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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2년 10월 1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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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일본 요식업계의 전설' '술장사의 신(神)'이라는 홍보문구까지 요란뻑적지근하다. 5평짜리 이자카야(선술집)에서 출발해 여러 점포로 덩치를 키우며 직원 100여 명을 독립시킨 우노 다카시(68)가 들려주는 이 성공 스토리는 사실 소박하다. 바둑에 빗대면 정석을 섬기는 이론 바둑이 아니라 실전적인 잡초 바둑이다. 하지만 몇몇 대목에서는 무릎을 탁 치면서 이 할아버지를 우러러보게 하는 지혜를 만난다.

이자카야들의 전쟁에서 우노 다카시는 어떻게 승리했을까. 가게의 목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밑천은 박했고 식재료며 요리도 평범했다. 비장의 무기는 바로 '말걸기'였다. 그는 '어떻게 하면 손님이 즐거워할까'를 늘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손님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했고, 이야기하며 관계를 맺었고, '단골이 새 단골을 창출한다'는 다단계(?)를 신봉했다. "손님이 들어오는데 멀뚱히 있거나 '어서 오세요'라고 건조하게 인사하는 가게는 성공할 수 없다"고 그는 역설한다.

말재주가 없다고 접객을 못하는 게 아니다. 1000원짜리 빨래 건조대에 커다란 포크를 매달아 조명을 만들었더니 손님이 먼저 말을 붙였다. 요리 이름을 독특하게 지으면 누구든 "이게 뭐예요?" 물어올 것이다. 닭 날개 튀김을 주문한 손님에겐 "오른쪽 날개로 드릴까요, 아니면 왼쪽?" 하며 씩 웃어준다. 이런 이야기가 돈을 지불하는 자와 챙기는 자 사이의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가게는 활기를 띤다.

동업은 하지 않는다. 둘이 10평짜리 가게를 낼 계획이라면 5평짜리 가게를 따로 개업하는 게 낫다. 운영부터 빚까지 혼자 책임진다는 부담이 없으면 전투력이 쌓이지 않는다. 이 책에서 "메뉴에는 그때그때 유행을 반영할 수 있지만 가게 전체를 걸고 유행을 좇아선 안 된다"는 대목을 읽을 때, 불붙었다 식어버린 찜닭집과 조개구이집이 떠오른다.

이 장사꾼은 친절한 팁도 일러준다. 손님 이름을 물을 땐 친해진 기념으로 간단한 서비스 안주를 낼 것, 할인 전단 돌리지 말고 단골에게 집중할 것, 식자재며 술 거래처와도 인간관계를 만들 것, 확실한 대표 메뉴를 만들 것…. 일본 외식시장 전문 잡지 '닛케이 레스토랑'에 연재한 '우노 다카시가 알려주는 작은 가게 잘 되는 법'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확대 해석은 금물. '변두리의 작은 선술집이 살아남는 법'쯤으로 읽으면 요긴하다. 다만 손님과의 이야기와 리듬이 장사의 핵심이라는 말은 보편타당한 진리처럼 들린다.

장사의 神
우노 다카시 지음, 김문정 옮김/쌤앤파커스

일본 외식업의 대가 비장의 메뉴는 '말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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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래를 봤네. 잘 돌아가고 있더군."

1차 대전 직후 모스크바를 다녀온 미국 언론인 링컨 스테펀스(1866~1936)가 말했다. 신생 공산국 소련에 대한 기대감이 흠뻑 묻어났다. 당시 서방에는 소련에서 '미래'를 본 사람이 적지 않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새뮤얼슨도 대학 교과서(1961년판)에 '소련 국민소득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며 그 시기가 1984년이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고 1997년이면 거의 확실시된다'고 썼다.

