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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3년 2월 2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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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은 안정적인가. 조금 더 은유적으로 말해, 당신의 인생에는 해답이 있는가.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큰 행운아다. 나고 자라 낳고 죽을 때까지 삶의 범위와 행로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던 시대가 있었으나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측불가능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년에 금융위기가 닥쳐 다니던 회사가 도산할지, 내일 자연재해에 고장난 원자력발전소가 방사능을 유출시킬지 아무도 모른다. 마치 살얼음판을 걷기라도 하듯 개인과 사회가 모두 불안하다.

그래서 이 불안한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견뎌나가야 하나. 일본의 젊은 사상가 히로세 준의 <봉기와 함께 사랑이 시작된다>는 그에 대한 한 가지 대응책이라 할 만하다. 그는 세계가 ‘형편없는 영화’ 같다거나, ‘더럽다’고 부른다. 많은 이들이 히로세의 인식에 동의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그만 보고 극장을 나서라’고 촉구하거나 ‘더러운 세상을 정화하자’고 제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히로세는 다르게 이야기한다. 형편없는 영화든 더러운 세상이든 인간은 그것을 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 혼란한 세상의 삶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편이 좋다. 히로세는 1970년대 이탈리아 학생이 외쳤던 구호를 다시 불러낸다. “불안정한 것은 아름답다.” 일본 잡지에 연재된 시평을 묶은 <봉기와 함께 사랑이 시작된다>는 ‘프리케리아트(고용불안에 처한 노동자)의 철학’, 혹은 ‘프리터족(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사는 사람들)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고 할 만하다.

히로세가 보기에 원자력발전소는 현대인의 삶에 대한 상징과 같다. 동일본 대지진에 의한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글의 연재가 시작된 후에 일어났지만 사고 여부와 무관하게 원전은 우리 삶의 속성을 이미 드러내주고 있었다. 수력발전소의 물, 화력발전소의 불은 일단 전기를 내면 낮은 곳으로 흘러가거나 타서 재가 됨으로써 소멸한다. 즉 해결된다. 그러나 원자력은 다르다. 낡은 원자로, 다 사용한 핵폐기물의 처리 문제는 인류가 지구상에 남아있는 동안 영원히 함께한다. 원자력에 있어서 ‘최종처분’은 없다. 원자력 발전에는 시작도 끝도 없으며 방사성 폐기물은 늘 ‘준안정’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한발 더 나아가 원자력 폐기물의 ‘처리’와 ‘사고’를 명확히 구분하는 선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진과 쓰나미는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지만, 원전사고는 ‘일어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답이 없다’는 점은 ‘테러와의 전쟁’도 마찬가지다. 오사마 빈 라덴을 죽였지만 테러는 종식되지 않았다. 후세인이 죽었지만 이라크는 안정되지 않았다. 오직 혼란과 갈등과 불안이 지루하게 이어질 뿐이다. 그것이 현대인의 삶이다.

물론 예전에는 답을 내려는 시도가 있었다. 바로 ‘혁명’이다. 시민과 학생에 의한 것이든, 무장한 군인에 의한 것이든, 혁명은 사회와 개인이 당면한 복잡한 문제를 단칼에 해결하겠다는 시도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에게 한 표를 던진 유권자, 그 반대 지점에서 <레미제라블>의 좌절한 혁명을 보며 눈물 흘린 관객은 모두 ‘최종 해결책’으로서의 혁명에 대한 기대를 여전히 품고 있고 있는 셈이다.

히로세는 “아직 혁명을 꿈꾸는가”라고 되묻는다. 혁명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방사성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팔짱 끼고 앉아있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히로세는 혁명 대신 ‘봉기’를 이야기한다. 봉기는 준안정에서 준안정으로 끝없이 흐르는 운동이며, 문제 해결이 아닌 문제 제어를 위한 것이며, 지도자나 전위당을 알지 못한다.

변혁운동의 불길이 사그라진 지 근 40년 만인 2011년, 일본에서는 대규모 군중이 반원전 시위를 위해 모였다. 이때 일부 시위대를 체포해 취조한 경찰관은 “도대체 뭘 원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단 말이야”라고 투덜댔다고 한다. 이는 같은 해 뉴욕의 ‘점령하라’ 시위대에 대한 일부 언론의 시각과도 상통한다. 월스트리트의 주코티 공원에 죽치고 앉아 먹고 마시며 노래하는 시위대를 향해 주류 언론들은 ‘지도부도 없고 목적도 없다’는 식으로 냉소했다. 그리고 시위대가 사라진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했다. 그러나 히로세는 바로 이같은 무규율, 무목적이야말로 봉기의 특성이라고 본다. 히로세가 주장하는 봉기는 혁명과의 비교를 통해 그 특성이 더욱 자세히 드러난다.

