
상대를 이해시키려 하기보다 유혹하라.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경쟁자의 허를 찔러라. 당신의 기획이 상대의 머릿속에 뿌리내리도록 치밀하게 사전작업 하라. 프레젠테이션 성공 후 사후관리를 결코 소홀히 하지 마라. 평소 꼼꼼하고 치밀한 메모가 프레젠테이션을 완벽하게 만든다.
역사를 움직인 프레젠테이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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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폭력에 대한 본질적 이해와 치유, 사회적 구제에 대한 매뉴얼을 제공하는 '성폭력 종합 보고서'다. 저자는 미국에서 30년 넘게 성폭력 피해자를 상담·치료해온 정신과 전문의. 수천 명에 달하는 환자 치료와 상담 사례, 방대한 연구 성과와 통계가 담겼다. 대부분 미국 사례들이지만, 곧바로 한국 사회에 적용해도 전혀 무리 없이 읽힌다.
아동 성폭력은 지구상에서 가장 만연한 범죄다. 미국에서 여자 아동의 27%, 남자 아동의 16%가 근친상간을 당한다는 통계가 있다. 전 세계 여아의 25%, 남아의 10%가 성인이 되기 전에 성폭력이나 성 충격을 경험한다는 통계도 있다. 저자는 "우리 이웃 셋 중 하나는 어떤 식으로든 성폭력과 관련된 피해자"라고 말한다.
성 학대의 희생자들은 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 정신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는 환자들은 대부분 우울증과 공황장애, 편집증,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고 스스로의 몸에 칼자국을 내는 등 자기파괴적 행동을 보인다. 정신적 문제는 비만, 당뇨, 심장병 등 육체적 질병으로도 쉽게 이어진다.
무려 10년간 양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해온 캔디의 사례는 충격적이다. 처음 저자를 찾아왔을 때, 그녀는 유년기 사건을 전혀 기억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양팔에 수많은 칼자국을 남긴 채 민소매 블라우스를 입고 출근하는 등 자해 행위를 일상적으로 반복했다. 저자는 3년간의 치료 끝에 캔디의 기억을 밝혀낼 수 있었다. "어떻게 10년간 계속된 성 학대를 기억하지 못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기억하기엔 너무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많은 희생자는 문제가 무엇인지도 깨닫지 못한 채, 고통스러운 충격을 의식 밖으로 밀쳐낸다. 그들의 내면이 생명력을 잃고 서서히 죽음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313쪽)
아동 성학대에 따른 피해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막대하다. 툴사 대학 엘라나 뉴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성적 트라우마에 의한 고통과 삶의 질 저하로 생기는 피해는 연간 4500억달러에 이른다. 저자는 "개인의 삶에서 벌어지는 혼돈, 직장과 학교의 손실, 인력 낭비 등 간접적인 사회경제적 비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고 했다.
책은 역사적 인물이나 위대한 작가·유명 배우 중 성적 트라우마를 경험한 이들의 사례를 상당수 지면에 걸쳐 소개한다. 엘리자베스 1세, 나폴레옹, 바이런, 융, 앙드레 지드, 앤젤리나 졸리, 오손 웰스….
그런 다음 풍부한 임상사례를 제시하며 진단과 치료 대책 로드맵을 보여준다. 치료는 '충격 탐색-이해-해결'의 단계를 거친다. 극도로 고통스럽지만 기억을 불러내고 재경험하는 것은 치료를 위한 필수 과정. 저자는 "성 학대 희생자들의 자기 중심적 세계를 인식해야 한다"고 동료 의사들에게도 조언을 던진다. "고통 속에 있는 희생자들이라고 과도하게 동정하면 그들은 남자와 세상에 대한 자신의 부정적 감정이 타당하다는 암묵적 승인을 받게 된다. 치료사는 끊임없이 그들의 현실성을 체크하고 경계를 설정해주고 마침내 가족과 사회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피해사례들이 너무도 끔찍해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 그러나 저자는 "성적 트라우마가 사형 선고나 불치병은 아니다"는 데에 방점을 찍는다. 전문가의 조기 개입이 적절히 이뤄진다면 아이가 파괴적인 길로 접어드는 것을 막을뿐더러 남다른 감수성과 창조력을 갖춘 인간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는 것. 마지막 장엔 환자와 부모, 심리치료사, 정신과 의사에게 건네는 실질적 조언을 정리했다. 엽기적인 성범죄가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책이다.