하지만 기세 좋던 소련 경제는 1970년대로 오면서 급제동이 걸렸다. 다시 분석이 시작됐다. 소련의 초반 고속성장 비결은 별 게 아니었다. 스탈린식 집중경제는 그저 가진 생산력을 한곳에 몰아넣은 결과였다. 정부 통제로 공업을 키우는 동안 농민의 희생은 끔찍했다. 600만 명 가까이 굶어 죽었고 강제 집산화 과정에서 수십만 명 이상이 피살되거나 시베리아로 추방당했다. 얼마 못 가 소련은 해체의 길을 걸었다. '수탈식(extractive)' 정치·경제제도는 '반짝 성장'은 가능케 했지만 지속 가능성과는 거리가 먼 선택이었다.

왜 어떤 나라는 번영을 구가하고, 어떤 나라는 지리멸렬한가. 책은 국가 흥망사라는 거대 질문에 답하려 한다. 로마 제국부터 오늘날 아프리카 국가들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사례를 MIT 경제학과 교수와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가 짝을 이뤄 케이스 스터디 하듯 해부했다.

결론은 명료하다. 포용적인(inclusive) 정치·경제제도의 유무가 국가 흥망을 결정한다. '포용적 경제제도'란 사유재산권과 공정 경쟁을 보장하고, 혁신과 투자를 장려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포용적 정치제도'란 법·질서를 확립할 수 있도록 일정 수준 이상의 중앙집권화를 이뤘으면서, 정치권력이 사회 여러 계층에 고루 분산된 것을 말한다. 우리로선 익숙한 내용이다. 책에서도 남북한이 주요 사례로 소개된다. 그럼에도 책을 주목하는 이유는 풍부한 실례를 통해 세계 불평등에 관한 의문을 적잖이 해소해 준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예가 남·북미의 고질적인 빈부 격차다.

남·북미 접경지대의 노갈레스시는 담장 하나가 남북을 가른다. 북쪽은 미국 애리조나주, 남쪽은 멕시코 소노라주. 하나의 땅이지만 남북 주민의 삶의 질은 딴판이다. 연평균 가계 수입만도 북쪽은 3만달러, 남쪽은 그 3분의 1 수준이다.

같은 대륙의 남과 북이 왜 이리 다른가. 제도의 차이다. 저자는 식민지 유산으로 설명한다. 1519년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멕시코 침략을 시작한 이래 에스파냐는 원주민의 땅과 노동력을 수탈하는 방식으로 남미를 정복해갔다. 에스파냐 왕실과 더불어 정복자들과 후손들은 막대한 부를 누린 반면 원주민은 밑바닥 삶을 전전했다.

반면 북미는 후발 주자인 영국 차지였다. 1607년 제임스타운에 정착한 정복자들은 한숨을 쉬었다. 멕시코·페루처럼 은(銀)이 많지도 않았다. 흩어져 사는 인디언을 강제노역시키기도, 식량을 뺏기도 어려웠다. 살아남으려면 자구책이 필요했다. 식민지 개발을 맡은 버지니아 주식회사는 인센티브 방식을 택했다. 개척민 남성에게 땅을 분양해 개척하게 했다. 나폴레옹 침공으로 에스파냐가 몰락했을 때 남미의 권력 공백을 독재자들이 메운 반면, 북미는 남북전쟁 이후 헌정질서가 자리 잡아갔다. 그 후 미국은 경쟁을 통해 번영을 구가한 반면 남미는 특권과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내전과 쿠데타가 교차했다.

포용적 경제·정치제도가 어느 곳에서나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낳는 '창조적 파괴'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로마 공화정 몰락 직후의 일화가 웅변한다. 한 사내가 로마 성채인 카피톨리누스 언덕으로 돌기둥을 운반할 수 있는 기구를 개발했다며 황제를 찾아갔다. 수천 명의 노동력과 엄청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발명이었다. 하지만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거부했다. "그럼 백성을 어떻게 먹여 살리란 말인가". 권력자로서는 일감이 사라지고 난 후의 정치 불안이 더 걱정이었다. 1589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양말 짜는 틀' 발명자에게 특허신청을 거부한 것도 같은 심리에서였다. 한때 시계·나침반·화약·종이 등의 기술 혁신으로 앞섰던 중국의 황실도 더 이상의 '창조적 파괴'는 꺼려 해외 무역에서 눈을 돌렸고, 그 사이 유럽은 세계를 개척했다.

