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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間/새로 나온 책

2013년 3월 1주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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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발명은 무엇일까. 도구, 언어, 문명 등 인간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수많은 단어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리처드 랭엄 하버드대학 교수는 다소 생뚱맞은 답을 내놓는다. ‘요리’라 한다.

요리를 통해 음식 재료를 소화가 잘 되는 식품으로 전환시켜 소화기관의 부담을 줄이고 씹는 시간을 감소시켰다는 것이다. 또 그에 따른 여력이 인간의 엄청난 뇌 발달을 가져왔다는 주장이다. 요리가 남녀의 역할 분담 등 문화 발달에도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고 말한다.

요리가 정말 이토록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을까. 책 <맛이란 무엇인가>(예문당 刊)의 저자 최낙언 역시 이 주장에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요리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다양한 관련 지식을 나열하는 이 책은 ‘맛’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우리가 만들고 즐기는 모든 음식의 맛은 진짜 맛이 아니라고 부정한다. 세상에 맛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등 다섯 가지 뿐이다. 우리가 느끼는 수많은 맛은 그럼 무엇인가. 그것은 기억하고 있는 요리의 ‘향’, 정확하게는 풍미(향미)라는 설명이다.

이어 향기물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인간이 향을 맡는 통로를 설명하고, 향이 인간에게 미친 영향을 나열한다. 이밖에 살을 빼려면 향이 강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연구 결과와 천연향과 조합향의 각 장점과 한계 등 촘촘한 지식을 풀어냈다. 현재 우리집 식탁에 변화를 가져올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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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와 동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현재 식품회사에서 식품 및 향료연구가로 일하고 있는 최낙언 씨가 펴낸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는 세상에서 가장 일상적인 음식 맛과 향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음식을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드는지가 아닌 우리가 왜, 어떻게 맛과 향을 느끼는지가 주제이다.

저자는 “맛과 향의 원리를 알면 약과 독의 원리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풀리지 않는 비만문제 해결의 단초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시각과 청각은 단지 파동이지만 미각과 후각은 화학물질이고 물질적인 실체가 없어서 시각과 청각처럼 쉽게 디지털화 되지 않겠지만 미각과 후각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마저 포기하면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맛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왜 맛을 느끼는지, 냄새는 어떻게 맡아지는지, 향기물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려준다. 또 향에 대한 애착이 불러온 기술 발전을 소개하고, 맛과 향의 미래를 전망해본다.

저자는 “맛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우리를 아는 것이고 맛에 대한 집착을 줄이고, 가공식품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
최낙언 지음/예문당

최낙언 著 '맛이란 무엇인가'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
<새로 나온 책>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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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무법자' '더티 해리'를 봤다면 당신은 클린트 이스트우드(83)를 알고 있다. 단, 그를 그저 '총잡이 전문 배우'로만 알고 있다면, 그를 거의 모르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는 배우이자 감독, 제작자 그리고 공화당에 속하지 않은 보수파이자, 법을 세우기 위해 법을 깨는 대(對)관료주의 투사다.

스타는 많지만 '감독'으로 전업해 그와 같은 성취를 이룬 사람은 없다. 남들은 은퇴를 생각할 63세에 '용서받지 못한 자'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고, 2004년 74세 때 '밀리언달러 베이비'로 두 번째 감독상을 받았다. 배우로, 감독으로, 제작자로 돈을 그러모았다. 꿈의 공장 할리우드에서도 이 정도는 '꿈속의 꿈'이다.

'위인전' 인물은 아니다. 세상 남자를 양반과 잡놈으로 나눈다면 그는 단연 후자다. 188㎝의 키와 애매한 미소만으로 상대의 옷을 벗길 수 있음을 일찌감치 깨달은 그는 23세에 결혼한 후, 네 명의 여성에게서 네 명의 혼외자를 낳았다. 자기 영화를 비판한 여성 평론가를 두고 한 말은 이렇다. "이건 그냥 농담인데, 제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 여자 너랑 자고 싶은 거야'. 제가 '못 믿겠는걸' 했더니 친구가 덧붙였어요. '뭐 아닐지도 모르지. 어쨌든 생각만 해도 재밌잖아'." 그는 자기를 '결혼한 총각'이라 표현한다.