혁명은 기쁨으로 가는 과정이지만, 봉기는 그 자체로 기쁨의 과정이다. 혁명에서 발생하는 모든 피로는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기쁨으로 보상받지만, 봉기에서는 문제를 껴안고 살아가는 피로가 기쁨과 일체를 이루고 있다.” 봉기는 “답을 향해 가는 데모, 불안정에서 안정으로 향하는 데모”가 아니라 “문제를 껴안고 살아가는 데모, 준안정에서 준안정으로 나아가는 데모”다. 봉기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불안정 상태를 긍정하는 것처럼 이 책에는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몇 가지 아이디어들이 제시돼 있다. 먼저 비정규직 혹은 불안정 노동의 문제. 히로세는 신자유주의 개혁이 추동한 고용의 비정규화가 생활을 불안정하게 만들었지만 역으로 노동에서 해방된 생활을 촉진하기도 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생활의 불안정화라는 ‘악’을 노동에서 해방된 생활이라는 ‘선’으로 전화시키는 시도”다. 에전이라면 대학을 졸업한 후 직장에 들어가 조금씩 오르는 월급에 만족하며 평생 같은 일상을 반복했을 사람들이, 이제는 이 일 저 일을 전전하며 프리터족으로 살아간다. 평생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창조적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늘어났다는 점에서 히로세는 이런 현상을 나쁘게 보지 않는다.

소외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세계와의 유기적 연관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불행할까. 히로세는 프랑스 영화 <플레이타임>을 예로 든다. 영화 속 근미래의 파리는 온통 철과 유리로 만든 건물이 들어찬 도시다. 등장 인물은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지만 손을 맞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만나면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좋다. “세계에서 소외되어 타향살이를 하게 된 ‘산책자’에게도 그만의 고유한 행복이 있고 그 행복은 그 자체로 긍정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 불안정한 시대의 민주주의와 정치는 어떤 모양이어야 하는가. 일본의 원전 시위대에 원전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를 법한 펑크 밴드가 등장해 시끄럽게 노래한 것처럼, ‘점령하라’ 시위대의 구성원이 다양했던 것처럼, 새 시대에는 모두가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조직은 이익단체, 압력단체와 다르다. 자크 랑시에르는 두 가지 ‘힘’을 이야기한다. “지위를 배분하고 그 위치를 고정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힘”과 “각자의 정신과 신체가 지닌 가소성(可塑性)을 사회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고자 하는 힘”이다. 전자가 ‘폴리스’라면 후자는 ‘정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다.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일본의 영화팬이 원자력발전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가 민주주의다. 요약하면 “모두가 이야기하고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것”, ‘무자격의 자격’으로 모든 문제에 개입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고 정치다.

물론 히로세는 희망찬 낙관주의자가 아니다. 오히려 철저한 비관주의자에 가깝다. 68혁명 이후 젊은이는 공장에서 탈출했지만 그들이 들어선 곳은 ‘공장이 된 세계’였다. 노동은 취직부터 퇴직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라는 특정 시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살아있는 시간 전부가 노동의 시간이 됐다. 취업자와 실업자의 구분은 ‘일하고 있는가, 아닌가’가 아니라 ‘임금을 받는가, 아닌가’일 뿐이다.

신자유주의는 이렇게 세계를 기업화했다. 푸코는 일찌감치 신자유주의는 “사회체 또는 사회 조직 안에서 ‘기업’의 형식을 일반화시킨 것”이라고 표현했다.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노동자는 착취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 스스로가 하나의 기업이 된다. 그래서 노동자는 스스로를 경영하라고 강요당한다. 모든 노동자가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개발하도록 유도된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는 우리를 한 사람도 남김없이 지식인이 되도록 이끈다”. 신자유주의는 그렇게 생산된 지식을 남김없이 빼먹는다.

세계가 공장이고, 모든 지식인이 신자유주의에 이용당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이 너무 간단하다. 한국 번역본에 추가된 2011년 10월 런던대 버크백칼리지 심포지엄 발표문 마지막에 이런 대목이 있다. 반란의 역동성 자체까지 자기 것으로 훔치는 자본에 대항하는 방법은 ‘반란에 대한 반란’이다. ‘외부’가 된 신자유주의를 파괴하기 위해선 ‘외부의 외부’를 발견해야 한다. 지적 능력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기’를 시도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히로세는 설명하지 않는다. 아마 히로세조차 모를 수 있다.