누구나 다 아는 손쉬운 방법을 왜 많은 나라에서는 쓰지 않을까.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지배층이 자신의 이득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 탓이다. 쫓겨난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재산은 무려 700억달러였다. 정치를 장악하고 경제만 포용적으로 가져간다 해도 언젠가는 권력구조가 다원화되고 지배계층의 몰락을 초래한다. 저자들이 중국을 주목하는 이유도 착취적 정치와 허울뿐인 포용적 경제제도를 갖고도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포용적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 한 “언젠가 김이 빠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책을 따라가다보면 ‘착취적 제도’를 가진 멕시코에서 독점을 통해 세계 최대의 갑부가 된 카를로스 슬림과 ‘포용적 제도’를 가진 한국에서 전횡을 일삼는 재벌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리송하다. ‘포용적 제도’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경제성장을 이끌어내지 못한 제도는 후진적일 뿐인지 의문도 든다. 다만 ‘착취’의 악순환을 빠져나오는 방법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자들은 브라질 룰라 전 대통령의 경험을 얘기하면서 “맞서 싸우는 시민들의 광범위한 연합운동”만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 외 지음, 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시공사

아메리카 대륙의 두 얼굴 '인센티브' 때문이야
빈국과 부국의 차이는 자원 · 문화가 아닌 제도의 차이일 뿐
글자크기 글자 크게글자 작게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의 차이는 왜 생길까
인센티브가 풍요로운 국가를 만든다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의 차이는 왜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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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고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둔 한 친구는 요즘 부쩍 감정이 복잡한 모양이다. 아기 똥까지 예뻐 보인다며 행복해하다가도 출산 전보다 불어난 몸매에 울적해하고 시어머니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 기분이 상하고, 또 그러다 남편이 명품 지갑을 사주면 만족스러워한다. 출산 후 자아실현은커녕 감정 기복만 심해졌다는 친구에게 ‘인간으로서 지극히 건강한 현상’이라고 말해주면 위로가 될까.

진화론자 찰스 다윈은 1872년 발표한 저서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 대하여’에서 인간의 기본 감정으로 ‘행복 슬픔 분노 공포 혐오 놀람’의 6가지를 들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다윈이 꼽은 감정에 ‘질투 수치 당황 경멸’을 더한 10가지 감정이 사회 문학 철학 역사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을 분석함으로써 인간 감정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살피고 ‘이 10가지 감정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질투’를 얘기하면서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수치’를 말할 땐 너대니얼 호손의 ‘주홍글자’를, 그리고 ‘분노’를 설명할 땐 펑크록 그룹 섹스피스톨스의 음악과 갱스터랩을 논한다.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다윈과 꼬마의 대화로 대신한다. 다윈은 네 살도 안 된 꼬마에게 기분이 좋다는 게 무슨 뜻인지 물었다. 아이는 “웃고 말하고 뽀뽀하는 것”이라고 대답했고, 다윈은 “이보다 더 현실적이고 진실된 정의는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감탄했다.

저자는 “감정은 우리의 사회생활과 문화생활의 태반을 떠받치는 기반암”이라며 “어느 미래의 유토피아에서 우리가 감정을 전혀 안 느끼는 단계로 진화한다면 그때는 벌써 우리가 인간이기를 멈췄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설명은 영화 ‘이퀼리브리엄’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영화에서 국가 권력은 인류의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 인간의 감정이라는 판단 아래 사람들에게 약물을 지속적으로 투여함으로써 감정을 통제한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차가운 인간들이 모인 사회는 곧 디스토피아다.

이왕에 인간이 감정적 동물인 이상 나쁜 감정보다는 좋은 감정이 많으면 좋으련만, 책에 소개된 10가지 기본 감정 가운데 긍정적 감정이라고 할 만한 것은 ‘행복’ 하나뿐이다. 그러면 우리 삶에서 어떻게 하면 부정적 감정을 줄일 수 있을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그 해답이 될 만한 구절이 있다. “사람들이 무심한 현재를 견뎌내기보다는 과거의 불행한 기억을 떠올리는 데 상상력의 태반을 쏟아 붓지만 않아도 고통은 줄어들 것이다.” 괴테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만화 ‘심슨 가족’의 주인공 호머 심슨은 “기억을 하면 죄다 나빠 보인다”는 말로 슬픔의 본질을 꿰뚫는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깊은 통찰력이 돋보이지만 복문과 만연체로 가득한 문장으로 인해 술술 읽히진 않는다. 책을 덮고 나서 책에 등장하지 않는 11번째 감정이 밀려왔다. 따분함이다.