이 못말릴 배우를 다룬 책 두 권이 나왔다. 평전 '클린트 이스트우드(민음인)', 인터뷰집 '거장의 숨결, 클린트 이스트우드'(마음산책)다. 두 책을 간추린다.

이스트우드는 193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용직의 아들로 태어나 일용직을 전전했다. 배우가 되어 29세부터 7년간 TV 드라마 ‘로하이드’ 주연을 맡았지만, 스타 재목은 아니었다. 액션을 하기엔 너무 곱상하고, 멜로를 하기엔 다소 빠지는 인물. 데뷔 10년 만인 1964년 이탈리아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를 따라 스페인에서 ‘황야의 무법자’를 찍었다. 영어를 몰랐던 이탈리아 감독은 ‘총을 쏘는 사람과 맞는 사람을 한 화면에 담을 수 없다’는 할리우드의 금기 같은 건 몰랐다. 이탈리아산 서부극, ‘마카로니 웨스턴’이 인기 장르가 되면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최초의 전성기를 맞았다. 언론들은 “완벽하게 끔찍하다” “괴로울 정도로 멍청하다”고 했다. 촬영장에서 훈수 두기를 즐겼던 그는 1970년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로 감독 데뷔를 했다. 배우의 연출작치고는 꽤 괜찮다는 소리가 나왔다.

그는 때로 ‘미국 우파의 희망’으로 불린다. 진보 혹은 좌파가 득세한 미국 영화판에서 그처럼 발언하면서 그처럼 존중받기란 쉽지 않다.

신화의 시작은 ‘더티 해리’(1971)였다. 미란다원칙(1966년, 피의자의 묵비권과 변호사 도움 권리 등을 명시한 것) 공표 후 5년 만에 나온 이 영화는 규정이나 원칙 같은 걸 다 깼다. 형사 해리는 소녀 살인 피의자가 ‘인권 침해’를 이유로 석방되자 그를 쫓는다. 피의자가 소년을 인질로 잡고 총을 겨누자, 44구경 권총으로 머리를 쏴 죽여버린다. 경찰 배지를 늪에 던져 버리고 걸어가는 장면이 영화의 엔딩. 앞서 폴 뉴먼은 영화가 ‘너무 우파적’이라며 출연을 거절했다. 평론가들은 ‘파시스트의 중세적 신앙에 대한 동화’ ‘우익의 판타지’라 비판했다. 그는 이렇게 대꾸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 해리는 그냥 관료주의와 이미 굳어진 무언가에 맞서 싸울 뿐이다.” “우리가 모든 보고서를 15부씩 복사해 일일이 서명을 하는 사이에 범인들은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고 있단 말이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도 논쟁에 휩싸였다. 여성판 ‘록키’ 같은 영화는 안락사 논쟁으로 번졌다. 코치가 전신이 마비된 여성 복서에게 주사를 놓아주고 그녀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생명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외부 개입을 옹호하는 시선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공화당 지지자든 민주당 지지자든 상관없다. 삶과 죽음을 생각해보면 영화 속 결정이 대단히 어려운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지금 이 도시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규제만 있습니다. 나는 예전의 시민정신이, 일종의 단결심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이스트우드는 1986년, 캘리포니아주의 작은 도시 카멜의 시장(주급 200달러)에 당선됐다. 시 의회가 도시 품위를 위해 아이스크림콘의 노상 판매 금지법을 상정하자, 홧김에 나온 것이다. 상대는 선거운동에 300달러를, 그는 4만달러를 썼다. 시장이 되고 그는 규제 위원회의 위원장을 자르고, 작은 도시를 좀 더 매력적인 곳으로 만들었다. 대권 도전 가능성이 나왔지만, 그는 카멜 시장 재선도 포기했다. “클린턴-게리 하트 테스트(여성 편력 검증을 의미)를 절대로 통과할 수 없을 겁니다. 테레사 수녀가 아니고서야 그 누구도 통과할 수 없죠.”