그렇게 이 책은 혼란스럽다. 혼란의 시대에 혼란한 사유의 책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일까. 답이 없는 세상에서 답을 구하는 것이 어리석은 행동일까. 히로세는 세계가 디스토피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가정한 뒤, 세계를 과거로 되돌리려고 노력하는 대신 현재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긍정의 맹아를 찾자고 제안한다. 그것은 현실에 체념하고 순응하는 것인가, 반대로 급진적인 태도인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이와 같은 책은 현재 한국의 지적 풍토에선 나오기 어려워보인다.

봉기와 함께 사랑이 시작된다
히로세 준 지음, 김경원 옮김/바다출판사

혁명이 불가능한 시대, 세상을 진정 뒤엎으려면…
최종 해결책으로서의 혁명은 없다…문제 안고 가는 봉기를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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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면서도 효율적인 디자인은 제품을 실용적으로 만들어 준다. 디자인에 미적 감각이 넘칠 때 상품은 예술로 격상된다. 공공(서비스)디자인에서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디자인의 역량을 새삼 발견할 수 있다.

글쓰기에 관심 많은 디자인 잡지 기자 경력의 필자들이 이 책에 소개한 디자인의 공통점은 무얼까. 실용성도, 예술성도 아니다. '힐링'이다. 보는 사람에게, 쓰는 사람에게 안식과 평화를 선사하는 아이디어를 담은 디자인이다.

책에 죽음을 소재로 한 디자인이 다수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묘비 모양의 메모리카드, 유골함 모양의 화분, 집 벽에 '비포 아이 다이(Before I Die)'라고 써놓고 지나가는 이들이 이어지는 빈 칸을 채우도록 하는 소통의 디자인 같은 경우 생활 속으로 죽음을 끌어 들여 삶을 새로 돌아보게 만든다. 유품인 옷을 재활용품으로 내놓으면서 이전 주인의 이름과 간단한 삶, 그 옷을 소중하게 입어달라는 새 태그를 붙이는 아이디어는 삶과 물건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인상적인 디자인이다.

이 밖에도 자연과의 교감, 소통, 낭만 등을 주제로 다양한 디자인을 소개한 저자들은 '이 세상에서 지금껏 이루어진 디자인 중 가장 경이로운 것은 바로 이 세계, 자연일 것'이라며 자연이 그런 것처럼 '디자인은 때로는 유용하고 때로는 무용한 방식으로 세상과 인간을 연결하며 이따금 시적인 공명과 근원적인 울림으로 우리를 위로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디자인 이미지에서 허다한 힐링책보다 더 진지하면서 유쾌한 힐링을 만난다.

위로의 디자인
유인경.박선주 지음/지콜론북

디자인은… 그 무엇보다 힐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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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자부심이 높았던 18세기 조선의 주자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했던 최초의 일본 유학서가 바로 이 책이다.

숙종 말년 1719년 조선통신사 일행은 전혀 생각지도 않게 주자학을 뛰어넘은 대학자로서 이토 진사이(1627~1705)를 소개하며 뿌듯해하는 일본인을 여러 곳에서 만나게 된다. 귀국길에 청하여 이 책을 증정받음으로써 처음으로 조선에 전해졌다.

그 다음 차례인 1748년 통신사행에서 이토 진사이에 대한 논란이 학문적 담화의 중심이 되었다. 이 책에서 당대의 문화영웅이던 주자학의 거인과 함께 조선 유학의 대가 이퇴계조차 비판당하고 있어서 더욱 그랬을 법하다.

그러나 통신사 일행의 기록에도, 이 책을 읽었다고 하는 안정복이나 이덕무 등 국내학자에게서도 인상론적 비평 외에 사상적 격투의 흔적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랑캐의 나라에 무슨 대단한 학문이 있으랴 하며 무시한 탓이었을까. 아니면 주자학 이외의 학풍을 이단시하던 시세에 따라 위험시했거나 혹은 동감하는 바를 기록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으리라.