인간다움의 조건
스튜어트 월턴 지음, 이희재 옮김/사이언스북스

10가지 감정이 인간다움을 만든다
진화론의 찰스 다윈이 남긴 ‘인간 감정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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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경제학’을 쉽게 이해하려면, 국가 간 거래를 들여다보면 된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30억달러의 군사원조를 했다. 이스라엘은 그 보답으로 27억달러 상당의 록히드마틴 전투기 20대를 샀다. 이스라엘은 자체 군산복합체를 가진 ‘호전적 국가’인데도 ‘원조’가 이뤄졌다. 미국은 독재자 무바라크가 집권하던 이집트에 대외 군사 차관을 지원했다. 이 돈도 미국의 군사 장비 구입에 들어갔다. 저자는 2008년 금융과 실물 경제 위기의 원인, 전쟁과 군사화의 근본적 동기를 분석한다. 미국의 정부 부채, 만성적 무역·재정 적자 같은 여러 현상의 근저에는 무기판매와 억압으로 유지되는 폭력적인 교역 관계가 자리하고, 이는 군사비 지출과 관련 있다고 말한다. 군산복합체의 ‘폭력적 교역’의 이면은 다음 사례에서 볼 수 있다.

미국은 파키스탄에 F-16 전투기를 비롯한 각종 무기를 팔아왔다. 파키스탄이 탈레반에 맞서는 핵심 동맹국이란 게 이유였다. F-16 같은 최첨단 무기는 탈레반에 별 효과가 없다. 오히려 적국인 인도와의 갈등·긴장을 고조시킨다. 인도는 파키스탄이 사들인 F-16이 자국을 노린다고 여긴다. 와중에 미국은 인도에 최신 무기를 팔려고 한다. 2010년 버락 오바마가 인도를 방문했는데, 언론은 “보잉과 록히드마틴이 인도에 F-18 전투기와 F-16 전투기를 추가 판매할 수 있도록 로비를 벌이는 게 주된 목적이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이른바 ‘군사균형’ 이론을 갖고 대립과 갈등을 부추긴다. 파키스탄에 최신 고급 무기를 판매한 다음 인도 정부더러 더 많은 돈을 무기 구매에 투자해 다른 나라가 지배하지 못하는 조건 즉 ‘군사균형’을 유지하라고 설득하는 수법을 사용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볼 수 있듯 군사균형은 평화보다 무력충돌을 불러오기 쉽다.

유럽의 부유한 국가들도 무기 판매에 혈안이 되어 있다. 저자는 “선진국이 저개발 국가의 도둑정치가로부터 군사적 접근 기회를 보장받는 대가로 그곳에서 자행되는 억압과 독재를 보고도 못 본 체하기만 한다”고 말한다. 영국과 프랑스는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에게 무기를 팔려고 안달했다. 2011년 리비아 사태 때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영국의 캐머런 총리는 카다피에 대항하는 반군에 무기를 지원해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속셈과 계산은 카다피 때와 같다. “차기 리비아 정부에 무기를 판매할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사전 포석 성격의 제안”이었다. 양국 간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영국은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대해서도 찬성 뜻을 표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반대했다. “리비아 상공에서 프랑스제 미라지 전투기가 미 공군의 전투기에 격추당하는 당혹스러운 광경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즉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지면 프랑스의 무기판매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계산을 했기 때문이다.”