그는 닉슨을 찍고, 레이건과 밥을 먹었으며, ‘오바마 그 친구가 이상해진다’고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지만, 정작 자신은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머리와 가슴은 보수고, 벨트 아래는 아나키스트다. 많은 성공한 이의 삶이 그렇듯, 이율배반적이다.

그는 국가를 관료주의로부터 구출해야 한다는 강박, 혹은 사명감을 더티 해리 시리즈와 수많은 형사, 범죄 영화에서 보여줬다. 국가가 개인을 보호하고 개개인이 독립성을 누리는, 긍정적 의미의 가부장적 국가에 대한 열망 같은 것이다.

그런 삶을 엿보는 것은 영화를 보는 것보다 재미있다. “나는 내가 해 온 거의 모든 일마다 그 일을 하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다”고 했지만 그는 결국 성공했다. 그는 그 비법으로 “직감을 믿으라”고 한다.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본질적으로 떠돌이였고, 건달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의 결론은 이거였다. “그리고 훗날 밝혀졌듯, 행운아였다.”

읽어보니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대한 객관적이고 신랄한 인생사를 보려면 평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좋다. 그러나 모르는 영화계 얘기와 많은 등장 인물에 조금 질릴 수도 있겠다. 배우의 머릿속을 스캔해보고 싶다면 1971년부터 2011년까지의 대담 24편을 실은 인터뷰집 ‘거장의 숨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낫겠다. 감독의 육성이 생생하지만, 이 역시 영화계에 대한 전문지식이 필요하다. 책 사긴 부담스럽지만 이 배우를 좀 더 알고 싶다면? 영화 ‘더티 해리’ 시리즈 1편, 4편, ‘용서받지 못한 자’, ‘미스틱 리버’, 그리고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보시라.

클린트 이스트우드
클린트 이스트우드 지음, 로버트 E. 카프시스.캐시 코블렌츠 엮음, 김현우 옮김/마음산책

클린트 이스트우드
마크 엘리엇 지음, 윤철희 옮김/민음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 영화의 심장을 겨누고 인생을 말하다
하워드 휴스 지음, 이경아 옮김/나무이야기

난봉꾼인가, 우파의 희망인가… 두 얼굴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황야의 무법자’ B급 배우서 ‘밀리언 달러…’ 감독으로
이스트우드 '황야의 무법자' 보다 더 영화 같은 인생
‘고독한 사나이’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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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항구 도시 탕헤르에서 관광객에게 방심은 금물이다. 이슬람 상술의 대명사인 이곳 상인들은 '흥정의 귀재'. 마지드는 이곳에서도 전설로 불린다. 형형색색의 담요와 양탄자, 실크 셔츠와 드레스가 잔뜩 쌓인 그의 가게 방명록엔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과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의 서명이 있다. 록스타와 호텔 경영자들도 그에게서 물건을 사갔다. 비결이 뭘까. "장사꾼은 모든 사람을 유심히 봅니다. 손님이 어떤 물건을 보는지 관찰하지만 절대 귀찮게 하지 않지요." 손님을 읽어내 '동기'를 간파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

저널리스트 출신인 저자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입학했더니 장사의 기술을 가르쳐주는 세일즈 과목이 없어 어리둥절했다". 세일즈는 비즈니스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가장 치열한 전투인데도 말이다.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위대한 장사꾼들을 찾아 세일즈 기법을 들었다. 스토리텔링으로 고객 마음을 움직이는 홈쇼핑, 일본 보험 판매왕의 인맥 관리술, "아무에게나 팔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고객을 안달나게 하는 미술상의 노하우…. 고객을 끌어당기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각종 장사 기법이 페이지마다 생생하다.