섹슈얼 트라우마 |
앤젤리나 졸리, 그녀도 겪었고 이겨냈습니다
아동성폭력, 흡연·비만만큼 퍼져있는 毒
아니, 그녀에게도 성폭행 아픔이…
성폭력은 인간 삶에 뿌리내린 심각한 사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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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원제 'Sudden Genius?')은 '천재의 법칙'을 찾아내기 위해 분투한 19세기 이후 과학자, 심리학자, 우생학자 등의 노력을 생생하게 전한다. 그런 노력은 우선 '정말 천재들은 우리와 다른 무언가가 있는가?'라는 궁금증의 발로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범인(凡人)들을 위한 위로의 구실 찾기로도 읽힌다.
'천재의 법칙'을 찾는 학자들의 분석은 크게 '본성과 양육'으로 나뉜다. 시작은 다윈의 사촌이기도 한 골턴. 그는 1869년 '유전적 천재성'이란 책을 통해 비범한 사람들은 우생학적으로 어떤 가계(家系)에 속했는지 분석했다. '타임스' 등 신문의 부고란 등을 분석한 그의 작업은 법조인과 과학계에선 일부 맞는 듯했다. 하지만 뉴턴의 부계(父系)에선 어떤 뛰어난 사람도 발견하지 못했고, 물리학자 패러데이, 화학자 존 돌턴 등은 아예 명단에서 빼버렸다. '재능은 유전된다'는 결론에 맞지 않아서다.
이런 노력은 20세기 미국의 캐서린 콕스의 '천재 300명의 유소년기 정신적 특질'(1926년) 등으로 이어진다. 천재들이 타고났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화석 지능지수(fossil IQs)'까지 동원된다. 남아있는 자료를 통해 지능지수 측정이 없던 시대의 위인들의 IQ를 추산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17세 이하의 지능지수와 17~26세 사이의 지능지수를 각각 측정했더니 다빈치는 135/140, 미켈란젤로는 145/160, 모차르트는 150/155, 뉴턴은 130/170의 결과가 나왔다. 존 스튜어트 밀은 190/170으로 나이가 들면서 떨어지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이런 결과에 대해 스티븐 제이 굴드는 "그저 그때까지 남아있던 역사적 사실 기록만을 반영해 이뤄진 것일 뿐 그 천재들을 제대로 평가해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네틀이란 학자가 제안해 심리학계에서 통용되는 5요인 모델 역시 완벽하지는 못하다. 5요인 모델이란 외향성(개방적·열정적이면 높은 점수) 신경성(스트레스를 쉽게 받고 걱정을 잘하면 높은 점수) 의식성(조직적, 자기 통제력이 강하면 높은 점수) 동의성(신뢰와 감정이입을 잘하면 높은 점수) 개방성(창조적 상상력이 풍부하면 높은 점수)을 측정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최근 자기공명장치 등을 이용해 뇌의 활동을 분석하는 기법이 도입됐지만 여전히 '천재의 법칙'은 증명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아주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천재들은 고독을 즐겼다.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혼자 그렸고, 모차르트도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할 때는 집에 틀어박혔으며 샹폴리옹은 상형문자를 해독한 후 형에게만 소식을 알리고 실신했다. 다윈은 자연선택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아내에게도 비밀로 했다.
저자는 이런 이론들을 검증하기 위해 '천재' 10명을 선정, 그들의 '도약' 과정을 상세히 설명한다. '최후의 만찬'의 다빈치,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을 건축한 크리스토퍼 렌(Wren),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모차르트,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한 샹폴리옹, 진화론의 다윈, 라듐을 발견한 마리 퀴리,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아인슈타인, '댈러웨이 부인'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 사진집 '결정적 순간'의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인도 영화감독 사티야지트 레이 등이다.
저자가 '대표 천재'로 선정한 10명의 선정 기준에 대해선 이론이 있을 수 있다. 결론 역시 전복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천재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인류의 오랜 탐구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천재의 탄생 |
이들처럼 되고 싶은가, 일단 10년은 몰두하라
지식 갈고닦지 않은 천재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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