‘전쟁의 경제학’이 굴러가는 이유는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석유가 핵심이다. 2010년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과 600억달러 상당의 전투기와 헬리콥터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600억달러는 7억 배럴 상당의 석유 판매금이고, 미국이 이 나라에서 수입하는 석유의 2년치에 해당하는 양이다. “무기판매는 미국 경제가 석유수입 대금을 마련하는 몇 안되는 방법 중의 하나”인 것이다. ‘전쟁의 경제학’은 추잡하다. 군산복합체와 글로벌 방위산업은 부정부패로 오염돼 있다. “서양 방위산업체는 개발도상국의 부패한 공직자와 결탁하여 무기매매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이 나라의 부를 도둑질한다고 할 수 있다.”

<전쟁의 경제학>의 원제는 <살상의 경제학(The economics of killing)>이다. 한 예로 미국은 파키스탄 북서부 산악지대에서 알카에다와 ‘두더지 잡기 게임’을 벌였다. 탈레반 지도부나 알카에다 요원의 은신처 정보를 입수하면 무인 공격기를 급파해 용의자 주변 20m 이내의 전투원과 그 가족, 이웃주민을 죽이고 끝내는 게임이다. 정밀 타격과 지뢰 같은 재래식 무기의 주된 희생자는 어린이들 같은 약자다.

한·중·일의 동북아시아 3개국과 미국 간의 군사적 긴장 관계도 저자가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다. 저자는 현재 갈등이 고조되는 일본명 센카쿠열도, 중국명 댜오위다오의 영토 분쟁을 분석하면서 새로운 전쟁 가능성도 제기한다. 남북한도 화약고다. 한반도에서 또 전쟁이 벌어지면 남북한과 주변 나라는 1조달러의 손실을 감수해야 하며, 인명 손실도 100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미국의 재정·무역 적자는 무기산업과 어떤 관계일까. 저자는 2008년 금융위기가 군산복합체의 무기산업 때문에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미국은 중국에 무기를 판매하지 않고, 중국이 미국의 군산복합체에 투자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미국이 무기 판매를 허용하면 중국은 연간 1000억달러의 미국 무기를 수입할 수 있다. 2004~2008년 미국이 중국에 무기를 판 돈으로 무역 균형을 유지했다면 금융위기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중 간 무기 거래가 실현되면, 강대국 간 군비경쟁이 한층 더 심화되는 문제가 있다. 저자가 자유 무기거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대안은 군비축소다. “세계 강대국이 중기적 전망에 연연해하면서 해로운 정책을 결정하는 대신 군사비 축소를 통해 거두는 장기적 이익에 눈을 돌리면 세계는 안정과 번영을 누릴 수 있다.” 저자는 군산복합 무역의 핵심을 석유 거래로 지적하면서 “환경에 덜 해롭고 석유를 대신할 만한 에너지원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쟁의 경제학>의 주제나 문제의식은 지금 한국에서 유효하다. 한국은 세계 4위의 무기 수입국(2004~2008 기준,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이다. 미국에서 주로 수입한다. 9월27일에는 한국이 첨단 공격형 아파치 헬리콥터 36대를 사겠다는 의사를 미국에 전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당면한 한국판 ‘전쟁의 경제학’에 들어가는 돈은 4조원가량이라고 한다.

전쟁의 경제학
비제이 메타 지음, 한상연 옮김/개마고원

미국 군산복합체의 폭력적 무기거래가 금융·실물경제 위기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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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서 ‘시장의 실패’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목초지의 비극’이라는 개념을 떠올려 보자. 한 마을에 가축을 먹이기 위한 목초지가 있다. 그곳에 사는 주민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될 수 있는 한 자주 목초지에 가축을 데려가 풀을 먹이는 것이다. 많이 먹은 가축은 젖도 많이 나오고 털도 자주 깎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마을 주민 모두가 동시에 그렇게 행동한다면 목초지는 머잖아 황폐해지고, 가축들은 굶어죽게 된다. 게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마을 주민들이 똑같은 수의 가축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수백마리의 가축을 가진 이장과 가축이 없거나 겨우 한 마리만 가진 이들 사이의 경쟁이란 처음부터 불공정한 게임인 셈이다. 이 이야기가 가르쳐 주는 것은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때 사회 전체의 후생도 극대화된다는 이른바 애덤 스미스식 고전경제학의 진리가 사실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독일 사회민주당의 자매단체인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의 후원을 받아 제바스티안 둘리엔 등 독일 경제학자 세명이 함께 쓴 <자본주의 고쳐쓰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천박한 자본주의를 ‘괜찮은’(decent) 자본주의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전 지구적 경제위기에 직면한 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이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내놓은 고뇌의 산물이라 부를 만하다.