애플은 고객의 충성심을 넘어 '신앙심'을 자극하는 종교적 마케팅을 펼친다. 고(故) 스티브 잡스는 "마치 종교지도자 같은 카리스마로"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그를 숭배하는 사람들 앞에서 선보였다. 달라이 라마도 세일즈에 능하다. 때로는 빙그레 웃으면서 행복 철학을 설파하고, 때로는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폭정을 방관하는 세상을 향해 불같이 화를 낸다. "청중에 맞게 메시지를 전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종의 청중 맞춤형 판매 방식"이다.

발품 끝에 내린 저자의 결론. "위대한 세일즈맨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드러났다. 공통점은? 손님에게 거절당해도 굴하지 않는 회복 탄력성과 낙관주의, 자신의 세일즈 능력에 발동을 거는 간절한 욕구였다." 무엇을 왜 팔아야 하는지 내용과 목적은 달라도, 모두 스스로 팔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추동력으로 세일즈의 달인이 됐다는 얘기다.

물건이든 믿음이든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사고판다. 식당 종업원은 손님에게 요리를 팔고, 의사는 환자에게 치료 행위를, 기자는 데스크에게 새로운 기사의 아이디어를 판다. 세일즈 능력이란 결국 상대를 움직이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삶의 기술. 그러니 저자의 결론을 곧바로 각자의 인생에 대입해도 좋겠다.

장사의 시대
필립 델브스 브러턴 지음, 문희경 옮김/어크로스

달라이 라마가 세일즈의 달인?
[經-財 북리뷰] 장사의 시대
우리 삶은 ‘판매’의 연속, 세일즈맨의 설득과 유혹으로 원하는 목적에 다가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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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87)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민을 거느린 군주다. 세계 21억 인구, 54개 회원국을 거느린 영연방(The Commonwealth)의 수장이자 6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현역 최고 지도자이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명목상의 군주이지만, 여왕의 리더십은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 국가들의 구심점일 뿐 아니라 영국의 매력과 호감도를 높이는 '소프트 파워'의 핵심이다.

존 F 케네디 부부, 다이애나 왕세자빈 전기를 쓴 작가 샐리 베덜 스미스는 6개월간 250명이 넘는 엘리자베스 2세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여왕과 찰스 왕자를 직접 취재하는 '특권'을 누리며 전기를 썼다. 스미스는 스물여섯, 젊은 엄마로 즉위한 엘리자베스 2세가 어떻게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비결을 추적한다.

엘리자베스가 국왕으로서 처음 상대한 정치가는 윈스턴 처칠이었다. 여왕은 매주 화요일 저녁 버킹엄 궁에서 총리와 면담을 가졌는데, 50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의기투합했다. 위스키와 소다를 마시며 나누는 30분 정도의 환담 자리는 20대 여왕이 세계정세와 국정(國政)을 익히는 교실이었다. 여왕은 처칠의 지혜와 달변을 흠모했고, 처칠은 고집스러웠지만 여왕의 숭배자였다.

여왕은 상대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힘을 실어주는 경청가였다. 처칠 후임 총리 맥밀런은 "터놓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고 했다. 가끔 맥밀런을 대신해 여왕을 만난 보좌관 버틀러는 엘리자베스 2세를 이렇게 평했다. "그녀는 한 번도 과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말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 대화 중에 자기 의견을 일찌감치 내놓는 법이 없다. 오히려 상대의 의견을 이끌어내며 끝까지 경청한다."