안정복의 저술에 인용된 저자미상의 <선곡잡기(蟬谷雜記)>에는 저자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논리적 명쾌함과 설득력을 높이 평가하여 “섬나라 오랑캐 나라에도 이와 같이 학문을 한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고 감탄하는 대목이 보인다. 거의 3세기를 지나 비로소 우리는 조선의 주자학자를 당혹하게 했던 문제의 인물과 저술을 허심탄회하게 마주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이토 진사이의 인생은 마치 승부사의 모습을 방불케 한다. 그는 교토의 재목상 집안에서 태어나 가업을 승계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일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10대 초반부터 30대 초반에 걸쳐 주자학이 내거는 형이상학적 진리의 체득에 몰두한다. 가출과 은거를 감행하고 노이로제에 빠질 정도로 전념했다. 마침내 공맹철학과 주자학의 괴리를 깨닫고 주자학의 왜곡으로부터 벗어난 공맹철학의 순수화를 위해 그의 여생을 모두 바친다.

그 방법은 공자와 맹자의 언행을 불변의 기준으로 삼아 거기서 벗어나는 어떠한 해석도 용인하지 않는 문헌비평 스타일이었다. 이를 고의학(古義學)이라 불렀다. 예를 들면, 존재와 도덕의 근원적 원리로서 ‘이(理)’를 공자도 맹자도 일절 언급한 적이 없다고 하여 그 탐색을 허황된 것으로 부정하거나 혹은 그 탐색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다른 경전, 예를 들면 대학(大學), 중용(中庸)이나 예기(禮記) 등을 후대의 불교나 노장사상이 뒤섞인 불완전한 텍스트라 하여 그 권위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대담하고도 치밀한 수법이다.

이 책은 예상되는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그의 원숙한 만년의 생각이 집대성된 저술이다. 상·중·하 세 권의 분량에 다뤄지는 문제군의 범위나 예시되는 인용 및 사례는 결코 간단치 않다. 오로지 논어만이 천하고금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최고의 경전이며 맹자는 공자의 뜻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유일한 정통참고서라는 시각에서 제기되는 흥미로운 논점도 산재해 있다.

그의 의도는 주자학에 의해 왜곡된 본래의 유학, 즉 공자와 맹자 철학의 재생에 있었다. 그에 따르면, 근엄한 얼굴과 정숙한 모습으로 존재와 도덕의 근원적 원리, 즉 이(理)를 찾아 이 세상 너머의 신비나 형이상학을 쫓는 주자학은 공맹의 가르침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알 수 없는 것을 아는 것처럼 꾸미는 불손한 견강부회요, 결국 논의만을 분분하게 하여 실제로 필요한 덕행을 소홀히 하게 만드는 위선의 실마리요, 나의 형이상학적 믿음을 남에게 강요하여 결국 다툼을 일으키기 쉬운 신앙의 강제이며, 수준 높은 식자능력을 갖추기 어려운 보통사람들을 공맹의 가르침에서 소외시키는 차별의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 반해 공맹철학은 너무나 상식적이면서도 실제로 행하기에는 말이나 생각처럼 쉽지 않은 사랑의 실천, 그것도 중단 없는 실천의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군주에서부터 문맹의 하층민에 이르기까지 도덕과 학문, 사회와 정치의 주인이 될 수 있으며 되게 해야 한다.

조선통신사는 조선의 문화를 일본에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일본의 이토 진사이는 중국의 주자학이나 조선의 성리학과 다른 독자적인 유학을 발전시켰다.

거기서 특히 군주에게 왕도정치, 즉 만물생육의 하늘의 뜻을 지상에 구현하는 대리자로서 애민정치를 실천하게 하는 것은 세상 모든 사람의 중단 없는 사랑의 실천을 위한 근본적 조건이다. 왕도정치를 통한 대동(大同)사회의 구현이라는 그랜드 비전이야말로 공자가 유학을 정립한 근본이유였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국내외 백성을 죽음과 도탄에 몰아넣은 지탄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그의 공맹철학 재생선언은 마루야마 마사오가 일본의 ‘마키아벨리’로 비유한 바 있는 오규 소라이(荻生조徠)의 사상 전환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문인명부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3000여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런데 아직 일본에서조차 그 성과에 어울리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는 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의 문제제기를 일본사상사라는 한정된 시야가 아니라 오히려 동아시아 유학의 발전사라는 보다 넓은 틀에서 조명할 때 그 의미가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이제 무엇이 에도시대 일본인들을 매료시키고, 조선의 주자학자을 당혹스럽게 했던지 이 책을 직접 열어볼 일만 남았다.

꼼꼼한 역주와 읽기 쉬운 번역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토 진사이의 또 다른 주저도 시리즈로 곧 번역된다니 기대가 된다.

동자문
이토 진사이 지음, 최경열 옮김/그린비

“공자와 맹자의 날것이 최고”…일본의 최초 유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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