책은 크게 두 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에서는 2차 대전 뒤 전후 부흥을 이끈 브레턴우즈 체제의 성립과 해체, 그리고 현재의 고삐 풀린 금융자본주의가 활개치기까지의 60여년 역사를 경제사적으로 돌아본다. 저자들이 보기에 자본주의가 현재의 위기에 봉착한 것은 시장의 완벽함에 대한 맹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밀한 수치와 그래프로 표시되는 고전경제학의 세계에서 불균형은 ‘장기적’으로 균형점에 수렴될 수밖에 없지만, 경제학자들이 약속했던 ‘장기’(long-term)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 대신 찾아온 것은 계층 간, 국가 간 소득 불균형 확대였고 이는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몰고 온 전 지구적 경제위기로 그 절정에 치닫게 된다.

이런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들은 “다시 인간을 위해 기능하는 경제를 만들어내고, 노동력이 단지 대기업과 금융 산업의 이윤 극대화를 위해서만 투입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수요 증진과 녹색 성장에 초점을 둬야 하고, 소득분배를 공평하게 해야 하며, 시장에게 부정당한 국가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또 전 지구적으로는 세계화된 자본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전 지구적 통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저자들이 제안하는 대안은 “지구적 금융체제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개혁안을 개발하고, 각국 사이의 정보를 긴밀하게 교환할 수 있는” ‘세계경제위원회’의 출범이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어떻게 했을까. 이장과 같은 기득권 세력의 이기심을 통제하고 지속가능한 목초지 활용 방안을 만든 마을은 번영했지만, 그렇지 못한 마을은 해체됐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모범답안이 아니라 그에 이르는 치열한 정치적 과정인 셈인데, 그렇게 본다면 책은 일부 독자들에게 다소 심심하게 읽힐 수도 있다.

자본주의 고쳐쓰기
세바스티안 둘리엔 외 지음, 홍기빈 옮김/한겨레출판

문제투성이 자본주의, 어떻게 고쳐나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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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교수’ 마광수 연세대 교수(61)가 그만의 독특한 멘토링을 담은 책 ‘멘토를 읽다’(책읽는귀족)를 펴냈다. 이른바 ‘좋은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다른 멘토링 책과 달리 특유의 솔직함과 독설을 무기로 그의 ‘야한’ 인생관을 마음껏 드러냈다.

특히 사랑과 결혼에 대한 조언에선 그와 같은 생각을 마음속에 품은 사람도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내용이 주를 이룬다. “험난한 인생살이에서 그나마 재밌는 놀이는 변태적 섹스”, “다른 동물과 달리 ‘모성애’가 없는 인간 여성은 많다. 동물이든, 인간이든 ‘부성애’란 아예 없는 것이다”, “청춘시절에 연애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평생토록 ‘비퉁그러진 성격’을 갖고서 살아가게 된다”, “상대방의 ‘섹시한 외모’에 이끌려서 하는 사랑은 진짜 사랑이고, 상대방의 ‘무던한 성격’에 이끌려서 하는 사랑은 가짜 사랑이다”라는 등의 조언에 ‘공감’의 미소를 짓는 이가 많을 듯하다.

경쟁과 인생, 죽음에 대해서도 마 교수는 ‘굴곡진’ 자신의 삶을 기반으로 솔직한 조언을 내놓는다. “야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라”는 다른 멘토링 책과 달리 마 교수는 “인생에서 ‘보람’을 찾으려는 사람은 나중에 가서 반드시 절망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진다”, “절대로 야망을 갖지 마라. 야망은 곧바로 허망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운명에 맞서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던 니체가 결국 말년 인생 10년을 정신병자로 비참하게 지내다 죽었다”고 조롱한다.