여왕은 총리와의 면담이 잡담이나 나누는 자리가 되지 않도록 상대를 '교육'시켰다. 엘리자베스 2세 재임기 다섯 번째 총리였던 노동당 당수 윌슨을 처음 만났을 때, 파운드화(貨)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묻고 만성적인 국제수지 적자를 지적했다. 윌슨은 난처해했으며 훗날 후임자에게 "모든 전문과 내각 회의 문서를 꼼꼼히 읽고 가지 않으면 예습 안 한 학생처럼 보이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맥밀런 총리는 1961년 프랑스 드골 대통령 부부의 마음을 사기 위해 여왕을 동원, 사흘간의 국빈 방문을 실현시켰다. 영국은 경제 발전을 위해 유럽 공동 시장에 참여하려 했으나 드골이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국빈 방문 대상 국가를 선택하지만, 초대는 여왕만이 할 수 있었다. 드골은 버킹엄 궁의 호화 숙소에서 묵으며 여왕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여했다. 까다롭기로 이름난 드골도 훗날 "엘리자베스 2세는 모든 것에 대해 정통했다. 사람과 사건에 대한 그녀의 판단은 분명하고 사려 깊었으며 그 어떤 사람보다도 폭풍이 몰아치는 우리 시대의 고민과 문제에 대하여 더 집착했다"고 썼다.

다섯 살 연상인 남편 필립 공(公)을 찍은 것은 엘리자베스 2세였다. 아버지 조지 6세(영화 '킹스 스피치'의 실제 주인공)가 열셋이던 딸 엘리자베스를 데리고 해군사관학교를 찾았을 때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스무 살이던 1946년 청혼을 받자마자 부모와 상의조차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승낙할 만큼, 필립에게 빠졌다. 몰락한 그리스 왕자 출신인 필립을, 왕실 주변에선 경계했다. 1952년 엘리자베스가 여왕에 즉위하면서 남편 필립 가문 이름인 마운트배튼이 아니라 여왕의 아버지 윈저 가문을 이어받자 필립은 폭발했다. 그는 친구들에게 "나는 이 나라에서 내 이름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없는 유일한 남자다" "나는 한심한 아메바 같은 존재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고 한다.

아이젠하워, 케네디, 흐루시초프, 고르바초프 같은 세계 지도자들은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으나, 엘리자베스 2세는 60년 넘게 여전히 최고 권좌에 있다. 2015년 9월이면 영국 역사상 최장수 재위 기록(63년 216일)인 빅토리아 여왕까지 뛰어넘는다. 영국 왕실의 공식 전기답게 객관적 평가보다는 여왕에 대한 미화가 많다. 하지만 처칠, 맥밀란, 히스, 캘러헌부터 대처, 메이저, 블레어, 캐머런에 이르기까지 열두 명의 총리를 상대한 엘리자베스 2세의 정치력과 그들에 대한 평가는 흥미롭다. 무엇보다 소탈하면서도 강인한 엘리자베스 2세의 인간적 매력이 책을 펼치게 만드는 강력한 흡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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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띠지에 ‘영국 왕실이 인정한 유일한 공식 전기’라고 쓰여 있는 것은 그럴싸해 보인다. 저자가 영국 왕실의 허락을 받아 여왕과 찰스 왕자를 만나긴 했지만 여왕과 공식 인터뷰를 한 것은 아니다. 영국 왕실이 인정한 전기에는 비판과 해학이 없다. 주인공에 대한 존경과 찬사에 치우친 전기가 재미있을 리 없는 법. 지난해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영국 선수단이 입장할 때 심드렁한 표정으로 손톱을 손질하던 여왕의 모습을 떠올리면, 반듯한 모습 뒤에 숨겨진 반전이 충분히 있을 법한데 말이다.

퀸 엘리자베스
샐리 베덜 스미스 지음, 정진수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60년 스테디인기 비결은… 겸손의 미덕을 갖춘 ‘엄마 같은’ 여왕
엘리자베스 '경청', 쉰 살 많은 처칠을 사로잡다
60년간 영국 사로잡은 '겸손의 리더십' … 인간적 얼굴도 생생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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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태풍이 세력을 키우며 북상하고 있다는 예보를 종종 흘려들었다. 비바람쯤이야 내 생활과는 별 관계없는 일이겠거니, 과소평가했다. 저러다 또 중국이나 일본 쪽으로 방향을 틀겠거니, 무시했다. 이 책도 첫인상이 그랬다. '바이러스 폭풍(The Viral Storm)'이라는 제목은 과학으로 위장한 공갈이나 겁박(劫迫)으로 들렸다.

그런데 틀렸다. 문명은 최첨단을 질주하고 있지만 대참사를 부르는 병원균에 대한 지식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2001년 4월부터 9·11을 지나 2002년 8월까지 세계에서 약 8000명이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정확히 8년 뒤인 2009년 4월부터 2010년 8월까지는 1만8000명이 H1N1(돼지독감)으로 사망했다. 저자는 묻는다. "무엇이 더 위중한 위협인가?" 이 책의 목적은 곧 닥쳐올 바이러스 폭풍을 이해하는 데 있다.

병원균 중에 가장 작으면서 힘센 게 바이러스다. 유전물질(DNA나 RNA)과 단백질 막으로 이뤄진 바이러스는 독자 생존이 불가능해 다른 생명체에 기생해야 한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숙주 세포를 감염시켜야 하는 것이다. 바이러스를 비롯한 병원균의 관점에서 인간은 서식지일 뿐이다.

병원균은 모순 덩어리다. 살아남으려고 빌붙은 서식지 자체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천연두 바이러스나 콜레라 박테리아는 짧으면 며칠 만에 감염자를 죽일 수 있다. 그 죽음이 있기 전에 병원균은 새로운 희생자를 찾아 나선다. 인간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병원균 입장에서는 새로운 숙주를 찾으려는 노력의 결과다.

숙주를 약탈하는 수법에 따라 병원균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치명적이면서 확산 속도는 느린 놈, 그리고 덜 치명적이지만 급속도로 전염되는 놈이다. 그런데 병원균은 역동적이고 돌연변이도 일으킨다. 바이러스 전문가인 저자는 "H1N1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면서 사람이나 동물 체내에서 H5N1(조류독감)과 만나 천지개벽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치명적이고 확산 속도도 빠른 바이러스의 창궐이다.

"병원균 세상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은 800만년 전 우리 유인원 조상이 사냥을 시작한 것"이라고 이 책은 주장한다. 사냥과 도축으로 야생동물에 잠복한 병원균이 다른 종(種)으로 이동할 고속도로가 뚫렸다는 것이다. 다양한 종을 사냥하는 침팬지와 인간은 각자 다른 병원균을 몸에 축적해왔지만 서로 병원균을 교환하는 위험한 순간이 있었다. 에이즈도, 말라리아도 야생 유인원으로부터 비롯된 재앙이다.

'동물 길들이기'도 인간과 병원균의 관계를 바꿔놓았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저서 '총, 균, 쇠'에서 온대지역에서 가축화가 성행한 까닭에 그곳의 병원균이 더 다양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니파 바이러스나 뎅기열의 경우처럼 가축은 야생동물의 병원균을 인간에 전하는 배달부 노릇을 한다. 부적절한 주사기와 수혈, 장기이식 때문에 치명적인 병원균이 퍼진 사례를 다룬 대목도 충격적이다.

이 책은 경고와 비관에 머물지 않는다. 주요 위험지역에 '병원균 파수꾼'을 배치하고 생물정보학 등에 힘입어 전염병의 준동을 예측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저자는 전망한다. 인구가 증가하고 세상이 밀접하게 얽히면서 바이러스 폭풍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 예보를 담은 이 책은 친절하고 정밀하며 믿음직스럽다. 과학 교양서도 이럴 땐 황홀하다.