정치에 관해서는 “정치는 우리의 삶과 직결되니 예리한 정치적 안목을 갖고서 선거에 임해야 한다”며 “되도록 종교와 무관한 정치인을 선거 때 뽑아야 국민 각자의 안정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 교수는 “사탕발림류의 멘토링 책이 아닌 우리 사회와 인생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이에 맞는 조언을 하고 싶었다”며 “이것이 진정한 멘토의 자세”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멘토를 읽다
마광수 지음/책읽는귀족

“섹시함에 끌려야 진짜 사랑” 마광수 ‘야한 멘토링’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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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자유를 구가하는 시대에 죽어가는 시장. 시장의 자유를 소리 높여 외칠수록 더 빠른 속도로 죽어가는 시장. 출판평론가 변정수가 줄기차게 얘기해 온 출판계 위기의 심부에 도사린 것은 바로 독서시장 자체의 소멸 위기다. 해마다 ‘사상 최악’을 갱신해가는 출판 불황과 위기의 배경에는, 신자유주의를 자신들의 무능과 무책임과 음험한 정략을 감추고 포장하고 합리화하는 만능도구로 앞세워온 혐의를 사고 있는 정부가 있다. 또 중소출판사와 출판노동자들을 갈취해서 제 배만 불리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떨쳐내는 세탁제로 그것을 사용해 온 양심불량의 한탕주의 ‘조폭’ 출판인들도 있다. 하지만 <출판생태계 살리기>를 쓴 출판평론가 변정수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책을 읽는 독서인구와 그들의 생존조건이라 할 인문정신이 쪼그라드는 현실이다.

도서정가제, 출판산업 공공화, 도서관 정책, 독서문화 왜곡, 대중추수적 출판, 열악한 출판노동의 현실, 후속세대 재생산 문제와 대학 서열화, 입시경쟁 위주 교육정책 등 그가 책에서 끊임없이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들이 다 그런 현실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소산이다. 그가 이 책에서 10년 가까운 시간 폭을 지닌 자신의 글들을 다시 가다듬으면서 재확인한 바와 같이, ‘기시감’마저 주는 이런 문제들은 그 세월 동안 거의 개선된 게 없고 출판생태계는 피폐일로라는 느낌조차 들게 한다.

출판생태계 살리기
변정수 지음/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인문정신 쪼그라든 ‘책 안팔리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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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3년 검은 눈, 검은 머리의 조선인 나라에 노란 머리, 푸른 눈의 네덜란드 선원들이 흘러들어왔다. 당시 명과 청이 바깥세상의 중심이던 조선인과, ‘야판’(일본)과 ‘캐세이’(중국)밖에 모르던 네덜란드 사람들의 만남은 서로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소설 하멜>은 두 나라 사람들의 갑작스러운 접속을 역사를 바꿀 수도 있었던 사건으로 주목한다. 앞서 조선에 표착한 네덜란드인 박연(벨테브레이)이 있기는 했지만, 이 새로 들어온 36명의 선원들은 선박 건조, 화포 제작에 근대 의술과 천문학적 지식까지 갖춘 사람들이었다. 국제문제 기자로 일해온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의 눈에 “조선이 그들의 표착을 계기로 넓은 세상에 눈을 뜨고 미래를 준비했다면 우리 역사는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멜의 조선살이는 국가적인 기회상실의 전형”이라는 지은이의 아쉬움은 상상력과 사료를 활용해 재구성한 소설 곳곳에 묻어난다. 네덜란드 기술자들은 제주에서 한양으로 불려와 기껏해야 국왕 호위에 장식품으로 동원되거나 사대부집에 불려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주면서 살았단다. 지은이는 효종과 친명 신료들의 북벌론을 가소롭고 비현실적인 정책이었다고 평가한다. 하멜 일행은 일본으로 탈출해 고국에 돌아갈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청의 권력에 치이던 우리는 어떠한 기회도 잡지 못했다. 역사소설은 기자가 쓰는 칼럼만큼이나 세계관을 드러낸다.

소설 하멜
김영희 지음/중앙books(중앙북스)

조선이 ‘하멜 표류’ 제대로 활용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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