바이러스 폭풍
네이선 울프 지음, 강주헌 옮김/김영사

침팬지를 잡아먹은 순간, 에이즈의 역사가 시작됐다
바이러스와 친구처럼 지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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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다. 고생한 출판사 분께는 미안하다. 근데 처음 몇 장은 진짜 그랬다. 원래 글이 그 모양인지, 번역이 문제인지. 뚝뚝 끊기고 개운치가 않았다. 서평 쓸 책을 바꿀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30분을 버티니(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금세 그런 선입견이 부끄러워졌다. 잠깐 저자 사진을 보며 사과도 했다. 아, 글재주나 부리는 따위의 책이 아니구나. 분명 읽는 맛은 떨어진다. 하지만 이건 소설 나부랭이가 아니다. 시대의 기록이다. 죽음의 땅에서 희망을 잃어버린 이들을 대변해 싸우는 한 인간의 처절한 사투다.

저자는 제2차 체첸 사태(1999∼2000년)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한 러시아 여기자. ‘더러운 전쟁’은 당시 그가 시사주간지 노바야가제타에 썼던 칼럼을 묶은 책이다. 러시아와 체첸의 충돌은 수천 명이 사망하고 40만 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하는 피해를 남겼다. 이때 보도로 저자는 ‘반(反)정부 인사’로 낙인찍혀 군인에게 총칼로 위협받았으며, 독극물을 마시고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결국 2006년 암살자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저자가 볼 때, 전쟁은 정부 수뇌와 일부 정치가의 야욕만 채우는 짓이다. 칼럼에서 고발한 체첸 그로즈니 양로원 사태를 보자. 정부 지원도 끊기고 노인들만 남아 겨우 연명하던 이곳에 어느 날 폭격이 예고됐다. 저자는 러시아와 체첸 정부 관계자를 만나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달라고 읍소했다.

하지만 러시아 담당자는 자신들이 저지른 부정을 숨기려 양로원이 폭격되길 원했다. 체첸 측은 이를 빌미로 러시아를 압박하려 피신을 가로막았다. 그들에게 민간인 목숨이란 거추장스러운 짐이었다. 단지 정권을 유지하고 강화할 명분과 이득만이 그들을 움직이게 했다.

어쩌면 이 책은 우리와 별 상관없는 얘기일 수 있다. 10년도 지난 타국 분쟁에 가슴이 쿵쾅거리길 요구하는 건 무리다. 하지만 이 땅도 겨우 60년 전 전쟁을 겪었다. 그때 세상이 외면했다면 한반도는 어떻게 됐을까. 전쟁이 앗아가는 덧없는 희생은 결코 남의 일이 될 수 없다. ‘더러운 전쟁’은 그 진실을 무겁게 일깨운다.

더러운 전쟁
안나 폴릿콥스카야 지음, 주형일 옮김/이후

죽음의 땅 체첸서 일어난 살육의 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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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미국의 광고회사 치아트데이의 소유주는 회사를 옴니콘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정리해고가 임박했음을 한 치아트데이 런던사무소의 앤디 로는 런던의 직원을 규합해 모두 회사를 떠나버렸다. 요청을 받은 고객사도 그들을 따랐다. 회사는 텅 비었다. 결국 옴니콘은 런던사무소를 단 1달러만 받고 로와 동료에게 넘겼다.

여기서 책은 질문을 던진다. 애당초 회사의 ‘소유주’라고 불렸던 이들은 회사의 무엇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일까. 책상 몇 개 혹은 서류뭉치들? 사람이 떠난 회사가 1달러의 가치밖에 안됐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흔히 주주가 주식회사의 소유주라고 생각하지만, 단지 주식을 사들인 만큼의 돈을 냈다는 이유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는 것이 올바른 일일까.

‘주주는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한다. 기업은 주주 이익을 최대화해야 한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신화에 가까운 공식이다. 그런데 ‘투자’라는 말은 거짓말에 가깝다. 대부분의 주주가 주식을 살 때 내는 자금은 또 다른 투기성 투자자에게 돌아갈 뿐이다. 아주 예외적으로 새로 발행한 주식을 사들였을 경우에는 기업에 직접 자금이 들어간다. 그 비중은 월가의 모든 주식거래 자금 중 1% 미만이다. 회사들이 자사주 매입에 쓴 돈을 빼면 오히려 적자다. 회사가 돈을 쏟아부어 주식시장을 지탱한 셈이다. 이렇게 보면 주주는 ‘투자자’라기보다 ‘투기꾼’이다. 주식을 사면서 회사의 주인이 된다는 생각을 과연 몇이나 할까. 물론 초기의 자본 투입은 있었을 터다. 그러나 오늘날 대차대조표에 등장하는 납입자본금은 언제 납입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대차대조표에서 주주 몫의 이익은 ‘자기자본’으로 분명히 표기되는 반면 직원에게 지급되는 이익, 즉 임금은 비용으로 처리된다.

그러니 비용절감이란 명목하에 노동자의 몫은 계속 줄어든다. 모건 스탠리의 경제학자 스티븐 로치는 1990년대 직원 생산성 향상은 임금 증가의 세 배였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노동생산성’은 얘기하지만 ‘주주생산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주이익 극대화라는 명목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수십년 된 공장의 문을 닫고 직원을 해고하는 게 일상화됐다. 환경오염 등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것도 비용절감이란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1987~1997년 사이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300% 상승했지만 같은 기간 실질임금은 7% 하락했다.

평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역설해온 저자는 “진보적 기업가들의 자발적 움직임이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가정친화적 정책을 발표했다가도 결국 구조조정의 물결에 휩쓸려 수만명을 해고하는 기업”을 목도하면서 좌절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폐해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권력 분배 구조’의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세상은 정치적으로 민주화되었을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귀족주의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부를 소유한 자만이 ‘귀족’의 특권을 누린다. 저자는 이를 인종이나 성차별과 같은 ‘빈부 차별’이라고 말한다. 민주주의는 그들 ‘귀족’이 지배하는 기업 내부로 들어오면 작동을 멈춘다. 종업원는 식민지의 국민이나 다름없으며, 심지어 전화나 e메일을 감시당하기도 한다. 저자는 “주식회사의 매출이 국내총생산(GDP)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최상위 부유층이 주식회사의 상당 부분을 소유하기 때문에 주식회사를 주주 이익에 부합하도록 운영한다는 것은 경제를 부유층에게 유리하도록 운영한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경제귀족주의’에 대비해 ‘경제민주주의’를 역설하는 저자는 1776년 미국 독립혁명 시기의 사상가를 인용한다. “초창기 미국인들이 영국 왕실의 집중화된 권력과 싸웠다면, 오늘날 우리는 주식회사와 부유층의 집중화된 권력과 싸운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정부를 변혁하거나 폐지할 권리가 시민에게 있듯이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주식회사를 변혁하거나 폐지할 권리 역시 시민에게 있다”고 말한다.

책은 부자나 주주를 적으로 삼아 공격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누구나 부를 얻고 싶어하고 그럴 권리는 존중해야 하지만 “부를 창출한 이에게 이익을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제대로 된 의미의 시장경제이고, 효율성도 가장 높아진다. 재산권의 창시자라고 일컫는 존 로크는 “모든 자에게 그의 정직한 노고로 낳은 산물에 대한 권리를 주는 것이 정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두들 “자신만은 귀족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체제는 유지된다.

주식회사 이데올로기
마조리 켈리 지음, 제현주 옮김/북돋움

직원에 쓰는 돈은 왜 비용으로 처리할까
“주식회사 변혁·폐지…직원에게 이익 돌려줘야” 경제민주화의 길 제시
주식회사의 주주자본주의를 거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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